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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안처집(安處鏶)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性任 安處鏶 安性任<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43_001 1802년(순조2) 4월 10일에 답주 유학 안성임이 유학 안처집에게 보성군 옥암면 보십평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02년(순조2) 4월 10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안성임(安性任)이 유학 안처집(安處鏶)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 이유는 쓸 데가 있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며, 방매 토지는 자신이 매입한 보성군 옥암면(玉巖面) 보십평(甫十坪)의 이자답(以字畓) 7두락지 내 하변 5두락 30부의 논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55냥이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유학 안성임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작성연대는 연호와 간지가 1년의 차이가 나므로 간지를 따라서 1802년으로 파악하였다. 토지소재지인 보성군 옥암면 보십평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일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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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六年壬戌四月初十日 大門稧 豊谷幼學安處鏶前 明文右明文事 以要用所致 自己買得畓 伏在玉巖面甫十坪以字畓七斗落內下邊五斗落 負數三十■卜庫乙 價折錢文伍拾伍兩 依數捧上爲遣 右人前本文記倂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談則 持此文卞正事畓主自筆 幼學 安性任[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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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안전(安峑) 처(妻) 이씨(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安峑 妻 李氏 安斗相 等 4男妹 安敏相<着名> □…□(흑색, 5.7×5.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93년(숙종19) 5월 16일에 안전의 처 이씨가 안두상 등 4명의 자녀에게 노비와 전답을 상속해 주면서 작성한 분급명문 1693년(숙종19) 5월 16일에 안전(安峑)의 처(妻) 이씨(李氏)가 안두상(安斗相) 등 4명의 자녀에게 노비와 전답을 상속해 주면서 작성한 분급명문(分給明文)이다. 분급 서문에는 이씨(李氏)의 남편 안전(安峑)의 유언(遺言)이 있었으며, 자신도 82살이나 되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재산을 분급한다고 하였다. 분급 내용을 보면, 봉사위(奉祀位)로 전답 17두락과 노비 4구(口), 묘직조(墓直條)로 노 1구, 장자(長者) 안두상(安斗相) 몫으로 전답 23두락 10승과 노비 16구, 둘째 아들 안익상(安翼相) 몫으로 전답 22두락 5승과 노비 16구, 3녀 오수석(吳壽錫) 처(妻) 몫으로 전답 23두락과 노비 11구, 4녀 고응천(高應天) 처(妻) 몫으로 전답 19두락과 노비 11구이다. 재산분배 정도를 비교해보면 남녀의 차별없이 거의 비슷하게 분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재기 작성시 참여자는 재주(財主) 모(母) 이씨와 필집(筆執) 삼촌질 유학(幼學) 안민상(安敏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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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三十二年癸酉五月十六日 肆子女等處 分衿明文右文爲 家翁生時若干田民欲爲區處 而未及成文 不意別世 其爲痛恨爲如何哉 余亦今年八十有二 死亡無日 一依 家翁遺意 四男妹處分給爲乎矣 白川奴婢加給於二子等者 爲其舅姑墓山在於長湍之地 而守護爲難故也 是乃 家翁平日之意故今此分給之日如是加給是旀 祭祀則女息等處勿爲輪回事奉祀位婢己陽二所生奴萬石年甲寅 婢禮節一所生奴慶云年甲子 婢己陽一所生婢小丹年庚子 奴戒達良産一所生婢有今年庚申 田畓秩 玉岩面月溫峙隱字畓三作幷四十九卜七束 同員惻字畓二作幷五卜二束 合十二斗落只 龍門面芥字田亭字川員太種五斗落只四作 幷四十四卜二束印墓直婢礼化一所生奴南山年庚午印長子斗相衿新奴婢秩 婢石上二所生奴順奉年乙巳 婢礼化六所生婢五礼年辛丑婢己生二所生婢仁礼年乙未 衿得秩 婢漢月二所生奴莫生年丁亥 婢礼生二所生奴鶴仁年己未 婢愛介一所生婢海丁年壬辰 婢{注/ㄱ}德五所生婢礼化年辛丑 白川奴婢 奴彦陪良産四所生奴戒達年乙未 買淂奴者斤男年丁酉 婢己生一所生婢仁香年辛卯 同婢一所生婢可也之年甲子 婢甘德二所生婢玉德年丁巳 婢義業一所生婢二月年庚午 奴元生良産五所生婢礼節年丙申 婢重礼五所生婢順香年乙巳 婢甫陽二所生奴萬岭年庚午 田畓秩 龍門面松山員辰字畓伍斗落只卜數二十四卜一束 玉岩面溫夜谷員篤字畓上过捌斗落只卜數 同面九老山辭字畓參斗落只內下过壹斗伍升落只 龍門面九有洞冬字田參斗落只卜數十四卜一束 同面芧亭宿字田壹斗落只卜數 同面井过宿字田壹斗落只卜數 後代田宿字田貳斗落只內上过壹斗落只卜數 玉岩面松峴貴字田伍斗落只內上过貳斗落只卜數 道村面里毋音村前 字田壹斗伍升落只卜數 印二子翼相衿新奴婢秩 婢乙生四所生奴順卜年戊戌 婢卜德八小生婢唜連年己卯 婢礼化七所生婢順月年乙巳 衿得秩 奴丑金良産五所生奴景龍年辛巳 婢礼生一所生奴鶴奉年丙辰 同婢三所生婢 年丁卯 婢戊陽一所生婢二丁年辛丑 婢乙生一所生奴九立年 白川婢甘德三所生婢 年 同婢一所生婢玉今年癸丑 奴戒達良産三所生婢順德年己巳 婢大德 所生婢甘德年戊子 婢己生三所生婢義業年丙午 婢礼節三所生 年壬申抱川婢重礼三所生婢仁花年乙未 同婢五所生奴鶴伊年壬寅 田畓秩 龍門面大橋員列字畓捌斗落只卜數二作幷三十八卜 彌力面江亭子員習字畓伍斗落只卜數二作幷二十八卜三束玉岩面九老山辝字畓參斗落只內上过壹斗伍升落只卜數 龍門面後代宿字田二斗落只內下过壹斗落只卜數 同面後田宿字田參斗落只卜數二作幷十八卜三束 玉岩面松峴貴字田伍斗落只內下过參斗落只卜數 道村面里毋音村後 字田壹斗落只卜數 同員 字田壹斗落只卜數 印三女吳壽錫妻衿新奴婢秩 婢礼化三所生奴吉峯年癸巳 同婢四所生婢五月年乙未 婢石上一所生婢豊礼年 衿得秩 奴見龍良産一所生奴斗明年丙辰 婢礼化一所生奴礼生年甲申 婢愛環 所生婢三春年辛卯 抱川婢仁化 所生年 奴礼生一所生奴 年 婢乙生二所生奴順男年 白川奴戒達良産二所生婢順今年辛酉 婢彦介 所生婢已陽年庚辰 田畓秩 羅州北村萬國記上畓 字畓捌斗落只卜數三十八卜 淡沙里記上羅州伊川仇羅 字畓捌斗落只內參斗落只卜數 烏山里貞字田捌斗落只內伍斗落只卜數 同里舡頭 字田柒斗落只卜數 印四女高應天妻衿新奴婢秩 婢礼化二所生奴吉生年丙戌 同婢五所生婢五今年戊戌 婢石上三所生婢莫仙年己酉 衿得秩 奴見龍良産二所生奴斗石年戊午 奴丑金良産 所生奴見龍年壬申 婢海丁 所生婢 年 白川婢吉云二所生奴仁仙年丁未 婢甘德四所生婢 年 奴羅斤乃 所生婢古云年辛巳 婢八月一所生婢八今年丙午 抱川婢順香 所生 年 田畓秩 羅州烏山里大門外毁字畓陸斗落只卜數 淡沙里記上羅州伊川仇羅 字畓捌斗落只內伍斗落只卜數 烏山里貞字田捌斗落內參斗落只卜數 同里灘頭 字田伍斗落只卜數 印財主母李 氏[故安峑妻李氏]筆執三寸姪幼學安敏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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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홍석문(洪錫文) 분급문기(分給文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洪錫文 安命一 洪錫文<着名>, 洪元升<着名>, 洪元臣<着名>, 洪元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3년 1월에 아버지인 홍석문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 1773년 1월 25일에 洪錫文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分給文記이다. 문서 첫행에 '分給都文記'라고 표기하고 있다. '都文記'한 여러 명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등의 행위로 인해 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개별 수취자에게 각각 문서를 작성해주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다른 사람에 해당하는 목록도 함께 적는 때도 있고, 수취자 개별 목록만 적는 때도 있다. 도문기는 각자 개별적인 목록만 적은 문서에 대해 상대적으로 모든 수취자의 분배 목록을 모아 적은 문서라는 의미이다. 문서의 서두에서 홍석문은 재산을 분배하는 소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지금 육십하고도 다섯이 되었으니, 약간의 토지와 노비를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선대를 모시는 山直의 位土와 부모 및 나 자신의 祭位條를 덜어내고, 이후 각각의 몫을 나누어 준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밝힌 바와 같이 재산은 ①증조부모 山直의 位土, ②부모님 山直의 位土, ③아버님 祭位條, ④어머님 祭位條, ⑤본인과 처의 祭位條를 먼저 열거하고 있다. 이어서 친동생인 洪元謙에게 주는 재산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同生弟 元謙에 대한 옛일을 돌이켜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 눈물을 흠뻑 적신다. 어버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 우리 세 형제에게 재산을 처분하여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 이후 동생인 원겸은 기유년 정월 26일에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같은 해 2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우리 세 형제에게 이미 재산을 처분하여 문서를 작성하였기에 이 아우에게는 원래부터 都文書에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이름 가운데 들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들에게 나누어 준 재산을 덜어서 몫으로 주어야 하나, 아버님이 이미 손수 택하여 만든 바에 감히 손을 댈 수 없었다. 이에 우리는 스스로 매입한 약간의 논을 몫으로 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원겸에게 논 1.5마지기를 물려준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누대의 종손을 차마 모른 채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종손인 조카 洪弘樑에게도 3마지기의 논을 배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배정한 재산을 본격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먼저 장자인 巨樑에게는 논 72마지기, 밭 19마지기, 노비 3명을, 딸인 安命一의 처에게는 논 72마지기, 밭 14마지기, 노비 1명을, 양자가 出繼한 아들인 東樑에게는 논 70마지기, 밭 24마지기를 배정하였다. 이어서 둘째 아들인 홍동량에게 주는 재산에 대해 별도의 단서를 달고 있는데, 여기서 그가 아버지 홍석문의 친동생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別錄으로 적은 단서는 "둘째 아들 동량은 친동생에게 出繼하였다. 재산을 나누어 주는 법에서 차등이 있으므로, 2섬지기를 몫으로 주었지만 1섬지기의 논을 여기에 별도로 기록해 놓는다. 세상일은 어찌될지 모르므로, 혹시 罷養하는 일이 있으면 별도로 기록한 논을 둘째 아들인 동량이 차지하여 갈아먹도록 하라. 만약 영구히 出繼한다면 장자인 거량이 차지하여 갈아 먹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상분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죽은 딸에 대해서 "죽은 딸은 나이 20이 되려 할 때 시집도 못 가고 죽었으니 더욱 가련하다. 德山洞의 선산에 있는 여분의 구릉에 장사 지냈다."라고 하면서 묘 아래에 있는 논 1마지기를 산지기 위토로 배정한다고 적고 있다. 문서 작성에는 元財主인 아버지 홍석문 이외에 증인으로 친형인 元升과 친동생인 元臣과 元謙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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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三十六年癸巳正月二十五日 子婿弟侄處 分衿都文書右文爲 嗚呼 余今六十有五 畧干田民 不可不區處乙仍于 先代山直位父母及己身祭位條除出後 各其分衿爲齊曾祖父母山直位 彌力面下道德來員 詩字畓 二斗落只六負六束 同字陳畓 三斗落只六負八束 同坪讚字陳畓 一斗落只五卜九束 同字陳畓 二升落只 負數一卜 同坪羔字畓 八升落只三卜 同字陳畓 一斗落只四卜三束爲齊父母主山直位 道村面虎吟洞入字畓 四斗落只十六負八束 同字陳畓 三作 六斗落只十四負八束 同字陳畓 三斗落只 同字陳畓上邊 二刀落只 兩庫負數九卜 同字陳田 六斗落只五卜 同字陳田 十斗落只 負數十三卜七束爲齊父主祭位條 龍門面上德山洞 爲字畓 三作 伍斗落只 負數二十二負爲齊母主祭位條 龍門面舊校洞員 呂字畓 四斗二十一卜六束 同字畓 二作 幷六斗三十三卜七束 致字田 二作 幷七斗落只 負數十卜五束 奴己金金年三十三 婢夢業年二十九爲齊夫妻祭位條 呂字畓 二作 幷伍斗落只 負數二十七卜八束 騰字畓 三斗 負數十七卜六束 同字畓 二作 幷六斗落只 負數三十四卜一束 垈田竹田 爲字 七作 幷負數三十一負一束內 十五負五束 庫登洞員 雨字田 二作 幷九斗 同字反畓 壹斗 婢夢業一所生奴得男年七 婢元尙三所生奴石年金年十七 婢元尙年五十五爲齊同生弟元謙追慕舊事 不覺哀淚滲然 父主在世之日 吾等三兄弟處 區處成文後 同生弟元謙 己酉正月二十六日生辰 而父主同年二月二十二日別世 則吾等三兄弟處 已爲區處成文 故此弟元無都文書中分財列名 事當吾等分給中除出衿給 而父主已成手擇 不敢下手 吾等自已買得是在 畧干畓庫 衿給爲齊 蘆洞面九龍村 上邊 轉字畓 一斗五刀落只爲齊宗孫侄弘樑 累代宗孫 則不忍越視 龍門面頭毛谷員 露字畓 三作 幷三斗落只 負數十卜爲齊長子巨樑 呂字畓 五作 幷十斗 騰字畓 二作 幷五斗 調字畓 四斗六升 雲字畓 四刀 調字畓 三斗 同字畓一斗 同字畓 二斗落只 彌力面下道城忠員 詩字畓 三斗 福內面 上道官田員 暑字畓 五斗 城後 日字畓 三作 幷五斗 德山洞 爲字畓 防川內 四斗 同坪墨石員 結字畓 四斗 蘆洞面梧洞亭子下員通字畓 四斗 同員 通字 廣字 合九斗 同員 廣字 反畓 二斗 長興 長東面杯山員 淵字畓 十四斗內 上邊 六斗 德山洞 爲字畓 五斗 蘆洞面防築下 面畓兩庫幷六斗 致字田 六斗 德山洞 墓下 結字田 四斗 彌力面松林員 悲字田 九斗落只 婢尙丹年四十四 同婢一所生婢喜才年十七 奴夢伊年三十七爲齊女婿安命一 龍門面梧里洞 律字畓 五斗 蘆洞面防築下 面字畓 二作 幷十五斗落只 玉巖面糠山坪滿字畓 四斗落只 心字畓 四斗 頭尾峙 堅字畓 二斗 長興長東面怪石洞 流字畓 伍斗落只同面杯山員 息字畓 十斗落只 杯山員 淵字畓 八斗落只 同面社倉洑坪員 惡字畓 二作 幷十二斗落只 長西面水臧員 暑字畓 六斗落只 帳內員 日字畓 一斗 糠山村 直字垈田 四斗落只牛峯洞 守字田 伍斗落只 頭尾峙 爵字垈田 伍斗落只 元尙二所生婢順每年二十二爲齊出繼子東樑 龍門面玉基村 騰字畓 兩庫幷九斗落只 致字畓 一頭 頭毛谷員 露字畓兩庫幷伍斗 同坪 露字畓 七升 結字畓 一斗 德山洞 爲字畓 伍斗 同坪眼山 爲字畓 三斗 蘆洞面 鞍峙員 渭字畓 六斗 兆內面塔洞員 髮字畓 八斗落只 松谷面國巖員 斯字畓 三斗落只 斗毛谷員 玄字田 四斗落只 玄字田 三斗 結字垈田 兩庫幷三斗 德山洞 結字田 下邊 三斗落只 同坪員 爲字田 二斗落只 彌力面松林坪 難字田 九斗落只 婢尙丹二所生奴獨術里年十爲齊別錄 次子東樑 出繼于同生弟 分衿法有差等 故二石許衿給 而一石畓庫 如是別錄名 世事無常 或有罷養之擧 則別錄畓 次子東樑次知耕食爲遣 永爲出繼 則長子巨樑次知耕食 依父所願爲齊 別錄畓 德山洞防築內 霜字畓 金字畓 兩庫合七斗落只 德山洞 爲字畓 四斗落只 上德山洞結字畓 二斗落只 蘆洞面九龍村 轉字畓 下邊 二斗落只 同面村前員疑字畓 伍斗落只亡女 年將二十 未嫁前身死 猶爲可矜 入葬于德山洞先山餘壠 故墓下結字畓 一斗落只 除出山直位 永世禁火禁伐事爲齊元財主 父 [着名]證 同生長兄 元升 [着名]證 同生弟 元臣 [着名]證 同生弟 元謙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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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김복삼(金卜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桂福 金卜三 金桂福<押>, 金宗烈<押>, 崔斗七<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41_001 1825년(순조25) 10월 18일에 답주 김계복이 김복삼에게 보성군 노동면 사불치평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5년(순조25) 10월 18일에 답주(畓主) 김계복(金桂福)이 김복삼(金卜三)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 사유는 자신의 부모 상채(喪債)가 많아서 이를 갚기 위해서이며, 방매 토지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먹은 보성군 노동면(蘆洞面) 사불치평(沙佛峙坪)에 있는 연자(輦字) 답(畓) 7배미(결부수: 7속)이다. 전문(錢文) 15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3장과 함께 방매한다고 하였다. 문서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김계복, 증인 김종렬(金宗烈), 필(筆) 최두칠(崔斗七)이다. 토지소재지인 노동면 사불치는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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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五年乙酉十月十八日 金卜三前 明文右明文事段 矣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 父母喪債許多 故蘆洞面沙佛峙坪輦字畓七夜味負數七卜庫乙 價折錢文十五兩 交易捧上右人爲遣 本文記三章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金桂福[着名]證人 金宗烈[着名]筆 崔斗七[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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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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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0년 여두성(呂斗星)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潤彩 呂斗星 鄭潤彩<着名>, 崔成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12월 24일에 답주 유학 정윤채가 유학 여두성에게 순천부 황전면 산령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10년(순조10) 12월 24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윤채(鄭潤彩)가 유학 여두성(呂斗星)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윤채는 자신이 경작을 시작하여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세 상 부득이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토지의 소유경위와 매매동기를 발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山嶺) 여전평(閭前坪)에 있는 섭자(攝字) 태종(太種) 전(田) 4마지기와 답(畓) 1마지기이다. 그러면서 위쪽은 승(僧) 신전(神全)의 땅으로 양안에 장적된 곳이고 아래쪽 답 7도락지는 고(高) 노(奴) 일단(一丹)으로 양안에 올라 있다고 방매 토지와 연접해 있는 땅의 주인을 밝혀 놓았다. 이상의 땅을 돈 15냥을 받고 감나무 6그루, 당산(堂山) 아래의 회산(灰山)과 2작(作) 진지(陳地)와 함께 넘겨준다고 명시하였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5장도 함께 첨부하여 주니 훗날 자손 중에 잡담을 하는 폐단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시비를 정하라고 하였다. 문서의 작성시 참여자는 답주 유학 정윤채가 자필(自筆)하였고 증인으로 유학 최성옥(崔成玉)이 참가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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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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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금장리동원(錦帳里洞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益模 錦帳里洞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1년(철종2) 10월 28일에 답주 유학 양익모가 금장리동원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의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1년(철종2) 10월 28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양익모(梁益模)가 금장리동원(錦帳里洞員)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양익모가 전해 내려오던 논을 여러 해 갈아 먹다가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판다고 적었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굴포평(窟浦坪)에 있는 직자(職字) 답(畓) 4배미 3마지기(결부수: 9부 9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46냥을 받고 팔았으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있어 내어 줄 수 없고 다만 신문기(新文記: 현재 발급 명문) 1장을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 굴포평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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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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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咸豊元年辛亥十月二十八日 錦帳里洞員前明文右明文事段 由來畓 累年耕食是如可 要用所致 不得已 順天伏在黃田面霅峙窟浦坪職字畓四夜味三斗落只負數九卜九束 帳庫乙 價折錢文四十陸兩 依數捧上是矣 旧文記他田畓幷付 故不得出給是遣 以新文一丈放賣 日後本價還退之意 成此文憑考事畓主自筆 幼學 梁益模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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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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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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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최정록(崔正綠)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一國 崔正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68_001 1815년(순조15) 3월 7일에 답주 조일국이 유학 최정록에게 순천부 황전면 산령의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15년(순조15) 3월 7일에 답주(畓主) 조일국(趙一國)이 유학(幼學) 최정록(崔正綠)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일국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먹었던 논을 큰 흉년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山令) 구개평(九介坪)에 있는 직자(職字) 답(畓) 3마지기(결부수: 12부)로 삼랑(三郞)의 이름으로 양안에 등재된 땅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64냥을 받고 최정록에게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본문기(本文記)는 다른 전답과 함께 기재되어 있어서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조일국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현재 상중이므로 서명할 수 없다고 적었다. 황전면 산령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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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嘉〗慶貳拾年乙亥三月初七日 幼學崔正綠前明文右明文段 自己買得畓 累年耕食是如可 當此大無之年 勢不得已 府地黃田面山令九介坪員伏在 職字畓三斗落只負數十二卜▣三郞帳庫乙 價折錢文六十四兩 依數交易捧上爲遣 本文記段他田畓幷付 故不得出給 而背後爻周 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 如有雜談是去等 將此文記告 官卞正事自筆 畓主 趙一國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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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조구현(趙懼顯)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井模 趙懼顯 梁井模<着名>, 鄭思贊<着名>, 李仁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3년(철종4) 11월 28일에 답주 유학 양정모가 유학 조구현에게 순천부 황전면 하도리 삽치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3년(철종4) 11월 28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양정모(梁井模)가 유학 조구현(趙懼顯)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양정모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 먹었던 논을 다른 곳으로 옮겨 사기 위해서 방매한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하도(下道) 삽치(霅峙) 구계평(九溪坪)에 있는 종자(從字) 답(畓) 4마지기(결부수: 10부 2속) 노(奴) 당삼(堂三)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땅이다. 이를 본문기(本文記: 토지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2장과 함께 전문(錢文) 55냥에 팔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는 답주 양정모와 증필(證筆: 증인이자 문서작성자) 유학 정사찬(鄭思贊), 증인 한량(閒良) 이인영(李仁永)이다. 청 연호와 간지가 불일치하므로 간지를 따라 작성연대를 파악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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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昌仁 李昌仁<着名>, 朴良鎭<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86_001 1836년(헌종2) 12월에 답주 유학 이창인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산 보성군 백야면 옥천촌의 논을 돌려주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6년(헌종2) 12월에 답주 유학 이창인(李昌仁)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산 보성군(寶城郡) 백야면(白也面) 옥천촌(玉泉村)의 논을 돌려주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옥천촌 앞에 있는 파자답(頗字畓) 2두락 7부의 논을 선산의 위토로 가지고 있던 상대에게 갑술년분에 샀다가 지금 우인이 거래한 돈이었던 18냥을 주기에 즉시 돌려준다는 내용이다. 본문기 4장도 아울러 준다는 것과 훗날 자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할 것을 당부한 내용을 함께 적었다. 문서의 발급에 참여한 인원은 답주 유학 이창인과 증인이자 작성자인 유학 박량진(朴良鎭)이다. 뒷장에는 '옥천위토답문(玉泉位土畓文)'이라는 관리자의 주기가 기록되어 있다. 갑술년(1814)에 본 토지를 판 상대가 최맹담(崔孟談)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본 토지를 도로 매입한 집은 최씨가로 판단된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백야면 옥천촌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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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六年丙申十二月 日明文右明文事段 白也面玉泉村前坪頗字畓二斗落所耕七卜庫 卽右人先山位土 而甲戌年分買得是如可 今於右人前捧本價拾捌兩後 卽爲還退以給 而本文記四丈幷以出給 日後子孫中如有雜談是去等 以此文告官卞呈事畓主 幼學 李昌仁[着名]證筆 幼學 朴良鎭[着名](背面)玉泉位土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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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박하신(朴夏新)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仁喆 朴夏新 鄭仁喆<着名>, 李廷祐<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4년(순조24) 12월 7일에 답주 정인철이 박하신에게 구례현 간전면 산정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4년(순조24) 12월 7일에 답주(畓主) 정인철(鄭仁喆)이 박하신(朴夏新)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갈아먹었던 땅을 이매(移買)를 위해서 판다고 하였다. 방매 토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정리(山亭里)에 있는 주자(周字) 답(畓) 5마지기와 죄자(罪字) 답(畓) 4마지기(결부수 합계: 36부 1속)의 땅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120냥이며 본문기도 아울러 준다고하였다. 문서작성 시 참여자는 답주 정인철과 증인과 필집을 맡은 유학(幼學) 이정우(李廷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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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四年甲申十二月初七日 朴夏新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畓 累年耕食是如可 移買次 求禮艮田面山亭里後坪伏在 周字畓伍斗落只果 負數貳拾卜七束庫果■■(林內)■■■■■■■■■■■■■■■(伏在罪字畓四斗落只負數拾伍卜四)束庫乙 價折錢文壹百貳拾兩 依數捧上爲遣 本文記幷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將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鄭仁喆[着名]筆證 幼學 李廷祐[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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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在義 노(奴) 삼랑(三郞) 趙在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0년(순조30) 2월 4일에 답주 유학 조재의가 순천부 황전면 산령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0년(순조30) 2월 4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조재의(趙在義)가 논을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재의는 자신이 물려받은 위답(位畓)을 여러 해 갈아 먹다가 사채(私債)가 너무 많은데 갚을 수가 없게 되어 땅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山令) 구포평(九浦坪)에 있는 직자(職字) 답(畓) 4마지기(결부수: 1부 7속) 노(奴) 삼랑(三郞)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을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와 함께 전문(錢文) 61냥을 받고 팔았다. 문서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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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최석형(崔錫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大賢 等 2名 崔錫衡 金大賢<着名>, 金泰賢<着名>, 南重哲<着名>, 金基賢<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5년(철종6) 4월 20일에 능주 쌍봉촌에 사는 유학 김대현·김태현이 유학 최석형에게 보성군 백야면 수중산의 산지 일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5년 4월에 20일에 능주 쌍봉촌에 사는 유학 김대현(金大賢)·김태현(金泰賢)이 유학 최석형(崔錫衡)에게 산지를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 토지는 보성군(寶城郡) 백야면(白也面) 수중산(水中山) 간룡(艮龍) 계좌지원(癸坐之原)인 선산의 일석(一席) 산지이다. 방매 사유는 집이 가난하여 산지기를 정해두고 수호하지 못하던 차에 최석형이 자신의 아버지 산소를 쓰게 해 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한데다 자신의 가난과 노친 봉양의 어려움이 겹쳐 함께 산소를 수호하는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거래 가격은 전문(錢文) 50냥이다. 문서의 발급에 참여한 인원은 산주(山主) 능주(綾州) 쌍봉촌(雙鳳村)에 사는 유학 김대현과 김태현 2인, 증인 유학 남중철(南重哲), 필집(筆執) 유학 김기현(金基賢)이다. 뒷면에는 백야면 수중산 문축(文軸)이라는 관리자의 주기(註記)가 적혀 있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백야면 수중산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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