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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府 大正町盧軫永 氏【石工所前】(피봉_뒷면)珍島郡 鳥島面 昌柳里鄭基福方朴泰慶ヨリ.(簡紙)謹未審新年孝中體候萬安, 而幼兒들도 充實乎.仰賀之至. 弟 客中無故耳.就前年度光州을ᄯᅥ 故鄕으로 移去ᄒᆞᆫ 時 自心的舊意上으로 小作參斗落만는 動情的 動情ᄒᆞ샨쥴 밋어던바 今月인 壬午年을 當ᄒᆞ와亦是未忘不已ᄒᆞ오이다. 未忘者余, 則多小을不拘印望, 回示若何. 餘不備白.壬午旧一月十七日, 弟 朴泰慶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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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文不幸 惟我六峯李先生奄棄 後學吾黨之痛 復有加於此哉 嗚呼 先生遺文藏在巾衍 欲其不朽 今將正草 此是斯文大事 不敢造次 玆以仰通于有文僉尊 望須從速以本稿來準 俾無後悔之地 千萬 雖涉賢勞此意 或可輪照于隣近有文各家否壬午復月 日 寧光郡大馬面南山里小南齋內正草所追而待正草完濟 仰官許印行計 今春門生契會時 已有選定任員者 故玆記于左以供 尊覽監董李秉柱 李載敏 李起南 姜冏欽 李乘總務李玹常務李興杓 羅玉允 金洪彬 李龍洙 金寧鎬金東瑾 鄭時濬幹事李鎔聖 丁琇 李鶴洙 姜聖元 丁在奎掌財李東範【피봉】〈前面〉光山郡■■〔瑞坊〕芝山面日谷里▣…▣軫永氏▣…▣龍〈後面〉靈光郡大馬面南山里李龍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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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別尙悵矣 謹請勞攘之餘兄體萬旺 寶節均休 仰頌且祝 弟功服人依劣而已 就言先考先生追配事 儒本孫間庶爲熟言 而本孫二人許 姑不受承諾 則掌色言內 仁兄一次惠枉 然後可決云 來月十日內掃萬惠枉 如何如何 兄先奉審後成事 可好可好 道理上體面上當然事也 兄若入院則先幣金限二百円後卽買本孫之心矣 深諒而先金院春秋爲先享需金也 當日儒本孫幾人會飮料代 亦爲不無也 又爲諒裁焉 餘立俟不備上癸未十一月卅日 弟金成基二拜【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軫永殿〈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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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1월에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내용의 간찰 1944년 1월 9일에 정읍군 칠보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전에 부친 서신은 잘 받아보았는지 묻고, 본인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선고(先考)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은 진행방침이 거의 섰다고 하면서, 서원 주벽(主壁) 이하 칠현(七賢)의 자손 중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과 영천(靈川) 신잠(申潛)의 자손에게는 부탁할 필요 없고, 눌암(訥菴) 송세림(宋世琳) 집안은 그 집안에 유력한 권리인이 있으므로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성재(誠齋) 김약묵(金若默)과 명천(鳴川) 김관(金灌),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과 묵재(默齋) 정언충(鄭彦忠) 집안도 부탁을 하면 수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군경(郡警) 두 청(廳)의 일은 자신이 유림들과 담당하여 책임을 지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일이 어렵긴 하지만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액서원에 배향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승낙하는 비용으로 2백원을 이 서신을 보는 즉시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돈은 추향(秋享)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원답(院畓) 개축비(改築費)로 쓸 계획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형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는 자신에게 원지(院誌)의 판각비용으로 20원을 빨리 보내주라는 뜻으로 권유해주기를 몹시 바란다고 하였다. 《무성서원지(武城書院誌》에 의하면 김성기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정읍에 거주하였으며, 1932년에 무성서원의 색장(色掌)을 맡은 적이 있는 인물로 나온다. 노진영의 선고는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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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縣石谷雲臥里丁卯式戶口單子戶幼學崔宗得年七十一丁巳本全州 二統二戶父學生 德延祖學生 東龍曾祖學生 龜善外祖學生朴光弼本密陽妻鄭氏齡七十一丁巳本慶州父學生 大益祖學生 致成曾祖學生 仁國外祖學生權在弼本安東卛子秀甲年三十一丁酉婦李氏齡三十一丁酉本全州賤口奴上元 甲子相凖 [周挾無改印][谷城縣監之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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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최종득(崔宗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70 谷城縣監 崔宗得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70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70년(고종 7)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종득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이고 오가작통 순번은 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72세 기미생(己未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종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할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증조(曾祖) 학생 귀선(龜善), 외조(外祖) 학생 박광필(朴光弼)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최종득의 아내 정씨(鄭氏)는 연령 72세 기미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대익(大益), 할아버지 학생 치성(致成), 증조 학생 인국(仁國), 외조 학생 권재필(權在弼)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수갑(秀甲)은 나이 34세 정유생(丁酉生)이며, 며느리 이씨(李氏)는 연령 34세 정유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상원(上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 방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6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묘상준(丁卯相凖)'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종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이 준호구 외에 최종득의 다른 준호구에는 최종득과 그의 아내 정씨의 생년이 모두 기미생이 아닌 '정사생(丁四生)'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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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縣石谷面雲臥里庚午式戶口單子戶第 統幼學崔宗得年七十二己未本全州 二統一戶父學生 德延祖學生 東龍曾祖學生 龜善外祖學生朴光弼本密陽妻鄭氏齡七十二己未本慶州父學生 大益祖學生 致成曾祖學生 仁國外祖學生權在弼本安東卛子秀甲年三十四丁酉婦李氏齡三十四丁酉本全州賤口奴上元 丁卯相凖 [周挾無改印][谷城縣監之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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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縣石谷面雲臥里丙子式戶籍單子 四統一戶戶幼學崔秀甲年四十丁酉本全州父學生 宗得祖學生 德延曾祖學生 東龍外祖學生鄭大益本慶州妻李氏歲四十丁酉籍全州父史庫參奉 龍甲祖學生 東芳曾祖學生 光彦外祖學生金永郁本光山率子童蒙楨國年十五壬戌婦李氏齡三十四丁酉本全州賤口奴上元 癸酉相凖印 [周挾無改印][谷城縣監之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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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復)▣▣(尊体)萬康하시며 營事에 奔走하시옵지요. 遠外에서 想像하며 仰祝하옵나이다. 宗生은 無事히十一月一日부터 通勤中이오니 大幸千萬耳.就拜告, 同封中 成績記入表에 記入하여 가지고地燮便에 付送하시와 擔任宋先生께 傳하도록 하시압.成績記入은 形式的으로 事務■(만)〔오〕에만 手續하고 極秘裏에 宋先生에게 特別付託하엿슴니다. 安心하시고光州尊敎에 가셔셔 中五學年 成績記入하여 주도록交涉하시여 期日內에 到着爲計하시압.宋先生과는 約束한배 有하오니 絶對安心을 仰望. 餘不備, 申書.十一月十八日, 承鉉 拜上.盧軫永 氏 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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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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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건)(特殊通常, 少包)郵便物受領證引受番號 : 324重量 1瓦, 郵便料 14錢(受取人氏名) 安秉鉉(差出入宿所氏名) 大正町 盧軫永 殿14年 5月 15日 引受光州大正町 郵便局所/郵便取扱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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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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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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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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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皮封_앞면)單望 盧鍾龍 座下光州郡 本村面 日谷(皮封_뒷면)潭陽 月山祠(內紙)文忠公益齋李先生影幀閣釋菜禮行于今月十五日 而以 座下獻官擬望 故玆以仰單于盧鍾龍 座下辛未三月五日月山祠[月山祠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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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盧軫永 氏(피봉_뒷면)武城書院祭官望 [印: 武城書院](簡紙)望武城書院秋享祭日官典祀官盧軫永原 薦乙亥八月日道會所[印: 武城書院] 2개入齋八月十日上午十二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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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郡 芝山面 日谷里盧軫永 氏(피봉_뒷면)武城書院內 金煥相謹答(簡紙)省禮拜言.芝宇信宿, 蘭香尙襲.謹請比令,孝體支嗇, 覃儀鴻禧,幷溯且禱. 弟無撓抵巢, 劣狀粗保耳. 就曩臨 錦地, 厚蒙淸誨, 滌盡備腔. 産蟾何感如之. 爲探 近節,玆呈尺索, 恕燭若何.餘謹不備疏禮.壬午三月念八日,弟 金煥相權寧祚 拜疏.令從氏春岡兄, 孝體保重否?此意雷告仰企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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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6월 29일에 사생 정순묵이 사돈댁에 안부를 묻기 위해 노종룡에게 보낸 서간. 1912년 6월 29일,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광주(光州) 일곡(日谷)에 사는 사돈 노종룡(盧鍾龍)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서간이다. 초여름에 와 주셨던 것이 아직까지 감사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그 뒤로 갈수록 그리워졌는데 사람을 보내시어 편지를 주시니 마치 음성을 듣고 있는 듯 하고 함께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극렬한 더위에 사돈댁 어르신의 건강이 편치 않으시다니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경서를 읽으시는 사돈도 아드님과 가족들과 모두 평안하신지 묻고 자신집의 노인은 그럭저럭 지내시고, 아주 작은 우려로는 더운 계절의 예사스런 증세이니 어찌 하겠느냐고 했다. 금년의 농사는 자신의 농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큰 흉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가뭄으로 시작해서 병충해로 끝날 것이니 앞으로의 걱정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이 결정해주는 일을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고 탄식했다. 상대가 편지로 말한 것은 잘 알았다며 조금 서늘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찾아뵙겠다고 했다. 중부(仲父)께서 성묘 행차를 가시어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며 오시면 하나하나 말씀드려 물을 계획이라고 했다. 선(選) 아이의 다리에 조그마한 종기가 난 것은 아직 씻은 듯이 낫지 않았다고 말하며 자애(自愛)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본 간찰이 들어 있던 피봉의 뒷면에는 갑인년 12월 23일로 기록되어 있어 1912년(임자)과는 다른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발신자 정순묵은 ?승정원일기?에, 어의(御醫), 화순현감(和順縣監), 수안군수(遂安郡守), 나주영장(羅州營將), 내금위(內禁衛) 등에 임명된 사람으로 나온다. 간찰 피봉에 의하면 포평(蒲坪)에 살고 있었다. 수신자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은 최익현(崔益鉉), 송병선(宋秉璿, 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향인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으로 와서 교육과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1930년에 본인의 아호를 딴 소해정을 지었다. 소해정은 이후 1965년 그의 아들인 노진영이 같은 공간에 있는 만주사(晩州祠)의 강당으로 헌납하면서 경의재(敬義齋)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만주사는 한말 문신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과 노종룡을 배향한 사당으로 노종룡의 문인들과 고을 유림들이 송병선의 유풍을 추모해 1944년에 세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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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薄投轄 遽爾旋旆 悵缺無已 伏未審宵回棣床氣體候 以時萬重 大小家節宣均慶否 伏溸區區無任下誠之至 査下生猶候粗寧侍狀姑依 渾集無恙外 何煩達 玉允妹兄 極爲賢秀 寒楣之幸 孰大於是 娓娓不已而今且旋歸 悵薪悵薪 再邀以念後爲計 以此下諒如何 餘不備伏惟尊察乙未十二月初六日 査下生 金千洙再拜【피봉】謹再拜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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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自姻後 今至歲暮 瞻詠政切 伏未審臘冱棣床氣體候 連衛萬重 家間大小節均安 玉允妹兄亦穩侍篤課否 伏慕區區無任下誠之至 査下生慈候粗寧 亞庭免添 妹阿亦蒙庇善度以是伏幸耳 答儀凡百 特荷盛念 愧赧中心 於今始覺妹兄貌範 森然在目 尙不弛于中 而今纔送伻 卽爲命送 千萬伏企耳 餘不備狀禮乙未十二月二十四日 査下生金千洙再拜【피봉】謹再拜上候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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