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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기(葬擇記) 9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주(母主) 장례(葬禮)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장택기(葬擇記). 祭主, 葬地, 運, 安葬日, 下棺 시간, 開土 시간, 穴의 깊이, 啓殯, 發引, 停喪, 取土 방향, 周堂, 呼冲, 造命 등 기록 *亡人: 坤化命戊子火 *安葬日: 壬辰十一月二十五日辰時又酉時亦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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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은봉전서(隱峰全書) 인출분정기(印出分定記) 2 고문서-치부기록류-분정기 牛峯門會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46_001 1863년 11월 2일에 우봉문회소(牛峯門會所)에서 작성한 은봉전서(隱峰全書) 인출(印出) 분정기(分定記) 은봉전서 간행을 위해 은봉 후손 각파(各派)에 분정한 액수와 각파 수전유사(收錢有司), 임원 명단과 수전(收錢) 기한을 적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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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順天) 소안면(蘇安面)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단자(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李在求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조선말, 선원대동보에 입록하기 위해 작성한 순천 소안면 효령대군파 족보 단자. 조선말, 선원대동보(璿源大同譜)의 입록(入錄)을 위해 작성한 순천(順天) 소안면(蘇安面)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족보 단자(單子)이다. 유학(幼學) 이재영(李在永)과 그의 부(李得亨), 조(李章吾), 증조(李光俊), 외조(楊龍甲, 본관 南原)를 기록하고 처 박씨(朴氏, 본관 密陽)의 4조인 부(朴思根), 조(朴迎春), 증조(朴龍一), 외조(학생 金基烈, 본관 慶州)를 기록했다. 아들 유학(幼學) 기석(基碩)까지 적혀 있다. 종이의 재질로 보아 조선말기로 생각되지만 정확한 작성시기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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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天蘇安面孝寧大君派單子幼學 李在永父 參奉 得亨祖 學生 章吾曾祖 學生 光俊外祖 學生 楊龍甲 本南原妻 朴氏 本密陽父 學生 思根祖 嘉善大夫 迎春曾祖 學生 龍一外祖 學生 金基烈 本慶州率子 幼學 基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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替 下記養士齋 有司生員 前處 分錢 文八兩殿直 金善權癸卯四月初二日校下人 庫子 鄭達五首書員 金後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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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양사재(養士齋) 하기(下記) 2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鄭達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32_001 계묘년 4월 초2일에 양사재에서 작성한 하기(下記) 계묘년 4월 초2일에 양사재(養士齋)에서 작성한 하기(下記)이다. 양사재는 주로 지방에서 선비들의 학문 증진을 위해 향교 내에 설치한 교육기구이고, 하기는 관청, 향교 등 재정활동을 하는 조직에서 작성하는 지출부이다. 무엇에 대한 기록인지, 혹은 어디에서 작성한 기록인지에 따라 하기의 이름도 다양했는데, 가령 해마다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것들을 기록할 경우 '응하기(應下記)', 그렇지 않을 경우 '별하기(別下記)',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을 경우 '용하기(用下記)', 제사에 사용한 지출목록은 '제하기(祭下記)' 등으로 이름붙였다. 문서의 서두에 '替 下記'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이 문서를 替(帖)로 정의할 수도 있지만, 이어서 생원에게 전문 8냥을 처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지출을 기록한 문서로 추정된다. 문서 말미에는 발급일을 쓰고 양사재의 전직(殿直) 김선권(金善權), 고자(庫子) 정달오(鄭達五), 수서원(首書員) 김후선(金後善)의 이름을 적었다. 금전 출납에 관여했거나 문서의 보증인으로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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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순천(順天) 월등면(月燈面) 집강(執綱)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月燈面 執綱 順天府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신년 6월 25일에 순천 월등면의 집강 허 아무개가 효자 이정충의 포상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순천도호부사에게 올린 첩정 갑신년 6월 25일에 순천도호부(順天都護府) 월등면(月燈面)의 집강(執綱)이 도호부사에게 올린 첩정(牒呈)이다. 집강은 월등면에 거주하는 효자 이정충(李廷忠)의 포장을 요청하며 그의 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정충은 효자 이하성(李河聖)의 손자이며 사과(司果) 이태후(李台厚)의 아들이다. 그는 소학(小學)이나 효경(孝經) 등의 경서를 습독하고 효를 배움의 방도로 삼아 친부모를 봉양했다. 부친이 낫기 어려운 병에 걸리자 동서로 의약을 문의하러 다니느라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였고, 밤낮으로 시탕(侍湯)하며 곁을 떠나지 않으며 변을 손으로 찍어 맛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음을 뚫어 잉어를 잡아왔으니 옛 사람의 효성에 비할만하다. 이러한 효행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고 있으니, 수령께서 감영에 보고하여 포장(襃獎)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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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燈面執綱爲文報事 夫孝者 三綱之首 百行之源 而苟有孝行之卓爾 則上自 朝家有旌閭之盛典 凡厥孝行安不薦報 而蒙褒乎 本面新月居 童蒙李廷忠 故孝子河聖之孫 司果台厚之子也 世襲其孝 髠㱓事業 習讀小學孝經等書 以孝爲向學之方 其養親也 甘旨之供 定省之節 已無可言 其親以難救之症 彌月呻苦 則東西問醫衣不解帶 晝宵侍湯 身不離側 漬手嘗糞 穿氷得鯉 則古人之孝 奚獨專美於古哉 隣里歸心 鄕黨感服 雖樵童牧豎 必稱之李孝子耳 使此卓異之行泯沒 而無聞 則其在秉彛之性 豈不慨惜乎 習知其行 稔聞其事 故擧槪牒報 特推孝理之政好善之德 轉報 營門 以爲蒙褒事 合行牒呈 伏請照驗施行 須至牒呈者右牒呈行府使甲申六月二十五日 執綱 許 [着名][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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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정영봉(鄭永鳳)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1874 順天府使 鄭永鳳 行府使<押> □…□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4년(고종 11) 1월에 순천부사가 유학 정영봉에게 석전제의 사촉제관으로 위촉하며 보낸 망기 1874년(고종 11) 1월에 순천부사(順天府使)가 유학(幼學) 정영봉(鄭永鳳)에게 석전제의 사촉제관(司燭祭官)으로 위촉하여 보낸 망기(望記)이다. 제사는 다음 달인 2월 4일에 설행하니 그때 기일에 맞추어 입재(入齋: 제사 전날에 齊戒하는 일)하도록 당부하였다. 사촉(司燭) 제관은 제사를 지낼 때 쓸 초와 향을 맡은 사람으로 초를 켜고 끄는 일 등을 담당하였다. 1874년 순천부사로 재임했던 사람은 홍재현(洪在鉉, 1815~미상)이다. 문서 내에 망기를 내는 행위를 '출표(出標)'로 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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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學鄭永鳳 黃釋奠 祭來月初四日行司燭出標及期入齋事甲戌正月 日行府使[署押][官印 1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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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정진영(鄭震永)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1890 門中 鄭震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29_001 1890년(고종27) 10월 15일에 정씨 문중에서 정영진을 명말산소의 내년 봉행유사(奉行有司)로 위촉하면서 보낸 망기 1890년 10월 15일에 정씨(鄭氏) 문중(門中)에서 정진영(鄭震永)을 명말산소(椧末山所)의 내년 봉행유사(奉行有司)로 위촉하면서 보낸 망기(望記)이다. 그가 맡은 일을 세부적으로 '과포반상청(果脯飯床淸)'이라고 명시해 놓았다. 과는 과일을, 포는 북어포와 같은 생선 말린 것을, 반상은 제물을 올리는 상을, 청은 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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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寅十月十五日 椧末山所明年奉行有司 望鄭震永 果脯飯床淸原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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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七年九月 日長水縣故學生李奎鉉學行及其子洛丞孝行實蹟査報成冊故學生李奎鉉學行實蹟系出 璿源完原君?之十一世孫而其中祖正郞繼宋以宣廟朝特旨出后於俛仰先生宋參賛純長子海寬盖宋氏墓隧與家庄在於潭陽府故以外裔來寓而奉祀後孫遂居焉至於曾祖徽贈掌樂院正祖陽燮贈戶曺參議父在元贈戶曺參判而參判以英廟朝丙戌生奎鉉于潭陽豆谷靣上德里私第奎鉉生而頴異年甫八歲開口詠物吐辭驚人稍長事親以誠敬長以禮動静云爲有若老成人旣冠容儀俊偉辯論淸確素負重望爲先生長者所推詡遂無意於擧業讀書以心經近思錄性理大全爲入德之階梯講究蘊奧發揮性理中年分徃候於性潭宋先生門講磨道義多所獎詡可見其氣質用小學問功大處也其孝友著於家中行義稱於省內遠近學者望風坌集近古南服公實爲士林之冠冕甞自扁其所居曰秋圃盖囙其地名也自此來學者稱以秋圃丈席云臯鶴難掩以其學行才局再次入於道伯之剡薦雖未見用於世其有功於斯文吁其暢矣天不假壽以純廟朝壬申考終于家享年四十有七長老有速奪之誄後學有山摧之歎學力之得人深者有如是夫自是厥後道通相踏儒狀且麟道內儒生吳龍圭等累度抱狀齊籲 宲舎者已經數十載尙未蒙 貤贈之典是齊故學生李洛丞孝行實蹟正廟朝癸丑八月生于本府私第亦以聦慧之姿學襲家庭自在齠齔事親至孝長而家窶漁樵以供菽水盡歡其爲孝養只務悅志侍側之日人未見其一生愠言父母有疾憂遑踧踖藥餌之供饘粥之具靡所不至何必待敎導而能之盖其天性然也鄰里族親咸服其孝歲在壬申其父奎鉉奄患無何甞藥甞糞乃其末節刀圭無靈祈天而願代命也無奈則哀毁哭踊秉彛者聼之孰不感哭也水漿不入口者五日杖而後起至其葬也廬于墓下昕夕哀痛常與袒括無異三年如一日苟非誠孝之根天那能若是是時年才十九闋制之後遂絶意榮途無或以擧子爲業以早孤爲生平之痛事其母宋氏一如其父躬執爨炊身兼耕讀遂搬寓于昌平之杏亭遵母訓也粤在丙申其母病谻此老成時也百端誠供倍於前日乃於屬纊之日拚擗慟隕絶而復甦者數矣喪而稱其情葬而盡其節又廬于墓側哭泣不絶於口衰經不離於身毁瘠骨立哀慕踰禮當膝之處草根枯死前喪後喪一無餘憾終制之後托跡山水遂搆一茅廬扁之曰埜隱胷次爽然一邱一壑捿息自如甞庭植雙梧門栽一柳以寓霽月光風之味遠近士友之記序撰誦者案頹而軸溢足可知草野遺逸之義也寒親窮交其於四禮有闕則極力出救鄰里咸樂而愛戴之此亦非誠孝中流出來者耶以哲廟朝癸丑亦考終于家没世之後道狀儒通亦前後相疊而尙未蒙㫌褒之典是齊[長水縣監之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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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七年九月 日長水縣故學生李奎鉉學行及其子洛丞孝行實蹟査報成冊故學生李奎鉉學行實蹟系出 璿源完原君?之十一世孫而其中祖正郞繼宋以宣廟朝特旨出后於俛仰先生宋參賛純長子海寬盖宋氏墓隧與家庄在於潭陽府故以外裔來寓而奉祀後孫遂居焉至於曾祖徽贈掌樂院正祖陽燮贈戶曺參議父在元贈戶曺參判而參判以英廟朝丙戌生奎鉉于潭陽豆谷靣上德里私第奎鉉生而頴異年甫八歲開口詠物吐辭驚人稍長事親以誠敬長以禮動静云爲有若老成人旣冠容儀俊偉辯論淸確素負重望爲先生長者所推詡遂無意於擧業讀書以心經近思錄性理大全爲入德之階梯講究蘊奧發揮性理中年分徃候於性潭宋先生門講磨道義多所獎詡可見其氣質用小學問功大處也其孝友著於家中行義稱於省內遠近學者望風坌集近古南服公實爲士林之冠冕甞自扁其所居曰秋圃盖囙其地名也自此來學者稱以秋圃丈席云臯鶴難掩以其學行才局再次入於道伯之剡薦雖未見用於世其有功於斯文吁其暢矣天不假壽以純廟朝壬申考終于家享年四十有七長老有速奪之誄後學有山摧之歎學力之得人深者有如是夫自是厥後道通相踏儒狀且麟道內儒生吳龍圭等累度抱狀齊籲 宲舎者已經數十載尙未蒙 貤贈之典是齊故學生李洛丞孝行實蹟正廟朝癸丑八月生于本府私第亦以聦慧之姿學襲家庭自在齠齔事親至孝長而家窶漁樵以供菽水盡歡其爲孝養只務悅志侍側之日人未見其一生愠言父母有疾憂遑踧踖藥餌之供饘粥之具靡所不至何必待敎導而能之盖其天性然也鄰里族親咸服其孝歲在壬申其父奎鉉奄患無何甞藥甞糞乃其末節刀圭無靈祈天而願代命也無奈則哀毁哭踊秉彛者聼之孰不感哭也水漿不入口者五日杖而後起至其葬也廬于墓下昕夕哀痛常與袒括無異三年如一日苟非誠孝之根天那能若是是時年才十九闋制之後遂絶意榮途無或以擧子爲業以早孤爲生平之痛事其母宋氏一如其父躬執爨炊身兼耕讀遂搬寓于昌平之杏亭遵母訓也粤在丙申其母病谻此老成時也百端誠供倍於前日乃於屬纊之日拚擗慟隕絶而復甦者數矣喪而稱其情葬而盡其節又廬于墓側哭泣不絶於口衰經不離於身毁瘠骨立哀慕踰禮當膝之處草根枯死前喪後喪一無餘憾終制之後托跡山水遂搆一茅廬扁之曰埜隱胷次爽然一邱一壑捿息自如甞庭植雙梧門栽一柳以寓霽月光風之味遠近士友之記序撰誦者案頹而軸溢足可知草野遺逸之義也寒親窮交其於四禮有闕則極力出救鄰里咸樂而愛戴之此亦非誠孝中流出來者耶以哲廟朝癸丑亦考終于家没世之後道狀儒通亦前後相疂而尙未蒙㫌褒之典是齊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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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장수현고학생이규현학행급기자낙승효행실적사보성책(長水縣故學生李奎鉉學行及其子洛丞孝行實蹟査報成冊) 초(抄) 고문서-첩관통보류-보장 長水縣監 官<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68_001 1868년 9월에 장수현 전주이씨 고학생 이규현의 학행과 아들 이낙승의 효행을 조사하여 장수현에 제출한 보장 성책 1868년(고종 5) 9월에 장수현 전주이씨 고학생 이규현(1766~1812)의 학행과 아들 이낙승(1793~1853)의 효행을 조사하여 장수현에 제출한 보장(報狀) 성책이다. 작고한 학생 이규현은 완원군(完原君) 이수(李?, 1480∼1509)의 11세손이다. 그의 중조(中祖)인 정랑(正郞) 이계송(李繼宋)이 선조(宣祖)의 특지(特旨)로 면앙정 송순(宋純, 1493~1582)의 큰아들 해관(海寬)의 후사(後嗣)가 된 이후 후손이 담양부로 이주하였다. 증조 휘(徽)가 장악원 정(掌樂院正)에, 할아버지 양섭(陽燮)이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아버지 재원(在元)이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이규현은 1766년(영조 42)에 담양 두곡면(豆谷面) 상덕리(上德里)에서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영특하여 나이 여덟 살에 사물을 주제로 시로 읊었다. 조금 장성하여서는 성실히 어버이를 섬기고 예로써 어른을 공경하여 언행(言行)이 노성(老成)한 사람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용모가 뛰어나고 변론이 맑고 명확하여 스승과 덕망이 뛰어난 어른들에게 널리 인정받았다. 그러나 과거 공부에 뜻이 없어 『심경』·『근사록』·『성리대전』을 입덕(入德)의 계제로 삼고 성리(性理)의 심오한 이치를 궁구하였다. 중년(中年)에는 성담 송환기(性潭宋煥箕, 1728~1807)의 문하로 가서 도의(道義)를 연마하였다. 이규현의 효성과 우애는 집안에서 드러났고, 행의(行義)는 성 안에서 일컬어져 원근의 학자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어 사림(士林)의 으뜸이었다.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추포(秋圃)'라고 편액(扁額)하여 학자들이 추포장석(秋圃丈席)이라 일컬었다. 학행(學行)과 재국(才局)이 뛰어나 여러 차례 관찰사의 천거를 받았으나 출사하지 못하다가 1812년(순조 12) 향년 47세에 고종하였다. 이후에 전라도 유생 오용규(吳龍圭) 등이 여러 차례 청원서를 올린 지 수십 년이 지났으나 추증받지 못하였다. 작고한 학생 이낙승은 1793년(정조 17) 8월에 담양부에서 태어났는데 총명한 자질로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물고기와 땔나무를 마련하고 조촐한 음식으로나마 효양(孝養)에 힘썼다. 평소 부모를 곁에 모시면서 불평한 적이 없었으며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약을 바치고 죽을 쑤어 먹이는 데에 극진하였다. 1812년에 그의 아버지 규현이 이유 없이 병들었을 때 약과 변을 맛보았는데 의약(醫藥)에 효험이 없자 하늘에 빌며 자기의 수명을 대신 바치기를 원하였다. 19살에 부친상을 당하여 5일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서 일어나 장사(葬事) 치르고 3년 동안 묘 아래에 시묘살이하며 아침저녁으로 애통해하였다.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영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일찍 아비를 여읜 것을 평생의 아픔으로 삼았다. 어머니 송씨(宋氏)를 아버지와 같이 여겨 몸소 밥을 짓고 주경야독하였으며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창평 향정(杏亭) 마을로 이사하였다. 1836년(헌종 2)에 모친의 병이 심해지자 전보다 배로 극진히 보살폈고, 모친상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정(情)과 절차에 따라 장사를 치르고 묘 곁에서 시묘살이하며 끊임없이 곡하였는데 슬픔이 예에 지나칠 정도였으며 그가 무릎 꿇은 곳에는 풀뿌리가 말라 죽었다. 3년 상을 마친 뒤에는 초가집을 지어 야은(埜隱)이라고 편액하였으며, 뜰에 쌍오동을 심고 문에 버드나무 하나를 심어 제월광풍(霽月光風)의 풍미를 느꼈는데 원근(遠近)의 사우(士友)들이 지은 많은 글을 통해 초야에 유일(遺逸)의 의리를 알 수 있다. 가난하고 궁핍한 친척과 벗들이 사례(四禮)에 빠진 것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구원하여 이웃 마을이 모두 즐거워하여 떠받들었다. 1853년(철종 4)에 집에서 고종하였는데 그 뒤에 도의 장계와 유생들의 통문이 많았으나 아직 정포(㫌褒) 받지 못하였다. 성책 앞표지와 본문 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뒤표지 앞면에 현감의 서압(署押)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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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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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85년 정영선(鄭永善)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1885 順天府使 鄭永善 行府使<押> □…□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5년(고종22) 1월 24일에 순천부사가 유학 정영선을 석전제의 망료제관으로 위촉하면서 보낸 망기 1885년(고종22) 1월 24일에 순천부사(順天府使)가 유학(幼學) 정영선(鄭永善)에게 석전제(釋奠祭)의 망료(望燎) 제관으로 위촉하면서 보낸 망기(望記)이다. 다음달 2월 7일에 설행할 석전제의 망료로 출표(出標)하니 기일에 맞추어 입재(入齋)할 것을 당부하였다. 망료제관은 제사가 끝나고 축문이나 지방이 불에 다 탈 때가지 지켜보는 일을 맡은 제관이다. 당시 순천부사는 윤헌(尹瀗, 1841~미상)이었다. 순천부사는 1884년 11월 26일에 윤헌이 임명되었다가 1885년 6월 26일에 심상한(沈相漢)으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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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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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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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幼學鄭永善 黃釋奠 祭來二月初七日行 望燎出標及期入齋事乙酉正月二十四日行府使[署押][官印 1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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