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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손양진(孫亮晉)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孫亮晉 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윤2월 15일에 신부측인 손양진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혼서 무진년 윤2월 15일에 신부측인 손양진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혼인 관련 간찰이다. 손양진은 손녀의 혼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사주단자를 받았으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인사하였고, 요청한 대로 연길(涓吉)을 보내니 의제(衣製)를 알려주는 것이 어떠하냐는 내용이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를 연길이라 하고, 의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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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承華翰伏惟春仲尊體動止淸穆慰溯規規第孫女阿親事旣承星單私幸孰大於是涓吉依 敎仰呈章製回示如何謹宣伏惟尊照謹拜謝上狀戊辰閏二月十五日一直孫亮晋 再拜(皮封)謹拜謝上狀郭生員 執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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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目單子)物目衣籠 壹駄箱子 壹駄函 壹座兩絲法丹上衣 壹件松嶋丹上衣 壹件官紗上衣 壹件羅丹上衣 壹件玉洋木上衣 壹件苧布靑色下衣 壹件玉洋木下衣 壹件靑木下衣 壹件本木靑色下衣 壹件麻布靑色下衣 壹件紬絲 壹封端絲 壹件面鏡 壹介釵 壹介京粉 壹桶月梳 貳介剪子 壹介鞋 壹足溺江 壹介紬本木 貳匹金 拾參円際丙寅三月十三日(皮封)査兄棣座 下執事謹拜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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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곽화준(郭華準)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郭華準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자년 12월 7일에 신랑측 곽화준이 신부측 이생원댁에 보낸 혼서 병자년 12월 7일에 곽화준이 이생원댁에 보낸 혼례 관련 간찰이다. 사주단자는 상대방의 요청대로 서서 올리니 연길(涓吉)을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전통 혼례의 단계에서 연길(涓吉)은 납채에 해당되는데, 납채는 혼약이 이루어져 사주단자를 보내고 연길을 청하는 절차이다. 신부집에서 허혼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문을 써서 홍색 보자기에 싸 보내고, 신부집에서는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것을 연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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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惟臘寒尊體動止候萬重仰溸區區之至第就事旣至問年之境私分之慶幸耳星單依敎仰呈 涓吉回示如何 餘謹宣 伏惟尊照 謹拜上狀丙子十二月初七日玄風郭華準 再拜(皮封)謹拜上狀李生員 下執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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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敬審臘冱尊體動止萬重慰仰規規第從侄家親事因導言者旣蒙頷可實爲允合而星牒仰呈耳餘謹宣伏惟尊察 上狀癸丑十二月三日月城崔思弼謹拜(皮封)謹拜 謝上狀 [着名]謹封李生員 執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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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광주안씨(廣州安氏) 사성단자(四星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廣州安氏 査頓 廣州安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 2월 6일에 광주안씨가 보낸 사성단자 임진년 2월 6일에 광주안씨가 보낸 사성단자이다. 신랑의 사주는 신미년 9월 17일 유시(酉時)이다. 피봉에는 사성(四星)이라고만 적혀 있다. 신부측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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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星單子)辛未九月十七日酉時原壬辰二月初六日廣州安[着名](皮封)四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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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김달오(金達五)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達五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49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49년(헌종 15)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호주 김성인이 작고하여 그의 아들 김달오가 호주가 되었다. 김달오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2통 6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41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달오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성인(聖仁), 할아버지 한량 필봉(弼逢),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박득대(朴得大)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달오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36세 갑술생(甲戌生)이고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석용(碩用), 할아버지 한량 헌(憲), 증조(曾祖) 한량 무지(無知), 외조 한량 정미(鄭美)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외 가족 구성원으로 동생 달표(達表)가 있으며, 나이 24세 정해생(丁亥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46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병오호구상준(丙午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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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申生冠禮日元吉丁丑十二月十二日乙巳加冠午時汲水坐次衣章先置于壬丙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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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영월신씨(寧越辛氏)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寧越辛氏 査頓 寧越辛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진년 10월 29일에 신부측인 영월신씨가 신랑측에 보낸 연길단자 경진년 10월 29일에 신부측인 영월신씨가 신랑측에 보낸 연길단자이다. 혼례 날짜는 11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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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涓吉單子)奠雁十一月二十六日庚寅庚辰十月二十九日寧越辛[着名](皮封)涓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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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김달오(金達五)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達五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58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58년(철종 9)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달오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7통 1호이다. 김달오의 인적사항 부분은 결락되었다. 김달오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성인(聖仁), 할아버지 한량 필봉(弼逢),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박득대(朴得大)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달오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45세 갑술생(甲戌生)이고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석용(碩用), 할아버지 한량 헌(憲), 증조(曾祖) 한량 하지(何智), 외조 한량 정미(鄭美)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외 가족 구성원으로 동생 달표(達表)가 있으며, 나이 32세 정해생(丁亥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55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을묘호구상준(乙卯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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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八年 月 日羅州牧考戊午成籍戶口帳內荷衣島於恩村住第七統第一戶▣…▣父閒良 聖仁祖閒良 弼奉曾祖閒良 尙巾外祖閒良朴得大本密陽妻黃姓年四十五甲戌本長水父閒良 碩用祖閒良 憲曾祖閒良 何智外祖閒良鄭 美本慶州率弟達表年三十二丁亥等乙卯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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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聖采 牧使<押>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28년(순조28)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성채(羅聖采, 48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28년(순조28)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내영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에 사는 나성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성채는 48세이고, 신축년(1781)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언회(羅彦晦)이고, 조부는 나종유(羅宗有)이며, 증조부는 나윤명((羅允明)이다. 외조부는 정익성(鄭益成)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내는 김씨(金氏)로, 나이는 50세이고, 기해년(1779)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조부는 김윤상(金胤商)이며, 증조부는 통덕랑(通德郎) 김시규(金始圭)이다. 외조부는 김이서(金履瑞)이고, 본관은 면성(綿城, 현 전라남도 무안)이다. 아들은 나시화(羅時化)으로 나이는 21세이고, 무진년(1808)생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2명으로 이름은 영덕(永德)과 채덕(采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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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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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4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聖采 牧使<押>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34년(순조34)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성채(羅聖采, 5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34년(순조34)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내영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에 사는 나성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성채는 54세이고, 신축년(1781)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언회(羅彦晦)이고, 조부는 나종유(羅宗有)이며, 증조부는 나윤명(羅允命)이다. 외조부는 정익성(鄭益成)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내는 김씨(金氏)로, 나이는 56세이고, 기해년(1779)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조부는 김윤상(金胤商)이며, 증조부는 통덕랑(通德郎) 김시규(金始圭)이다. 외조부는 김이서(金履瑞)이고, 본관은 면성(綿城, 현 전라남도 무안)이다. 아들은 나시화(羅時化)으로 나이는 27세이고, 무진년(1808)생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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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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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坤未龍坤坐艮向運壬辰水忌土仙命甲子乾 主喪子庚子 孫甲子辛未己卯舊坤命乙丑 婦己酉 婦■■己未安葬二月十二日甲辰下棺辛時斬破正月二十八日午時先南開金忌六申穴深問地師開舊壙二月初十日辰時先南破壙亦同月初十日巳時先南正月二十八日卯時先南出柩 隨時 辛巳金發引 王德在龍坐 辛卯木停柩 甲庚方 甲辰火取土 壬申金勿伏方巳午未地忌命甲戌庚戌等生下棺時少避周堂空(皮封)葬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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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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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67년 김달오(金達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達五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67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67년(고종 4)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달오(金達伍)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달오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3통 7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58세 경오생(庚午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달오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성인(聖仁), 할아버지 한량 필봉(弼逢),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박득대(朴得大)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달오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54세 갑술생(甲戌生)이고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석용(碩用), 할아버지 한량 헌(憲), 증조(曾祖) 한량 하지(何知), 외조 한량 정미(鄭美)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외 가족 구성원으로 동생이 있는데 이름을 달표(達表)에서 의두(宜斗)로 바꿨으며, 나이는 41세 정해생(丁亥生)이다. 김달오(金達五)로 표기되어 있는 준호구에는 그의 생년이 모두 '경오생(庚午生)'이 아닌 '기사생(己巳生)'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외 가족사항 등의 내용은 달오(達五)와 달오(達伍) 모두 동일하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6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자호구상준(甲子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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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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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同治九年 月 日 羅州考庚午成籍戶口帳內荷衣島於㤙村住第二統第七戶閒良金達伍年六十一庚午本 金海父閒良 聖仁祖閒良 弼奉曾祖閒良 尙巾外祖閒良 朴得大 本密陽妻黃氏年五十七甲戌 本長水父閒良 碩用祖閒良 憲曾祖閒良 何知外祖閒良 鄭美 本慶州卛弟宜斗年四十四丁亥等丁卯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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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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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宜人李氏 羅晩命 羅斗冬<着名>, 金珝<着名>, 金瓚<着名>, 金珽<着名>, 羅晩運<着名> □…□(4.5×4.8), □…□ 2顆(5.3×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37_001 1706년 2월 27일에 재주인 계모 의인이씨가 가옹의 대상을 마친 뒤에 가옹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재산 등을 가옹의 유지에 따라 가옹의 부모·가옹 내외·전처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의 제위조 및 전처에게서 낳은 두 딸과 양자에게 각 몫을 나누어 지급하면서 작성한 재산상속 문서 1706년(숙종 32) 2월 27일에 재주(財主)인 계모(繼母) 의인이씨(宜人李氏)가 가옹(家翁)의 대상(大祥)을 마친 뒤에 가옹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재산 등을 가옹의 유지(遺旨)에 따라 가옹의 부모·가옹 내외·전처(前妻)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의 제위조(祭位條) 및 전처에게서 낳은 두 딸과 양자에게 각 몫을 나누어 지급하면서 작성한 재산상속 문서이다. 의인이씨의 가옹이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흘러 이제 막 대상까지 끝나 차마 말할 수 없이 비통하였다. 가옹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만 있고 후사(後嗣)가 없었는데 늦은 나이에 양자(養子)를 얻어 선조(先祖)의 제사를 의탁할 곳이 있게 되었으나 미처 집안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하였다. 가옹이 임종할 때에 제위조 및 자녀에게 나누어 줄 땅과 노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누이의 아들인 김찬(金瓚)에게 글자를 쓰게 하게 하여 조목별로 열거해 놓았다. 이에 한결같이 가옹이 남긴 뜻에 따라 각 자녀에게 몫을 나누어 상속하고 분재기를 작성하였는데, 전처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인 만복(晩復) 또한 제위조가 없어서는 안되기에 그의 제위조를 후록(後錄) 하였다. 각 제위조와 각 자녀별 상속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옹 부모의 제위조는 여종 1구, 종 1구, 논 15마지기 68짐, 밭 21마지기 등 97짐 9뭇이다. 이 제위조는 전에 이미 구획하여 정해 놓았으나 문서로 작성하지 않아 이 문서에 함께 기록해 두었다. 가옹 부부의 제위조는 종 1구, 논 21마지기 88짐 5뭇이며, 전처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 만복의 제위조는 논 2마지기이다. 장녀의 남편 학생 고경(高璟)의 몫은 여종 1구, 종 1구, 논 10마지기 30짐 9뭇, 밭 3말 5되지기, 차녀 남편 유학 김수익(金壽益)의 몫은 여종 덕이(德伊) 1구, 논 10마지기 25짐 7뭇, 밭 4말 2되지기 7짐 6뭇이다. 이중 여종 덕이는 사위 이름으로 산 것이지만 가옹이 살아있을 때에 값을 지급하여 사게 한 것이므로 지금 이 몫 안에 기록하니 나중에 의심하지 말 것을 추록하였다. 양자 만명(晩命)의 몫은 종 4구, 여종 2구, 논 28마지기 등 54짐 1뭇이다. 이중에 가옹 남매가 몫으로 받은 전답과 노비는 모두 가옹의 어머니가 처분한 것을 따라 나눈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세월만 보내다가 미처 문서를 작성하지 못하여 지금 이 문서를 작성할 때에 강옹의 여러 누이의 아들들이 함께 참여하여 착명(着名)하므로 마땅히 이 문서로 훗날의 증거로 삼을 것을 추록하였다. 또 도망 노비는 소명(小名)으로 문서 왼쪽 아래에 열거해서 적어두므로 내외 자손 중에서 추심한 자가 반을 갖고 그 나머지 반은 손자에게 갖도록 하되 1구만을 추심한 경우에는 모두 손자가 갖도록 하였다. 도망 노비의 수는 종 4구, 여종 2구이며, 이노곡(伊老谷)에 있는 약간의 전답은 몫으로 나누기에는 양이 너무 적고, 죽은 아들 만복의 장지는 너무 먼 곳에 있어 영원히 외로운 혼으로 만들었으므로 너무 불쌍하다. 이에 장차 선산의 산기슭으로 묘를 옮길 계획이므로 그때 이장 비용으로 이노곡을 팔아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을 문서 끝에 기재하였다. 이 문서를 작성할 때 참여한 사람은 재주인 계모 의인이씨를 비롯하여 증인으로 가옹의 동성(同姓) 8촌 동생인 생원 나두동(羅斗冬), 이성(異姓) 3촌 조카인 유학 김후(金珝), 유학 김찬(金瓚), 유학 김정(金珽) 등 4인 및 이 문서를 작성한 필집 가옹의 동성 7촌 조카 유학 나만운(羅晩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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