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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告事 伏以 貴鄕裴氏卽鄙族同派之家也 不幸中古 疊連家禍 流落他鄕 今纔四三世矣 生等其在均是之列 不無敦叙之誼 故前春合宗發文矣 尙無回敎 甚爲訝惑 敢復獻愚 伏願 僉君子 勿以客班而外待勿以孤子而疎交 則非但爲鄙族之生色 抑獨非 仁鄕之美俗乎 凡於儒林之事 吾道之任 無漏此家 千萬幸甚壬子八月二十九日 道川書院宗會 發文 門長 裴萬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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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澔 ▣南澔<着名>, ▣▣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해년 11월 16일에 ▣남호가 유학 아무개에게 갑향면 고두원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을해년 11월 16일에 ▣남호(南澔)가 유학 모(某)에게 갑향면 고두원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호는 조상에게 물려받아 몇 년 동안 농사짓고 살던 논을 어쩔 수 없이 팔았다. 논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고두원(高頭員)이며, 자호(字號)는 사자(四字)이다. 논의 면적은 4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25짐 5뭇이며, 값을 받고 이 명문과 함께 논을 넘겼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남호, 필집(筆執), 증인(證人)이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그러나 문서가 대각선으로 훼손되어 논값과 필집 이름 등의 내용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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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十一月十六日幼學 前明文▣…▣段傳來畓累年耕食是▣…▣多故不得已伏在甲鄕▣…▣高頭員四字畓四斗落只▣…▣二十五負五束庫乙価折則▣…▣依數捧上是遣新▣…▣永永放賣爲去乎日▣…▣文憑考事▣…▣南澔[着名]▣…▣哲[着名]▣…▣[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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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父 子女 財主父[手決]筆執幼學徐鳳來[手決] 영광 운당리 제주양씨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5년 12월 15일에 아버지가 4남매 등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내용의 분재기 1805년(순조 5) 12월 15일에 아버지가 4남매 등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내용의 분재기(分財記)이다. 자신의 나이가 50여 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재산을 분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재하는 재산은 토지 7마지기이며, 이것을 가지고 다투지 말라고 하였다. 여타의 분재기와 달리 자녀에게 훈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치 유언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 한가지 특징은 자녀 4남매 외에도 동생·손자·묘지기·노비에게까지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는 점인데, 특히 재산으로 취급되는 노비에게까지 토지를 분재해주는 사례는 조선시대 분재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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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九年庚午十一月初五日幼斈李龍根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刈用是如可勢不得已伏在甲鄕面杏亭里匊字竹田一斗五升落卜數四負八束庫乙価折錢文十五兩五戔依數捧上是遣右前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則持此文憑考事竹田主幼斈金秀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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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이용근(李龍根)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丁永祚 李龍根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70_001 1872년 12월 7일에 유학 정영조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2년(고종 9) 12월 7일에 유학(幼學) 정영조(丁永祚)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竹田]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영조는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수호(守護)하던 대밭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하여 이용근에게 팔았다. 대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행정촌(杏亭村, 현 담양군 대전면杏亭里) 후평(後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양자(養字)이다. 대밭의 면적은 2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7짐이다. 정영조는 이용근에게 밭값으로 65냥을 받고 이 명문 1장과 함께 대밭을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대밭 주인 유학 정영조와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양상욱(梁相旭)이 각각 착명(着名) 하였다. 문서의 끝부분에는 '구문기(舊文記)는 집터 문기[家垈文記]에 함께 기록되어 있어 내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추기(追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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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壬申十二月初七日幼學李龍根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守護是多可移買次伏在甲鄕面杏亭村後竹田养字二斗落卜數七負廤價折錢文陸拾伍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文記憑考事竹田主幼學丁永祚證筆幼學梁相旭此亦中舊文記付於家垈文記故不得出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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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이용근(李龍根)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丁鉉台 李龍根 丁鉉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70_001 1874년 12월 7일에 유학 정현태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4년(고종 11) 12월 7일에 유학(幼學) 정현태(丁鉉台)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竹田]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현태는 쓸 곳이 있어서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수호(守護)하던 대밭을 이용근에게 팔았다. 대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행정촌(杏亭村, 현 담양군 대전면杏亭里) 후평(後坪)이며, 자호(字號)는 양자(養字)이다. 대밭의 면적은 1말 5되지기이고 짐수[卜數]는 3짐이다. 정현태는 이용근에게 밭값으로 30냥을 받고 이 명문 1장과 함께 대밭을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대밭 주인 유학 정영조가 이 명문을 직접 작성하고 착명(着名) 하였다. 문서 끝부분에는 '구문기(舊文記)는 도문기(都文記, 재산 내용 전체를 기록한 문서)에 함께 기록되어 있어 내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추기(追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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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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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十三年甲戌十二月初七日幼斈李龍根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守護是如可要用所致伏在甲鄕靣杏亭村後养字竹田一斗五升落只卜數三負庫乙価折錢文參拾兩依數捧上是遣右前以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則持此文憑考事竹田主幼斈丁鉉台[着名]此亦中旧文記都文書幷付故不得出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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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이풍식(李豊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陳正彦 李豊植 陳正彦<着名>, 金達培<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68_001 1883년 11월 20일에 유학 진정언이 유학 이풍식에게 창평현 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3년(고종 20) 11월 20에 유학(幼學) 진정언(陳正彦)이 유학 이풍식에게 창평현 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진정언은 갚아야 할 사채(私債)가 많아서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세(稅)를 받아먹던 논을 어쩔 수 없이 이풍식에게 팔았다. 논의 위치는 창평현(昌平縣) 동서면(東西面) 고리(古里) 대후평(大後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문자(文字)이다. 논의 면적은 4마지기 3배미이고 짐수[卜數]는 22짐이다. 진정언은 이풍식에게 논값으로 6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논을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유학 진정언과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증필(證筆) 유학 김달배(金達培)가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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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永豊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11월 그믐에 유학 강영풍이 갑향면 고현평에 있는 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3년(고종 10) 11월 그믐에 유학(幼學) 강영풍(姜永豊)이 갑향면 고현평에 있는 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자는 유학이라는 직역만 쓰여있고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강영풍은 쓸 곳이 있어서 조상에게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농사짓고 살던 밭을 팔았다. 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고현평(古縣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감자(敢字)이다. 밭의 면적은 2말 5되지기이고 짐수[卜數]는 6짐 2뭇이다. 강영풍은 밭값으로 42냥을 받고 이 신문기(新文記)와 구문기(舊文記)를 밭과 함께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전주(田主) 유학 강영풍은 상중(喪中)이라 착명(着名) 하지 않았고,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증필(證筆) 유학 방형신(房炯晨)이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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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九年癸未十一月二十日幼學李豊植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受稅是多可私債許多故不得已伏在昌平東西面古里大後坪文字畓四斗落只三夜味卜數二十二負庫乙価折錢文陸拾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本文記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陳正彦[着名] 亦在證筆 幼學金達培[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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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二年癸酉十一月晦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遺來累年耕食是如可要用所致伏在甲鄕面古縣坪敢字田二斗五升落卜數六負二束廤乙價折錢文肆拾貳兩依數捧上是遣右前新舊文幷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則以此憑考事田主幼學姜永豊 喪不着證笔幼學房炯晨[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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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丁鉉弘 丁鉉弘<着名>, 金繪材<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11월 27에 유학 정현홍이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3년(고종 10) 11월 27에 유학(幼學) 정현홍(丁鉉弘)이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竹田]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자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정현홍은 조상에게 자기 몫으로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대나무를 북돋아 키우다가 어쩔 수 없이 대밭을 팔았다. 대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행정촌(杏亭村, 현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후평(後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국자(鞠字)이다. 대밭의 면적은 2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5짐 2뭇이다. 정현홍은 밭값으로 15냥을 받고 이 명문과 구문기(舊文記)를 대밭과 함께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죽전주(竹田主) 유학 정현홍과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증필(證筆) 유학 김회재(金繪材)가 각각 착명(着名) 하였다. 명문의 발급연호로 표기되어 있는 '동치십삼년 계유(同治十三年癸酉)'의 동치 13년은 갑술년(甲戌年, 1874)이므로 '동치십이년(同治十二年)'의 오기(誤記)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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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三〖二〗年癸酉十一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衿得竹田累年培养是夛可不得已伏在甲鄕面杏亭村後养〔鞠〕字二斗落卜數五負二束廤價折錢文什伍兩依數捧上是遣右前新舊文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憑考事竹田主幼斈丁鉉弘[着名]證筆幼斈 金繪材[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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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丁鉉滿 丁鉉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4년 12월 27일에 유학 정현만이 갑향면 행정리에 있는 대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4년(고종 11) 12월 27일에 유학(幼學) 정현만(丁鉉滿)이 갑향면 행정리에 있는 대밭[竹田]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정현만은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수호(守護)하던 대밭을 형편상 어쩔 수 없이 팔았다. 대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행정리(杏亭里) 후평(後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양자(養字)이다. 대밭의 면적은 1말 5되지기이고 짐수[卜數]는 2짐 5뭇이며, 밭값으로 18냥을 받았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죽전주(竹田主) 유학 정현만이 이 명문을 직접 작성하고 착명(着名)하였다. 문서 끝부분에는 '구문기(舊文記)는 다른 문서에 함께 기록되어 있어 내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추기(追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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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十三年甲戌十二月二十九日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守護是如可執〖勢〗不已伏在甲鄕面杏亭里後養字竹田一斗五升落卜數二負五束庫乙價折錢文拾捌兩依數捧上是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則以此文記憑考事竹田主自筆幼學丁鉉滿[着名]此亦中旧文記他文幷付故不得出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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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尙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 10월 20일에 유학 이상순이 동서면 성산촌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 16) 12월 27일에 유학(幼學) 이상순(李尙淳)이 동서면 성산촌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이상순은 갚아야 할 사채(私債)가 많아 조상에게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농사짓고 살던 논을 어쩔 수 없이 팔았다. 논의 위치는 동서면(東西面) 성산촌(星山村, 현 담양군 창평면 지곡리) 월천평(越川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시자(始字)이다. 논의 면적은 5마지기 14배미이고 짐수[卜數]는 10짐으로, 논값으로 60냥을 받고 이 명문과 함께 논을 넘겼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유학 이상순, 이 명문을 작성한 필집(筆執) 유학 허수천(許壽千), 증인(證人) 유학 김종현(金鍾絃)이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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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五年己卯十月二十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傳來畓累年耕食是多可私債許多故不得已伏在東西面星山村前越川坪始字五斗落十四夜味卜數十 庫乙価折錢文陸拾兩依數捧上是遣右前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等日後若有爻象以此文記憑考事畓■(畓)〔主〕幼學李尙淳[着名]筆執幼學 許壽千證人幼學 金鍾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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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權成道 權成道<着名>, 尹應振<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 2월 18일에 권성도가 수급자가 무덤으로 쓴 상치등면 남쪽 산기슭의 땅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 17) 2월 18일에 권성도(權成道)가 수급자가 무덤으로 쓴 상치등면 남쪽 산기슭의 땅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한 사람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권성도의 나뭇갓[柴場]에 지난해 윤 3월에 수급자가 자기 어버이의 무덤을 써서 소송이 벌어졌으나 주변의 의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 무덤이 있는 자리만 팔기로 했다. 나뭇갓의 위치는 순창 상치등면(上置等面) 신평(新坪) 남쪽 산기슭이며, 값으로 15냥을 받고 이 명문 1장과 함께 땅을 넘겼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산지주(山地主) 권성도와 증인(證人) 윤응진(尹應振)이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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