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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李在根)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李在根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성주후인 이재근이 지은 '봉화야은운' 7언율시 1수와 7언절구 1수. 성주후인(星州後人) 이재근(李在根)이 지은 '봉화야은운(奉和野隱韻)' 7언율시 1수와 7언절구 1수로 총 2수의 시문(詩文)이다. 야은(野隱)에게 화창하여 지은 시로 들판에 남아 있는 정자 하나와 은행나무가 옛 마을을 빙두른 것, 선비의 수양과 절개를 뜻하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보며 청풍명월을 즐기며 평생을 살며 세속을 잊고 전원생활을 한 삶 등을 읊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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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潭申公墓表碣銘 幷書孱陵令庾黔婁到縣未旬忽流汙沾身父方在家遘痢婁逐棄官歸侍疾嘗糞甛滑每稽顙北辰願以身代朱夫子載小學善行篇篇中多孝子奇行此蓋古未有也若竹潭申公諱命界殆其流亞軟公以顯親之心屢擧不利於鄕乃赴京觀光夜夢見大人公有不安卽覺而渾身流汗卽日南歸大人公果寢疾七日幾屬纊公祈斗願代斫指延縷大人公神醒視之曰汝來乎汝來乎汝來何速也哉孝哉孝哉此尤古人所未有也盛甚哉嗣孫在煕文雅承祖武有望鄕邑自山陽移宅而接隣與不侫晩交篤密七十七年翁手草狀謁顯刻于不侫無文云爾寧忍辭願表出以告于編東國善行篇者謹按公字允馨竹潭號也申氏其先平山人世多聞人達官爲東國著姓鼻祖高麗太師代死功臣壯節公諱崇謙文僖公諱槩以左相事我太宗世宗文宗稱名臣歷至文節公諱鏛官至吏判寔己卯名儒也屢傳而開城經歷諱匡國左承旨諱碖豊川府使諱景䄜柏亭諱坪連世趾美府使公有濟州之命赴任時柏亭公以第四子幼而陪行至海南府使公慮巨海木道沖年有虞留閔主簿致遠家而行矣逮其還柏亭公因入主簿甥館遂家焉海之有申始此父諱[糸+當]大父諱大敎曾大父諱[日+連]官都正自海移寶城隱居金華山結幕遯跡自號華隱耕讀以終妣晉州姜氏彩殷女公以仲父長子繼伯父後諱織慶州李氏伯浩女本生考妣也公孝奉盡誠耕樵之餘沈潛經史以徒讀無施謂非立揚之道將出而爲門戶計忽棄其志而勤還遭故喪葬以禮三年不脫衰絰䢶寒暑雨日必哀省隣里爲之感歎後喪及生庭二艱一如之鄕儒表賞事載郡誌與三綱錄官司憲府監察洪陵甲辰三月二十二日卒距生純祖丙戌壽七十九墓得粮面白鶴山癸丁之原配晉州姜重煥其考舅姑事以禮夫子敬如賓救項瘡燒毒齒牙全落不以爲苦惟瘡痊爲樂極力致千金之産後公八年壽八十四而圽別葬會泉面郡農里後麓將軍嶝戌坐擧五男一女男彬欞栻松權女適漢陽趙伯元靜菴先生後長房系孫在煕二房孫泰熙三房孫在熙過房守熙四房孫福煕五房孫尙煕在煕子河均泰學守煕子方均祐均井均福煕子祜均得均尙煕子蓋均義均禮均餘多不記竊念公遠遊非時離違戾洛爲親屈也然而夢寐不忘寢餗無恙否氣血無損歟視於無形聽於無聲先感如神出城渡江不竣終日承歡於臨命之秋使公得升斗之祿榮養其親如失大限一敢幽明之憾爲何如哉古人一日養不以三公換孝哉一言豈可以萬鍾易之也遂撮以銘之曰瞑眼復開視子在前京師千里汝來何遄父曰孝哉人無間言送死以禮日省羡門白鶴之原斯公斧堂我述以銘敢闡幽光後人視之至行愈彰戒之敬之楸檟勿傷此是仁人孝子之藏歲壬辰七月白露後一日東瀛粱會甲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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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 3월 12일에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작성한 시 10수 경오년 3월 12일에 과거를 보러 송포(松圃) 이우근(李佑根)과 함께 동행하면서 지은 7언율시 10수이다. 무주에서 출발하며 지은 '무주 도중에[茂朱道中]'가 첫 시이고, 다음은 옥천(沃川), 회덕(懷德), 문의(文義), 서원(西原), 목천(木川), 천안(天安), 직산(稷山), 양성(陽城)을 지나며 각 지역에서 소회를 읊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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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午三月十二日科行與松圃李佑根偕行茂朱道中緩步登程日影斜尋芳到處幾人家洞深溪路三分石風喚山村太半花此地醉過魚峙【■■魚角峙自邑四十里】酒何時踏盡雀津【銅雀津自崇禮門十里】沙今行不負春坊約聯袂君言况復嘉夜話茂朱府峽水楊淸岸柳斜春醪新熟喚隣家山城【山城赤裳也】東面纖纖月 樓閣西邊灼灼花客負詩裝投暮店翁收漁火下平沙强吟短律難成夢散步虛庭夜色嘉沃川浩淵遠路輕裝與子同時當靑帝已巡東春客渾似淳熙世峽俗常多太古風鬪草街童誇軟綠惜花壚娼斂織紅浩淵流去梁山北前渡依俙問野翁滯雨懷德朱岸出世猶難辨是非不如歸臥鎖岩扉人醉人醒皆酒力花開花■〔謝〕落亦春機雨洗靑山生色倍烟迷朱岸斂蹤稀征鞭蹔住佳麗地望裡雲光滿翠微文義春雨春雨廉纖過太虛行人臨發憩山屋短笻措路奚乘馬美菜登盘可代魚好鳥頻听情裝有名花雖老態猶餘雲晴霧罷朝陽晩一任風光倍勝於午過西原西原一路轉南廻雨霽烟收眼忽開城完苔封千古堞樹高花覆一層坮詩心懶散時忘句春事頻繁日送盃賭貴吾行歸駕促淸朝剡薦愧否才木川述懷山如棊置野如盘隨處看來摠舊顔烟織柳絲金色嬾雨添桃浪石痕斑十年場屋身空老千里鄕關夢不閒憶昔臥龍村主在詩懷怊悵往還間天安日夕行到天安意自安春心將向好花看山長宿霧歸時懶野濶飛禽去路寬別界多情佳水石逢場敍話舊衣冠奔遑世事元相舛回念功名似易難稷山行吟偏愛看山步故遲况今三月惜春時花飛驛店餘香藹苔剝龜碑古蹟奇道味【學業】縱違千聖■挨遯跡虛負百年期聯鞭行色知也未於䪨初成酒亦宜陽城春日春事依俙似去年錦串收盡好風烟優遊斗北朋三四遙憶湖南里半千沙岸潮生驚鷺夢棊壚酒㬉惱人眠晴窓日夕徘徊立東林月色出少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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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조병덕(趙秉德) 서문(序文) 고문서-시문류-서 趙秉德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54_001 1864년에 조병덕이 작성한 ?은봉전서? 서문 1864년 봄에 조병덕(1800~1870)이 작성한 ?은봉전서(隱峯全書)?의 서문이다. ?은봉전서?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문집으로 1773년에 간행된 초간본, 1864년에 보성 대계서원(大溪書院)에서 간행된 중간본, 1969년에 대전 이문사에서 간행된 삼간본이 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은봉전서?의 서문은 송내희와 조병덕 두 사람이 작성하였다. 서문을 작성한 조병덕은 양주 사람으로 홍직필(洪直弼)과 오희상(吳熙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2년(철종 3) 음보(蔭補)로 사헌부 지평이 되었고, 1859년 이조참의를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서문에는 ?은봉전서?가 중간되기까지의 간략한 과정과 안방준의 생애를 서술하고,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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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송근수(宋近洙) 발문(跋文) 고문서-시문류-발 宋近洙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54_001 1864년 10월 4일에 송근수가 작성한 ?은봉전서? 발문 1864년 봄에 조병덕(1818~1903)이 작성한 ?은봉전서(隱峯全書)?의 발문이다. ?은봉전서?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문집으로 1773년에 간행된 초간본, 1864년에 보성 대계서원(大溪書院)에서 간행된 중간본, 1969년에 대전 이문사에서 간행된 삼간본이 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은봉전서?의 발문은 안수록(安壽祿), 송근수(宋近洙), 유건환(兪建煥), 안상(安相) 네 사람이 작성하였다. 이 중 문서의 작성자인 송근수는 송시열의 8대손으로 형 송달수(宋達洙)와 함께 송치규(宋穉圭)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수학하여 이이 송시열 한원진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통을 계승하였다. 1848년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한 뒤 대하선, 공조판서, 우의정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발문은 ?은봉전서?가 중간되기까지의 간략한 과정과 안방준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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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포서(稼圃序) 고문서-시문류-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가포 이낙인의 호이자 당호인 가포를 주제로 그의 안빈낙도, 주경야독하는 행실을 적어 기록한 서문. 가포(稼圃) 이낙인(李洛仁)의 호(號)이자 당호(堂號)인 '가포'를 서술한 서문으로 그를 안빈낙도, 주경야독하는 호남 선비로 칭찬한 내용이다. 어디에 거처하더라도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고, 부모를 효로 모시고, 친구 간에 믿음으로 교유하고, 성학(聖學)을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학문한다고 하는 것이 선비라는 말로 시작하여 완남(完南) 담양부(潭陽府) 화지곡(華之谷)에 은거하는 처사 이낙인에 대해서 서술했다. 그는 청렴개결한 성품을 지니고, 남과 다투지 않았으며, 아침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돌아와 옛책을 읽으며 스스로 천하 백성의 즐거움을 얻고 기뻐했다는 것, 어려서는 부모를 극진히 모셔서 향리에 이름이 났고, 조정의 성전을 받지는 못했어도 그 행실 옛 정려를 받은 효자에게 대어도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 가정이 가난해서 채소를 먹고 나물국을 먹어도 즐거워했으며, 염락제의 일들을 그리워 하며 성현의 심법(心法)을 수수받아 마음속에 갖추고, 일찍이 과거에 과거보는 일을 사양하고, 농업에 힘썼으며, 궁한 때에는 자신의 재물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를 호좌(湖左)의 탁월한 선비인데 아무 칭호가 없이 은거하는 사람과 똑같다며 '가포(稼圃)'가 여기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러한 일을 호남 선비의 입으로 이 같은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며 그 사람의 당호(堂號)를 물어보니 이와 같아 작은 서문을 남겨 그의 행실을 적는다고 했다. 작성시기와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종이의 지질로 보아 일제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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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송내희(宋來煕) 서문(序文) 초(草) 고문서-시문류-서 宋來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54_001 1864년에 송내희가 작성한 ?은봉전서? 서문 초고 1864년 봄에 송내희(1791~1867)가 작성한 ?은봉전서(隱峯全書)?의 서문 초고이다. ?은봉전서?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문집으로 1773년에 간행된 초간본, 1864년에 보성 대계서원(大溪書院)에서 간행된 중간본, 1969년에 대전 이문사에서 간행된 삼간본이 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은봉전서?의 서문은 송내희와 조병덕 두 사람이 작성하였다. 서문을 작성한 송내희는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으로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1815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835년 선공감(繕工監) 가감역(假監役)에 제수된 것을 시작으로 사헌부 감찰, 황간현감, 평안도 도사를 거쳐 1857년 이후로는 여러 차례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며, 1865년 공조판서에 올랐다. 서문에는 ?은봉전서?가 중간되기까지의 간략한 과정과 안방준의 생애를 서술하고,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앞서 초고라고 하였듯이 이 문서에는 자구를 수정한 흔적이 여럿 나타난다. 여기서 수정된 문구들이 정본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또 정본의 내용이 ?은봉전서? 간행시 목판으로 판각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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隱峯全書序牛溪成文簡公講道坡山 四方之士多負笈摳衣者 重峯趙文烈公 隱峯安文康公皆爲及門而差有後先 ■(公)與重峯未嘗覿面 以風誼曠感 裒輯遺文 續附圖繪 名之曰抗義新編 不佞嘗〔蓋〕讀〔嘗〕其〔受〕編〔讀〕而感公〔其〕嗜義之深 每有執鞭之思迺者公〔先生〕之後孫命宣永煥等就公原集而採錄 將謀剞劂問序於不佞 雖不敢遽當 而亦不敢終辭 竊惟公〔先生〕於穆陵盛際 骨相奇偉 志氣卓犖年纔弱冠 蚤從賢師 專心爲己之學 又合圃隱 重峯之號扁其舍曰隱峯 以致崇慕之志 嘗語節義 是學問中一事不可岐而二之 徒以繩行尺步小廉曲謹爲務 而不以節義自勵者 是可慨也 聖人修道立敎 三綱五常而已 豈有捨節義而爲道學也 是以所著文字 皆是尙忠孝崇道德之類也 至於華夷尊攘之義陰陽淑慝之分 嚴於斧鉞凜如霜雪 故聞醜正之徒詆誣栗牛兩先生 公〔卽〕上疏痛斥 絶爾瞻好爵之誘 避纘男踵門之訪節義之本 已立於其初矣我東戎狄之禍 莫甚於壬丁丙 而輒倡義起旅 竟因媾和而罷 縱未成功於當時 而乃心王室則亦足暴於後世矣其偉器卓節 可以有爲於世而適因寇賊交亂 倫常斁滅遂卷懷于湖徼 不以爵祿嬰其心 而同時群彦之過從薦引者 皆詡以南服高士 名隨實彰 嶷然爲儒林之標仁廟臨御 恩召屢降孝廟初服 寵擢優異 旣沒之後贈以爵諡 妥侑祠院 寔出於朝野尊慕之至意 罔有餘憾矣 蓋人之成就 隨其氣質所稟而各有不齊淸粹者 未必造高明之域 持守者未必盡臨履之工 公〔先生〕於學問則本之人倫 事功則準於王道 以拓其氣量 以廓其地步 羽翼斯文維持世敎者 豈不韙哉略書所感於誰昔者 遂爲之弁其卷云爾 時崇禎甲申〔紀元〕後四甲子春季 恩津宋來熙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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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和野隱韻野有遺賢築一亭, 杏花古里遍春城, 修竹寒松同氣槩, 淸風明月樂平生, 渾忘世俗間中趣, 寓得田園物外情, 事於孝也行乎蔑, 自隱居中肇錫名.在乎山水勝俟封, 高尙心中富?空, 成亭托意雖能識, 杏樹淸陰唯有風星州後人 李在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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稼圃序夫士之生於世也 不得於朝則或處於山林 或處於畎畝 箕{氵+頴}之操不改 堯舜之道自樂 事父母以孝 交朋友以信 雖不爲聖學 亦必謂之學矣 完南潭陽府華之谷有隱士曰李洛仁 持性廉介 與物無競 朝出耕上平之田 暮歸讀古人之書 怡怡然 自得於天民之樂者也 少時事親至孝聞於鄕里 雖未蒙槕稧之典 其實行果不愧於古之旌孝之倫也 家契寒素 飯蔬羹藜 不改其樂 德公耕隴之耦兒 寬帶經之 鋤庶匹美 於千載之下 南畝之饁 已訖東榮之洗相敬 聚諸子百家書探賾 奧義上窺姚姒 敻溯濂洛帝王之與替■(之)事蹟 聖賢之授受心法 瞭然備具於心胷之間 早謝科臼之業 乃喟然而歎曰 士之不遇命也 益務農業 於是饘 於是粥周窮恤貧 不惜貲財 嗚呼 如斯人也 可謂湖左卓犖之士 沒沒無稱 同歸於荷篠丈人 學稼高弟之類 稼圃之號 寔出於此乎 有子曰 澮根自弱冠時文名播於四隣 信知有是父 故有是子 盖冬夏敎以詩書 春秋敎以易禮 窓前桑無一枝 門外雪深三尺 父師之敎訓苟不尊嚴 其成就之美 葛若是其偉歟 余因湖士之口傳聞若人之名 實不覺獵纓而聳異之 問其堂號曰稼圃 遂爲小序 畧叙其實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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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我先祖睡翁公有以氣節相許者 卽隱峯先生安公是也 一與之傾蓋 契誼甚篤 曁我文正公 千里造門 至有不朽之託 而其所景仰之意 每溢於咫尺之書 此近洙所以聞其風而服其義者 有倍餘人焉已 先生之造詣固非末學所敢窺涘 而蓋以魁奇之姿 有淵源之學德義崇茂 論議正大 菀然爲斗南之模楷 其羽翼斯文 扶植世敎之功 有不可誣矣 先生文集 曾有刊本 而後孫壽祿 更加裒輯 編成年譜 竝誌狀而附之 仍以先生所著抗義新編 混定錄等書 合爲一呇 今乃重刊而廣傳于世 於是乎先生之言議本末 得有所考 而使讀之者 怳然若供灑掃承緖餘 百世之下 有足以廉頑而立懦 嗚呼韙哉 我東數千載 有圃隱重峯兩先生出 其道學節義 可以撑天地懸日月 而先生之篤信尊慕 必在於兩先生 後之尙論者觀於此 可以知先生也歟崇禎後四甲子仲夏之日 德恩宋近洙 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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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이철현(李嚞鉉) 원정(原情)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嚞鉉 宗親府 宗親府<押> 宗親府印 3顆(9.0×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09_001 1866년 4월에 담양부에 사는 동지중추부사 이철현이 그의 6대조 묘소 주변에 투장한 무덤을 굴거할 수 있도록 전라감영과 담양부에 관문을 보내달라고 종친부에 청원한 원정 1866년(고종 3) 4월에 담양부(潭陽府)에 사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철현이 종친부(宗親府)에 청원한 원정이다. 이철현이 며칠 전에 육대조(六代祖) 묘소에 투장(偸葬)한 이를 정소(呈訴)하여 '하루속히 독굴하라'는 종친부의 제사(題辭)를 받아 담양부에 관문이 도부(到付)하였다. 그러나 담양부에서는 '본부(本府)에 관문이 있더라도 전라 감영에서 보낸 관문이 없다면 담양 고을에서 멋대로 거행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철현은 다시 종친부에 정소하여 전라감영에 관문을 발송하여 전라감영에서 담양부로 관문을 보내 하루빨리 투장한 묘를 파내도록 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 원정을 접수한 종친부는 5월 7일에 '(투장한 네 사람을) 잡아다 가두고 독굴(督掘)하라는 뜻으로 전라 순영(巡營)에 관문을 발송할 것'이라는 처분을 내리고, 종친부 당상이 서압(署押)하고 종친부 관인(官印)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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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潭陽居同知李嚞鉉原情右謹言生日前以先山訟卞事仰籲特蒙不日督掘之 題旨河海之澤銘骨鏤肝不知攸達 關文到付於本官則其言內雖有 本府關飭若無本道監營關文則自本邑擅自擧行爲難云雖涉煩瀆旣蒙仁恤之澤更爲呼籲伏乞洞燭敎是發關于完營自完營嚴加關飭於本邑不日掘去之地千萬祈懇之至行下向敎是事宗親府 處分丙寅四月 日〈題辭〉捉囚督掘之意發關巡營向事五月初七日[宗親府印]堂上[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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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潭陽居同知李嚞鉉原情右謹言憤惋情由段生之先祖山局內當禁之地本邑吏崔仁炯之單靑龍偸葬也朴興俊之主脉上偸葬也淳昌人金在懋之龍尾上偸埋也果涉變恠也故呼訴營邑者不止一再納侤音捧手記前後成軸然而彼三漢素是㐫獰豪悍蔑視生之窮孱一向頑拒終不掘去豈不痛恨哉曾以此事呼籲 本府特蒙 嚴題使之掘去左右延拕不掘故緣由更訴爲去乎伏乞洞燭敎是後 嚴關于本道監營與本邑上項三漢着枷上使嚴治其蔑分之罪自本官掘移三塚之地千萬伏祝伏祝行下向敎是事宗親府 處分丁卯四月 日〈題辭〉發關巡營甘飭該邑向事十七日[宗親府印]堂上[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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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이철현(李嚞鉉) 원정(原情)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嚞鉉 宗親府 宗親府<押> 宗親府印 3顆(9.0×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09_001 1867년 4월에 담양부에 사는 동지중추부사 이철현이 자신의 선조 묘소 구역 내에 투장한 3인을 벌하고 투장묘를 파 옮기도록 전라감영과 담양부에 관문을 보내달라고 청원한 원정 1867년(고종 4) 4월에 담양부(潭陽府)에 사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철현이 종친부(宗親府)에 청원한 원정이다. 이 문서는 1866년 두 차례에 이어 다시 종친부에 호소한 것으로, 이철현이 그의 선조 묘역 내 금양지(禁養地)에 담양부 서리 최인형(崔仁炯)이 단청룡(單靑龍)에, 박흥준(朴興俊)이 주맥(主脉) 위에, 순창(淳昌) 사람 김재무(金在懋)가 용미(龍尾) 위에 투장한 것을 고발한 것이다. 그들이 투장하자 여러 차례 전라감영과 담양부에 호소(呼訴)하여 그들이 바친 다짐[侤音]과 수기(手記)가 축(軸)을 이루었으나 세 사람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철현을 멸시하여 끝내 묘를 파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철현은 담양부에 청원하여 처분을 내려 파가도록 하였으나 미루면서 파가지 않았다. 이에 종친부에서 전라감영과 담양부에 관문을 보내 투장한 세 놈을 형벌(刑罰)하고, 담양부에서 투장한 세 묘를 파 옮기도록 처분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원정을 접수한 종친부는 4월 17일에 '전라 순영(巡營)에 관문을 보내 감결(甘結)로 해당 고을에 신칙하게 할 것'이라는 처분을 내리고, 종친부 당상이 서압(署押)하고 종친부 관인(官印)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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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대계서원(大溪書院) 은봉선생전서기궐소(隱峯先生全書剞劂所) 품목(稟目)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大溪書院 隱峯先生全書剞劂所 隱峯 門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6월 4일에 대계서원에 있는 은봉전서 기궐소에 소속된 안인환·안철환 등이 은봉전서 20책의 서문을 구하는 내용으로 은봉 문하에 보낸 품목 1864년(고종1) 6월 4일에 대계서원(大溪書院)에 마련된 은봉전서(隱峯全書) 기궐소(剞劂所)에 소속된 안인환(安寅煥)·안철환(安澈煥) 등이 은봉 선생 문하에 올린 품목(稟目)이다. 은봉전서 20책을 지금 바야흐로 간인(刊印)하고 있는데 첫머리의 서문은 대군자의 말을 얻어서 불후의 사적으로 삼고자 하여 문하에 예를 갖추어 찾아뵙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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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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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寶城大溪書院隱峯全書剞劂所稟目隱峯先祖全書二十冊今方刊印 而弁卷之文思得當世 大君子一言之重 以賁不朽之蹟 敢此贄謁于 門下 恭俟進退甲子六月初四日 侍下生 安寅煥安澈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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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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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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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전영태(全永泰) 노(奴) 윤돌(允乭)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允乭 順天府使 官<押> □…□ 4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06_001 1875년 9월에 전영택 댁의 노 윤돌이 이웃 고을 관아에 올린 산송 소지. 1875년(고종 12) 9월에 보성(寶城)에 사는 전영태(全永泰) 댁의 노(奴) 윤돌(允乭)이 겸관(兼官)에 올린 소지이다. 윤돌은 전수문장댁(全守門將宅)의 노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같은 소송으로 올린 '1880년 전영태(全永泰) 소지(所志)'를 보면 전영태를 전수문장(前守門將)이라고 칭하고 있다. 문서 수취처를 '사또님[使道主]'이라고 기재했고, 이웃 고을 수령이 처결하며 '겸관(兼官)'이라고 착관(着官)했지만, 어느 고을 관아에 접수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소지에서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전영태의 선산은 순천부 쌍암면(雙巖面) 노구치(老嫗峙)에 있는데, 오래도록 서울에 살면서 진 빚 때문에 지난해 선산에 있는 목재를 매도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배한조(裵漢祚)와 배진오(裵鎭五)가 작당하여 자기들이 금양(禁養)해 온 산지라고 주장하며 산지기를 때리고 목재를 불태웠다. 그래서 전영태는 전임 수령에게 올린 산송 문서와 매매문서를 제출하여, 배씨 집안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법률에 따라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겸관은 초9일에 배한조와 배진오를 붙잡아오라고 주인(主人)에게 처분하였으나 크게 '효주(爻周)'라고 쓰여 있어 뎨김의 내용을 취소한다는 뜻인지 명확하지 않다. 최종적으로 전영택이 패소했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 뒷면에는 형리(刑吏)에게 현장을 조사해 오라는 처분이 11일 내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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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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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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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天黃田面居生鄭永珍右謹言情由事 世或有白書之賊 豈有甚於 治下居高擧乭漢乎 南原居梁民母卽生之姑母也 不幸身死於生之家 故今正月日入葬於生之禁養矣 不意今初八日生之再從祖過去界寺面烏亭矣 高擧乭爲名漢渠之塚近處入葬是如詬辱毆打 至於危境 索錢二十兩法遠惡急 潺水居金自成爲名漢不知初面擧乭之類 汝今無錢來市報給之意成標以給則 吾擔當是如爲言 七十老人事勢爲急 成標以給 傳人急來 故來見則 事勢爲急 方今負送 寃情仰告 洞燭敎是後 白晝無根之事 討索錢財 豈非火賊乎 擧乭捉致 法庭 嚴治火賊之律 金自成擧乭之同類 嚴治其罪錢二十兩標紙推尋 無至橫侵之地 處分爲只爲求禮郡守 處分健陽元年五月二十二日求禮官[求禮郡守之章](題辭)禁葬自有司法 不由訟卞 私自毆打勒捧錢標 此非禁葬 只爲騙財 高漢所爲萬萬(背面)無據 至若金自成 當初生面 有何厚誼 成標擔當 不過是同惡相濟 査實後 嚴懲推給次 高金兩漢 幷卽捉待事四月初十日 界寺主人課高寅表[求禮郡印] 5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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