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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惟仲春尊體百福仰溯規規就親事旣承頷可感荷良深玆以星帖仰呈耳 謹宣伏惟尊察 謹拜上狀甲子二月初六日廣州安孝珏 再拜(皮封)謹拜上狀鄭生員 下執事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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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양상화(楊祥和)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楊祥和 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11월 9일 신랑측인 양상화가 신부측에 보낸 혼서 갑진년 11월 9일 신랑측인 양상화가 신부측인 정생원댁에 보낸 혼서이다. 주요내용은 신랑의 사주를 적어 보내니 속히 성례(成禮)하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내용이다. 혼인하기로 결정하면 신랑측에서 사주와 예단을 신부 집에 보내는데 이를 납채(納采)라고 한다. 사주단자는 신랑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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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年 月日羅州牧考壬午成籍戶口帳內荷衣於㤙村住第一綂第二戶閑良金聖仁䄵五十五己丑本金海父閑良 弼逢祖閑良 尙巾曾祖閑良 延伯外祖閑良金節順本金海妻朴氏年四十七本密陽父閑良 得大祖閑良 敬漢外祖閑良林春逢本羅州率子達五年十四己巳等己卯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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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伏惟至冱尊體動止萬重仰溯規規就親事旣蒙盛諾謹修剛議玆以私家之柱仰呈耳從速成禮如何餘謹宣伏惟尊照 謹拜上狀甲辰至月初九日淸州楊祥和 再拜(皮封)謹拜謝上狀鄭生員 下執事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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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김성인(金聖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聖仁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22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성인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22년(순조 22)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성인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성인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1통 2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55세 기축생(己丑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성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필봉(弼逢), 할아버지 한량 상건(尙巾), 증조(曾祖) 한량 연백(延伯), 외조(外祖) 한량 김절순(金節順) 본관은 김해이다. 김성인의 아내 박씨는 나이 47세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득대(得大), 할아버지 한량 경한(敬漢), 외조 한량 임춘봉(林春逢) 본관은 나주이며, 증조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가족 구성원으로 아들 달오(達五)가 있으며, 나이 14세 기사생(己巳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개자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19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기묘호구상준(己卯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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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七年癸卯二月日 前明文右明文事段矣自起畓累年耕食是如可當此今春以要用所致勢不得已島內西面新里後江过伏在霜字丁二夜味六斗落並負數卜束廤價折錢文壹百八十兩交易依數捧上爲遣以新文記一丈右前永爲放賣爲去乎日后若有相佐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張明化[着名]訂人金聖始[着名]筆 任在珍[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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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時山坊化民千鎰冠千鎰權正言千光祿宣傳千鎰杓千亨基千鳳根千致道千鶴秀等齋沐上書于城主閤下細細垂察焉民之先祖花山君諱萬里也 皇明萬曆壬辰與李提督兼行先鋒運粮使援兵八域樹勳炳如月星惟我宣廟朝嘉其忠烈特封花山君而葬于治下金岸坊環峯子坐之原數百年守護矣不意今年雨水之際墓所白虎嶝階上階下盡爲川汰只盖墳上一柸土而已爲其子孫豈不寒心㦲數萬丈山上改莎封築必無財力則求失先祖■(之)墓貌之境故不得不各道各邑諸宗中定有司鳩財設役以完大事之意伏達于神明孝理之下 洞燭敎是後 特下立旨公文使民之先祖以安軆魄萬年幽宅之地千萬齊祝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申九月 日〈題辭〉依訴完文成給向事十四日告梁翰涉[官印]行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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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谷城儒生千鎰貫鎰權鎰杓等謹齋沐百拜上書于領議政大監閤下伏以生之先祖▣(花)山君諱萬里卽 皇明萬曆時名將也頃當壬辰日寇跳梁八域靑邱幾▣…▣浪羯塵而我先祖花山君奮義赴戰戰則必捷國家中興之勳亦一其力矣惟我 ▣▣(列聖)朝惜其忠義彰其功烈 特封花山君是如無論宗支賤孽勿▣▣(侵雜)役事 傳敎完文如彼▣…▣姓者所居列邑果無侵責之弊矣挽近人▣…▣雜役凢他徵索無日不甚去益罔涯夫如是則 列聖朝 傳敎之意果安在㦲不勝▣▣▣傳敎完文與前後文蹟帖連仰籲于 本官城主則 題▣受 敎與完文昭然依訴頉給俾無侵漁向事敎是是乎乃此乃一時之許題也切非百年之昭蹟也故▣(千)里褁足玆敢帖達于神明理燮首揆之閤下伏乞 特下嚴關于本道本邑一以奉 傳敎之優旨二以奠勳裔之殘居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領議政大監閤下 處分辛卯十月 日〈題辭〉依完文頉給毋使呼寃宜當向事十六日本道監營本官[官印]堂上[署押]〈背面〉庚戌十一月十三日辰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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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6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6년 9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천일권·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 등 8인이 수령에게 수해로 인해 무너진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데에 입지를 발급하여 도와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6년(건양 1) 9월에 남원군 시산방(時山坊)에 사는 천일관·천일권(千鎰權)·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 등 8인(人)이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수해(水害)로 인해 무너진 선조 화산군(花山君) 묘소를 정비하는 데에 입지(立旨)를 발급하여 도와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과 정언 천광록 등의 선조인 천만리(千萬里, 1543~?)는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명장(名將)으로 임진왜란 때에 조병영량사(調兵領糧使)로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원병(援兵)으로 와서 전국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에 선조(宣祖)가 화산군으로 봉하고 남원군 금안방(金岸坊) 환봉 자좌(環峯子坐)에 장사(葬事)한 뒤 수백 년 동안 수호하였는데 올해 장마 때에 묘소 백호등(白虎嶝)의 섬돌 위아래가 모두 무너져내렸다. 이에 다시 무덤 흙을 쌓아 올리고 떼를 입히기 위해 각 도 각 읍 여러 종중(宗中)에 유사(有司)를 정하고 자금을 모아 완공하려고 하므로 특별히 입지를 내려 만년토록 묘소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의 대리심(代理審) 양한섭(梁翰涉)은 9월 14일에 '정소(呈訴)한 대로 완문을 발급해 주라'는 처분을 내렸다. 입지는 입안이 간소화된 형태로 관에서 민인의 청원 사실을 확인해 주는 문서이다. 개인이 소지를 올려 입지를 요청하면 관에서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제출한 소지에 제사(題辭) 형태로 입지 사실을 기록하고 서압함으로써 공증의 효력을 갖게 된다. 입지는 독립문서가 아니라 소지에 부기된 형태로 그 형식이 간단하므로 입안이 지속적인 공증 효력을 갖는 데 비하여 일회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한계가 있다. 천광록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화선(華善), 호는 만은(晩隱)이며, 부친은 오봉(梧鳳) 천창억(千昌億)이다. 경상북도 구미(龜尾) 출생으로 1892년(고종 29) 알성시(謁聖試)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1894년(고종 31)에 일본을 배척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하였다. 1897년(광무 1) 옥책관(玉冊官)에 임명되었으며, 1902년에는 경상북도 고운사(孤雲寺)에 연수전(延壽殿)을 짓는 공사를 맡았다. 그는 선양을 위하여 1898년에 문중과 협력하여 화산군의 묘역을 정비하고 신도비를 세우고, 1901년에는 천만리의 시호(諡號) 추증(追贈)을 위한 상소를 올려 1910년(융희 4)에 충장(忠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고 1903년(광무 7) 영양천씨(潁陽千氏) 대동보(大同譜) 편찬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에 통분하여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후 고운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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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阻仰政勞 謹問端陽天氣體上万旺 遙馳葭溯無容菲忱 生近以丹祟 跨朔呌囈 今雖免危 蘇完無期 悶人悶人 節摺壹柄 忘畧汗呈 或可俯領否 餘不備 上乙未五一日 生 李載亮 拜(皮封)謹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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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무○년 헌소(憲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憲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년 10월 6일에 헌소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병들고 쇠한 상태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나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면 정신이 곱절로 맑아지고 지기가 쾌활해질 것이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무○년 10월 6일에 헌소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병들고 쇠한 상태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나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면 정신이 곱절로 맑아지고 지기(志氣)가 쾌활해질 것이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번에 상대방의 진영(鎭營) 편에 안부편지를 부쳤으니 아마도 필시 읽어보셨을 것이라는 내용, 요즈음 고요히 조섭하고 있는 체후가 연이어 평안하신지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병들고 쇠약한 상태가 날로 심해져 선정에 든 늙은 승려가 되었으나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면 바둑판을 마주하고 응변(應變)하여 정신이 곱절로 맑아지고 지기가 쾌활해져 곧 젊은이가 될 것이므로 이를 노익장이라 할 만 하니 매우 우습다는 내용, 정(鄭) 씨 친구가 상대방 쪽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몇 자 적어 안부를 묻는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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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吾先生使此無可言者 面諭書示 伏惶萬萬 未知何如而所謝者也 然姑舍僣越 敢將一言而上 將命者亦聽之 或有試納乎 燾相當此叔季 必意於秉正黜私之域 執几從之 讀書之月餘 未精於㴠泳操存 有恐其荒失之 及天環之運 不復萬事 重庭之大欠中 前程之天 恾然成晦 幸期櫛翔之復 兩眼開花雖然 一邊有憂世之歎 而無救末流之術 不知如何 而猶以有一杯水 救一車薪之火 況如荒誕浮虛之說乎 願將後天之晴 一有得見明鑑之月 緣是下諒焉 餘在明日之趨達 故不備 上 統希氣體候幸復春風上和氣 而與下率有無憂之地丙辰十一月二十四日 門下生 鄭燾相 謹謝上白雪夜違○命 不進於提撕門 而謹構鳴吠音竹風細動牗雪月高晴天孤念悠悠線向其北雁傳臘月夜 門下生 鄭燾相 再拜稿上(皮封)內洞齊 先生主 軒屛下 入納水閣里 謹謝上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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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여양(汝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汝陽 朴碩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9월 7일에 축동에 거주하는 종구 여양이 청영에 객살이 중인 박 석사에게 혼사는 어떻게 하기로 정하였는지를 묻고, 자신의 부친과 수십 년 동안 깊은 교분을 맺고 있는 경주 옥산서원의 이진 어른의 방문에 관한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을사년 9월 7일에 축동(畜洞)에 거주하는 종구(從舅) 여양이 청영(靑榮)에 객살이 중인 박 석사(朴碩士)에게 혼사(婚事)는 어떻게 하기로 정하였는지를 묻고, 자신의 부친과 수십 년 동안 깊은 교분을 맺고 있는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이진(李鎭) 어른의 방문에 관한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달 20일에 관편(官便)을 통해 상대방에게 부친 편지는 이미 받아봤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뒤로 한달이 지났다는 내용, 서리 내리는 9월에 객살이 중인 상대방과 주인장의 안부가 편안한지 묻는 내용, 상대방 어머니의 종형제인 자신의 어버이 모시고 지내는 상황은 여전히 편안하고, 위아래 여러 집안도 모두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과거시험은 또 낙방을 면치 못했으니 어찌 이리 운의 막힘이 심한지 크게 탄식스럽다는 내용, 혼사는 어떻게 하기로 정하였는지, 이달에 이미 올라왔다면 대사를 완료시켰을 것이니 잘 헤아려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 경주 옥산서원의 이진 어른은 자신의 부친과 수십 년 동안 깊은 교분을 맺은 관계로 이번 과거시험 행차에 몸소 방문하여 자신의 집에 머물렀는데 마침 청읍(靑邑)에 일이 있어 한 차례 나아가 탐문하려고 했다가 상대방이 지나가다 들른다고 하여 이렇게 편지를 부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축동은 서울시 중구 북창동에 있던 마을로, 조선시대에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인 사축서(司畜署)가 있어 사축섯골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자명으로 사축동 또는 축동이라 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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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安秉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秉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미곡(米穀)의 만주(滿洲) 수출건에 대해 총독부의 정책을 알려주는 내용의 간찰 모년 5월 24일에 서울에 거주하는 안병현(安秉鉉)이 전남 광주의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동안 답장이 지연되어 매우 미안하였다고 하고, 자신은 그사이 가슴 통증으로 연일 바깥출입을 못했다고 근황을 알렸다. 상대방의 조회(照會) 건으로 알아보았더니 미곡(米穀)을 만주(滿洲)로 수출하는 것은 근래 만주정부에서 미곡 수입을 통제할 필요가 있어서 정부에서 모조리 매점(買占)을 하기 때문에 별 이익이 없고, 미곡을 북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은 큰 이익이 있지만 조건을 구비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수출을 허가하고 있다고 하면서 구비 조건을 알려주었다. 조건은 첫째, 천진(天津)이나 북경(北京) 등지의 주재영사관이 증명해 준 해당 지역의 미곡상(米穀商)으로, 영사관 증명을 첨부하여 조선총독부에 지원서를 제출한 경우, 둘째 위의 증명이 있는 미곡상으로부터 몇 만 석(石)을 송부하여 달라는 주문을 받은 사람에게 조선총독부에서 허가할 가능성이 있고, 위의 조건을 충족했더라도 반드시 허가를 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상해(上海) 거류민단과 한구(漢口) 거류민단 측으로부터 이 증명을 첨부하여 총독부에 지원서를 제출한 것이 수백만석이지만 모두 불허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인이 원하는 대로 무제한 수출을 허가할 경우 조선 내부 식량문제가 큰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농상무성(農商務省)에서 수출금지방침을 수립하고 외무성(外務省)에서 최소범위의 조건을 만든 것이라는 자세한 설명도 추가하였다. 그리고 수신자 측에서 만일 생각이 있다면 천진이나 북경 두 곳에 영사관 증명을 가진 미곡상인과 연결하여 몇 만 석 주문을 상대방 명의로 받으면 본부(本府)와의 교섭은 자신이 해드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능한 통로들을 알려주면서 이러한 정책들은 비밀스런 것이니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는 말도 덧붙였고, 주선이 필요하면 회답하여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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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김득수(金得水)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得水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40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득수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40년(헌종 6)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득수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득수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1통 4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71세 경인생(庚寅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득수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필정(弼正), 할아버지 한량 상건(尙建), 증조(曾祖) 한량 연백(連伯), 외조(外祖) 한량 정민하(鄭旻夏)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득수의 아내 박씨는 나이 71세 경인생(庚寅生)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치재(致才), 할아버지 한량 만선(萬善), 증조(曾祖) 한량 계달(啟達), 외조 한량 김절순(金節巡)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준학(俊鶴)이 있으며, 나이 41세 기미생(己未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무개인(周俠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3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유호구상준(丁酉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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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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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年 月 日 羅州牧考庚子成籍戶口帳內荷衣島於㤙村住第一綂第四戶閑良金得水年七十一庚寅 本金海父閑良 弼正祖閑良 尙建曾祖閑良 連伯外祖閑良 鄭旻夏 本慶州妻朴姓年七十一庚寅 本密陽父閑良 致才祖閑良 萬善曾祖閑良 啟達外祖閑良 金節巡 本金海率子俊鶴年四十一己未等丁酉戶口相凖 [周俠無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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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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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聖采 行牧使<押>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55년(헌종21)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성채(羅聖采, 7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55년(헌종21)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성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성채는 75세이고, 신축년(1781)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언회(羅彦晦)이고, 조부는 나종유(羅宗有)이며, 증조부는 나윤명(羅允命)이다. 외조부는 정익성(鄭益成)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들은 나시화(羅時化)으로 나이는 48세이고, 무진년(1808)생이다. 며느리는 최씨(崔氏)로, 나이는 35세이고, 신사년(1821)생이며, 본관은 해주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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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五年 月 日羅州牧考乙卯成籍戶口帳內 新村面龍頭里住第一統第六戶幼學鰥羅聖采 年七十五辛丑 本羅州父學生彦晦祖學生宗維曾祖學生允命外祖學生鄭益成 本晉州率子幼學時和年四十八戊辰妻崔氏齡三十五辛巳 籍海州仰役 婢永德年甲寅等 乙卯戶口自首者行牧使[署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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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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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乾仙命戊辰木 子乙卯 孫婦丁未 曾孫戊辰 玄孫乙巳坤仙命辛巳金 婦乙丑 次辛亥 婦戊辰 丁未寡丁巳 婦丁巳 孫己卯 丁未寡癸亥 寡癸亥 婦庚辰寡乙丑 孫癸未次甲子 癸未婦辛未 戊子孫乙丑 壬辰孫戊寅 甲午婦戊寅 乙未孫乙酉 丙申婦 戊戌孫乙酉 乙巳婦孫乙酉孫癸巳孫丁未葬山乾亥龍辛戊轉身癸入首子坐午向 宣申水歸午丁三運(一六水) 正丙辰土 泊在乾 司令戊土洪丙辰土斬開設穽同日戌時安葬戊申十月■■■■■〔十八日庚午〕初九日辛酉透地戊子戊子三分 分金庚子庚午虛八度永川穴深五尺二寸下棺同日■〔子〕丑時停伏取土甲庚方啓墓(前)同日辰時先破西方發{車+引}隨時二冲■■■■■■■〔壬戌丙子甲子生〕庚辰乙卯辛卯生出柩下棺小避歲壓二釣天光勾陳日的月差諸条無忌造命戊申文木包癸亥文木生辛酉財火生己丑元土衰造命戊申文木包癸亥文木生庚午孫水胎丙子財火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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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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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時山坊化民千鎰冠正言千光錄宣傳千鎰杓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民之先祖花山君墳墓崩頹鳩財修葺旣在洞燭中是白在果今方改莎之日財少役多如不衆力必難完築 惠以孔邇 施以不遐 嚴辭傳令于附近坊金岸機池使之赴役俾無後艱千萬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丁酉二月 日〈題辭〉依訴施行事面任二十二日[官印]2種行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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