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薪湖新里單錢拾壹兩宗人蔓涉便捧上印辛丑二月二十日譜廳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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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강련(姜鍊)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鍊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8년 2월 24일에 법전에 사는 강련이 옥산의 이 생원에게 상대방의 묏자리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아 걱정되고, 부탁한 일은 자신이 도와줄 수 없어 한탄스러우며, 보내준 안경은 자신에게 맞지 않아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1848년(헌종 14) 2월 24일에 법전(法田)에 사는 강련(姜鍊, 1800~1853)이 옥산(玉山)의 이 생원(李生員)에게 상대방의 묏자리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아 걱정되고, 부탁한 일은 자신이 도와줄 수 없어 한탄스러우며, 보내준 안경은 자신에게 맞지 않아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지난해 겨울에 상대방을 만나서 정담을 나눈 일은 해가 지나도록 위안되고 감사했는데 인편으로 또 편지를 받고서 상 중인 상대방이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위안된다는 내용, 자신은 어버이의 근력이 항상 병이 많아 애가 타며, 과거 시험 기일이 점점 닥쳐오니 갈수록 머리털이 모두 희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내용, 상대방의 묏자리 관련 소송 일은 아직까지 결말이 나지 않아 걱정스러우며, 상대방이 간접적으로 부탁한 일은 자신이 부응하기 어려우니 도리어 말씀을 받들지 않음만 못해 그지없이 탄식스럽다는 내용, 상대방이 보낸 안경은 귀한 물건을 주신 친절함에 감사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맞지 않아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달성(達城)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만 줄인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법전은 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으로, 진주강씨 법전문중의 세거지이다. 법전이라는 지명은 법흥사라는 사찰 앞에 있던 큰 밭을 지칭한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법전천의 옛 이름인 유계(柳溪)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진주강씨 법전문중의 파조(派祖)인 홍문관 응교 강덕서(1540~1614)의 아들 의금부 도사 강윤조(1568~1643)와 그의 두 아들인 잠은 강흡(姜恰, 1602~1671)과 도은 강각(姜恪, 1620~1657)이 병자호란을 피해 법전리로 입향하였다. 이후 노론의 당색을 띤 강흡의 후손들은 음지마을에, 소론색을 띤 강각의 후손들은 양지마을에 집성촌을 형성하였으며, 문과 급제자 25명, 무과 급제자 2명, 소과 급제자 31명 등을 배출하였다. 발신자 련은 거주지가 법전인 것을 볼 때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련(姜鍊, 1800~1853)으로 추정되며, 발신년도 무신년은 1848년로 추정된다. 강련의 자(字)는 성백(成百)이고, 강흡(姜恰)의 후손으로, 법전에 거주하였다. 1850년(철종 1)에 증광시(增廣試) 을과 4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修撰)‧교리(校理)‧부안현감(扶安縣監) 등을 지냈다. 그의 부친은 1809년(순조 9)에 별시(別試)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병조참판(兵曹參判) 등을 지낸 류하(柳下) 강태중(姜泰重, 1778~186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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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近阻悵仰 卽拜○惠書 仍審此時慈闈患候 以感嗽多日欠安 仰慮不任區區 弟家信之阻 已隔一朔 多少關心 皺眉難展 奈何奈何 東閣所愼今卽快可 寢進如常 是幸是幸示此還上 依敎言告 則孔等之已受到今還收之意傳令 有難事體 此等則因爲受食之外 更無他策云奈何 三種山菜 不近之地 鱗次遠饋 正甚不安 第以五斤肉 忘略分味以此○領情之意爲敎耳 營門之行 姑未知在於何間 而雖欲作之 行期自多牽掣 那邊玩景 恐未可必也 餘適因擾擾 姑不備謝禮丁未三月望日 弟 敦源 拜(皮封)章山○齋中執事 回敬中坪謹謝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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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五年 月 日羅州牧▣(考)乙酉成籍戶口帳內荷衣於恩村住第二統第六戶閑良金聖仁年五十八己丑本金海▣(父)閑良 弼逢祖閑良 尙巾曾祖閑良 延伯外祖閑良金節順 本金海妻朴氏年五十丙申 本密陽父閑良 得大祖閑良 敬漢曾祖閑良 桂春外祖閑良林春逢 本羅州率子達五年十七己巳等壬午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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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명학(金明學)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70 羅州牧使 金明學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2x7.5),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70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명학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70년(고종 7)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명학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준호구 발급년, 호주 김명학의 주소와 인적사항, 아버지의 인적사항 부분이 결락되었다. 김명학의 사조(四祖) 중 할아버지는 한량 필봉(弼奉),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이숙문(李淑文)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명학의 아내 박씨는 나이 67세 갑자생(甲子生)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고올(高兀), 할아버지 한량 치울(致欝), 증조(曾祖) 한량 창옥(昌屋), 외조 한량 최부지(崔扶智) 본관은 밀양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승록(昇祿)이 있으며, 나이 45세 병술생(丙戌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6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묘호구상준(丁卯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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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閒良 弼奉曾祖閒良 尙巾外祖閒良李淑文 本慶州妻朴姓年六十七甲子本密陽父閒良 高兀祖閒良 致欝曾祖閒良 昌屋外祖閒良崔扶智 本密陽卛子昇祿年四十五丙戌等丁卯戶口相凖者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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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나시완(羅時完)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時完 牧使<押>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61년(철종12)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시완(羅時完, 5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61년(철종12)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시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시호(羅時縞)는 나시완(羅時完)으로 개명하였으며, 나이는 54세이고, 무진년(1808)생으로,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성채(羅聖采)이고, 조부는 나언회(羅彦晦)이며, 증조부는 나종유(羅宗維)이다. 외조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아내는 최씨(崔氏)로, 나이는 41세이고, 신사년(1821)생이며, 본관은 해주이다. 최씨의 아버지는 최환일(崔煥日)이고, 조부는 최수정(崔守正)이며, 증조부는 최승렬(崔承烈)이다. 외조부는 이행윤(李行潤)이고, 본관은 양성(陽城, 현 경기도 안성)이다. 아들은 나운집(羅雲集)이고, 나이는 36세이며, 병술년(1826)생이다. 며느리는 이씨(李氏)로, 나이는 38세이고, 갑신년(1824)생이며, 본관은 함평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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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十一年 月 日 羅州牧考戊午成籍戶口帳內 新村面龍頭里住第一統第五戶幼學羅時縞改名時完 年五十四戊辰 本羅州父學生聖采祖學生彦晦曾祖學生宗維外祖學生金運興本金海 妻崔氏齡四十一辛巳 籍海州父幼學煥日祖學生守正曾祖學生承烈外祖學生李行潤 本陽城率子幼學雲集年三十六丙戌 婦李氏齡三十八甲申 籍咸平仰役 婢永德年甲寅等 戊午戶口相準者牧使[署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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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惟晩秋尊體動止萬重伏溯規規第家兒孫親事旣承頷可私楣之慶星單依 敎仰呈涓吉回示若何餘伏惟尊照謹拜 上狀甲辰十一月初一日晉陽柳秀晋 再拜(皮封)郭生員 下執事謹拜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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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面雲臥谷里戶口單子 十三統一戶戶良人崔東龍年五十六己巳本全州父學生 龜善祖贈嘉善大夫工曺叅判五衛都㧾府副㧾管 聲南曾祖贈通政大夫工曺叅議 錫壁外祖學生 吳泰位 生無本然而本則同福妻黃姓年五十七戊辰本長水父學生 慶河祖嘉善 進相曾祖嘉 叙外祖學生 金老迪本光山奉母故率子德連年十六己酉甲子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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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言令仲氏叔主喪事 出於千萬意外 承訃驚怛 夫復何言 雖聞患候之沉極 而謂其氣力之剛健 必至遐壽矣 豈意實音之遽至耶 伏惟友愛加隆 哀慟沉痛 何可堪勝 又况咸哀未得侍湯 在外聞訃 戴星景色 已無可言 而其於情理 永抱無窮之恨 伏爲之悲念 以其虛弱之質 能不生病而抵達耶 變出倉猝 初終凡百 何以經紀也 伏不審服中體事 能無大損 姑母主當此大變 無傷生之慮耶 在遠只切悲溸而已 極永固當匍匐之不暇 而慈候間多欠和 身亦祟澸 未能遂誠 只自愧歎耳 餘不備狀禮乙卯三月初六日 記下金極永狀上【피봉】狀上李生員 朞服 座前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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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面雲臥里戶口單子 二統三戶戶 良人崔東龍年五十九己巳本全州父學生 龜善祖贈嘉善大夫工曺叅判五衛都㧾府副㧾管聲南曾祖贈通政大夫工曺叅議 錫壁外祖學生 吳泰位本同福妻黃姓年六十戊辰本長水父學生 慶河祖嘉善 進相曾祖嘉善 叙外祖學生 金老迪本光山率子德連年十九己酉[官印]行縣監[署押] [周挾無改印]丁卯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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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面雲臥里戶口單子庚午式 十統一戶戶 良人崔東龍年六十二己巳本全州父學生 龜善祖嘉善大夫工曺叅判五衛都㧾府副㧾管 聲南曾祖贈通政大夫工曺叅議 錫壁外祖學生 吳泰位本同福妻黃姓年六十三戊辰本長水父學生 慶河祖嘉善 進相曾祖嘉善 叙外祖學生 金老迪本光山率子阿只九癸亥丁卯式相凖印 [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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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芝山面 日谷里盧 斯文 蘇海 宅(피봉_뒷면)鳳山精舍 會所 謹函.封.(簡紙)歲新矣. 伏惟正元尊體迓新萬祉, 是庸頌仰. 就師門主喪, 以在廷長子大錫, 承重受服爲幸莫大. 其在同門願言之地, 不可無相志. 故玆仰, 幸須僉諒, 轉相通志, 如何如何. 餘不備上.乙亥正月六日, 任漹宰高在華上(別紙)羅鍾宇【字 聲泰, 號 松巖】 大村面 石亭任漹宰【字 子潤, 號 西谷】 南平 錦川面 酉疇劉秉龜【字 洛現, 號 韋菴】 光州 西倉面 龍頭里梁孝黙【字 行源, 號 老菴】 林谷面 博山金勝坤【字 , 號 東洲】 西倉面 東山里李載春【 , 號 省菴】 瑞坊面二月十六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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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盧 斯文 軫永 省下(피봉_뒷면)鳳山精舍 生等(簡紙)頓首, 日昨几筵之奉別, 出於遽然,惟何如悵之喩也. 謹惟堂候倘得无妄, 而天和否? 區區爲頌無數. 然吾先生之襄奉, 幸賴僉君子之尊師誠力, 可謂利成, 而克終者一段而已.惟願大兄察此末襄先日信焉之蒙, 千萬與祝何免.今襄奉時所需, 自吾門徒提供, 而目今不足額近三百餘円也. 各自爲先挪貸者司貨之人, 或七拾円五拾円乃已, 則自貴中七拾円挪貸, 則終有拮据之道, 以此 惠諒, 而幸 勿遺憾于師門中, 千萬千萬.乙亥元月葬師之翌,任漹宰李載春劉秉龜羅鍾宇 二拜.尹璟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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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蘇海先生 道座下(피봉_뒷면)光州郡 西倉面 鳳山精舍弦窩高先生 遺稿刊所[正方形朱印: 弦窩先生遺稿刊所印](簡紙)向拜軒屛醉以酒飽以德, 又於儒會 特爲枉臨, 一省儒林感服. 吾先生誠力自此鳳山不輕而重而來頭刊役, 預卜利成. 伏未審比來靜養氣力康寗, 胤兄安侍, 近得孫男云, 餘慶可掬, 而倂溸祝, 區區之至. 生等優遊刊所, 尸其位■(而)素其食, 而對士林措何辭而發明,仰想 先生之誠助言助出人上 萬萬, 而又及於物質,挺然風義, 特出人世也. 這間用下, 非不儉約, 而窘竭莫甚. 玆敢伏告, 望須義捐沒數備擲, 俾完大事, 千萬伏仰, 毋至白望,是吾 先生處分也. 餘此祝道候順序康旺. 不備拜上.乙亥三月十五日, 生等 高光璉, 任漹宰, 李載春, 劉秉龜, 梁孝黙, 尹璟赫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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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武城書院道內齋長李鍾聲原 薦[武城書院]住康津郡甲戌十一月 日[武城書院]道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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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진녕(李震寧)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全州鄕校 康津鄕校 全州鄕校(흑색,직방형, 7.5×5.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925년 8월에 전주향교 이진녕 등 32인이 강진향교에 이규행의 효행실적을 강진군지에 실어서 칭송하여 장려할 것을 권유하는 통문 1925년 8월에 전주향교 이진녕 등 32인(人)이 강진향교에 이규행(李圭行)의 효행실적(孝行實蹟)을 강진군지(康津郡誌)에 실어서 칭송하여 장려할 것을 권유하는 통문이다. 통문에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규행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낸 이인정(李仁挺)의 후손이자 진사(進士)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이다. 증조는 이인열(李仁㤠), 할아버지는 이시준(李時濬), 아버지는 이보승(李普升)이며,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서 살았다'는 등 이규행의 집안 내력과 성품을 간략히 서술하였는데, 이규행은 명문세족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품이 매우 순수하고 언행이 뭇 아이들과 달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규행의 행실에 대해서는 '일곱 살에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곡하고 슬퍼하는 것이 성인과 다름없었으며, 아버지를 섬김에 공경과 정성을 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간호에 있어서도 약을 달이며 장수를 기원하는 등 지극정성으로 임하였다. 스물여덟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모두 옛 제도에 따라 상(喪)을 치르고 장사(葬事)와 제사에 성의를 다하였다. 이외에도 빈궁한 자를 도와주는 도리는 물론 벗과의 관계도 미더웠을 뿐만 아니라 친족과의 의리도 화목하고 지극하여 온 마을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으며, 친족들도 모두 감탄하였다고 하였다. 끝으로 전주향교의 선비들은 덕을 좋아하는 마음에 이규행의 효행과 행실에 침묵할 수 없어 강진향교에 통문을 보내 그의 행실과 행적을 하나하나 가려 뽑아 기록하여 강록(綱錄)에 편입하고 강진군지에 실어서 칭송하여 장려할 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문 발급날짜 위에 '전주향교재소(全州鄕校齋所)'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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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나도선(羅燾線)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羅州鄕校 慕聖公會 羅州郡羅州文廟直員(적색, 정방형, 2),羅州鄕校(흑색,직방형, 6.6×5.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925년 10월에 나주향교 나도선 등 18인이 모성공회에 이규행의 효행실적을 속히 드러내 알릴 것을 촉구하는 통문 1925년 10월에 나주향교(羅州鄕校) 나도선(羅燾線) 등 18인(人)이 모성공회(慕聖公會)에 이규행(李圭行)의 효행실적(孝行實蹟)을 속히 드러내 알릴 것을 촉구하는 통문이다. 통문의 도입부에는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나더라도 그 향기는 반드시 소문이 나고, 깊은 못에 구슬을 감추더라도 그 광채는 절로 드러나는데 사람의 아름다운 행실과 실적은 난초의 향기와 구슬의 광채보다 뛰어나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이규행의 가계에 대해 도내(道內) 고(故)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규행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낸 이인정(李仁挺)의 후손이자 진사(進士)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이며, 증조는 이인열(李仁㤠), 할아버지는 이시준(李時濬), 아버지는 이보승(李普升)이라고 했다. 이규행의 계보와 성품에 대해 주로 언급하면서 명문세족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품이 매우 순수하고 언행이 뭇 아이들과 달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규행의 효성과 의리 행실에 대해 서술했는데, 그가 일곱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자라면서 항상 어머니상에 성의를 다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했으며, 늙어서 최마(衰麻)를 입은 자를 보면 절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버지를 공경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고 병간호하면서는 지극정성으로 약을 달이며 하늘에 아버지의 장수를 빌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두 옛 제도에 따라 상(喪)을 치르고 장사(葬事)와 제사에 성의를 다하였다고 했다. 그밖에 빈궁한 자를 도와주는 도리와 벗과 미덥고 친족과 화목한 의리도 매우 지극하여 마을 사람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고 하였다. 끝으로 나주향교 선비들이 그의 행실을 함께 들은 후 침묵할 수 없어서 모성공회에 통문을 보내 그의 실행과 실적을 속히 드러내 알려서 사라지지 않게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내용을 담았다. 모성공회는 일제강점기 때에 만들어진 유교 단체이다. 통문의 본문 끝에 '나주군나주문묘직원(羅州郡羅州文廟直員)' 주인(朱印)이 찍혀있고, 발급날짜 위에는 '나주향교(羅州鄕校)'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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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伏請比寒調節快復常和否仰慮之極 阻耿尤勤也 有一近邑士人來 傳兄家近出無前駭機 此果○兄老妄而然乎 抑或失眞而然歟 ○令咸平日 設或有悖義不順之擧 誘之責之 圖所以雍和之方 卽叔侄間常情也 正理也 而況○咸氏所執之義 非惟○兄家之得其正也 抑亦士友之所共許者 而○兄獨執拗 轉生葛藤 畢竟至於難言之境 此何故也 傳此說者苟非○兄家 則必不▣(言)▣ ▣▣亦非○老兄 則必不欲直說而聞來驚怪 有此云云 大抵叔侄之間 若辨其孰是孰非 彼直此曲 則反▣▣彼人之道 而○兄亦大家之人也 朝暮之年也 何可自我手毁其家 而甘受人侮耶遂事勿說 ○覽此▣…▣〈背面〉招○咸氏 自引其咎▣▣以後 互相悅豫以過 則彼豈有矛盾圭角之理哉 苟或不然 則○兄之身後 年少後進輩 皆染於○兄之悖擧 而恐難免先正門中一大罪人 以○兄博識 何不念及於此耶 庶可諒燭 而不我深誅也 弟病日益深 百爲無心 而兄若一顧 可攄者 不啻山積而已 餘萬燭下眼昏姑此不備 上癸十念二 病弟 李憲▣ 拜(皮封)謹拜謝上 登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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