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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류대석(柳大錫) 축문(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壬子正月十三日 孝子 柳大錫 壬子正月十三日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2년 1월 13일 류대석이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날을 맞아 쓴 축문 1972년 1월 13일 류대석이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날을 맞아 쓴 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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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류공가장(農隱柳公家狀) 고문서-시문류-행장 개인-전기-행장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農隱 柳志浩의 행적 등을 기록한 家狀. 農隱 柳志浩(1793~1856)의 행적 등을 기록한 家狀이다. 찬술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가장에 따르면 諱는 志浩이고, 자는 通吾, 호는 農隱이며, 본관은 고흥이다. 아버지는 柳日榮으로 호가 滄溟이고, 문재가 일찍부터 성하여 조상들의 사적을 찾아내어 편집하였다고 하였으며, 司直 成近黙(1784~1852)이 撰하여 함께 기록한다라고 썼다. 그의 품성은 純厚하고 容儀는 端重하였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능히 서책을 尊敬할 줄 알아 책을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꿇어앉아서 옮겨 놓은 뒤에 지나갔으며, 일찍 가학(家學)을 계승하여 서적에 잠심(潛心)하였다 한다. 특히 小學과 禮說에 專力하여 평소에도 손에 들려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또 글씨를 잘 써서 모든 法을 취하였다. 일찍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서 장옥(場屋; 과거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대개 부친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오로지 彛倫을 숭상하였으며 遺稿 1卷이 있다. 부모를 섬기는데 몸과 마음을 다해 봉양하고, 형제간에는 우애를 지켰다. 검소와 박애를 숭상하고, 여러 사람들이 비록 智愚善惡하여도 기쁜 마음으로 심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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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19년 류일영(柳日榮)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 고문서-치부기록류-중수기 경제-토목/건축-중수기 崇禎四己卯三月日 高興 柳日榮 崇禎四己卯三月日 柳日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 柳日榮이 찬한 明倫堂重修記 1819년 柳日榮이 찬한 明倫堂重修記. *明倫堂重修記 己卯… *상태: 飛點과 수정한 흔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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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김종가(金種嘉) 송은기(松隱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時柔兆敦牂夬之下浣 月城 金種嘉 時柔兆敦牂夬之下浣 金種嘉 ▣...▣(2.7×1.4), 金種嘉印(3.0×3.0), 立軒(3.0×3.0)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6년에 金種嘉가 작성한 松隱記 1966년에 金種嘉가 작성한 松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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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이성하(李聖河) 효열부이유인전(孝烈婦李孺人傳) 고문서-시문류-문 교육/문화-문학/저술-문 乙巳元月小晦 興陽 李聖河 乙巳元月小晦 李聖河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元月에 李聖河가 찬술한 孝烈婦李孺人傳 을사년 元月 小晦에 李聖河가 찬술한 柳奎榮의 부인 孝烈婦 이씨에 대한 글이다. 傳에 따르면 孺人 李氏는 본관이 星州이고, 文烈公 李兆年(1269~1343)의 후손인 士人 李景範의 딸이다. 성품은 順婉하였고, 집에서 효녀라고 칭하였다 한다. 忠正公 柳濯의 후손인 高興 柳奎榮에게 시집가 시부모를 모실 때에는 성심껏 효성을 다해 봉양하였으며, 시부모의 상을 치를 때에는 마음과 예를 다하였다. 남편이 병에 걸렸을 때는 매일 밤을 세워 기도하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였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자 밤낮으로 관 옆에 있으며 水漿을 들지 않았으며 작은 칼을 품고 남편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런데 2살의 孤兒가 울고 있음을 깨닫고 諸具를 손수 마련하여 예를 다하여 상례를 치렀다. 자식은 잘 길러 가문을 잇게 하였으며, 아들 世浩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효자로 칭찬받았다. 마지막으로 찬술자는 부인의 행동이 中正을 잃지 않고 시부모에 대한 효와 자식을 기르는 도리를 다하여 그 가문을 잇게 하였으니 이 傳을 짓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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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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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硏紅細點梅花句라고 쓴 遺墨 硏紅細點梅花句라고 쓴 遺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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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송형주(宋衡柱) 효열부이씨비문(孝烈婦李氏碑文)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歲甲辰蜡月上浣日 南陽 宋衡柱 歲甲辰蜡月上浣日 [1964] 宋衡柱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4년에 송형주(宋衡柱)가 쓴 효열부이씨비문(孝烈婦李氏碑文) 1964년 12월 상완(上浣)에 송형주(宋衡柱) 쓴 효열부이씨비문(孝烈婦李氏碑文)이다. 비문에 따르면 효열부 이씨는 류중상(柳重祥)의 부인으로 본관은 고흥이고 아버지는 이종택(李鍾澤)이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아녀자가 가져야 할 덕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녀자의 직분과 도리를 잘 지켰다. 남편이 병들어 모든 약이 소용이 없자 혜사현(惠士玄)의 처 왕씨의 고사를 본받아 지극정성을 다 하였다. 결국 남편이 죽자 슬퍼하며 따라 죽고자 했다. 그러나 어린 두 아들과 남편의 후사를 생각해 마음을 돌리고 빈렴(殯斂)과 장례를 모두 예에 합당하게 행하였다. 이 같은 이씨의 행실이 없어져 전해지지 않을까 비문을 쓴다고 밝혔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 '入'자를 덧붙여 썼으며, 우측 하단은 찢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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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奇物譎恠完라고 쓴 遺墨 奇物譎恠完라고 쓴 遺墨. *상태: 전서체, 오른쪽에 원문이 붙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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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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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天吳九首라고 쓴 遺墨 天吳九首라고 쓴 遺墨. *상태: 전서체, 오른쪽에 원문이 붙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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