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류일영(柳日榮)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 고문서-치부기록류-중수기 경제-토목/건축-중수기 崇禎四己卯三月日 高興 柳日榮 崇禎四己卯三月日 柳日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 3월에 류일영(柳日榮)이 쓴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 1819년(순조 19) 3월에 류일영(柳日榮)이 쓴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이다. 향교의 수선 이력과 함께 일을 주도한 현감에 대한 감사, 대역사를 마친 감회를 적고 있다. 문서 내용에 따르면 봄에 흥양의 명륜당 중수를 마치고 그날 유림들이 모여 낙성을 축하하며 이 글을 지었다고 하였다. 만력 정유년(1597)에 병화로 향교가 소실되어 5聖의 위패를 읍의 동촌(東村)에 이봉(移奉)하였고, 90여 년 뒤인 1701년에 고을 유생들의 건의로 성(城) 서쪽 옛 터에 중건하였으며, 1765년에 한 차례 수선하였다 한다. 지금 수선한 지가 오래되어 당(堂)이 훼손되었고 동ㆍ서재, 전사청 또한 모두 훼손되었다고 하였다. 1815년 현감 안광찬(安光贊)이 봉전(俸錢) 510緡의 중건 비용을 모아 정축년에 동재 및 전사청을 수리하고, 무인년(1818)에 이르러 지금 현감 신의학(愼宜學)이 시전(視篆)하여 서재를 수선하고 기묘년(1819) 봄에 명륜당의 대역사를 완성하였다며 현감 안광찬과 신의학의 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흥양현감으로 재임한 안광찬은 1812년부터 1815년까지 근무하였고, 신의학은 1817년부터 1819년까지 근무하였다. 고흥향교는 세종 23년(1441)에 처음 세워졌으나 초기 운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숙종 26년(1700)에 재건한 것이다. 순조 17년(1817)에 양사재가 건립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대성전이 중수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5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전학후묘의 형식으로 앞쪽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뒤쪽에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에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