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춘추론〉에 대한 반론 反春秋論論 내가 생각건대 노천 소씨(老泉蘇氏)1)의 〈춘추론(春秋論)〉에 "위(位)는 공적(公的)인 것이요, 도(道)는 사적(私的)인 것이다.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을 이길 수 없다." 하였는데, 그 뜻은 '부자(夫子, 공자)가 비록 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 지위는 얻지 못하였고 사적인 도는 공적인 것이 아니니, 한 사람의 사적인 것으로 천하의 상벌을 공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마침내는 은연중에 스스로 해석하기를 "부자가 노나라에 천자의 권위를 빌려주고, 부자는 스스로 노나라 역사의 명칭을 빌려서 《춘추》를 지었다." 하였다. 나는 감히 그 설을 반박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노소(老蘇)의 설은 잘못이다. 범인(凡人)의 소견으로 성인의 뜻을 역탐(逆探)하면서 에둘러서 교묘하게 왜곡하니 합당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아서 《춘추》의 본뜻을 크게 잃었다. 왜 그런가?천지에 통하고 사사롭지 않은 것을 덕(德)이라 하고, 고금에 달하고 크게 공정한 것[大公]을 도(道)라 한다. 도(道)를 사사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위(位) 또한 공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천지에 통하고 사사롭지 않기 때문에 덕이 천지에 합치하는 것이다. 고금에 달하고 크게 공정하기 때문에 도가 귀신에 합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夫子)는 천지이고 귀신인 것이다.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어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것은 천지요, 변화하고 신묘하여 알 수 없는 것이 귀신이니, 나의 덕이 능히 그에 배합하다면 일개 작위(爵位) 따위는 얻어도 되고 얻지 못해도 되는 것이다.주공(周公)이 죽고 나니 대도(大道)가 서지 못했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이미 멀어지고 나니 왕의 기강이 땅에 떨어졌다. 난신적자들이 천하에 자취를 이으니 삼강(三綱)과 구법(九法)2)은 바다가 마르고 산이 무너지듯 하여, 천지가 천지답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자(夫子)가 천지처럼 우뚝 홀로 섰으니 부자께서 어찌 구구한 작위(爵位)를 혐의하여 도(道)로써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춘추》를 지은 것이다.그러므로 《춘추》의 법은 천지이고 귀신인 것이다. 천지와 귀신이 부자의 붓에 붙어서 상벌을 준 것이다. 부자가 상벌을 준 것은 바로 하늘이 상벌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나를 알아주는 것도 《춘추》요, 나를 죄 주는 것도 《춘추》이다."3) 한 것이다. 이것이 부자의 큰 뜻이다. 그런데 만약 '지위는 공적인 것이고 도는 사적인 것이다.'라고 한다면 걸왕(桀王)·주왕(紂王)·유왕(幽王)·여왕(厲王)4)이 공(公)이요 주공(周公)과 부자는 사(私)이니 옳겠는가.'부자가 노나라에 천자의 권위를 빌려주었다'고 한 데 이르러서는 더욱 그 잘못을 볼 수 있다. 노나라의 체(禘)제사를 공자가 보려 하지 않은 것은5) 그것이 예(禮)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구나 천하를 상벌하는 권한을 노나라에 빌려주고 스스로 빌릴 수 있겠는가? 결단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천하가 유도(有道)하면 도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천하가 무도(無道)하면 도는 하늘에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는 천도 (天道)는 지성(至誠)하여 쉼이 없는 것이다.6) 그러니 나에게 있는 천도로써 하늘에 있는 명을 받들고 천하의 선악에 대해 상벌을 주어서 만세의 윤기(倫紀)를 바로잡도록 하늘이 부자에게 책임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을 알고서도 도리어 작위의 혐의 때문에 상천(上天)의 무거운 책임을 저버린다면 그것이 어찌 부자의 뜻이겠는가? 이 때문에 《춘추》를 지은 것이다.소자(蘇子)는 하찮은 소견으로 천지와 귀신을 역탐하여 추측하려다 헤아릴 수 없게 되자 사사로운 뜻으로 견강부회하고, 그럴듯한 설을 찾다가 되지 않자 노권(魯權)의 설7)을 가탁하여 성인의 뜻을 밝혀보려 했으니 아! 졸렬하고도 천박하도다. 내가 그래서 '범인의 소견으로 성인의 뜻을 역탐하여 《춘추》의 본 뜻을 크게 잃었다.'라고 한 것이다." 愚按老泉蘇氏春秋論曰: "位者公也。 道者私也。 私不勝公。" 其意以爲夫子雖有道未得其位。 私道而不公。 以一人之私。 公天下之賞罰非也。 卒乃隱然自解曰: "夫子借魯以天子之權。 夫子自借以魯史之名而作春秋。" 愚敢反其說而論曰: "老蘇之說非也。 以凡人之見。 逆聖人之意。 迂回巧曲。 不合不公。 大失春秋之本旨也何則? 通天地而不私謂之德。 達古今而大公謂之道。 道而可私。 位亦公乎? 通天地而不私。 故德合天地。 達古今而大公。 故道合鬼神。 然則夫子天地也鬼神也。 至大至廣。 不可名狀者天地也。 變化神妙。 不可知之者鬼神也。 吾之德能配合于彼。 則一箇爵位。 得亦可也。 不得亦可也。 周公旣沒。 大道不立。 文武已遠。 王綱墜地。 亂臣賊子。 接跡天下。 而三綱九法。 海渴山崩。 天地不得爲天地。 而夫子之天地卓爾獨立。 則夫子豈可以區區爵位之嫌而不援之以道乎? 此春秋之所以作也。 故春秋之法。 天地也鬼神也。 天地鬼神。 寓於夫子之筆而賞罰之。 其所以賞罰。 乃天賞罰之也。 故曰: '知我者春秋也。 罪我者春秋也。' 此夫子之大意也。 若曰: '以位爲公而道爲私。' 桀紂幽厲公也。 周公孔子私也。 而可乎? 至於借魯以天子之權者。 尤見其誤矣。 魯之禘。 夫子之不欲觀。 以其非禮也。 則况可以賞罰天下之權。 借魯而自借之歟? 決知其大不然也。 故天下有道則道在於人。 天下無道則道在於天。 在我之天。 至誠無息。 則以在我之天。 奉在天之命。 賞罰天下之善惡。 以正萬世之倫紀。 非天之所以責之夫子者耶? 知是責之在我而反以爵位之嫌。 負上天責任之重。 豈夫子之意耶? 此春秋之所以作也。 蘇子以煦煦小見。 逆測天地鬼神而不可量。 附會以私意。 求其說而不得。 假魯權之說而欲明聖人之意。 吁亦拙矣亦淺矣。 愚故曰: '以凡人之見。 逆聖人之意。 大失春秋之本旨也。'" 노천 소씨(老泉蘇氏) '노천(老泉)'은 소순(蘇洵, 1009~1066)의 호이다. 구법(九法) 《서경》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를 가리킨다. 이는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大法)이다. 나를……춘추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것도 《춘추》이고, 나를 죄 주는 것도 《춘추》일 것이다.'라고 말했다.[春秋, 天子之事也. 是故孔子曰,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 하였다. 걸왕(桀王)……여왕(厲王)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나라를 망하게 한 폭군(暴君)의 상징이고, 주(周)나라의 12대 유왕(幽王)과 10대 여왕(厲王)은 나라를 어지럽힌 혼군(昏君)의 상징이다. 노나라의……것은 《논어》 〈팔일(八佾)〉의 "체제사는 강신주를 따른 뒤로부터는 내가 보고 싶지 않다.[禘, 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지성(至誠)하여……것이다 《중용장구》 제26장에 "그러므로 지성은 쉼이 없으니, 쉬지 않으면 영구하고 영구하면 징험이 나타난다.[故至誠無息, 不息則久, 久則徵.]" 하였다. 노권(魯權)의 설 공자가 '노나라에 천자의 권위를 빌려주었다[借魯以天子之權]'는 설을 말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횡론 田橫論 내가 살펴보건대, 전횡(田橫)8)이 2빈객과 500명의 사(士)를 데리고 섬으로 들어갔을 때 한(漢)나라가 왕후(王侯)로 예로 부른 것은 그가 혹 난을 일으킬까 우려해서였다. 이에 전횡이 역마를 타고 낙양(洛陽)에 이르렀는데 조정에 도착하기 30리 전에서 자살하였다. 그가 자살한 뒤 2빈객과 사(士) 500사람도 모두 자살하였다. 가령 502사람이 목숨을 버리면서 의리를 취하여 죽음을 마치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전씨(田氏) 종족들은 이미 멸망했고 전횡도 세울 후사(後嗣)가 없었으니, 저 502사람은 무슨 바랄 것이 있어 그 의리를 이룰 수 있겠는가. 호인(胡寅)의 《독사 관견(讀史管見)》9)에 이른바 "어떤 것을 위하는 바가 없이 행하였으니 참된 의사(義士)이다."10)라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비록 그렇지만 나는 일찍이 그 중도를 잡아 논하여 "전횡의 죽음은 높다고 할 만하고, 사(士)의 죽음도 의롭다고 할 만하다." 하였다. 저 전횡은 제(齊)나라의 공자(公子)이다. 건(建)11)의 객들이 부른 송백(松栢)의 노래는 천년 후에도 사람의 이목이 살펴보는 바로 매우 답답하게 하지 않음이 없는데 더구나 전횡의 경우이겠는가?전횡의 현명함으로 502사람의 의리를 믿고서, 패공12)이 의리를 붙들어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가던 날에 검을 차고 황하를 건너 자방(子房)·소하(蕭何)·조참(曹參)13)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관대한 장자14)의 대업을 도와 이루고, 함곡관을 점거하여 한 번 호령하며 송백(松栢)과 아사(餓死)의 치욕을 씻고, 연후에 서책(署冊)에 이름을 나열해 쓰며 금궤(金櫃)15)의 맹약을 하고, 제나라 한쪽 지방에서 왕 노릇하면서 남면(南面)하여 고(孤)를 칭하고,16) 전씨의 조종(祖宗)으로서 백세토록 제사를 받아먹었다면,17) 사람들 가운데 누가 대장부라 하지 않았겠는가?이렇게 하지를 않고 사나운 조무래기들과 일을 함께 하다 끝내는 전복되고 말았다. 이는 왕릉의 어미18) 같은 일개 부녀자도 수치스럽게 여기는 일인데 전횡은 하였단 말인가? 설사 전횡이 한(漢)나라를 미처 섬기지 못하여 사태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온 제나라 70여 성이 한신(韓信)의 손에 한 번 깨져서 나라가 멸망하고 군주는 죽어 종묘사직이 폐허가 되니, 전횡의 큰 원수로서 한(漢)나라 또한 진(秦)나라와 같은 것이다. 전횡을 위한 계책으로는 마땅히 통곡하며 하늘에 부르짖고 복수를 기약하면서 500인의 목숨을 내놓은 의사들과 연계해 십이(十二)19)의 강력한 제나라의 변경으로 들어가 웅거하였다면, 백만의 무리도 한 번 호령하여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견고한 사방의 요새를 등지고 임치(臨淄)20)에서 예의를 갖추면서 천하의 선비들을 초치하고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에 격문을 전하여 의를 떨쳐 서쪽으로 갔다면, 그 당시 중원의 병사들은 유방과 항우가 서로 백전백패하는 나머지 피폐해져 부상에 신음하는 소리가 사방에 달했고, 팽왕(彭王)의 변란21)에 황제가 직접 출정을 하였으나 조(趙)나라와 대(代)나라 변경의 부대가 하나도 조정의 부름에 오지 않았으며, 백등(白登)의 포위22)에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이 손을 거두어 계책을 낸 바도 없었으니, 더구나 돌진해오는 500 의사(義士)들의 예봉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했다면 한 나라와 제 나라의 자웅은 기필할 수 없었을 것이다.오호라, 전횡의 현명함으로도 계책이 여기에 미치지 못했던가? 가령 천명과 인심이 이미 한(漢)나라로 돌아가서, 사람의 지모가 비록 훌륭한들 어쩔 수 없더라도 마땅히 성을 등지고 한 번 싸워 복수의 대의에 죽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漢)나라 사신을 한 번 만나보고는 '크게는 왕을 시켜주고 작게는 제후를 시켜주겠다.'23)는 이끗에 유혹되어서 천리를 역마를 타고 가면서 명을 받드는데 분주하다가, 계책이 바닥나고 형세가 곤궁해진 뒤에야 구독(溝瀆)에서 칼에 엎드려 죽었으니 이 무슨 의리인가. 내가 그러므로 "전횡은 작은 은혜로 인심을 결집한 일은 있으나, 그 대의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하는 것이다. 삼가 논한다. 愚按田橫以二人客五百士。 入于島。 漢招以王侯之禮。 盖慮其或作亂也。 橫乘傳至洛陽。 未及朝三十里死之。 死之後。 二人者與士五百皆自殺。 夫使五百二人。 捨生而取義。 視死如歸。 諸田宗已滅而橫亦無後可立。 彼五百二人者。 有何所望而能成其義歟? 胡管見所謂無所爲而爲之。 眞義士也者。 是也非耶? 雖然愚嘗執其中而論之曰: "橫之死。 可謂高矣。 士之死。 亦可謂義矣。" 彼橫者齊之公子也。 建客松栢之歌。 使千載下。 耳目所照。 莫不絶悒。 况橫者耶? 以橫之賢。 挾五百二人之義。 當沛公扶義入關之日。 仗劒渡河。 與子房蕭曹共肩而贊成寬大長者之業。 據關一號。 雪松栢餓死之恥。 然後列書署冊。 金櫃之盟。 王齊一方。 南面稱孤。 使田氏之宗。 血食百世。 則人誰不曰大丈夫哉? 此之不爲。 與慓悍小兒同事。 竟致顚覆。 此王陵母一婦女所羞而橫爲之耶? 設使橫未及事漢。 而事已至此則全齊七十餘城。 一破於韓信之手。 而國滅君亡。 宗廟邱墟。 橫之大讎。 漢亦秦也。 爲橫之計。 當痛哭號天。 期以復讎。 連五百之死士。 入據十二强齊之境。 則百萬之衆。 可一呼而得矣。 負四塞之固而揖讓臨淄之上。 以致天下之士。 傳檄韓魏。 奮義而西。 則當其時。 中國之兵。 罷於劉項百戰百敗之餘。 呻痛瘡痍之聲。 達于四境。 彭王之變。 帝自出征。 而趙代邊兵。 一不庭召。 白登之圍。 蕭曹斂手。 計無所出。 則况可當於五百義士衝突之鋒耶? 然則漢齊雄雌。 未可必矣。 嗚呼! 以橫之賢。 計未及此耶? 假使天命人心已歸於漢。 人謀雖臧。 無可奈何。 則當背城一戰。 死於復讎之大義可也。 一見漢使。 誘於大王小侯之利。 千里乘傳。 奉命奔走。 至於計縮勢竆然後。 伏劒溝瀆。 是何義耶? 愚故曰: "橫以小惠結人心則有之。 不聞其大義也。" 謹論。 전횡(田橫) 전횡은 조카인 제왕(齊王) 전광(田廣)이 한신(韓信)에게 사로잡혀 죽자 자립하여 제왕이 되었다. 얼마 뒤 한 고조 유방이 황제가 되니, 전횡은 주벌될까 두려워 500여 명의 무리와 바다 섬으로 들어가서 살았다. 유방이 사신을 보내 전횡의 죄를 용서하고 부르기를 "전횡아, 오너라. 크게는 왕으로 봉하고 작게는 후(侯)로 봉하겠지만, 오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어 주벌하겠다."라고 하였다. 전횡이 이에 빈객 두 사람과 낙양으로 가다가 30리를 남겨 두고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 한왕(漢王)과 나란히 왕이라 칭하다가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고 나는 망국의 포로가 되어 그를 섬기게 되었으니, 너무도 부끄럽다."라고 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며 두 사람에게 자신의 수급을 바치게 하였다. 한 고조가 왕자의 예법으로 전횡을 장사 지내 주었다. 두 빈객과 섬에 있던 500명도 모두 자결하였다. 《史記 권94 田儋列傳》 호인(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 원문의 '호관견(胡管見)'으로, 송(宋)나라의 학자인 호인(胡寅)이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고 주요 사건마다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독사관견(讀史管見)》 30권을 엮었다. 어떤……의사(義士)이다 사심 없이 오직 의리에 따라 행동한 것을 말한다. 예양(豫讓)의 고사를 말한다. 예양은 전국(戰國)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지백(智伯)을 섬겨 총애를 받았는데,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쳐서 멸망시키자,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양자에게 잡히자 자결하였다. 《史記 권86 刺客列傳 豫讓》 건(建) 초나라 평왕(平王)의 태자로 비무극(費無極)의 참소를 당해 쫓겨나서 객사한 건(建)을 말한 듯하나 확실치 않다. 《春秋左氏傳 昭公27年》 패공(沛公)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의 칭호이다. 패(沛)에서 기병(起兵)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자방(子房)·소하(蕭何)·조참(曹參) 세 사람 모두 한(漢)나라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다. 자방(子房)은 장량(張良)으로, 그의 자가 자방이다. 관대한 장자[寬大長] 한고조 유방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지금 항우는 강하고 사나우니 지금 항우를 보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패공만이 관대한 장자이니 그를 보내야 합니다.[今項羽彊悍, 今不可遣. 獨沛公素寬大長者, 可遣.]" 하였다. 금궤(金櫃) 금으로 만든 궤로, 옛날에 중요한 문서나 물건을 보관하던 곳인데, 흔히 공신들의 녹권을 보관하는 곳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공신(功臣)에 책록(策錄)되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 하〉에 "또 공신들과 부절을 쪼개어 서사를 지어서 단서 철계를 금궤 석실에 봉함하여 종묘에 갈무리했다.[又與功臣剖符作誓, 丹書鐵契, 金櫃石室, 藏之宗廟.]" 하였다. 남면(南面)하여 고(孤)를 칭하고 군주가 된다는 말이다. 남면은 군주는 조정에서 북쪽에 앉아 얼굴을 남쪽으로 향했으므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말하고, 고(孤)는 제후가 자신을 가리키던 호칭이므로 역시 군주가 되는 것을 말한다. 제사를 받아먹었다면 원문의 '혈식(血食)'으로, 희생(犧牲)을 잡아 생육(生肉)을 바쳐 제사함을 말한다. 여기서는 제사를 받는 것을 말한다. 왕릉(王陵)의 어미 유방이 항우와 패권을 다툴 때에 왕릉이 유방의 편이 되었다. 항우는 이에 왕릉의 어머니를 군중에 붙잡아 두었다. 왕릉의 사자(使者)가 항우의 진영으로 오자 왕릉의 어머니는 비밀리에 심부름꾼을 보내 "'한왕(유방)은 장자이다. 늙은 나 때문에 두 마음을 품지 말아라. 내가 죽음으로써 심부름꾼을 보낸다.' 하고는 칼에 엎드려 죽었다. 항우는 노하여 왕릉의 어머니를 삶아 죽였다. 왕릉은 마침내 한왕을 따라서 천하를 평정하였다." 하였다. 《史記 권56 陳丞相世家》 십이(十二) 10분의 2라는 뜻으로 천혜의 요새지임을 말한다. 《사기》 고조기(高祖紀)에 "(제나라는) 땅은 사방으로 2천 리나 되고 제후국은 천리 밖에 떨어져 있으니 제후국의 군사가 1백만이라면 10분의 2인 20만의 군사만으로도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地方二千里, 持戟百萬, 縣隔千里之外, 齊得十二焉.]" 하였다. 임치(臨淄) 전국 시대 제(齊)의 수도이다. 팽왕(彭王)의 변란 '팽왕'은 팽월(彭越)을 말한다. 항우(項羽)를 섬기다 한(漢)나라에 귀순하여 기공(奇功)을 세우고 양왕(梁王)에 봉해졌는데, 공신인 한신(韓信)의 죽음을 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병력을 동원하여 자신을 보호하다가 고조(高祖)의 노여움을 사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 《史記 권90 彭越列傳》 백등(白登)의 포위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직접 군대를 인솔하고 흉노의 묵특 선우(冒頓單于)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는데, 도리어 평성(平城) 부근의 백등산(白登山)에서 7일 동안 흉노의 30만 대군에게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가 선우의 부인 연지(閼氏)에게 후한 뇌물을 써서 겨우 포위에서 벗어났다. 《史記 권93 韓信列傳》 크게는……시켜주겠다 한 고조가 전횡에게 사신을 보내 회유하기를 "전횡은 오라, 크게는 왕을 시켜주고 작게는 제후를 시켜 주겠다[田橫來, 大者王, 小者乃侯耳.]" 하였다. 《史記 권94 田儋列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김현래 附次韻 金玄來 지는 해 우연176)에 가까이 가니일말의 남은 빛 붉어라황혼이 가깝다고 말하지 마라하늘 가에서 달맞이하기 좋으니 落照迫虞淵餘光紅一抹莫道近黃昏天邊好邀月 우연(虞淵) 해가 지는 곳을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石愚記 物固有冥頑無覺者。石是己。人固有蠢昧無知者。愚是己。以物之冥頑。遇人之蠢昧。不知石者愚乎。愚者石乎。石亦不覺。愚亦不知。奚知覺之不相謀而不相須也。曰是不難知也。石之爲物也。非堅頑無以自守。築場者必取焉。以之作宮室營城郭無不與焉。石之應人亦勞矣。然風霜雖千百劫於前。不爲之磨泐。歲月益悠久於後。不爲之加損。此石之所以爲物而自守也。今吾子以不愚之愚玄聰絶智。將以寓石之愚。是石之幸。而非吾子之幸。吾子之志。亦可以推矣。不曰捨世之溷淆紛錯。而寧比於石之無知無覺之爲愈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與鄭致洪【琦鉉】 老而好學。古人有之。而今於吾兄。迹可見矣。何以知其好學。觀於擇師而敎子。則可槩也。人之敎子。不知擇師而敎人之愛子。皆以離膝爲憂。想兄。則無是二者。苟非好學之篤。其如是耶。令允亦以父兄之志爲志。從師爲樂。而不知離膝之憂。有志者事竟成。其進何可量耶。欽艶無已。謹詢秋高。體候崇謐。皓首劬書。接續眞膄。想益津津。尤不勝懇仰。弟碌碌昨日人耳。秋風亭上。諸賢告歸。自不覺懷緖作惡也。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祭文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挽松谷李丈【之茂】 海山騰異氣。稟性溫而嚴。幹家服勤儉。察事析鹿纎。善門湊吉慶。壽考康寧兼。遽屬龍蛇歲。四隣驚凶音。榠樹春日暮。南極夜光沈。巷無居人矣。松雲寂寞林。我公卽先友。陪從何處尋。梁山昔日淚。爲公灑不禁。餘生誰毗倚。賢胤共䂓箴。餘蔭賀群玉。古壁歎遺琴。永閟黃泉日。與言哀懷深。雖及素車哭。愧無綿酒斟。丹旐飄前路。佳城是蝦岑。鵲川灘聲咽。麝谷愁雲陰。嗚呼痛矣哉。聊述不諼心。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謹述。鄭日新送姜子明詩餘意。送朴生恒鉉。 送君何以贈。爲折臘梅校。前路多風雪。春心愼莫虧。愛玩深有味。此是新翁詩。冠山送君路。正値臘梅時。詩與情景會。賡誦一格奇。紛紛風雪裏。險路多百歧。到此方旋斡。生理自存持。佇待消息好。開花漢水濱。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挽竹圃梁文 昨臘拜床第。膝癯氣猶溫。汝穎賢星在。襄陽耆舊存。孝友著鄕里。紹述古家門。我公卽先友。同庚情又敦。從容琴碁樂。磊落書劒論。遽抱梁山痛。惟公老林樊。邈然靡逮恨。於此意源源。誰知龍蛇歲。遽然哭梁園。龍空烟雲黑。月落滄波昏。餘生今日淚。悽愴欲斷魂。在世稱完福。克家貽賢孫。從此幽明隔。緘辭終不諼。松下集卷之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卷之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金顯周 猥承傾盖。曾所不圖。遽爾奉別。嶺湖落落。一副續音。浩不可期。豈謂心畵華幅。難關千里。荐貢敞室哉。所謂人情。所字山海。失其險者此也。仰認傾注。衷情得曷任。因審秋高。節宣有相。體候衛重。尤副遠懷。願聞之至。生年歲以來。世劫也。家憂也。如入萬頃無涯之津。百般勞惱。極其辛酸。而己屬過境。不如都付閣。說令允上舍。少年蜚英。已庸欽艶。而年。來所就。想益崇深。爲之馳仰不已。生病軀殘喘。僅僅友存於千生萬受之中。而舊業殘課。不遑自恤。區區悲悵。遠書難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與梁文五 向者。陰山之會。未罄底蘊。餘悵在心。俾也可忘伏詢伊來。體候萬休。凡百酬應之餘。溫習舊業。頗有得力否。子舍所苦。近作何狀。大抵爲學關鍵。切不可悠悠泛泛。平做將去。須別做辛苦。不快活底工夫。久之須自有得力處。子舍資質敏悟。甚不易得。而近來因其所苦。未能猛着精彩。是爲所欠。觀其身氣。近漸克實。稍加提督如何。家兒。讀大學已畢。欲看大學或問。而無其書奈何。或可求而與之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梁文五 前疏未復。又且承惠。感愧倂臻。頫審秋淸。省歡百福。山陽歸來。想無餘憊。尤副所望。家兒趁時歸巢。以滯症見苦。次兒又以咽痛。彌留。幷爲可慮也。日新兄。與嶠南諸長德。有講聚之約於鳳城之華嚴寺。來十七日。將爲發行。而鄙中諸兄。多以聯鞭爲計。吾兄亦有意耶。然則以其日早發。枉臨鄙中否。餘在奉叙。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梁文五 見春已久。尙稽握穩。悵黯彌至。昨便得承先施惠問。感浣慰沃。稍紓新年之懸想也。謹詢春意向煖。侍經體候。膺納蔓祉。溯仰不任。弟去年人而已。而所得又是一女孫。奈造翁之不厚我何。但産婦不告病幸也。家兒尙關晉候。以其育身恙而然也。鳳瑞方伯。强於貴齋。想昕夕相從。風味津津在此。雖有少一之歎。在兄豈無得明之喜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贈李達之 悲風寒月夜。悽望漢陽洲。禍福由人召。剃緇爲國羞。庭柯聞末吉。夜燭講春秋。何日淸區宇。琴書共一樓。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贈曺道三 大運迫朝夕。碧山合隱居。洞深隣水石。晝靜玩鳶魚。黠虜焉能浼。良箴祗信書。歲寒誰共守。松籟灑衿裾。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族從斗三 令從叔喪事。此何事。病患雖云沉痼。體字本自壯實。素養又有定力。豈料今秋遽至於斯境。恨未能秋抄躬晉。穩攄平生情蘊耳。彼蒼者天。何不慦遺此一耆舊於吾門耶。自歎吾門之祚薄而已。復何怨尤。理當以承計日。匍匐奔慰。而身家不健。尙爾未遂。情禮都虧。悲愧萬萬。示喩滅燭云云。可認其出於衷情。說道者。以父兄兼師傅。考質焉。依靠焉。則安得不如是乎。雖然。知其擔負之難。而尤用十分惕勵。自力救拔。方在此時逡循。家風繼聲趾美。非斗三伊誰。願勉力孜孜。以免吾門之無人焉。遙遙慰望。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吳景純【在德】 室邇人遐。懸戀方切。謂表惠翰入手。始識二堅不媚。近始見和。驚喜俱至。大抵左右姿稟純美。甚合學問田地。如加百千之功。慥慥不掇。則前頭步趍。曷可量哉。與家兒俱是同隊人。則幸須扶之翼之。至於究竟所就。亦不失爲同隊人。如何。可惜光陰。枉費於呻吟中。想不少矣。惟早早收拾精神。與家兒昕夕連丌。是企耳。餘非鈍卿可旣。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朴仁和【軫業】 睠彼砥湖。我思方勒。一角亦珍緘。翩然來至。披玩慰浣。曷勝云喩。但推借過當何如。是其妄耶。平日不妄語。須是立誠居業之大要。而學者工夫。下手依據之方。捨是奚以哉。願座右。一切刋去此等枝葉。而於日間大小大事。却只將做去這裏如何。竊覸左右。資稟淳眞。衰世罕見。令季儀範。又且溫良。令人可愛。善門洪福。仰認其未艾也。景純。可與共學。而同堂佔畢。其麗澤之滋。玉石之攻。想不淺淺矣。相觀同勗。以副期待之意。如何。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