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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喜雨亭上梁文。 沛然孰禦。方切大有之歡。作者其誰聿覩壯觀之起。上梁是日。下黎同欣。蘇軾東坡。主人南邑傲吏杜甫。思萬間之句。不家是期傅說作一相之書爲霖。斯望迨扶風治小亭之暇。適彌月靳大霈之時。西澗之冗材爰輸。從不過休息之所。東海之偏旱尤㦖。或無奈主張之愆。地則借於天慳。時不幸於日。果縱一邦瞻依之願。奈萬姓焦孑之艱。居然殷野數千里之雨餘。乃在梁家十五旬之亭後。謝甘霈於霡霂。幾多士曁農之共欣。訖民力於經營。還倍余與汝之齊說。當憂樂病蘇之日。敢曰工乃叙而人瘳。及事過賞及之辰。乃有雨若待。而亭作所以名之以喜。謇載霈之載成。無麥無禾。怨飢歲之將苦。有年有榭。覺勝遊之。且康鳬影。帶雲淸宵。看霽後之壑鳳池。留月春色。動詠裡之。軒天乃賜。自家之顔。賓旅與娛客亦享。主人之興。物我俱忘。亭歌與農謠幷高。雨聲兼野。唱交至得周。禾於書報可效。元聖之增光。致漢鼎於年稱。庶幾光武之餙慶。謾將三徑歸。茅屋佇後。楹之長留。欲求五畝。寄樵蘇冀。此注之時。若嶝斯樓也。適我願兮。匠石告功兒卽偉贊。兒卽偉抛梁東。甘霈初晴瑞旭紅。聲聲土鼓爭鳴處。婦子樂哉午饁同。兒卽偉抛梁西。暮靄初籠樹影低。腰鎌刈熟囷倉滿。灑酒圍棋好客携。兒即偉抛梁南。蒼山如沐帶淸嵐。回頭自笑風波地。隱吏優遊舊卧龕。兒卽偉抛梁北。野景㴠源銀水直。枕上溪山猶可尋。淸篇帶月映晨旭。兒卽偉抛梁上。謾道前宵雲漢回。郡識九天銀映白。便成霡霂滿空來。兒卽偉抛梁下。卧聽呢喃燕雀賀。城郭連雲井落開。生靈安堵霑皇化。伏願上梁之後。年豊人樂。海晏河淸。當新構之告。成四月。維夏效華。封之獻祀。千歲爲春。舞妓歌童。不羡樂天。所有靜枕。高閤何關。宗元爲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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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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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년 진상한(陳相漢)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年正月日 陳相漢 康熙二十年正月日 肅宗 陳相漢 施命之寶(10.2×10.0)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HIKS_A011_01_A00003_001 1681년에 숙종이 진상한(陳相漢)을 선략장군(宣略將軍) 수문장(守門將)으로 임명한 고신(告身). 1681년(숙종 7) 정월에 숙종(肅宗)이 진상한(陳相漢)을 선략장군(宣略將軍) 수문장(守門將)으로 임명한 문서이다. 문서 배면에 고신을 작성한 병조서리[兵政吏] 안여수(安汝秀)의 이름이 기재되었다. 국왕의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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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진방일(陳邦一)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乾隆五十三年六月日 陳邦一 乾隆五十三年六月日 正祖 陳邦一 施命之寶(10.2×10.0)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HIKS_A011_01_A00003_001 1788년에 정조가 진방일(陳邦一)을 선략장군(宣略將軍) 행(行) 충무위부사맹(忠武衛副司猛)으로 임명한 고신(告身). 1788년(정조 12) 6월에 정조(正祖)가 진방일(陳邦一)을 선략장군(宣略將軍) 행(行) 충무위부사맹(忠武衛副司猛)으로 임명한 문서이다. 연호의 우측에 '武兼仍資'란 방서가 있다. 잉자(仍資)는 유임을 의미한다. 국왕의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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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進士宅入納 金本菴鍾厚【掌令】 不謂。肯相從寂寞之濱。已大慰人。而從以覸其性資。有深可望者。庶幸與之磨礲相益。居然別去。又未卜後期久速。此必戀戀。豈爲姻戚之私哉。玆被手告。乃經歲音也。就承侍奉如宜新休滋至何喜如之。若區區春祀。惟在舊發大勇。擴充美志。而加剛植焉。使此衰陋。得以托歲寒之期爾。能知比意否。生吟病依昔。而親年益高。喜懼轉切耳。別時綠忙擾。不得攄胸臆。故因覆來書。略及之如右。統希亮會。己丑上元日。鍾厚大學。能加溫理而溯得所疑錄以相示。則亦一功夫也。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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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進士宅卽傳 洪恒齋樂性【孝安公】 非意。忽承惠翰。披審秋來。侍況安勝少慰積阻之懷。宗末夏間。哭長婦喪。慘痛忍言。身亦累經重症。蘇健未易。憫何憫何。荷此因便。委問如感。遠情之辛勤也。不宜式。庚子九月初五日。宗末朞服人樂性拜。省式。賢閤奄忽違世。承訃驚愕。不能已已。緬惟伉儷義重。悲慟沉痛。何可堪勝。仲春漸暖。不審尊服履何似。惟冀深自寬抑。以慰遠誠。宗末。京鄕路殊。末由奉慰。其於憂想。無任忡悒。謹奉狀。緬惟照亮。不宣謹狀。甲戌正月十八日。宗末樂性奉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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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進士宅回納 金三山履安【文敬公】 履安家禍。愈酷舍【缺。】奄忽棄背。痛苦摧割。不自堪忍。而轉眄之頃。先人祥禫。次第又過。情事哀廓。益無可言。代蒙荐賜辱札。慰問鄭重。區區不勝感涕。霜冷比緊。不審尊軆如何。履安董存。形殼無足喩者。一臨之敎。深所仰跂。而料期又近。似難作閑行耶。先牘謹受。竢移寫。當即奉還耳。不宣。伏惟不照。謹拜謝狀。甲午十月初三日。金履安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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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진두성(陳斗星)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乙酉式 行府使 幼學 陳斗星 乙酉式 河東都護府 陳斗星 行府使[着押] 1顆(7.5×7.2), 周挾無改印, 河東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HIKS_A011_01_A00038_001 1885년에 하동도호부(河東都護府)에서 발급한 진두성(陳斗星)의 준호구(準戶口). 1885년(고종 22)에 하동도호부(河東都護府)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진두성(陳斗星)의 준호구(準戶口)이다. 진두성은 하동도호부 마전면(馬田面) 전도촌(錢島村)에 거주하였고, 나이는 53세 계사생이며, 본관은 여양(驪陽)이다. 처(妻) 서씨(徐氏)는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나이는 51세이다. 진두성과 처의 부(父)·조(祖)·증조(曾祖)·외조(外祖) 4조의 직역과 이름을 기재하였다. 그 밖의 가족사항으로 아들 진행조(陳幸祚)가 있다. 이외에 노비의 명단 '천구질(賤口秩)'이 기재되었다. 이 문서에는 하동부사의 인장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引)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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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신사태(申師泰)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辛卯二月日 申師泰 等 雲院 辛卯二月日 申師泰 雲院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신묘년에 신사태(申師泰) 등 15인이 운원(雲院)에 보낸 통문(通文). 신묘년 2일에 신사태(申師泰), 신진록(申震祿), 송욱겸(宋旭謙) 등 15인이 운원(雲院)에 보낸 통문이다. 이 문서는 배접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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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巳二月日 城主 癸巳二月日 興陽縣監 官[着押] 3顆(6.5×6.5)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계사년에 흥양현감(興陽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계사년 2월에 두원면(豆原面)에 사는 누군가가 흥양현감(興陽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 오른쪽 부분의 훼손이 심하여 누가 올린 단자인지 알 수 없다. 내용은 산송에 대한 것으로, 이전에도 이굴(移掘)하기로 했으나 지켜지지 않아 김지연(金之淵)을 잡아 다시 죄를 묻고 이굴하기를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에 동월 초3일에 '김지언(金之彦)을 벌하고 잡아올 일'이라 제사(題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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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류욱(柳旭)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庚寅十二月十▣(七)日 慶林書院 院任 柳旭 鄕校 庚寅十二月十▣(七)日 柳旭 鄕校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경인년에 류욱(柳旭) 등 5인이 향교(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경인년 12월 17일에 경림서원(慶林書院) 원임(院任) 류욱(柳旭), 허강(許杠), 이경헌(李景憲), 남규철(南圭喆), 하필용(河弼龍) 등이 향교(鄕校)에 보낸 통문이다. 송계(松溪) 진무성(陳武晟)의 충절과 업적 등을 널리 기리기 위한 내용이다. 이 문서는 배접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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