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정동좌(鄭東佐) 등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巳三月日 全羅道 靈光 化民 鄭東佐 鄭鎭容 城主 乙巳三月日 鄭東佐 鄭鎭容 尙州牧使 전라남도 영광군 慶尙道尙州使[着押] 3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5년 정동좌(鄭東佐) 등이 경상도(慶尙道) 상주목사(尙州牧使)에게 올린 등장(等狀) 1845년 3월 2일에 정동좌(鄭東佐) 등이 경상도(慶尙道) 상주목사(尙州牧使)에게 몰래 매매된 위토답(位土畓)을 환퇴(還退) 할 수 있도록 청한 등장이다. 동래정씨(東萊鄭氏) 10대조 부정공(副正公)의 묘가 상주 화서면 봉황산에 있어서 산지기를 정하고 위토를 두어 묘소를 수호해 왔다. 위토답에서 나온 곡식으로 부정공의 제사를 모셔 왔는데, 이번 성묘 때 가보니 산 아래 살던 족인(族人)이 십여 년 전 옥사(獄事)로 가산을 탕진하고 선영의 위토답을 몰래 홍정현(洪正鉉)에게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토답을 매득한 상주 화서면 홍정현에게 이 같은 사정을 말하고 환퇴를 요구하자, 홍정현이 같은 면의 신익빈(辛益彬)에게 12량을 주고 전매하였으니 본 가격을 주면 곧바로 환퇴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익빈이 끝내 환퇴의 뜻이 없다고 버텨 위토답을 되찾지 못하고 있으니, 홍정현과 신익빈을 잡아다가 엄히 처결하여 위토답을 돌려받아 선영을 수호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에 상주목사가 판결하기를 '위토는 다른 사례와 달라서 본가격으로 환퇴 하려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으니 경계하여 타일러라.'고 하고서 면임(面任)에게 담당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