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원(金仲源)117)【오(浯)】에게 답하다 答金仲源【浯】 일찍이 오랑캐 막기 위해 만리장성 쌓았거늘천균(千鈞)의 종정(鍾鼎)118)도 터럭 한 올만큼 가볍게 여겼네얼음이 옥각(玉閣)에 생겨 하늘과 이어져 차고달이 찬 시내에 비쳐 바닥까지 맑네해 지나가자 시린 기운 치아에 스며듦을 비로소 알겠고추위 찾아오자 술잔에 술 따르는 일만 오직 기뻐하네훗날 만약 섬계(剡溪)의 흥취119)를 찾는다면호산(湖山)의 눈 내린 뒤의 맑은 날을 함께 기다려야 하리 嘗築防胡萬里城千鈞鍾鼎一毫輕冰生玉閣連空冷月入寒溪澈底淸歲去方知酸透齒寒來惟喜酒浮觥他時若訪剡中興共待湖山雪後晴 김중원(金仲源) 김오(金浯, 1617~?)를 가리킨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원(仲源), 호는 칠매당(七梅堂)이다. 김집(金集)과 송준길(宋浚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종정(鍾鼎) 종과 솥으로, 국가에 큰 공을 세우면 종정에 새겨 후세에 전하였다. 섬계(剡溪)의 흥취 벗을 찾아가는 흥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산음현(山陰縣)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눈 내린 어느 날 밤에 달빛 또한 청명하자, 갑자기 섬계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그대로 밤에 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대규의 문 앞에 이르렀다가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다시 배를 되돌렸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가 대답하기를 "처음에 흥(興)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그냥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꼭 대규를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라 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徽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