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오진영(吳震泳) 신암실기서(信庵實記序) 고문서-시문류-서 교육/문화-문학/저술-서 辛巳閏六月首陽 吳震泳 辛巳閏六月首陽 吳震泳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윤6월에 오진영(吳震泳)이 신암일기(信庵實記)에 쓴 서(序). 1941년 윤6월에 오진영(吳震泳)이 신암일기(信庵實記)에 쓴 서(序)이다. 서문을 쓰게 된 이유는 고흥 유생 류중헌(柳重憲)씨가 와서 신암실기(信庵實記)를 보여주며 신암(信庵)은 고려조 대신(大臣) 류청신(柳淸臣)으로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을 대대로 섬겼으며, 그가 죽은 후 원 황제의 명으로 李師僧을 불러 화상(畵像)을 그리게 하고 한림학사 조맹부(趙孟䫍)가 찬하였으며 뒤에 또 영밀의 시호를 받았다고 하였다. 조선 태조 때에는 용흥(龍興)에 중신을 보내 그의 묘를 치제하고 영의정을 증직(贈職)받았는데 오직 정인지가 찬한 고려사 본전에만 잘못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하였다. 이에 비로소 실기(實記)를 엮었으나 아직 책으로 간행하지 못하여 서문을 얻고자 하니 마침내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류청신이 고려조에 시호를 받고, 조선 태조 때 그의 묘에 중신을 파견하여 제사를 지내고 영의정에 증직된 사실을 기록하고, 이색(李穡)과 권근(權近)이 그에 대해 명망이 있었으며 사직에 공이 있었다고 한 말을 인용하여 모함되었음이 명백하니 고려사에 기록이 잘못되어 있음을 서술하였다. ?신암실기?는 고려 때 재상을 지냈던 류청신(柳淸臣, 1257~1329)의 행적이 《고려사》 기록에 간신으로 왜곡되어 있음을 보고 후손 류일영(柳日榮)이 변고(辨誣)하기 위해서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류청신이 간신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여러 사료를 고증하여 충실한 반론을 펴고 있다. 오진영(1868~1944)은 충청북도 진천(鎭川) 출신으로 본관이 해주(海州)이고, 자가 이견(而見)이며 호는 석농(石農)이다. 아버지는 오기선(吳驥善)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인으로, 스승의 학통을 수립하는 데 진력했다. 10세에 사서육경을 통달하고, 20세 이전에 여러 책을 두루 익혀 문장이 널리 알려졌다. 사학(史學)에 정통하여 역사의 대가인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도 경의를 표하였다고 한다. 관직에는 뜻이 없고 오직 성리학을 연구하며 교육에 잠심(潛心)하다가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석농집(石農集)』이 있으며, 『대동사감(大東史鑑)』을 감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