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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9년 1월 1일 전문(箋文) 崇德四年正月初一日 箋文 098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전문(箋文): 정조(正朝)의 명절을 맞아 하례함.1. 정조(正朝)에 올리는 전문(箋文).절충장군(折衝將軍) 경기수군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 겸(兼) 교동도호부사(喬桐都護府使) 삼도통어사(三道統禦使) 신(臣) 나덕헌(羅德憲)이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1월 1일 정조(正朝)의 명절을 맞아 삼가 전문을 올려 하례를 드립니다. 신 덕헌은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씀을 올립니다."삼가 아룁니다. 좋은 시절을 오랜만에 만나 온 나라가 함께 행복을 누리고, 정월 초하루에 온갖 복록(福祿)을 편안히 누리니, 하늘에는 상서로운 빛이 가득 차 있고 땅에는 온통 환호하는 소리가 넘칩니다. 삼가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는【홍색 찌지[紅籤]에 적었다.210)】 기명(基命)의 복을 열어 종묘(宗廟)의 제사를 주관하시고211) 시절에 따라 만물을 양육하시니,212)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가 순조로워서 사계절의 운행에 착오가 없었고,213) 비[雨], 햇볕[暘], 온난[?], 한냉[寒], 바람[風]이 적절하여 구주(九疇)가 모두 절기에 맞았습니다.214) 이제 새해의 시작을 맞아 천심(天心)을 더욱 누리고 계십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이 외람되이 수사(水使)의 부신(符信)을 받고서 잠시 서울을 떠나 있으므로 검은 섬돌이 놓인 궁궐에 들어가 하례하는 반열에 참여하지는 못하나, 시대가 태평하고 국토가 완고한 데 대해 만세를 부르며 거북이와 용처럼 장수하시기를 감히 축원합니다. 신이 하늘같은 성상을 바라보며 매우 감격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삼가 전문을 올려 하례를 드립니다."숭덕 4년 1월 1일에 절충장군 경기수군절도사 겸 교동도호부사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이 삼가 전문을 올립니다.▶ 어휘 해설 ◀❶ 부신(符信) : 국왕, 왕비, 왕대비, 세자, 세자빈, 세손, 세손빈 등의 명령으로 발급하였음을 증명하는 증표(證標)들을 총괄적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의 「병전(兵典)」 〈부신(符信)〉·〈문개폐(門開閉)〉 및 『은대편고(銀臺便攷)』 「병방고(兵房攷)」 〈표신(標信)〉·〈명소(命召)〉·〈밀부(密符)〉·〈발병부(發兵符)〉·〈마패(馬牌)〉·〈통부(通符)〉 등에 나오는 부신으로는 발병부(發兵符), 선전표신(宣傳標信), 개문표신(開門標信), 폐문표신(閉門標信), 휘지표신(徽旨標信), 내지표신(內旨標信), 자지표신(慈旨標信), 의지표신(懿旨標信), 내령표신(內令標信), 문안표신(問安標信), 적간표신(摘奸標信), 신부(信符), 한부(漢符), 명소(命召), 밀부(密符), 부험(符驗), 대장패(大將牌), 전령패(傳令牌), 위장패(衛將牌), 순장패(巡將牌), 마패(馬牌), 통부(通符), 계자(啓字), 달자(達字), 백자(白字), 성자(省字), 제승(制勝) 등이 있다. 그중 신부와 한부는 해가 바뀔 때마다 모양을 바꾸어 새로 제작해서 나누어주었고, 나머지 부신들은 국왕이 바뀔 때마다 옛것은 거두어들이고 새것을 제조하여 나누어주었다. 부신의 재질과 형태 등에 대해서는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 상세히 나온다. 一. 正朝箋文.折衝將軍京畿水軍節度使兼喬桐都護府使三道統禦使臣羅德憲, 恭遇崇德四年正月初一日正朝令節, 謹奉箋稱賀者. 臣德憲誠歡誠忭稽首稽首上言."伏以. 景運千載, 八方同休, 春王三朝, 百祿是綏, 漫空瑞色, 匝地歡聲. 恭惟主上殿下【紅籤.】, 主祀闡基, 對時育物, 金木水火土, 五辰無愆; 雨暘?寒風, 九疇咸敍. 今當歲首, 益享天心. 伏念臣猥承閫符, 蹔違輦轂, 玄墀丹陛, 未隨鵷鷺, 嵩呼玉燭金甌, 敢祝龜龍寶牒. 臣無任望天仰聖激切屛營之至. 謹奉箋稱賀以聞."崇德四年正月初一日, 折衝將軍京畿水軍節度使兼喬桐都護府使三道統禦使臣羅德憲謹上箋.❶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전율통보(典律通補)』 「별편(別編)」 〈본조문자식(本朝文字式)〉 '진전식(進箋式)'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❷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❸ 紅籤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092'·'093'·'094' 나덕헌의 전문(箋文) 및『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❹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紅籤' 2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092', '093', '094'의 '나덕헌의 전문(箋文)' 및『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전문의 문서 형식에 의하면 '주상전하(主上殿下)' 또는 '존호(尊號)+주상전하(主上殿下)'는 줄을 바꾸어서 적되, 홍색 찌지[紅籤]에 적어서 붙였다. 『典律通補』 「別編」 〈本朝文字式〉 '進箋式'; 이강욱, 『조선시대문서개론』 상-신민의 상달문서-, 은대사랑, 2021, 475~479쪽. 기명(基命)은 『서경(書經)』 「주서(周書)」 〈낙고(洛誥)〉에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해준 말 중에 나오는 것으로, 천명(天命)을 받아 즉위한 것을 가리킨다. 이 구절의 원문은 '주사천기(主祀闡基)'이나 문맥상 순서를 바꾸어 번역하였다. 『주역(周易)』 「무망괘(无妄卦)」의 상사(象辭)에 '선왕이 이를 본받아 성대하게 시절에 맞추어 만물을 양육한다.[先王以茂對時育萬物]'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서경』 「주서」 〈홍범(洪範)〉에서는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전해주었다는 세상을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큰 원칙인 구주(九疇)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그 아홉 가지란 첫째 오행(五行), 둘째 오사(五事), 셋째 팔정(八政), 넷째 오기(五紀), 다섯째 황극(皇極), 여섯째 삼덕(三德), 일곱째 계의(稽疑), 여덟째 서징(庶徵), 아홉째 오복(五福)을 가리킨다. 그중 첫째인 오행에서는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오행이라고 하였다. 『서경』 「주서」 〈홍범〉에서는 구주 중 여덟째인 서징을 '비, 햇볕, 온난, 한냉, 바람, 시기이니, 다섯 가지가 와서 갖추어지되 각각 그 절서에 맞으면 풀들도 무성할 것이다.[曰雨曰暘曰燠曰寒曰風曰時五者來備各以其敍庶草蕃蕪]'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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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8년 12월 11일 계본(啓本) 崇德三年十二月十一日 啓本 099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각 진포(鎭浦)의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만호(萬戶) 등에 대한 올해 추동등포폄(秋冬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도내 각 진포(鎭浦)의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만호(萬戶) 등에 대한 올해 추동등포폄(秋冬等褒貶)을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신 김남중(金南重)과 함께 논의하여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덕포진수군첨절제사(德浦鎭水軍僉節制使) 최준천(崔峻天) : 상(上).철곶진수군첨절제사[鐵串鎭水軍僉節制使] 박한남(朴翰男) : 상(上).화량진수군첨절제사(花梁鎭水軍僉節制使) 이인노(李仁老) : 상(上).정포수군만호(井浦水軍萬戶) 남두성(南斗星) : 근무 일수 부족[日淺].영종포수군만호(永宗浦水軍萬戶) 최형립(崔亨立) : 상(上).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12월 11일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褒貶事."道內各鎭浦僉節制使、萬戶等矣今秋冬等褒貶乙, 觀察使兼巡察使臣金南重同議等第, 謹具啓聞.德浦鎭水軍僉節制使崔峻天 : 上鐵串鎭水軍僉節制使朴翰男 : 上花梁鎭水軍僉節制使李仁老 : 上井浦水軍萬戶南斗星 : 日淺永宗浦水軍萬戶崔亨立 : 上崇德三年十二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統禦使臣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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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9년 2월 8일 장계(狀啓) 초본 崇德四年二月初八日 狀草 102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초본: 군관(軍官)인 전유일(全惟一)을 유진장(留鎭將)으로 차정하고 이달 12일에 수로(水路)로 내려가서 순행하며 각 진포(鎭浦)의 전선(戰船)과 병선(兵船) 등을 점검할 계획임.장계의 초본."신이 지난 정축년(1637, 인조 15) 6월 11일 수영(水營)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관할하는 각 진보(鎭堡)를 순찰하여 변장(邊將)의 근무 상태와 선박의 성능을 사실대로 적간(摘奸)하고 주상께 보고하여 결정을 받았습니다.217) 막 난리를 거치고 난 각 진포(鎭浦)의 입방(入防)하는 군병도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문서에 따라 9월부터 시작해서 입방하라고 분부하였습니다.218) 그 뿐만 아니라 본영(本營) 및 각 진포의 수군(水軍) 중 사로잡혀가거나 살해된 숫자와 도망하거나 사망한 숫자가 대부분이고 현재 남아있는 수군도 다른 지역에서 떠돌아다니고 아직 돌아와 모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변장 등이 약간의 입방하는 수군만으로는 난리 중에 망가진 전선과 병선을 수리하거나 제작하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칙사(勅使)의 행차 시기까지 겹쳐서 변장 등이 전원 차출되어 역참(驛站)에 나가 대령하였다가 12월에야 진보로 돌아왔으나, 얼음이 얼 시기가 이어져 떠도는 얼음덩어리가 나루를 막았으므로 뱃길로 순찰할 수가 없었습니다.작년에 봄이 되자마자 바로 순찰하려고 계획하였는데, 철곶[鐵串]은 새로 설치한 진보라서 방패선만 있을 뿐이고 전선은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아직 제작하지 못하였으며, 기타 4곳 진포의 변장도 전선과 병선의 수리에 들어가는 공장(工匠)의 요포(料布)를 마련할 길이 없어 즉시 완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의 본영 전선 3척, 방패선 1척, 병선 4척, 사후선 7척도 썩어 파손되어 개삭(改槊)할 차례가 되었으나, 그중 전선 1척, 병선 3척, 사후선 2척은 –판독 불능- 개조하였고, 그 나머지의 병선 1척, 사후선 5척, 방패선 1척, 전선 2척은 차례대로 나무를 덧대 개삭하였으며, 그 연유를 전에 급히 보고하였습니다.219) 신이 직접 감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노고해야 할 일이 많아 작년 가을에서야 겨우 개수하는 일을 완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각종 집물(什物)을 절반 넘게 새로 갖추거나 예전 것을 보수하였는데, 다방면으로 애써 비용을 마련한 데다가 공사가 거창하여 여러 진보를 순찰할 겨를이 없었습니다.그러다가 작년 10월에 신의 군관(軍官)을 정해서 각 진포에 보내 전선과 병선의 수리 여부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감독하게 하였더니 군관이 보고하기를,'철곶첨사[鐵串僉使] 박한남(朴翰男)이 비변사에 보고하고 스스로 안면곶[安眠串]에 내려가서 전선 1척을 새로 제작한 뒤 돌아와서 정박시키고 이제야 공사를 마쳤습니다.'라고 하였으며,'기타 4곳 진포의 변장 등도 전선과 병선의 집물(楫物)을 모두 거의 다 수리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육로로 순행하며 점검하는 것은 일행에게 필요한 약간의 마부와 말을 징발하는 과정에서 쇠잔한 각 고을에 폐해를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의 군관인 전(前) 판관(判官) 전유일(全惟一)을 유진장(留鎭將)으로 차정하였고, 이달 12일에 배를 타고 바다를 따라 내려가서 각 진포의 전선과 병선 등을 새로 제작한 것과 개조한 것 및 각종 집물을 보수했는지의 여부를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직접 조사 점검하려고 하며, 순찰 점검을 마치고 난 뒤에는 변장 등의 근무 상태를 추후에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8일.▶ 어휘 해설◀❶ 유진장(留鎭將) : 진보(鎭堡)에 남아서 지키는 장수를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경기수사(京畿水使) 나덕헌이 각 진보의 전선과 병선 등을 점검하기 위해 순행을 떠나기 때문에 수영(水營)에 남아서 지킬 유진장을 차출한 것이다. 啓草"臣去丁丑六月十一日到營卽時, 巡審所管各鎭堡, 邊將勤慢、舟緝利鈍, 從實摘奸, 啓聞定奪事是白乎矣. 纔經兵亂各浦防軍段置, 因備邊司覆啓公事, 九月爲始入防亦, 分付叱分不喩. 本營及各浦水軍擄殺、逃故之數居多, 時存段置, 流離他境, 未及還集是白乎等以. 邊將等, 若干入防水軍叱分以, 亂離中, 頹敗戰、兵船乙, 未及修造. 而又値勅使之行, 邊將等沒數逢差出站, 十二月還鎭, 仍致合氷, 流澌塞津是白乎等以, 船路以, 未得巡審爲白有如乎. 上年開春卽時巡審計料爲白乎矣, 鐵串段, 新設之鎭以, 只有防牌船叱分是白遣, 戰船段, 經亂之後, 未及造作, 其他四浦邊將段置, 戰、兵船修緝工匠料布, 辦出無路, 未卽完就叱分不喩. 臣矣本營戰船三隻、防牌船一隻、兵船四隻、伺候船七隻段置, 或腐破改槊當次是白去乙. 其中戰船一隻、兵船三隻、伺候船二隻段, ▣▣改造, 其餘兵船一隻、伺候船五隻、防牌船一隻、戰船二隻段, 鱗次添木改槊, 緣由乙, 前已馳啓爲白有在果. 臣躬親監董, 事多役役, 上年秋, 僅以完了修改之役. 而各樣什物, 過半新備, 或仍修補, 多般拮据, 功役浩大, 無暇巡審列堡爲白有如乎. 上年十月分, 臣矣軍官發定各浦, 戰、兵船修緝與否, 一一檢督, 則'鐵串僉使朴翰男, 報備邊司, 親自下去安眠串, 新造戰船一隻回泊, 今始畢役.'是如爲白乎旀, '其他四浦邊將等段置, 戰、兵船楫物, 幷以幾盡修緝.'是如爲白有臥乎等以. 臣陸路巡檢, 則一行若干夫馬責立之際, 殘弊各邑, 不無其弊是白乎去, 臣矣軍官前判官全惟一, 以留鎭將差定爲白遣, 本月十二日乘船下海, 各鎭浦戰兵船等新造·改造、各樣楫物修補與否乙, 未農前親自査點, 畢巡檢後, 邊將等勤慢乙, 追乎馳啓計料爲白去乎. 詮次善啓向敎是事."崇德四年二月初八日.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011 나덕헌의 장계', '016 비변사의 관문', '019 나덕헌의 관문' 참조. '064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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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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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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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9년 2월 16일 장계(狀啓) 崇德四年二月十六日 狀啓 104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과 색리(色吏) 조성훈(趙成訓)의 진술 및 군관(軍官) 봉영걸(奉英傑)의 적간(摘奸) 결과를 보고하고, 최형립은 가장(假將)의 예에 따라 계속 임무 수행하게 해줄 것."신이 이달 12일에 순찰하다가 정포(井浦)에 도착하였을 때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이 전선(戰船)이 불에 탄 일에 대해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하였으므로 즉시 급히 보고하였습니다.221) 최형립이 신이 화량진(花梁鎭)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 죄를 자수하고 화량진의 소재지에 대령하였습니다. 해당 전선이 불에 탄 근본 원인을 심문하니, 기묘년(1639, 인조 17) 2월 13일에 영종만호 최형립-38세-이 진술하기를,'심문하기를,「본포(本浦)의 전선에 대해 어떻게 불에 탔다고 첩정을 올려 보고하게 되었는지, 그 사이의 경위를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현고(現告)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해당 전선을 작년 3월에 개조하였는데, 수사(水使)께서 행차하여 순찰한다고 하셨으므로 도사공(都沙工) 김덕춘(金德春)을 지정하여 밤낮으로 지키면서 그 곁을 떠나지 말고 보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달 10일 3경(更) 쯤에 뜻하지 않게 불에 탔으나, 어떤 사람이 어떤 혐의로 불을 질렀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통제사(統制使)가 데리고 가는 군관(軍官)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전선의 제도에 대해 다소나마 알지만, 지금 본포의 만호가 되어서 보니 이곳의 전선은 통영(統營)의 전선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모두 본영(本營)의 분부에 따라 쇠잔한 진포의 재정과 인력을 가지고서 다방면으로 애써 마련하여 겨우 나무를 덧대 개조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변모하여 대령하였습니다. 본영에서「본포의 수군(水軍) 등이 작년에 생존 여부를 조사할 때 색리(色吏)와 부화뇌동하여, 도망하거나 사망한 사람 및 사로잡혀가거나 살해당한 사람의 명단을 책자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숨기거나 누락시킨 자가 많았다.」라고 하였으므로, 영문(營門)에 낱낱이 보고하고, 관문(關文)을 작성하여 보내 찾아내라고 독촉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공문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숨기거나 누락시킨 사람들을 찾아내어 전선을 개조하는 일에 보태 썼는데, 도망하거나 사망하였다고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서 죄를 입을까 두려워하였으니 이 일로 원망을 품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외에는 혐의를 품었다고 의심할 만한 단서가 별달리 없습니다. 도사공 김덕춘은 전선이 불에 타자 곧바로 도피하여 행방을 모릅니다. 그 외에는 달리 아뢸 일이 없습니다. 이상의 연유를 분간하여 시행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날에 색리 조성훈(趙成訓)-33세-이 진술하기를,'심문하기를,「네가 본포의 색리로 사역을 하였으며, 본포의 전선이 불에 탔다고 영종만호가 첩정을 올려 보고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불을 질렀는지는 명색이 색리인 사람이 결코 모를 리가 없으니, 그 사이의 경위를 사적인 관계는 무시하고 사실대로 현고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전에는 사령(使令)으로 사역하다가 난리를 겪고 난 뒤에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진무(鎭撫)로 승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달의 입방(入防)할 군병을 결정하여 등록하는 일을 담당한 색리로서, 이달 9일에 집을 떠나 길을 나서서 본영에 작성된 책자를 바치고 서목(書目)을 받았습니다. 수사 일행의 두 번째 선박을 타고서 정포로 돌아왔고 이어서 본포의 문안 인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니, 하번(下番) 진무인 신경룡(申景龍)이 저를,「이달의 해당 번을 설 차례인 색리입니다.」라고 만호에게 보고하였으므로, 붙잡혀 죄를 뒤집어썼습니다. 본포는 하인(下人)이 없는 진보라서 의심할 만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만호와 하인도 별달리 침탈한 단서가 없는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외에는 달리 현고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서 분간하여 시행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모두에게서 다짐을 받았습니다. 영종만호 최형립이 잘 간수하지 못해 전선을 불에 타게 한 변고를 불러왔으니 너무나 통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따라서 형률에 따라 죄를 처벌해야 할 일이지만, 영종의 진보로서의 형세는 신이 관할하는 5곳의 진보 중에서도 더욱 몹시 쇠잔합니다. 난리를 겪고 난 뒤로는 사로잡혀가거나 살해된 사람 및 도망하거나 사망한 사람을 제외하면, 매달 입방해야 할 군병과 각 차비(差備)로 지정하는 사람 이외에 급료를 받고 입방의 의무가 면제된 군졸로서 영종만호가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겨우 한 두 명뿐이나, 이들에게 아침저녁으로 계속 사용해야 할 얼마 안 되는 쌀조차도 달리 마련해낼 길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나머지 전선과 병선을 수리하기 위해 비용을 대주는 군졸은 1년 12달을 통계하면 총수가 채 2, 30명도 되지 않고, 군졸 1명당 한 달마다 거두어들이는 포(布)는 3필 뿐이니 그 수량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선 1척을 새로 제작하는 일에는 충청도 안면곶[安眠串]에 내려가서 고용한 공장(工匠)과 나무를 끌어 내릴 군졸에게 지급해야 할 요포(料布)만도 10여 동(同)이나 되는 목(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상황인데 신임 영종만호가 빈손으로 부임하면 일의 전말을 몰라 쇠잔한 영종진의 군졸로는 1년 안에 전선을 새로 제작해내라고 요구할 길이 결코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몹시 고민입니다. 다만 위에서 최형립 등의 진술한 내용이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도사공과 영종진의 소재지에 거주하는 토졸(土卒) 6, 7명도 그 죄를 함께 뒤집어쓸까 우려하여 일단 도피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군관(軍官)인 전(前) 판관(判官) 봉영걸(奉英傑)과 회동한 뒤 즉시 파견하여 상세하게 적간(摘奸)하게 하였더니 보고하기를,'전선의 각종 집물(楫物)은 모두 불에 탔고 남아있던 나무 판자 두 쪽도 모두 불에 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군기(軍器), 궁전(弓箭), 화기(火器), 군량(軍糧) 등 여러가지의 물품은 평상시 군기고(軍器庫)에 별도로 보관해두어 완전하였으므로 하나하나 숫자를 맞추어본 뒤 책자로 만들어서 비변사로 올려보내 후일 살펴볼 수 있는 근거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영종만호 최형립은 남양부(南陽府)에 구속하여 묘당(廟堂)에서의 처분을 기다려야 할 일이지만,'영종포의 얼마 안 되는 토졸과 도사공 등이 전원 도피하여 남아있는 군기와 군량 등의 물품조차도 간수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병선을 담당한 색리만 남양부에 구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종만호 최형립은 입방하는 진무와 사령 두 세 명만 거느리고 있으니,'신임 영종만호와 교대할 동안에 최형립에게 가장(假將)의 예에 따라 우선 군기 등의 물품을 하나하나 맡아 간수하게 하였다가 신임 영종만호에게 인수인계하기 위해서 우선 영종진으로 돌아가서 지키게 하라.222)'라고 분부해주소서.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를 바랍니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16일.▶ 어휘 해설 ◀❶ 현고(現告) : 과실이나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를 밝혀내는 것이다. 과실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모를 때 해당자를 밝혀내는 것을 현고라고 하였다. 특히 현고는 국왕이 과실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모종의 징벌을 행하라고 명하였으나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았을 때 해당자를 밝혀내어 특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고는 당사자가 직접 자수하여 밝히는 자수현고(自首現告)와 당사자의 이름을 지목하여 밝혀내는 지명현고(指名現告)가 있었다.❷ 가장(假將) : 실관(實官)이 아닌 가관(假官)인 위장(衛將)과 변장(邊將)을 가리킨다. 실관은 본직 또는 정규직을 가리키고 가관은 임시직을 가리킨다. 경복궁(景福宮), 경희궁(慶熙宮), 창경궁(昌慶宮)처럼 국왕이 거주하지 않고 비어 있는 궁궐을 지키기 위해 가위장(假衛將)을 차출하였고, 변장이 사망하거나 부모상을 당한 경우 및 전시(殿試)에 응시하러 상경한 경우 등에는 임시로 업무를 수행할 변장을 차출하였는데, 이들을 가장이라고 하였다. "臣本月十二日巡到井浦, 永宗萬戶崔亨立戰船燒火事, 牒報爲白有去乙, 卽爲馳啓爲白有如乎. 崔亨立聞臣巡到花梁爲白遣, 自首其罪, 待令鎭下爲白有去乙. 同戰船燒火根因推考次, 己卯二月十三日, 萬戶崔亨立年三十八白等, '「本浦戰船乙, 某條以付火是如牒報爲有臥乎喩, 其間曲折, 庇護除良, 從實現告.」亦推考敎是臥乎在亦. 同戰船乙, 前年三月分改造爲白有如乎, 使行巡審敎是如爲白去乙, 都沙工金德春定體, 晝夜守直, 不離看護爲白如可. 本月初十日三更量, 不意付火爲白有乎矣, 某人某嫌以衝火爲白乎喩, 未知厥由爲白在果. 矣身曾前統制使帶率軍官以, 稍解戰船形制爲白如乎, 今爲本浦萬戶, 戰船與統營大相不同爲白去乙. 一依本營分付, 殘浦物力以, 多般拮据, 僅以添木改造以備不虞, 日新待令爲白有如乎. 「本浦水軍等, 上年存沒時, 色吏符同, 逃故、擄殺乙成冊之際, 多有隱漏.」是如爲白去乙, 枚報營門, 成關督刷, 或矣身直發移文, 搜括隱漏者, 補用戰船改造之役, 恐被逃故現露之罪, 以此構怨爲白去喩, 此外別無可疑懷嫌之端是白齊. 都沙工德春段, 戰船付火, 卽爲逃躱, 不知去處是白去等. 此外他無所陳之事是白去乎. 右良緣由, 分揀施行.'敎味白齊. 同日色吏趙成訓年三十三白等, '「矣身亦, 本浦色吏以使內乎旀, 本浦戰船付火是如, 萬戶牒報爲有臥乎所. 某人某條以, 衝火爲乎喩, 身爲色吏者, 萬無不知之理, 其間曲折, 容私除良, 從實現告.」亦推考敎是臥乎在亦. 矣身在前段, 使令以使內白如可, 經亂後, 無人物乙仍于, 陞鎭撫. 今朔入防軍把定斜付色吏以, 本月初九日, 離家登道, 本營良中, 成冊進呈受書目. 使行次船投騎, 井浦歸到, 仍本浦探候人偕行還來, 則下番鎭撫申景龍亦, 矣身乙, 「今朔該番色吏.」是如, 萬戶前告課, 執捉歸罪叱分是白遣. 本浦無下人之堡, 如或可疑之人, 則必有所知, 而萬戶與下人, 別無侵暴之端, 而事旣至此而已. 他無現告之言爲白去乎. 右良辭緣, 相考分揀施行.'敎味白齊. 爲等如白侤音是白置有亦. 萬戶崔亨立, 不善守護, 以致燒火戰船之變, 事極痛駭. 所當依律科罪事是白在果, 永宗爲堡, 臣矣所管五堡之中, 尤甚殘薄. 經亂之後, 擄殺、逃故計除, 則每朔入防之軍、各差備把定之外, 萬戶所食料軍除放者, 僅至一二名, 朝夕繼用升斗之米, 他無出處叱分不喩. 其餘戰、兵船修楫給代之軍, 則計其一年十二朔, 通共未滿數三十名, 一卒一朔收布, 只是三疋, 則其數不多. 而一戰船新造之役, 忠淸道安眠串下去雇立工匠、曳木軍應入料布, 至於十有餘同之木, 則新萬戶白手赴任, 不知首末, 以永宗殘浦之卒, 一年之內, 萬無責立新造戰船之路. 百般思惟, 誠爲竭悶是白在果. 上項亨立等招內辭緣如此叱分不喩, '都沙工、鎭下土卒六七名段置, 混被其罪爲白乎去, 姑爲逃躱.'是如爲白去乙. 臣矣軍官前判官奉英傑眼同, 卽爲發遣詳細摘奸, 則'戰船各樣楫物, 盡爲燒火, 餘存本板兩端, 竝只付火.'是如爲白乎矣. 至於軍器、弓箭、火器、軍糧種種之物段, 常時軍器庫別置完全是白乎等以, 一一照數成冊, 備邊司以上送, 以憑後考之地是白乎旀. 萬戶崔亨立段, 所當南陽府囚禁以待廟堂處置事是白乎矣, '同浦若干土卒及都沙工等沒數避逃, 餘存軍器、軍糧等物段置, 看護無人.'是如爲白去乙, 兵船色吏段, 囚禁南陽爲白遣. 萬戶崔亨立, 只率入防鎭撫、使令數三名爲白有去乙, '新萬戶交代間乙, 使崔亨立依假將例, 先可一一典守軍器等物爲白有如可, 新萬戶處, 傳掌次以, 姑令還鎭守直.'亦分付爲白有臥乎事是良厼. 詮次善啓向敎是事."崇德四年二月十六日. '103 나덕헌의 장계' 참조.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이 처벌을 기다리는 입장이라서 변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신임 만호가 부임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가장처럼 임무를 수행하게 해줄 것을 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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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菴金公遺稿跋 成菴遺稿 詩若書 總若干篇 然文辭 卽公之餘事 而其根天之孝 實地之學 乃公之所以爲公而尚論者 所當先者也 艮齋先生 竊取孝子成身之訓 以名其室而嘉之 以勉之 且以善信尚義篤行 君子稱之 是見重於師門之實際也 守死善道 至死不變 及此身遺髮記皇明 與夫明目張膽不陷於無君無父之地 卽公之自誓而見於篇章間者也 彼不知人理之正 而自陷於爲夷爲獸之域者 若讀此則 必有惕然悔責之心矣 鳴呼 公之歿 何其遽也 若假其年則 雖不能大施衛闢之功整頓一世 然亦可使邪說艱其進 吾道强其衰 而朋友有所切偲 後進有所矜式 將有以羽翼斯文 世道旣汚 天亦不憖遺 可勝嘆哉 胤于炯祖 輯其遺稿 謀將鋟梓 未遂而溘 然孫永喆 繼其繕寫 既成父志 請余一言 義不可以不文固辭 忘拙赘言于卷末 以寓世講篤好之意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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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 十月初七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 十月初七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0월 7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곡식값의 폭등과 토지가격의 추락, 금전(金錢)의 예조(預兆) 등에 관한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이미 찾아와 주시고 또 이렇게 안부까지 물어주심에 연성(鍊成)이 간절하다고 하고 행패(行斾, 행차)가 순조롭기를 빌었다. 재종조부, 조모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러 번 음식이 자주 비어 슬픈데다가 며느리도 잘 먹지 못하여 오래도록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보낸다고 하였다. 시세(時勢)는 곡식값이 다음 달 사이에 폭등할 것이니 기일을 잃지 말아야 하고 토지가격은 이후에 매우 떨어질 것이다. 금전(金錢)이 도로 막힐 기미가 있어 은행에서 이미 거둬들인 예조(預兆)가 있었다고 하였다, 쌀의 시세는 이 달부터 다음 달까지 좋거나 좋지 않거나 할 것이라고 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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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김재식(金宰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正月十九日 弟 金宰植 癸酉正月十九日 金宰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3년 1월 19일에 김재식(金宰植)이 맏손자가 세상을 떠난 흉사에 애통해하고 위로하고자 보낸 간찰(簡札) 하늘이 이미 태어나게 하였으니 완전하게 이루는 것은 누구의 뜻이며 이미 태어나서는 도로 빼앗는 것이 조물주가 시기함에 있는가 한탄하고, 자신이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도 믿을 수 없고, 공자와 주자가 이숙(鯉塾)의 모임을 잃은 것도 천리가 본래 이와 같고, 그대가 슬퍼하여 지나치게 상심하니 옆 사람의 위로와 비유가 이르러도 복씨[자하]가 아들을 잃고 실명에 이른 지경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친상은 날이 다하면 오히려 효도를 상함이 있어 경계하는데 아이를 잃은 마음은 부모께서 물려주신 신체를 훼손할까 두려운 것이 독로(篤老)의 슬픈 정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슬픔을 너그럽게 누그러뜨려 주시기를 멀리서 바란다. 아드님이 손자와의 갈림길에 임하여 송별하고 돌아옴에 더욱 슬플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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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이태식(李駘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寅 三月 卄八日 弟 李駿植 李敎成 壬寅 三月 卄八日 李駿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2년 3월 26일에 이태식(李駘植)이 산수(山水)의 흥취에는 얻은 것이 적지 않다는 존형이 한 번 행차하여 주기를 바라는 등의 내용으로 존형(尊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자신의 이번 행차가 일에는 헛되이 가고 오는 것을 면치 못했으나 산수(山水)의 흥취에는 얻은 것이 적지 않다고 하고, 존형처럼 안목을 갖추었다면 노닐며 감상한 것을 모두 감당할 것인데 하물며 산속의 주인이 안목을 갖추려고 하니 한결같이 와서 정녕(丁寧)하게 긴요히 부탁한 것이 두세 번뿐만이 아니니 형이 이럴 마음이 있다면 이처럼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알맞은 때에 한 번 행차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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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12월 11일 계본(啓本) 崇德二年十二月十一日 啓本 037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각 진포(鎭浦)의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만호(萬戶) 등에 대한 올해 추동등포폄(秋冬等褒貶)의 제목(題目).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근무 실적을 평가한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전에 도착한 병조의 관문(關文)에 이르기를,'주상으로부터「변장(邊將) 등의 실적을 허위로 평가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하여 보고하면, 잘 근무한 사람은 선전관(宣傳官)이나 부장(部將)에 제수하고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거나 군사와 백성을 침탈한 사람은 군대에서 늙게 하여 권장하거나 징계하는 뜻을 보여주라.」라고 승전(承傳)을 받았다. 해당 변장 등의 실적을 일시에 주상께 보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도내 변장 등의 실적을 열거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화량진수군첨절제사(花梁鎭水軍僉節制使) 이인노(李仁老) : 진실한 마음으로 직무를 보았으며, 재능에 여유가 있다.[誠心供職才能有裕]덕포진수군첨절제사(德浦鎭水軍僉節制使) 최준천(崔峻天) : 조심스럽게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군졸들을 위로하고 보살폈다.[奉職謹愼撫恤軍卒]철곶진수군첨절제사[鐵串鎭水軍僉節制使] 박한남(朴翰男) : 철곶진을 새로 설치하여 아직 직무를 보지는 못하고 있으나, 직무를 잘 수행하려고 마음먹고 있다.[新設未就留心盡職]정포수군만호(井浦水軍萬戶) 정연(鄭?) : 주장에게 나아가도록 권유하였으며, 비분강개하여 전쟁에 참전하였다.[勸進主將慷慨赴亂]영종포수군만호(永宗浦水軍萬戶) 최형립(崔亨立) :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로서는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를 평가할 수 없다.[到任未久時無能否]숭덕(崇德) 2년(16327, 인조 15) 12월 11일, 수군절도사 겸 통어사 신 나덕헌.▶ 어휘 해설 ◀❶ 승전(承傳) : 국왕으로부터 받은 전교(傳敎)나 전지(傳旨)를 가리킨다. 승정원이 국왕의 전교를 받으면 이를 실행할 관사에 전해주기 위해서 전지로 작성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은 뒤 전해주었는데, 이때의 전교나 전지를 승전이라고 불렀다.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實跡事."前矣到付兵曹關內, '「邊將等實蹟, 不用虛僞, 從實錄啓爲良在等, 善者乙良, 或授宣傳官、部將, 如或計慮不善侵虐軍民者乙良, 老於卒伍, 以示勸懲爲只爲.」承傳是白有亦. 同實蹟, 一時啓聞向事.'關是白乎等用良. 道內邊將等矣, 實蹟開坐, 謹具啓聞."花梁鎭水軍僉節制使李仁老 : 誠心供職, 才能有裕.德浦鎭水軍僉節制使崔峻天 : 奉職謹愼, 撫恤軍卒.鐵串鎭水軍僉節制使朴翰男 : 新設未就, 留心盡職.井浦水軍萬戶鄭? : 勸進主將, 慷慨赴亂.永宗浦水軍萬戶崔亨立 : 到任未久, 時無能否.崇德二年十二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統禦使臣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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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12월 11일 계본(啓本) 崇德三年十二月十一日 啓本 101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본영(本營) 소속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의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215)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을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중군(中軍) 전(前) 첨정(僉正) 황후헌(黃後憲) : 상(上).수군 파총(水軍把摠) 전 권관(權管) 서유성(徐有成) : 상(上).우초관(右哨官) 전 권관 이지남(李枝男) : 중(中).후초관(後哨官) 전 훈련봉사(訓鍊奉事) 최응룡(崔應龍) : 하(下).육군 파총(陸軍把摠)216) 전 사과(司果) 송인갑(宋仁甲) : 중(中).전초관(前哨官) 전 훈련봉사 한응남(韓應男) : 중(中).좌초관(左哨官) 전 사과 정천로(丁天輅) : 상(上).별국 초관(別局哨官) 전 주부(主簿) 노의남(盧義男) : 중(中).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12월 11일,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 謹啓爲褒貶事."本營屬喬桐府水·陸軍兵所領中軍、把摠、哨官等今秋冬等褒貶等第, 謹具啓聞."中軍前僉正黃後憲 : 上水軍把摠前權管徐有成 : 上右哨官前權管李枝男 : 中後哨官前訓鍊奉事崔應龍 : 下陸軍把摠前司果宋仁甲 : 中前哨官前訓鍊奉事韓應男 : 中左哨官前司果丁天輅 : 上別局哨官前主簿盧義男 : 中崇德三年十二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統禦使羅.❶ 摠 : 저본에는 원문이 '總'으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❷ 摠 : 저본에는 원문이 '總'으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摠' 1자가 '總'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摠' 1자가 '總'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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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遺命 卷之十1)附錄記遺命○ 若我氣盡則 汝須淨潔沐浴櫛髮然後 襲焉○ 初終凡節 只是稱家有無而己 不可爲一毫過分之事焉○ 汝素甚貧 襲歛衣服 澣濯常時所著 用之 道袍一件 隨宜雯裁焉○ 襲殮2)時 衣衾帶履 方正端莊 以無損我平日莊 敬之威儀焉○ 銘旌書以精毅齋李處士之柩○ 初葬則 就書堂山先山汝之前妣金氏墓左雙兆 待乾淨改葬焉○ 葬地則 於下西面書堂洞 十三代祖司直公墓後左岡 己爲造墳 勿他求○ 世俗 吊慰賓客 或待之以酒肉 又有衰經而親勸者 非禮3)之甚也 汝須毋至越 禮犯禁焉○ 祭需豊儉 稱家有無 淨潔與否 在誠敬 有其誠則有其神 無其誠則無其神 先 聖之訓也 然則與其豊備 寧誠敬○ 冠昏喪祭 一依朱文公家禮行之 今世降俗頹 四禮之廢 久矣 行之者 無幾人 可勝歎哉 汝須勿從俗○ 祭品 不用油果與油物 先賢之所定也 又有六代祖遺訓 勿泛勿泛○ 居喪者 非有甚不得已之故則 絶不出入 可也 今禮坊4)大壞 身著衰經 赴人 喪葬 以爲常例 汝須謹身遵禮 毋使循俗 或有服親喪 不可不往慰 然故待卒 哭後 可也○ 余於前日居憂時 巧値歉年 初終凡節 多不稱意 是爲徹骨之恨 我死後 愼勿 豊厚過度也○ 人家子姪 爲聖爲凡 只是學與不學而已 不係於才之有無 苟有好資質 可以敎 矣 汝之二子 才雖鈍拙 俱有温良厚重之資質 可以爲儒業矣 善爲敎導 以成 其器 詩曰 温温恭人 惟德之基○ 汝性偏急 不容人細過 故常被人譏剌 余常所憂也 須從忠厚 上做工夫 其於 人過 寬恕十分 其於己能 退藏十分 母少相持 詩曰 式相好矣 無相猶矣二十三日 疾革 家人男女 遑遑在側 府君收歛精神曰 吾命似在二十五日 歛襲之 儀 營葬之節 一切凖備焉二十四日 夕陽 第三女來自龍湖侍側 府君曰 雖平時 婦女不得至丈夫之室 况疾革之時乎 禮云 男子 不絕於婦人之手 婦人不絕於男子之手 卽入内室 可也二十五日 晷已晡矣 府君精神自若 俄而問曰 今日 何日耶 對曰 正月二十五日 戌時 命曰 去舊衣 著新衣 藥水少許進乎 余口遂進藥水 自一匙二匙 至三匙而不復進 痛哭痛哭 何言何言 時澤5)謹錄 원래는 "卷之六"으로 나오나 순서에 따라 이렇게 고쳤다. 정서본에는 "歛"으로 나오나 이는 "殮"의 오기임으로 바로 잡았다. "禮"는 정서본이 완성된 후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정서본에는 "坊"으로 나오나 이는 "方"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정서본을 보면 "時澤" 옆에 "出出"이라는 글자가 써 있다. "時澤"을 "出出"로 바꾸라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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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錄 公諱驥魯 字德夫 號精毅齋 姓李氏 瀛州人 李氏胄于高麗文憲公諱敬祖 本朝諱伯膽 執義 光廟改玉後 棄官自靖 是爲中顯 八傳而有諱克守 號小心齋 師事尤菴宋先生 動容周旋 必中規矩 學問思辨 得其要領 於公爲六代祖 曰長春 曰崇 曰鎭燁 是小心齋後三世 而俱有德行文章 祖諱萬祿 有特孝之行 命旌 考諱東益號直齋質直勤儉 事親極其忠養之禮 事兄盡其友于之道 妣扶寧金氏奉珏之女 哲廟辛亥五月三日生公 幼而端雅 異乎常兒 稍長深重寡默 惟以書籍翰墨爲事 始學於三從叔山塢公 及長 復從南岡公講磨 湥有資益 南岡即山塢之子也 丙寅丁母喪 俱盡情禮 戊子丁外艱 年饑勢艱 不能稱意 以送終之儉薄 爲一生之恨 兩親墓俱在百里之外 不能省掃之數數 移葬于先山下 間日拜墓 不以老而少弛也 自少至老 教誨族子姪及隣里少輩 因其才而導之 平居無親踈貴賤 皆以和顔接之 未嘗見其疾言遽色 或言及時政得失人物長短 嘿然少無和焉 時運不幸 天地閉塞 國步艱難 羣醜媒孼 乃寒後二子 扁其堂 盖欲所守之貞 亭亭然如窮冬之松柏 乙已艮齋田先生南駕于本鄉 納贄請學 以正其所有 補其所闕 先生以精毅二字 扁其所居之室 盖取君子之學不精則德不進 不毅則業不廣也 時仁說多岐 先生每深慮焉 於是集合洛閩諸賢 言仁之說 以究其肯綮 若其著述 無非忠憤所發 能使讀者 凜然髮直骨冷 座揭切要之言 以爲警省之資 庭列羣芳之物 亦爲養性之需 憫時輩謀利之太酷 歎殘民保生之無由 每對門子姪 以純古仁厚之事 反覆敎誘 家庭之奴僕 先墓之守護者 亦皆要其厚也 以老患 長在呻吟 自丙寅臘月以來 疾祟轉革 翌年正月望間 命諸子 使備送終之具 至于二十五日 命家人曰 今日 卽吾符到之日也 因屏女 去舊衣着新衣 更命殮襲之儀 營葬之節 果是日悠然而殁 享年七十七 葬于扶安郡下西面書堂洞先塋負丁原 配義城6)金璜載女 無育而卒 繼配高興7)柳煥奎女 有婦德 克配君子 生三男三女 男長 時澤 師艮齋田先生 有剛直之行 次 時寬 時? 時? 出后仲父 女適義城金鏞采 淳昌薛載澤8) 延安李東寧 時澤 娶扶寧金淵述女 有四男 鍾珍 鍾熺 元鍾9) 僩鍾10) 時寬 娶全州李容馥女 一男 鍾奎 金壻男 升洛11) 臻洛 宗洛12) 薛壻男 啓錄13) 李壻男 義七 凡內外孫畧于人 公旣受天賦之美 加以謹思明辨之功 養以守死善道知命敦仁之趣 然不見知於世而終老林泉 譬如芝蘭 瘁于窮谷也 鍾坤受學于門下 薰灸者 已厚且久矣 詳如其本末終始之如何 故乃敢敘述其梗概 若其所造之深 所尙之高 果非淺量之所及 豈可容易言哉 丁卯三月下澣 族孫鍾坤謹撰 이 "城"字는 정서본이 완성된 후에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정서본에는 이 "興"이 두 번 나온다. 하지만 이는 오류임이 분명하여 바로 잡았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薛仁鎬"로 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薛載澤"으로 수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鉉中"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元鍾"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鉉萬"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僩鍾"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鼎洛"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升洛"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元洛"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宗洛"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永泰"로 적었다가 나중에 "啓錄"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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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禮具圖 蒲筵蒲筵常緇布純丈六尺曰常臺園器禮器註臺大一石禁疏曰王藻大夫側尊用棜士側尊用禁註云棜斯禁也特牲禮云實獸於棜註云棜之制如今大木輿矣則棜非承尊之物以禁與斯禁無足似輿故名爲棜士之棜禁大夫之斯禁名雖異其形同天子諸侯承尊之物謂之豊上有丹也勺絡冪篚 有盖篚接三禮舊圖云篚以竹爲之長三尺廣一尺深六寸定高三寸如今少車苓接篚制一頭大一頭小爵爵受一弁上兩柱取飮不盡之義戒其過也木爵王爵同制觶觶受三升接陳常道曰燕禮大射以象觶公燕禮司正飮角觶而士喪禮大歛亦有角觶盖觶以象爲貴角次之凡言觶者以木爲之盥槃枓巾架罍鼎鼎有牛羊豕三鼎皆以銅爲之俎木爲之以載牲體豆籩豆三禮舊圖云豆高尺二寸漆赤中大夫以上畵赤雲氣諸侯餙以象天子加王餙皆謂餙口足也又鄭註周礼及礼記云豆以木爲之受四升圓往尺二寸有盖?三礼圖云以竹爲之口有縢綠形制如豆受四升 鄕射礼云薦脯用籩醢以豆注宜乾物豆宜濡物也脾 撗麥 脡麥 正麥 膉肫 短脅 長脅 代脅 臂 肩胳 臑觳 觳肫或謂之膊胳或作骼接神俎不用左體故少牢禮只用右體其左體則侑以下用之此鄕飮禮所以致敬賢者故左體則不以升俎盖當用於燕羞矣但遵俎所用臑肫肺之外經無明文而疏家以爲用餘體所謂餘體豈指左體耶薦脯圖祭半膩左朐右末薦脯用籩每膩長一尺二寸中屈 之爲六寸 撗祭者 於其上 用半膱 亦長六 寸於脯 爲撗於 人爲縮其脡有五通祭者六肺離末圖本 皆 離 末以手從肺本循之至于末乃絶以祭 謂之僚祭不 循其本直絶 以祭謂之絶 祭禮多者 僚祭禮畧 者絶祭樂器圖 瑟爾雅釋樂曰雅 瑟長八尺二寸廣一 尺八寸二十五絃其 常用者十九絃頌 瑟長七尺二寸廣一 尺八寸二十五絃盡 用之笙嚴氏曰笙以匏爲之十三管列匏中 而施簧管端吹 笙則鼓動其簧 而發聲禮書云 三十六簧大者十 九簧小者十三簧編磬磬有大小磬則此編磬也春官小胥正樂縣 之位王官縣諸侯軒縣大夫判縣士特縣宮縣四面象宮室軒縣三面去南面辟王也判懸 判左右二面又去北面特縣於東方或於階 間而已凡鍾磬編二八十六枚而在一籅 ?謂之堵鼓華屬貫鼓大鼓也長八尺鼓四 尺中圍加三之一曰亦大鼓也縣周制 也夏后氏足鼓殷楹鼓周縣鼓 植木以縣鼓磬謂之?籅者下撗者也籅 上板曰業孔氏曰植者爲簴橫者爲籅大 板謂之業所以餙此簴而爲崇牙刻之如 鉅.捷業然故曰業其形卷然可以縣 鼓磬業上樹五釆之羽以爲文畵繒爲翣 載以璧人下有旄樹翣於籅之角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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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12월 26일 감결(甘結) 丁丑十二月二十六日 甘結 039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김남중(金南重)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감결(甘結) :올해와 내년은 세초(歲抄)를 중지할 것.무인년(1638, 인조 16) 1월 3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보내는 감결(甘結)."이번에 도착한 비변사가 재가받은 결과를 통지하는 관문(關文)에 이르기를,'함경감사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올해 세초(歲抄)는 한가한 장정(壯丁)이 없어 대신 충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한가한 장정을 찾아 세초하는 것은 본래 국가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중대한 사안이니 폐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도(本道)가 난리를 겪고 사람들이 사망한 끝에 한가한 장정을 찾아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은 과연 장계(狀啓)의 내용대로입니다. 그러니 올해와 내년까지는 우선 세초를 중지하소서. 경기의 도내도 더욱 심하게 전쟁의 피해를 입었으므로 똑같이 시행하는 것이 합당하니, 경기감사에게도 아울러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전교하기를,「아뢴 대로 하라.」라고 하였다. 전교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라고 하였다. 관문의 내용을 살펴서 시행하라."정축년(1637, 인조 15) 12월 26일. 戊寅正月初三日到付.兼巡察使甘結."節到付備邊司啓下關內, '咸鏡監司書狀內節該, 「今年歲抄, 無閑丁充定不得.」事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閑丁歲抄, 固是軍國重事, 不容廢弛是白在果. 本道經亂死亡之餘, 誠難搜拮, 果如狀啓事意. 限今明年, 姑爲停寢爲白乎矣. 京畿一道, 被兵尤甚, 亦爲一軆施行宜當, 京畿監司處, 幷以行移, 何如?」 傳曰, 「依啓.」事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關是置有亦. 關內辭緣, 相考施行向事."丁丑十二月二十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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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公諱驥魯 字德夫 李氏系出瀛州 以髙麗文憲公諱敬祖爲始祖 以本朝執義 爲莊陵自靖者諱伯膽爲中祖 執義子錫祉司直 以剛直 見重於世 司直子長孫郡守 郡守子壹進士 生雲齡 才行薦授參奉 生僉知承宗 亦以行義稱 三傳而至小心齋克守 師事尤菴宋先生 先生亟稱其實學 是爲公六世 曰長春 曰崇 曰鎭燁 小心子孫曾 連世文行 祖萬祿 孝聞表宅 考東益 號直齋 勤儉孝友 妣扶寧金氏奉珏女 公以哲廟辛亥五月三日生 幼而端莊 異凡兒 稍長 深重寡黙 書籍之外 無他好 始學於三從叔山塢公東顯 復從其子南罔公泰魯講磨 弱冠前 已立根基矣 事親 以養志爲主 奉二兄 怡怡如也 丙寅丁母憂 情禮俱盡 戊子丁外艱 家貧年凶 送終儉薄 以此爲終身恨 間一日拜兩親墓 不以老而少弛 教誨族子鄉少 不問聰鈍 誠心導率 視爲己任而不憚勞 性眞率 不飾邊幅 平居無疾言遽色 無親疎貴賤 皆接以和顔 然有不正者 心惡而疎之 見人語及時政得失人物長短則 嘿不酬答 貧益甚 屢至絶火 堅坐看書 并不許家人稱貸曰 與其逋人財而爲不義之生 無寧守吾本分而死 常戒其子曰 人之居家 自有無限好道理 須是從勤 謹中做去 及世道一敗 宗國幾危 邪說愈恣 以寒後二字 扁其堂 盖以歲寒松柏自期也 乙已歲 艮齋田先生之南駕也 納贄行弟子禮 就正所學 先生以精毅齋錫號 於是老成德聖 爲同門所推 時仁說多歧 先生每深慮焉 公集合孔孟言仁諸說 并作一篇 名曰 洙泗言仁錄 使讀者知 所自究而不事紛爭 盖倣南軒所編而因舊名也 座揭要切之言 爲警省之資 庭列羣芳之物 爲養心之需 皆昔賢銘訂頑觀庭草之意也 疾俗輩謀利之酷 憫殘民保生之艱 每對人以仁義道德之說 反覆曉告 此又仁人君子回淳反朴之志也 公之爲學 專用心於內 故著於文辭者 少 其發爲五七言咏嘆者 較多 而要皆愛國憂道忠憤惻恒之辭 其亦變雅之遺調歟 自丙寅臘月 寢疾 翌年正月妄間 令辦喪具 至二十五日 謂其子曰 今日吾符到期也 屏婦女著新衣 要命以歛襲營葬之節 果以是日卒 享年七十七 葬于扶安郡下西面書堂洞丁坐原 從先兆也 配義城金氏璜載女 無育 繼配高興柳氏燠奎女 有婦德 克配君子 三男 時澤 時寬 時?出系仲父 三女 義城金鏞采 淳昌薛載澤14) 延安李東寧 時澤 娶扶寧金淵述女 四男 鍾珍 鍾熺 源鍾 僩鍾15) 時寬娶全州李容馥女 一男鍾奎 時?娶密陽朴亨圭女 五男 鍾培 鍾現 鍾祥 鍾然 鍾16) 金壻男 升洛17) 臻洛 宗洛18) 薛壻男 啓錄19) 李壻男 義鉉 嗚呼 跡公心行 洵淳古清厚外柔内剛人也 盖公得資質之美 襲先德之懿 固有事半功倍之易 然非有闇然自修到老穼篤之工 何以至此 謂公厚善有餘 明剛不足者 乃嚴師敎人之過慮 或者認爲實際定論則 失之矣 余嘗謁公於木上里庄也 公喜曰 不意子之訪我 我無文 故士多過而不入 子有文而顧訪我耶 此雖公自謙語 實病世之以文取人也 噫 是亦可以見公之所尙也 時澤 以公家狀一通 來示余曰 此吾族鍾坤君撰也 而有失於太畧 子其重爲備述也 余惟爲公同門二十年 知公固悉矣 且曾爲公作寒後堂記 贊服其所操 今於狀德之役 何敢固辭而不卒誠也 顧微顯闡幽 古之道也 故表章公之内剛有不負田先生精毅之錫者 用告夫世之淺知公者云爾歲在庚午三月下旬日 扶寧 金澤述撰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仁鎬"로 썼다가 이를 지우고 "載澤"으로 쓴 흔적이 있다. 네 아들 중 "源鍾"과 "僩鍾"의 이름은 별도의 종이를 이용하여 추가로 써넣은 것이다. 時?의 다섯 아들의 이름은 별도의 종이를 이용하여 추가로 써넣은 것이다. 다만 다섯 번째 아들의 이름은 정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원래는 "鼎洛"으로 적었다가 "升洛"으로 바꾼 흔적이 있다. 원래는 "元洛"으로 적었다가 "宗洛"으로 바꾼 흔적이 있다. 원래는 "永泰"으로 적었다가 "啓錄"으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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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1월 7일 첩정(牒呈) 戊寅正月初七日 牒呈 040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병조에 보낸 첩정(牒呈): 수군(水軍)이 복구될 때까지만 입방(入防)에 보태게 한 교동부(喬桐府)의 육군(陸軍)에 보병(步兵)도 포함시킬지의 여부를 명령해줄 것.무인년(1638, 인조 16) 1월 7일.명령을 받는 일 때문에 보냅니다."본영(本營)의 첩정(牒呈)에 이르기를,'본영의 장계(狀啓)에 아뢰기를,「교동부(喬桐府)의 기병(騎兵) 등을 수군(水軍)이 복구될 때까지만 본영의 수군에 보태 입방(入防)하게 해주소서.」82)라고 하였습니다. 그 장계에 따라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결과에 의거하여 해당 기병을 육군(陸軍)의 상번(上番)을 면제하고 수군에 보태 입방시키게 해주소서.'83)라고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전에 도착한 병조의 관문 내용을 요약하면,'본도(本島) 군사의 상번을 면제하는 일은 비변사가 이미 주상의 재가를 받았으니 본조(本曹)가 그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살펴서 시행하라.'84)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서 거론했던 기병 등을 본조가 알려온 공문에 따라 오는 2월 1일부터 시작하여 본영에 보태 입방시켜 전선(戰船)을 새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대체로 기병과 보병(步兵)은 모두 육군이기는 하지만, 애당초 장계 안에서 보병 2호(戶)는 누락시켰습니다. 해당 보병 2호를 수군이 복구될 때까지만 기병과 똑같이 본영에 보태 입방시킬지, 서울로 올려보내 입번(立番)시킬지, 기병과 보병이 똑같이 육군이니 보병 2호만 상번시킬지의 여부에 대한 것을 참작하여 명령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첩정을 올립니다."병조에 보고함. 戊寅正月初七日.爲行下事."'「喬桐府騎兵等, 限水軍蘇復間, 本營舟師添防.」事狀啓導良, 備邊司覆啓據, 同騎兵, 除上番添防.'事, 已爲馳報爲有如乎. 前矣到付曹關內節該, '本島軍士除上番事, 備局旣已啓下, 該曹有何低昴於其間乎! 相考施行向事.'關是乎等以. 向前騎兵等乙, 依本曹行會, 來二月初一日爲始, 本營添防, 新造戰船計料爲在果. 大槪騎、步兵, 皆是陸軍, 而當初狀啓中, 步兵二戶段, 漏落爲有臥乎所. 同步兵二戶乙, 限水軍蘇復間, 騎兵一體本營添防爲乎喩, 京上立番爲乎喩, 騎、步兵, 一樣陸軍, 則步兵二戶耳亦, 上番與否事乙, 參酌行下爲只爲. 合行云云."報兵曹. '021 나덕헌의 장계' 참조. '025 비변사의 관문'과 '030 나덕헌의 첩정' 참조. '032 병조의 관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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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1월 8일 장계(狀啓) 崇德三年正月初八日封 狀啓 041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선박용 목재를 벌목하는 일 및 솜씨 좋은 선박의 장인(匠人) 등을 다수 정해주도록 공청수사(公淸水使)에게 통지해줄 것.〈피봉〉 승정원(承政院)이 개봉할 것."본영(本營)의 전선(戰船) 3척 중 1척은 전(前) 수사(水使) 신경진(申景珍)이 병자년(1636, 인조 14)에 새로 제작하였으며, 2척은 전전전(前前前) 수사 최진립(崔震立)과 전전(前前) 수사 정응성(鄭應聖) 등이 제작하였는데 시기가 오래되었으므로 썩어서 버려질 물건이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병선(兵船) 2척과 사후선(伺候船) 4척 등까지 합쳐서 총 8척을 차례대로 목재를 덧대 개조하고 그러한 연유를 주상께 급히 보고하였습니다.85) 그런데 해당 전선을 제작하는 제도가 영남(嶺南)에 비해 더욱 몹시 허술하므로 전선 1척을 우선 새로 제작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칙사(勅使)가 나올 때가 되고 신이 교동부사(喬桐府使)를 겸직하고 있어 칙사의 접대를 맡았기 때문에 접대하는데 사용할 수많은 물품을 쇠잔한 고을의 재정과 인력으로 애써 준비하느라, 군병과 백성이 동원되는 큰 공사까지 함께 거행할 수가 없어 지난 겨울 이전에는 미처 제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본영의 차사(差使)를 별도로 정해 지난 11월 초에 공청수사(公淸水使)에게 보내, 안면곶[安眠串]에서 전선을 제작하는 일에 대해 이미 전달하였습니다. 그 뒤 선박 제작에 필요한 목재를 어렵사리 준비하여 올해 1월 20일에 신의 군관(軍官)인 출신(出身) 황경렴(黃景濂)과 새로운 출신 김숙 등을 정해 안면곶으로 보냈으며, 전선과 사후선을 모두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시급히 제작한 뒤 돌아와서 정박시키고 전선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하여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따뜻한 시기에 변란을 대비할 계획입니다. 선박용 목재를 벌목하는 일 및 솜씨 좋은 선박의 장인(匠人) 등을 다수 정해주는 일을 묘당(廟堂)에서 공청수사에게 각별히 공문을 보내 통지하게 해주소서.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1월 8일에 봉하여 올림. 承政院開拆."本營戰船三隻內一隻段, 前水使申景珍, 丙子年新造爲白有旀, 二隻段, 前前水使崔震立、鄭應聖等, 造作年久, 將爲腐朽空棄之物是白乎等以. 臣到任卽時, 兵船二隻、伺候船四隻幷八隻乙, 鱗次添木改造, 緣由已爲馳啓爲白有乎矣. 同戰船之制, 比嶺南, 尤甚齟齬是白乎等以, 戰船一隻乙, 爲先新造計料爲白如可. 適値勅使之行, 臣職兼喬桐, 許多支用之物, 殘邑物力以, 拮据措辦, 軍民大役乙, 不得竝擧, 去冬前, 未及造作爲白有如乎. 別定營差, 去十一月初, 委送公淸水使處, 安眠串造作戰船事乙, 已爲傳通爲白遣. 難備造船財料, 今正月二十日, 臣軍官出身黃景濂、新出身金淑等以, 定送安眠, 戰船及伺候船, 幷以未春耕前, 急時造作, 回泊粧船, 風和待變計料爲白去乎. 船材木斫伐事及善手船匠等多數定給事乙, 令廟堂, 公淸水使處, 各別行會爲白只爲. 詮次善啓云云."崇德三年正月初八日封.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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