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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로에게 써 보이다 書示吳陽路 옛사람 중에는 몸소 부지런히 농사를 짓거나 쌀을 구해오고 품을 팔아 양친을 봉양한 자가 있다.104) 지금은 이미 옛사람만큼 부지런히 봉양하고 수고를 다하는 일은 없는 데다가 오로지 독서(讀書)라는 한 가지 일이 부모가 바라는 바이다. 부모의 마음에 순종하고 부모의 뜻을 기쁘게 하는 데 힘쓸 방도를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한순간을 방탕하게 보내면 한순간의 직분을 저버리고 하루를 방탕하게 보내면 하루치의 직분을 저버린다. 이날을 아껴야 하니 유념하라! 古人有躬耕力穡。負米行傭以養其親者。今旣無服勤致勞如古人。而惟是讀書一事。是親庭之所欲也。順親之心。悅親之意。可不思所以勉之哉。一時浪遊。則曠一時之職分。一日浪遊。則曠一日之職分。此日可惜。念之念之。 옛사람……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옛날에 제가 양친을 섬기고 있을 때에는 항상 명아주와 콩만 먹으면서 부모를 위해 100리 밖에서 쌀을 져 오곤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남쪽으로 초나라에 가서 벼슬하여 뒤따르는 수레만도 100승이고 쌓아 놓은 곡식도 1만 종이나 되며, 자리를 여러 겹 포개어 앉고 솥을 여러 개 늘어놓고 먹습니다만, 나물국을 먹으며 부모를 위해 쌀을 져 오고 싶어도 다시 할 수가 없습니다.[昔者由也, 事二親之時, 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親歿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願欲食藜藿, 爲親負米, 不可復得也.]"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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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보의 자설 朴寬甫字說 사람의 그릇은 역량이 똑같지 않으니, 근약(斤龠)과 같은 역량으로는 두소(斗筲)와 같은 역량을 수용할 수 없고24), 부곡(釜斛)과 같은 역량으로는 종정(鍾鼎)과 같은 역량을 수용할 수 없으며25), 강하(江河)와 같은 역량으로는 천지와 같은 역량을 수용할 수 없다. 지금 작은 힘과 적은 용량으로 보잘것없는 양을 수습하고 방울져 떨어지는 물을 주입하여 모은다 한들 끝내 받아들이는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 만약 크게 수용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그릇을 크게 해야 한다.천지는 본디 나와 동체이고, 사해(四海)는 본디 나와 한 집안이며,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지는 데에 참여하여 돕는 것은 본래 나의 일이니, 이것이 옛사람이 학문을 하는 초기에 반드시 큰 뜻을 세우고 큰 본체를 정립하여 차례대로 채우고 길러 나아가서 허다한 사업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너그러움으로써 거하라."라고 하였고, 정자가 말하기를, "마음이 크면 온갖 일이 모두 형통한다."라고 하였으니, 관보(寬甫)는 힘쓰기 바란다. 人之器。量不一。斤龠之量不能容斗筲。釜斛之量。不能容鍾鼎。江河之量不能容天地。今以孑孑之力。區區之量。零星收拾。涔滴注會。而畢境所受。爲幾何哉。噫如欲大有所容。必有以大其器。天地本吾同體。四海本吾一家。參贊位育。本吾職事。此古人所以爲學之初。必先立大志定大體。而次第充養將去。做得來許多事業者也。故孔子曰。寬以居之。程子曰。心大則百物皆通。願寬甫勉之。 근약(斤龠)의……없고 근(斤)은 무게의 단위로 16냥이 1근이 되고, 약(龠)은 용량의 단위로 한 홉(合)의 10분의 1에 해당하며, 두(斗)는 한 말들이, 소(筲)는 한 말 두 되들이의 용기(容器)를 말한다. 부곡(釜斛)의……없으며 부(釜)는 6말 4되, 곡(斛)은 10말이 들어가는 그릇이고, 종(鍾)은 여덟 곡(斛)이 들어가는 그릇이며, 정(鼎)은 큰 솥으로 부곡보다 큰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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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기 三川記 삼천(三川)의 물이 능주(綾州) 남쪽 삼방산(三坊山)에서 발원한 것은 모두 수 천 개의 근원이다. 가파르고 험한 암석을 지나고 무성하게 우거진 숲을 뚫고 나와 혹 숨었다가 혹 드러나며 답답하게 펼치지 못하여 졸졸 흘러 모이고 조금씩 받아들이다가 삼천에 이르러 합해진 뒤에 시원스레 분방하게 흐르다가 깊숙이 물이 고이면 멀리 하늘 빛 머금고 평평하게 옥거울이 열려 자윤(滋潤)의 윤택함이 크고 관개(灌漑)의 이로움이 넓다.나의 벗 정군(鄭君) 선경(善敬)이 삼천강 가에 집을 짓고 인하여 호로 삼았다. 대개 그의 운명이 좋지 못하여 어려서부터 풍상(風霜)의 세겁(世劫)과 신산(辛酸)의 세미(世味)에 대해 경험하고 맛보지 않음이 없었다. 마음에 곤궁하고 생각이 어려움에 걸려148) 답답하고 막힌 지 날이 오래였다. 더 늙기 전에 속리 그 길을 돌려 번거로움을 사절하고 고요한데 나아가 독서하며 몸을 단속할 계획을 하였다.오호라! 군이 전날 만난 것은 산 아래의 샘이 아님이 없으니, 지금부터 이후로 험한 가운데에서 나와 시원스레 분방하기를 삼천과 같음이 없을 줄 어찌 알겠는가. 《주역》 〈몽괘(蒙卦) 상(象)〉에 "산 아래에서 샘물이 나오는 것이 몽이니, 군자가 보고서 행실을 과단성 있게 하며 덕을 기른다."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여기에 더욱 힘쓰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三川之水。發於綾南三坊之川者。凡幾千源矣。經巖石之險阻。穿林莽之蓁塞。或伏或見。欝而朱暢。涓涓相聚。勺勺相受。至於三川合而後。豁然奔放。淵然渟滀。遙涵天光。平開玉鑑。滋潤之澤大。灌漑之利博。余友鄭君善敬甫。家於三川之上。因以號焉。蓋其命道不媚。自少。於風霜世劫。辛酸世味。無不䦧歷而嘗試焉。困心衡慮。拂欝窒塞。爲日久矣。迨其未老而亟反其轍。謝煩就靜。爲讀書勅躬計。嗚乎。君前日之遭遇。未嘗不是山下之泉。則自今以往。安知無出乎險中。而豁然奔放如三川者乎。易蒙之象曰。山下出泉蒙。君子以果行育德。願於此。加勉焉如何。 마음에……걸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사람은 항상 과실이 있은 뒤에 능히 고치니, 마음에 곤궁하고 생각이 어려움에 걸린 뒤에야 분발한다.[人恒過然後, 能改, 困於心, 橫於慮而後, 作.]"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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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일에게 답함 答文士一 지난 번 날 찾아주니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모르네. 이윽고 해가 바뀌어 봄도 반이 지났는데, 잘 모르겠네만 부모를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흐르는 세월에 건강이 좋은가? 멀리서 걱정하는 마음 놓을 길이 없네. 의림은 껍데기만 남은 채 간신히 세월을 보내는데 정신은 멀리 도망가 멍하니 흙 인형이나 목각 인형 같을 뿐이니, 어찌 아주 작은 일이나마 잘 아는 사람에게 말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매번 어진 그대의 자질이 아름답고 뜻이 두터운 것을 보면 더불어 함께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에 이따금 그대에게 향하는 마음이 실로 옅지 않네. 다만 바라건대, 더욱 더 힘써 노력하여 집안의 전통을 수립하게나. 頃荷枉顧。何等感感。旣而歲飜春半。未審侍傍經履。與時珍勝。遠溯無任。義林形殼。僅且捱過。而精亡神脫。頑然若土偶人木居士而已。有何一事半事。可以相告於親知間者哉。每覸賢者質美意厚。可與共學。種種馳情。實不淺尠。惟願益加勉力。以樹立家計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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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경【치도】에게 답함 答吳世卿【治道】 이전에 한 통의 편지를 뜻밖에 받았는데, 공청(空靑)과 수벽(水碧)48)처럼 귀하니 어찌 고마운 마음을 견딜 수 있으랴. 다만 인편이 오는 쪽만 있고 가는 쪽은 없으니 한동안 답장을 지체하여 마음이 매우 편치 않네. 다만 세경이 오래 병을 앓아 이따금 괴로움을 드러내 보이는데, 들으면 대단히 걱정이 되네. 바라건대 더욱 부지런히 조섭하여 며칠 안에 건강을 회복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지 말며 친구들의 바람에 부합함이 어떻겠는가. 세경은 대대로 훌륭한 집안의 자제로 환하게 깨달아 아는 재성(才性)을 지녔고 순수하고 질박한 행실을 갖췄는데 근래에 또다시 뜻을 세워서 이미 자못 높은 경지에 올랐으니, 마음으로 사랑함이 내 자신이 그러한 것과 다름이 없네. 못난 내가 기대하는 바가 작지 않으니 원컨대 세경은 한 때의 병49)에 저해를 받지 말고 더욱 행실을 삼가고 두려워하며 더욱 학문을 확충하여 앞날에 큰 공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는가. 疇昔一書。獲之不意。若空靑水碧之爲貴。曷勝感豁。但便路有來無去。稽謝有日。不安不安。但世鄕以宿愼。種種見苦。聞極貢慮。惟加意勤攝。不日見和。無貽親庭之憂。以副知舊之望如何。世鄕以世好家子弟。才性通曉。質行淳實近年又且立志爲已。所造頗多。心乎愛矣。無異在已。而區區期望。有不淺淺。願世鄕勿爲一時無妄所沮貳。益加惕厲。益加展拓。以爲前程大樹立如何。 공청과 수벽 한약의 재료이다. 한 때의 병 '무망(无妄)'은 예기치 않게 걸린 병을 말한다. 《주역(周易)》 무망괘(无妄卦) 구오(九五)에 이르기를, "예기치 않았던 병이다. 약을 쓰지 말라. 기쁨이 있으리라.〔无妄之疾 勿藥 有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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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욱【재규】에게 답함 答文明旭【在奎】 4월에 보낸 편지에 끝내 답장을 하지 못하였네. 노쇠하고 혼미하여 잘 잊어버리니 부끄럽고 미안하네. 전에 이미 답장을 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또 안부를 물어주니 계교하지 않는 벗의 도량에 더욱 감복하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기쁘고 즐거우며 거처하는데 건강하다고 하니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실로 듣고 싶었던 말이네. 이전을 답습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것을 깊이 자책하면서 충고 한 마디를 요구하니, 그 부지런히 학문에 나아가면서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는 뜻을 볼 수 있네. 그러나 한 마디 충고는 다른 것에 있지 않으니, 다만 '이전을 답습하며 한가롭게 지낸다.[因循悠泛]' 네 글자를 잡아서 빨리 돌이켜, 용감하게 곧바로 앞으로 나아가며 간절하게 묻고 자신 주변으로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四月書。其果逋答耶。衰昏健忘。愧愧謝謝。前旣逋答。而今又垂訊。故人不較之量。尤可感服。仍審侍省歡慶。起居沖裕。何慰如之。實恊願言。以因循悠泛。深自悔責。而爲求一言之敎。其慥慥進學。如恐不及之意。可以見之矣。然一言之敎。不在於他。只將因循悠泛四字而亟反之。勇往而直前。切問而近思。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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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南朴先生遺稿序 完山崔秉心 華陽宋子之門名賢達士彬彬出焉斗南朴先生以學問德行亦嗚一世今未三百年而遺文留墨散落殆盡可勝嘆哉然一臠而知全鼎一羽而知全鳳則以存者考之亦可見其學問之精踐履之篤矣以立敬爲本窮理爲先精通心近二書明於太極性命之蘊眞靈道器之分而性情心三詠及心說一篇尙傅於世矣至於引接後進則惟日不倦必使玩索義理而體之於身心焉其門人以四端理七情氣之說對擧而難之遂力辨云四端發於理者理無不善故也七情發於氣者氣有善惡故也其義不過如是非謂理先發氣先發耳無形無爲而爲主者理有形有爲而爲器者氣此雖石潭之訓而卽朱夫子之意太極雖爲陰陽之主而反爲陰陽所運用此雖師門之說而卽朱夫子之旨聖人起不能易君輩但當遵而勿失無或別生意見也先生學益進志益高華陽大書安貧守志靜裡乾坤八字而贈之以褒其賢及其歿也輓之曰洛建之書世等閑嗟君來讀水雲間如今卄載成陳跡一望南天涕自潛以寓痛惜之意亦可知矣後之觀此稿者必有同余之感者矣今後孫仁圭在源盡心收拾將付剞劂來謁弁文仁圭從余多年誼不得辭然病㞃幾隕神精喪漠艱呼數語而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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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阜鄕校通文【丙申】 儒生金甲載吳海謙等【五十二人】 右文爲通諭事斗南朴先生卽華陽宋子門人也其學問有淵源踐履有規矩心事正大固可爲後學之師表矣先生以立敬爲本窮理爲先整飭衣帶對越終日動靜無間表裏交修經禮史文以至歷代理亂人品高下無不就斯論斯尤長於春秋嘗言數萬文數千指大義只在尊周且精通心近二書闡明性理之奧矣至於引接後進則惟日不倦必使玩索義理而體之於身心焉其門人以四端理七情氣之說對擧而難之遂力辨云四端發於理者理無不善故也七情發於氣者氣有善惡故也其義不過如是非謂理先發氣先發耳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者理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氣此雖石潭之訓而卽朱夫子之意太極雖爲陰陽之主而反爲陰陽所運用此雖師門之說而卽朱夫子之旨聖人起不能易君輩但當遵而勿失無或別生意見也先生志益堅道益高宋子曰樂善好義鮮與倫比又曰爲聖爲賢何所不可又大書安貧守志靜裡乾坤八字而贈之以褒其賢嗚乎先生守潭華相傳宗旨而牖後學者大矣此果不爲百世之表準歟噫有盛德必百世祀若先生者非其人耶井邑實宋子受命之地亦朴先生講學之所也其遺風餘韻至今尙在而溪山草木亦含光華則建築院宇奉安宋子以朴先生配享不亦宜乎故鄙等不量{氵+翦}劣玆敢布告伏願僉君子齊聲贊揚以至於有成之地千萬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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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鄕校答通【戊戌】 儒生吳大善李鍾奭等【五十一人】 右回通事華陽宋子講春秋大義以明天理正人心爲究竟法及門諸賢多濟濟彬彬斗南朴先生亦其一也其學也居敬窮理其德也眞知實踐耳經禮子史歷代理亂莫不就斯論斯尤長於春秋嘗曰數萬文數千指大義只在尊周心近二書純熟如己言太極性命之蘊道器眞靈之分皆自胸中流出不但傳古人已成之言而已也嘗答四七之問曰栗翁吾邦聖人朱子後一人後學但遵守其議不可妄生異議也先生知道之難行固守東岡確乎有不可拔之志華陽褒以安貧守志靜裏乾坤及其歿也以詩輓之曰洛建之書世等閑嗟君來讀水雲間如今卄載成陳跡一望南天涕自潛可想其痛惜之至而于以見先生之賢矣富春之釣臺猶有嚴子陵之廟惟是井邑則宋子之受命處亦朴先生之講學地而建院之議發於二百載之後嗚乎其晩矣而可見公議之不泯矣亟擧遵奉永爲士林矜式之地則斯文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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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州鄕校答通【戊戌】 儒生李敎采奇近燮等【三十四人】 右回通事有盛德祀百世固士林之公議也斗南朴先生院宇之擧豈不盛哉先生以華陽宋子門徒所講者天人性命邪正淑慝之分所體者居敬窮理眞知實踐之事以至經史典禮歷代理亂無不森羅於胸中而尤精於心近二書闡明性理之奧啓發後學爲己任雖在病苦之日亦不倦焉觀其四七辨問答絲毫以分百世之下猶知其有功於來學來通所謂百世師表者眞可謂不易之確論矣嗚乎先生守潭華相傳宗旨而有功於後學者如是其大而尙闕俎豆之奠豈非士林之欠事乎井邑實宋子受命之地亦朴先生講學之所也溪山草木皆被光華則建立院宇共享兩先生宜莫先於此地也伏願僉君子協心同力扶世道於無窮爲斯文之靈光千萬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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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原鄕校答通【戊戌】 儒生李相儀盧秉仁等【十九人】 伏承來通諭以華陽宋子及斗南朴先生院宇之享此固盛擧也先生華陽宋夫子門人立敬爲本窮理爲先動靜無間表裡交修經禮史文以至歷代之理亂人品之高下無不就斯論斯尤長於春秋嘗言數萬文數千指大義只在尊周心經近思之書誦如己言闡明性理之奧啓發後學爲己任雖至臨年猶且惓惓不已觀其心性情三詠及心說一篇有以知其能守潭華相傳宗旨矣觀其四七辨問答尤以知其有功於來學矣所謂百世師表者先生其人俎豆之事豈可已乎哉井邑一區實宋子受命之地亦朴先生講學之所也溪山草木皆被光華則建立院宇共享兩先生不亦宜乎伏願僉君子協心同力以底有成永爲士林矜式之地千萬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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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鄕校答通【丙申】 儒生全中權李道衡等【四十人】 右回通事斗南朴先生沒數百年後而古阜儒林始發建院之議嗚呼其晩矣蓋先生華陽宋夫子門徒之傑然於南服者也先生以重厚之資持守甚確辭氣從容其爲學也立敬爲本窮理爲先動靜無間表裏交修經禮史文天序天秩以至歷代之理亂人品之高下無不就斯論斯尤邃於易學精於春秋大義心經近思之書誦不離喉太極性命之源靡不究極其性情心三詠又心說敬說可謂發明朱宋之大指也宋子嘗曰樂善好義鮮與倫比又曰心經今已精熟爲聖爲賢何所不可宋子之寄托於先生者儘大矣先生之歿輓之曰洛建之書世等閑嗟君來讀水雲間如今卄載成陳跡一望南天涕自潛噫先生學問之高明踐履之篤實實南服之士之從古今希覯而建院妥靈之論寥寥數百年間噫古今縫掖之士公議之攸存顧安在哉況井邑一區宋子受命之地亦朴先生講學之所則過者豈不咨嗟乎亟擧建院共享兩先生則爲世道爲斯文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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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김만형(金萬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萬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신년 4월 8일, 손우 보암산인 김만형이 벗 여산 송씨에게 보낸 서간. 무신년 4월 8일, 손우(損友) 보암산인(寶巖山人) 김만형(金萬亨)이 벗 여산 송씨에게 보낸 서간이다. 그대가 청운(靑雲)에 오르고 자신이 바람대로 영산(靈山)으로 돌아가 서로 이별한지 3년째라며 최근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가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이제야 물염정(勿染亭) 운에 차운하여 시를 지어 올린다고 말하고 7자 8줄의 시를 적은 내용이다. 물염정은 전라남도 화순군의 경승지인 '화순 적벽(和順赤壁, 전라남도기념물 제60호)' 상류의 물염적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정자로, 화순군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과 명종 때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하였고, 송정순의 호를 따서 물염정(勿染亭)이라 하였다. '물염'이란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정자 내부에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이식(李栻)·권필(權韠)·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 남긴 시문(詩文) 등 20개가 넘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삿갓 김병연(1807~1863)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생을 마치기 전에 물염정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하며 정자 근처에 김삿갓의 동상과 7폭의 시비(詩碑)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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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문종식(文鍾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文鍾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에 문종식(文鍾植)이 초대한 자리에 참석이 불가함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을미년 3월 1일에 문종식(文鍾植)이 보낸 간찰이다. 자신을 오라고 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일을 받들어야 마땅하지만 이 날짜가 망자부(亡子婦)의 연상(練祥) 날과 겹쳐서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알리는 내용이다. 피봉이 남아있지 않아 수신인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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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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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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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66년 정일신재선생연원록(鄭日新齋先生淵源錄) 간소(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6년 10월에 정일신재선생연원록 간소에서 유림에게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한 통문. 1966년 10월에 정일신재선생연원록(鄭日新齋先生淵源錄) 간소(刊所)에서 유림(儒林)에게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한 통문(通文)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의 연원록(淵源錄) 간행을 결정했으니 통문을 보는 즉시 명단(名單)을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한 내용이다. 일신재선생연원록간소는 능주향교(綾州鄕校)이다. 통문의 발기인은 도유사 배석면(裵錫冕) 외 부유사 민홍기(閔弘基), 홍규식(洪圭植), 총무 김윤정(金潤貞), 재무 박병용(朴炳容), 편집 2인, 교정 2인, 감인 2인, 사서 2인, 고문 16인, 특별유사 20인, 추진위원 35인이다. 얇은 종이에 석판인쇄 기법으로 인쇄하였다. 실제로 『일신재선생연원록(日新齋先生淵源錄)』은 1967년 석인본으로 1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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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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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 道學之有淵源盖古矣 上自洙洄▣ 至洛閩莫不傳守之實斯文之正脉而時之汚隆世之治亂 繫于此淵源之関重 於名敎可謂大矣 惟我日新齋鄭先生以蘆門嫡傳 其於天人性命之蘊奧理氣帥役之微妙 心得而體驗之 因講道于南服 學者傾一時而坌集各隨其才質之高下而導迪之如洪鍾之待扣鼴鼠之各充弟子散在四方 以所受於師者 授其却下生徒以至再三傳儘 是先生之淵源也 不有當日之攸錄百世之下 孰知延平之學 出於河南紫陽之道 傳于金華耶 以是詠歸享祀 享日輿議詢同將刊淵源錄 玆仰通惟願 僉尊 覽通後卽爲修送名單 以完鉅役則於斯文世道 幸甚幸甚丙午十月 日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印]綾州鄕校都有司 裴錫晃副有司 閔弘基 洪圭植總 務 金潤貞財 務 朴炳容編 輯 李基來 朴準台校 正 鄭淳熙 梁在述監 印 朴濟相 安鍾基司 書 朴菶來 李炳根顧 問 朴炳壽 朴道東 李弘信 金正煥 李基允文在茂 安道淳 閔長植 具敎洛 崔璣炫奇老章 洪錫憙 魏錫漢 林驥洛 朴琪鉉裵鍾球特別有司 洪潤植 金龍熙 李鍾祿 李白休 朴喆周金冑連 朴淸圭 裵賢洙 尹在東 高光榮曺東熙 安鍾千 李基春 梁琪承 曺圭平趙三顯 廉元燮 申仁圭 韓秉玉 鄭淳周推進委員 金九炫 高光泳 黃起采 鄭城采 文濟俊李承瑨 趙來錫 邪時億 金煥奎 金道熙安圭文 李炳栽 文基雄 朴炳斗 廉敏燮朴德周 李承佑 裵錫原 安炫淳 李鎭白李炳午 鄭翔鎭 邪甲鍾 閔井植 奇世國崔貞鉉 金奉熙 洪甲植 文仁植 趙炳植梁壽承 金貞熙 洪承達 魏鴻奎 吳在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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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견【현규】에게 답함 答李玉見【現圭】 헤어진 지 며칠 되지 않아 또 뜻하지 않게 서한이 이르러 감격스러움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서한을 통해 조용히 지내는 안부가 줄곧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실로 저의 바람에 부합합니다. 지난번 종산(鍾山)의 회합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나중에 초지(草枝)까지 오셨으니 우리 벗의 정성과 노력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뒤미처 생각해봐도 마음에 위로가 되고 기쁩니다. 문목(問目)에 운운하신 것은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어른께서 이미 충분히 설파하셨습니다. "이(理)는 심(心)에 갖추어지고 성(性)은 기(氣)를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달리 미진한 것이 없습니다. 우매한 제가 어찌 다른 말로 혹을 붙이겠습니까. 대체로 이(理)를 벗어나면 심(心)이 없고 심을 벗어나면 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말하는 곳에서는 '심(心)' 자를 가지고 풀이합니다. 성(性)에 비추어 보자면 기(氣)가 그 안에 있고 기에 비추어 보자면 성이 그 안에 있으므로 성을 말하는 곳에서는 '기(氣)' 자를 끌어다 채웁니다. 다만 우리 벗께서는 심성(心性)과 이기(理氣)를 둘로 나누어 보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이 들 뿐입니다. 잠깐만 인내하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저절로 얼음이 녹듯 의혹이 풀릴 것입니다. 애산께서 또 "이것은 매우 급한 공사(公事)가 아니니 모름지기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것에 대해서 먼저 세심하게 힘을 쏟아야 한다."라고 한 것이 또 긴요한 말입니다. 여러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判襼不多日。心畵又出謂外。感不可量。仍審齋居節宣。一直沖茂。實副區區之望。向日鍾山之會。雖違一 握而草枝追到。非吾友誠力。何以及此也。追念慰悅問目云云。艾山丈已十分說破矣。其曰理具於心。性不離氣八字。更無餘蘊。愚何有贅以他語哉。大抵理外無心。心外無理。故言理處。以心字而解之。卽性而氣在其中。卽氣而性在其中。故言性處。引氣字而備之。但吾友以心性理氣。判作兩物看。故有此疑耳。苟能少頃耐思。自當釋然矣。艾山又曰。此非急切公事。須先細心着力於易知易行云者。又爲要切語。幸加三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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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여【계룡】116)에게 답함 答魏雲汝【啓龍】 소식을 전하는 길이 막혀 연락할 수 없었는데, 오늘의 이 편지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놀라서 이 세상에 없는 안약【空靑】117)을 얻은 듯 눈이 떠졌습니다. 편지를 통해서 부모님을 모시면서 지내는 체후가 건강하고 평안한 줄 알았으니, 얼마나 듣기를 바랐던 말이겠습니까? 농사짓는 일이 힘들고 괴로운 것이 올해보다 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실로 그렇게 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겠습니까? 다만 한결같이 처분을 따를 뿐입니다. 선대의 업을 이어 집안의 일을 잘 다스리는 것도, 역시 학문 중의 큰일입니다. 다만 일에 따라 이치에 순응해서, 고인이 '의리를 집적하라.【集義】'라고 말한 것에 부끄럽지 않은 것을 아름다운 일로 여길 뿐이니, 어찌 반드시 그 외의 일을 다 물리치고, 날마다 소리 내어 글만 읽는 것을 학문이라고 하겠습니까? 쾌활하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쾌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힘을 얻을 써야 할 곳입니다. 이 말은 의미가 있으니,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便路阻隔。今此一書。眞望外也。得之若警。如世外之空靑也。因審省體衛重。何等願聞之至。田事艱辛。未有若今歲之甚。然天實爲之。向誰怨尤。只得一聽處分而已。克家幹蠱。亦是學問中一大事。但隨事順理。無愧於占人集義之云爲佳耳。何必掃却外事。日日咿唔而謂之學矣乎。入於不快活處。做得快活。正是得力處。此言有味。試思之如何。 위운여(魏雲汝) 계룡(啓龍) 1870~1951. 위계룡(魏啓龍)의 자가 운여(雲汝)이다. 안약【空靑】 공청(空靑)은 금동광(金銅鑛)에서 나는 비취색의 광물로 공작석(孔雀石)의 일종이다. '양매청'이라고도 불리며, 맹인에게 효험이 있어 안질 치료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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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度公海華堂徐先生諱選年譜 宋端宗景炎紀元後二丁未【高麗忠肅王十三年○元順帝至正二十七年】 十二月十四日癸亥酉時先生生于利川象頭山下九美里里第明太祖高皇帝洪武元年戊申【先生二歲】二年己酉【先生三歲】三年庚戌【先生四歲】四年辛亥【先生五歲】五年壬子【先生六歲】八月丁先考敏敬公憂【先生藐爾稚小孝由天性能居喪遵禮人皆奇之】六年癸丑【先生七歲】九月葬敏敬公于象頭山北麓 王命官賜禮葬致賻七年甲寅【先生八歲】八月服闋八年乙卯【先生九歲】正月母夫人歸寧先生陪從外大夫正尹崔公【洪義】奇其言辭謇直氣宇峻峙勉使就學九年丙辰【先生十歲】九月受小學于正尹公十年丁巳【先生十一歲】正月受讀孝經文理日進一過目無不通曉正尹公大奇之十一年戊午【先生十二歲】正月正尹公卒十二年己未【先生十三歲】二月執贄請業于耘谷元先生之門受論語又請學春秋元先生愛其志尙夙就特加勸奬焉十三年庚申【先生十四歲】時靖安大君亦受學于耘谷與先生同年大君嘗目之曰眞諫院器也十四年辛酉【先生十五歲】十五年壬戌【先生十六歲】四月自師門歸第 權陽村公近以世交之誼來訪【事實在家狀】十六年癸亥【先生十七歲】三月行冠禮 作心字詩八首以自警【幷有說】十七年甲子【先生十八歲】三月聘夫人咸悅崔氏【司宰令湖之女】十八年乙丑【先生十九歲】八月陪母夫人入洪州上承里【時麗運將否哈丹紅巾關先生潘元帥諸賊交侵國境民不堪其生先生見幾入洪州耕耘漁樵以供親旨時人以董召南比之】十九年丙寅【先生二十歲】築莘堂于所居之右有水竹林泉之勝【先生嘗曰伊尹耕有莘之野囂囂然若將終身門外之千駟萬鍾豈奪其所樂】二十年丁卯【先生二十一歲】四月子達生二十一年戊辰【先生二十二歲】八月崔菊齋公賢勸令就仕先生謝曰朝綱日頹士氣趨汙禍在朝夕無匡濟之才而冒進筮仕者非但有干祿之嫌且將竝淪於魚肉而莫逃也古人有言曰危邦不入亂邦不居崔公是之二十二年己巳【先生二十三歲】五月姜公士敬呂公八規洪公百源來訪【先生慷慨有大節不事細務與姜呂洪諸公爲己交每患時運之多艱而陰陽變化三奇八門奇奇正正之術無不畢陳而爲談笑之資焉】二十三年庚午【先生二十四歲】四月崔瑩請與赴難【時有阿只拔都寇亂國中崔瑩素聞先生有禦亂之略强請之先生固辭崔瑩遂銜之而去】二十四年辛未【先生二十五歲】十月崔瑩欲謀害瑩以先生不赴前請懷嫌構禍時圃隱鄭相公言于王曰枉殺忠良非朝家美事豈有罪名不彰而致收掠者乎事乃得解二十五年壬申【是年高麗終我 太祖大王元年○先生二十六歲】十二月完城君 來訪問先生曰今聖上倉業新造八域三都胥悅舞蹈庶見唐虞煕雍之治而公何自高蹈亭亭孤往果於忘世乎先生曰巢由之遯世伊呂之行道亦各有志完城因薦于 靖安大君曰洪州處士徐選卽麗朝密直遠之子素有家傅之懿而抱瑾握瑜伏在巖穴然其積累之美罕有其儔遺在草野固聖世欠累願枉 鶴駕羅此遺逸 靖安大君親臨敍同年同學之誼因與同至開城 經邦錄成【言治國之要凡三十二條時完城君閱覽至終篇嗟歎曰凡治國者當列爲屛障朝夕深玩】哭圃隱鄭先生二十六年癸酉【先生二十七歲】春中司馬○與朴公【安信】尹公【淮】設同榜宴于司僕橋○洪少尹公【師瑗】來訪【論出處之道累有往復書】二十七年甲戌【先生二十八世〖歲〗】七月陪 靖安大君八〖入〗 天朝【時明朝以本國表辭不順命遼東守勿受東使擧國震悚上乃遣靖安大君八〖入〗勤先生因陪行太宗皇帝時爲燕王以戱言加之先生正色答之言甚正直王稱善不已因賜銀縑一匹白璧一雙先生拜謝】○與蜀人王大嶙相辯【事實在家狀】二十八年乙亥【先生二十九歲】三月往拜牧隱李先生于五臺山舍【時李先生遯跡于此山】○與河浩亭【崙】陪 靖安大君參講經濟六典二十九年丙子【先生三十歲】夏擢文科○八月神德王后昇遐○哭牧隱先生三十年丁丑【先生三十一歲】正月授從仕郞奉常寺副奉事○秋奉母夫人自洪州就居楊州花裏洞【時母夫人年高 上召累至先生公退之暇便於定省故來寓于此諸僚感其孝】○與金逸溪【自知】書【論時學之弊】三十一年戊寅【先生三十二歲】三月以母疾辭退家居○九月 上傅位于世子 召爲春秋館記事○十二月陞通仕郞惠皇帝逮文元年己卯【我 定宗大王元年○先生三十三歲】三月上書于靖安大君諫勿誅懷安君【時朴苞與懷安大君謀害靖安大君大君使承宣李叔蕃追捕苞及懷安而先生上書只誅苞】○治俗論成二年庚辰【先生三十四歲】十二月陞務功郞門下注書○送吉冶隱先生【再】之善山【時吉先生被 召至力辭還山故先生與同職往餞】三年辛巳【我 太宗大王元年○先生三十五歲】 宣武郞濟用監主簿○陪大駕往原州拜耘谷元先生○五月陞兵曹佐郞○上疎請罷禁中誦呪僧【時前朝習俗之可改者盡袪而比一事尙奉故改先生誄罷】四年壬午【先生三十六歲】以月陞吏曹佐郞兼知製敎知承訓郞拜司憲府監察太宗文皇帝永樂元年癸未【先生三十七歲】二月遷典祀寺副令直集賢殿陞 世子右文學○四月拜議政府經歷尋移都事○重修利川鄕校【主倅邊仁達董其事陽村權近作重修記事載利川邑誌】二年甲申【先生三十八歲】九月拜司憲府掌令直集賢殿○著萬物自然論三年乙酉【先生三十九歲】四月除典祀寺令陞 世子左文學○五月孫遭生○哭趙松堂【浚】四年丙戌【先生四十歲】三月加中直大夫司憲府執義○九月奉 論往濟州去伯號始稱牧使○十月作孝忠二說授子達五年丁亥【先生四十一歲】八月拜延接使入 侍廣延樓【時咸東平君傳霖回自 天朝上置酒慰之君臣極歡而罷】○九月疎進治安圖 上嘉納之賜表裏一襲六年戊子【先生四十二歲】三月擢拜通政大夫承政院同副代言 經筵參贊官寶文閣直提學知製敎春秋館編修官兼判軍器監事知工曹事○五月 太上王昇遐赴哭闕下○以遠接使往迎 天朝弔使於江上七年己丑【先生四十三歲】四月請罷外戚封君○疎進經邦錄請采用○六月以足疾受由還家八年庚寅【先生四十四歲】三月黃厖村喜來訪【黃公之女卽先生之子婦】講議國典九年辛卯【先生四十五歲】六月陞右副代言兼軍資監事知戶曹事○朴慶瑞安之佑來學○請焚讖緯諸書【事實在家狀】○上書訟李牧隱子孫禁錮之寃【時李先生子孫以河浩亭權陽村所撰行狀得明朝國子助敎陳璉所撰碑銘以措語觸犯政府論罪先生乃諍之益切】十年壬辰【先生四十六歲】九月除左副代言集賢殿直提學兼判司宰監事知刑曹事○上疎請釋高麗忠臣徐甄之罪【甄在衿川有詩曰千載神都隔杳茫忠良濟濟佐明王統三爲一功安在却恨前朝業不長有事請鞠甄詩案先生因固爭曰甄於臣爲五從之親縱有挾私之嫌然在於言地則不可以親而諱其有罪亦不可以親而不伸其無罪也高麓之臣岡僕于本朝者皆夷齊之流而顯旌其忠樹之風聲可也豈可以詩案簿過奄致收鞠乎上允之】○政事錄後敍成十一年癸巳【先生四十七歲】三月上疎請宥王氏後裔在民間者從便居住【時有告王氏之在民間者有司請誅之先叫閽上疎曰太祖大王卽位王氏不得保全者非太祖之意也特一二大臣之謀也願垂拔拔廓蕩之意全其遺裔置之同胞之內詩曰殷士膚敏裸將于京今使王氏之裔華西歸化裸將于京將見虞廷在位之德讓云云上從之】○六月定安王后昇遐除 新陵差官十二年甲午【先生四十八歲】八月陪 大駕八太學參謁聖應製試官○池必成來學十三年乙未【先生四十九歲】七月除右代言兼判司僕寺事知兵曹事○抗疎請錮庶蘖子孫勿敍顯職【諸曹合議欲通庶蘖淸職先生獨非其議曰禮定尊卑而聘奔無別則貴賤立分蔑矣政貴抑楊而善惡無分則豈有春秋之義乎此庶孼之裔若有自振援尤者特可以登用矣其餘冗下者付之凡秩以別所出之貴賤可也諸儒及在朝爲庶孼者交章抗疎構罪先生先生乃持斧上書曰爵者國之名器別賢愚辨貴賤其階級等列直哉天淵無濫冒越次之弊故上下嚴峻綱紀整密互相維制知相敬畏此所以絜矩天地顯然之秩而設爲屬治之大法云云】傳曰允十四年丙申【先生五十歲】正月除成均館 司成○奉 命出賑永吉道饑十五年丁酉【先生五十一歲】八〖入〗侍 經筵講大學衍義○再上疎請禁讖書上允之悉焚書雲觀所藏雜書○五月 上召甲契功臣置酒張榮以詩 褒贈又 手賜傳敎二十契臣拜手稽首依虞 歌勅天之意 聖批而獻壽其絃歌之滿庭迭和有雲興景出底氣像先生因獻壽有歌詩○上又製同契功臣贊以頒之【贄文在附錄】十六年戊戌【先生五十二歲】六月上疎諫易儲【文武百官論列世子禔罪惡斷以大義廢之 上允其議放於廣川領敎中外先生及黃喜李稷固執不可遂左徒謫于外三月柳 廷顯獨贊其議上一日召至政院曰適誤耳爲國不可無此人遂停其命】○八月除漢城判尹○上傳位于 世子移御蓮池宮九月召拜嘉靖大夫刑曹判書○十月二十六日夫人崔氏卒【後封貞敬夫人初葬洪州上承里後移窆于象頭山祔先生兆右】十七年己亥【我 世宗大王元年○先生五十三歲】八月拜吏曹判書仍兼修文提學○九月加正憲大夫○十月復拜資憲大夫吏曹判書寶文閣大提學○以拔輿奉母夫人設慶壽宴于私第 上王親賜樂工以寵之【時母夫人年八十四】○上疎折孀婦再嫁之議【時有 婦再嫁之議臺臣或可或否而先生獨抗之自是不用庶孼之淸職蓋從先生之言也事見國史】○十一月以親老上辭職疎 不允再上劄子十八年庚子【先生五十四歲】正月解職奉母夫人歸象頭山舊居【時三上疎乃得請先生謝 恩以單轎數丘史隨母夫人輿後識者莫不稱歎】會講春秋周禮【時執經問難者數百人】○作自述一篇○上賜所居堂名曰海華 手筆親書以賜之 傳曰卿生海東而每事一遵華俗有振頹 立懦之助深用嘉尙宜以此二字扁居○十月二十六日壬申考終于正寢訃聞 上王震悼 上輟朝三日 致賻十九年辛丑正月葬于象頭山上寺谷負坎之原○上命禮官護葬 因賜四山局內使山下氓備樵牧○八月立墓碣【碣文則先生之壻盧府尹皓所撰】○二十年壬寅二月神道碑成【碑文則卞提學季良所撰而歲久字 不辨顚末後孫方謀改刻】○四月上遣禮官 致祭【有祭文】仁宗昭皇帝洪煕元年乙巳【世宗大王七年】正月畿湖紳甫上疎請 加贈 宣諡○三月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八月賜諡恭度【責難陳善曰恭立政釐法曰度】宣宗章皇帝宣德元年丙午 上御勤政殿追念 先宮甲稧乃以儀物金額付春秋館以供耆老歲例之需【成宗朝編修官安達龍以不修世例伏罪 明宗朝更下 恩例重修舊事繼有諸賢獻壽之什】我肅宗大王三十年甲申利川士林議合享于雪峯書院【院卽先祖章威公及李栗亭金慕齋三先生揚處之所也至是以先生欲 享馬○載邑誌】三十一年乙酉三月雪峯儒生會校先生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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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장【재원】에게 답함 答吳善長【在元】 그대의 편지를 받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닌데, 놀랄 만큼 기뻐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네.그대처럼 젊은이가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나를 향하여 존모하는 뜻이 없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하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네. 나의 병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정신이 날로 소진되어 나무토막 같은 거사154)가 되었으면 하는데 이 또한 주제가 넘는 일이니, 더욱 어찌 사람이라 칠 수 있겠는가。보내준 편지에서 학문하는 핵심은 방심을 구하는 것에 있으며, 또한 공부에 착수하여 굳게 나아가는 것은 '경(敬)' 한 글자를 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참으로 천고 뭇 성인들이 전수한 지결(旨訣)이니 어찌 이에 보탤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어려우니, 반드시 이를 가계(家計)로 삼아 때마다 곳마다 끊임없이 노력하여 멈춤이 없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得君書。非初有事耶。驚喜不可言。以若妙年初程。非有相向之志。安能爲是耶。仍詢侍中經履。一視佳迪。何等欣豁。義病餘年深。神精日脫。擬作木居士。亦已僭越矣。尤何足爲擧數於人者哉。來喩爲學切要。在於求放心。又曰着手立脚。不越乎敬之一字。此言良是千古群聖傳授旨訣。豈有以加於此乎。然非知之艱行之惟艱。必以此作家計。隨時隨處。勉勉接續。母容間斷如何。 나무토막 같은 거사 한유(韓愈)가 썩은 나무를 읊은 〈제목거사(題木居士)〉에, "불길이 파고 물결이 뚫어 나이를 모를 지경인데 뿌리는 얼굴과 같고 줄기는 몸과 같아라. 우연히 시를 지어 목거사라 이름하니, 문득 무궁하게 복을 구하는 사람이 있도다.〔火透波穿不計春根如頭面幹如身 偶然題作木居士 便有無窮求福人〕"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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