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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蘇寺六逸會贈座上諸益 溫溫君子住遯溪 居在同鄕年亦齊 歲晩桑楡垂髮鶴 交如淡水照靈犀 竹林樂勝七賢也 洛社會同九老兮 西岳丹楓聊可賞 盤肴壺酒更相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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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毅齋遺稿序1) 聖門之敎 忠信篤敬而己 我先師艮翁先生 說敎示法 每主純德正識 而戒其騖外矜名侈然自夸者 此盖得吾從先進之聖訓 而可以傳之百世而無獘也 近故瀛州李公驥魯 醇德邃古 ?門守義 具聖賢坏樸 而晩猶嗜學 贄謁艮翁而師事之 問爲己之學 先生心許之 勗之以爲仁之術手 書精毅二字而扁其室 公黙修晦養 循蹈矩矱 不懼餘年之不足 惟躬行君子之是㥯砥礪 名行孝義孚於家門 及夫山河改色 抱箕微靖獻之節 服朱宋含忍之訣 致力乎扶植强艱之義 公可謂知所本而實踐精毅之揭額矣 若其工文㙯以釣名華 則不惟公之不能而亦不屑焉 余累拜床下而欽其德矣 公有若干副于墨者 不以自多 而遺命胤子時澤勿示人而有自敍 是出謹愼簡默之道也 時澤兢兢然 不敢圖傳後 而爲家子孫之世誦 門人朴鍾浩出厚貲 而欲付剞劂 時澤叩余白雲山 扄要一言弁其首 噫 人之傳後 以德行功烈 不以詞章焜耀 而其著術 則自明道垂法以外 君子不貴也 余嘗病夫世之質喪也 久矣 遂樂爲之書如右 顧今蔑義黷貨之日 如朴君者 何可易得也 亦可以見公之敎之有素云屠維大淵獻日南至 高興 柳永善序 이 책은 원래 하권에 이어 상권이 합철되는 형식으로 잘못 제책되었다. 정서본에서는 순서를 바로 잡았다. 발문(跋文)도 서문의 앞에 있는 것을 책의 뒷쪽으로 옮겨 바로 잡아 편집하였다. 책의 두 페이지를 펼쳐서 사진 촬영하였기 때문에, '精毅齋遺稿序'의 사진은 부득이 앞과 뒤에 두 번 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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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毅齋遺稿序 艮齋田先生講道于扶安之海上時 新設橫流 舊敎陵替 陳相之變於夷 邢恕之倍 其師 種種其人 而公以衰暮之年 齎贄見先生 其志尙之不苟 蓄積之有 素非餘人之比 遠矣 遊先生之門者 多而談性理 則天花亂墜 行文辭 則星斗燦列 以此爲高爲能者 比比皆是 而公惟淳淡焉 鞱晦焉 不知者 謂短於才 而知者 謂優於德也 介潔之趣 恬靜之操 可與古人同歸 而求之於今 未見其儔也 至於硏經繹理修德凝道之事 亦不以老邁自沮 而隨分以做其進 有漸銖積寸累 有闇然日章之實 程子所謂老而好學 尤可愛者也 公歿後 子時澤 蒐輯遺文 爲若干篇 弁文屬于余 余曾閱其稿 有公自序 而語固雅實 意亦剴切 自修之實 內蘊之美 隱然流露於其間 而使讀之者 宛然見公於百世之後 不必待人之言也 而有是請 義難終辭 畧敍公學之顚末如右 學旣有本 則德之有實 可見 德有實 則詩與文 亦不外是 詩之發於自然天趣 文之得於怡然理順 讀者自有以見之矣 不須論世有一言可推 蓋學術之隆替 時運之盛衰 相關由焉 時運 是氣化之變遷 而天之所爲也 學術 是世道之扶植 而人之所勉也 子思言 天地位 萬物育 在於致中和 是人事順而天道順也 然則時運亶由乎學術之隆替 而有盛有衰也 公之老而向學 足以爲回轉時運之根基 在家而子孫善爲繼述 則一家之時運 爲之斡旋 而世道之扶 亦自在焉 此不可不勉之者也庚午八月上浣 全州 李喜璡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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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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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모년(某年)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문복록(問卜錄) 고문서-치부기록류-문복록 종교/풍속-민간신앙-점복자료 七月初五日 七月初五日 전북 정읍시 [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모년(某年) 7월 초5일에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에서 가족의 운명과 안부에 대해 점을 친 문복록(問卜錄) 모년(某年) 7월 초5일에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에서 가족의 운명과 안부에 대해 점을 친 문복록(問卜錄)이다. 사언절구(四言絶句)의 형식을 빌려 평생의 사주를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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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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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4년 신관일(辛寬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四年甲辰十二月初九日 辛寬一 道光二十四年甲辰十二月初九日 辛寬一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4년(헌종 10) 12월 9일에 신관일(辛寬一)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4년(헌종 10) 12월 9일에 신관일(辛寬一)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관일은 긴요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일도면 정지제(定只堤) 아래 심자답(深字畓) 12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5부 8속과 2부 4속이 되는 곳을 1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5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관일과 증인(證人)으로 유학 최황(崔煌) 필집(筆執)으로 유학 윤상태(尹相台)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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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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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774년 백민징(白敏徵) 교지(敎旨)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白敏徵 英祖 서울 종로구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74년(영조 50)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용양위부호군(龍驤爲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774년(영조 50)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가선대부(嘉善大夫)행 용양위부호군(龍驤爲副護軍)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종 2품이며, 관직인 용양위부호군(龍驤爲副護軍)은 종 4품이어서 품계보다 낮은 관직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이 교지를 포함하여 백민징의 교지가 4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80세가 넘어 수직(壽職)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직(實職)에 임명된 것은 아니다. 이 교지가 소장된 영암의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의 호구단자를 포함하여, 그의 아들 백창윤(白昌潤), 손자 백경옥(白慶玉), 증손 백사형(白思亨) 등의 호구단자 11점이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작성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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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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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馹淳 年四十四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四十五子 幼學榜玉年二十六婦 興城張氏歲二十五寄口 : 男 口 女 口雇傭 : 男 一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二口 女 二口 共合 : 五口宅家 : 己有 瓦 間 草六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五年 二月 日 郡守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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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04년 송일순(宋馹淳)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八年二月 古阜郡守 宋馹淳 光武八年二月 古阜郡守 전북 고부군 [郡守官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4년(광무 8)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 1904년(광무 8)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공표된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 및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에 따라 각 항목을 양식화하여 인쇄한 새로운 호적양식이다. 호적표의 기재항목은 호주의 거주지, 주소, 이름, 나이, 본관, 직업, 사조(四祖)사항을 기재할 뿐만 아니라, 이전 거주지, 전입 시기, 동거친속(同居親屬), 가택(家宅) 소유현황 등이 추가되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양식에 맞춰서 인쇄한 종이에 각 항목을 채웠다. 호주(戶主) 송일순의 나이는 47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의 직업은 농업이고 직(織)은 유학(幼學)이다. 호적표에는 호주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부친은 송진구(宋鎭龜), 조부는 송배(宋培), 증조부는 송규찬(宋奎燦), 외조부는 황영환(黃永煥)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홍주(紆州)이다. 송일순은 처(妻),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았다. 처(妻)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나이는 48세이고 아들 송방옥(宋榜玉)은 29세이며 자부(子婦) 흥성장씨(興城張氏)는 28세이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실제 거주자를 파악하기 위해 동거친속 뿐만 아니라 기구(奇口), 고용(雇傭) 인원까지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했다. 고용 항목에는 남 1구(口)로 기재가 되어있어 송일순의 일가에서 남자 고용인 1명을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남 2구, 여 2구, 공합(共合) 5구로 기재되어 있다. 즉, 식구 4명과 고용인 1명이 함께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택(家宅) 항목을 살펴보면 기유(己有) 칸에 초가(草家) 6간(六間)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기유는 가택이 본인 소유일 경우에만 기재하는 항목이다. 만약 호주가 거주하는 가택이 빌린 것일 경우 차유(借有) 칸에 기재하게 되어있다. 즉, 송일순이 거주한 가택이 본인 소유의 초가집이며 크기가 6칸임을 뜻한다. 송일순이 호주로 기재된 호적표는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작성된 총 9장이 전해지고 있다. 이 9년 동안 그의 거주지는 계속 고부군 궁동면 청량리에 머물렀으며, 아들과 며느리를 거느리고 처와 더불어 2대가 함께 살아가는 주거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손주는 이 호적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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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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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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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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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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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사례축식(四禮祝式) 四禮祝式 四禮祝式 고서-경부-예류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고서 원문 四禮祝式 성책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축식(祝式)을 설명한 책.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축식(祝式)을 설명한 책이다. 사례(四禮)의 각종 축식(祝式)을 정리해 놓았다. 맨 뒤에 "丁未新刊 瀛州藏板"이라고 인쇄되어 있어서 고부(古阜)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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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만성과보(萬姓科譜) 萬姓科譜 萬姓科譜 고서-사부-정법류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고서 원문 萬姓科譜 성책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를 각 성씨별(姓氏別)로 정리한 책.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를 각 성씨별(姓氏別)로 간략하게 정리한 책자이다. 이름과 급제년도, 관직명이 실려 있다. 필사본이다. 누가 편찬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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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동오유고(桐塢遺稿) 桐塢遺稿 桐塢遺稿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고서 원문 桐塢遺稿 성책 부안 하서 고부이씨가 부안 하서 고부이씨가 영주이씨(瀛州李氏) 이만록(李萬祿)의 시문 등을 필사한 것이다. 이만록(李萬祿)의 시문 등을 필사한 것이다. 동오(桐塢)는 이만록의 호이다. 이만록의 본관은 영주(瀛州)이다. 영주는 오늘날의 정읍시(井邑市) 고부(古阜面)를 말한다. 본 동오유고는 이만록의 손자인 이시택(李時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이만록의 글들을 모은 것인데 이는 물론 훗날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책으로 간행되지는 못한 듯하다. 책을 간행하려던 즈음에 바로 한일합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서문은 1910년에 이희진(李喜鎭)과 이종곤(李鍾坤)이 그리고 발문(跋文)은 1930년에 전일중(田鎰中)이 썼다. 서문을 받고 20년이 지나서야 발문을 쓴 셈이다. 동오유고에는 이만록이 쓴 글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이 쓴 이만록의 묘표(墓表), 권순명(權純命)이 지은 이만록의 행장(行狀), 류영선(柳永善)이 지은 이만록의 묘지명(墓誌銘) 등도 수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만록 부자(父子)의 효자 정려(旌閭)의 건립을 위하여 전주와 남원 등 전라도 유생들이 합의하여 발송한 통문(通文)과 예조(禮曺)에서 내려온 입안(立案) 그리고 정려 건립을 허락한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의 관문(關文) 등도 전사(轉寫)되어 있다. 그러니까 동오유고는 이만록의 인물과 생애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동오유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목록을 소개한다면, 이만록이 지은 것으로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배율(排律), 칠언율시(七言律詩), 제문(祭文), 만장(輓章), 가장(家狀) 등이 있으며, 이만록에 대한 글로는 정려시각군유림통문(旌閭時各郡儒林通文), 정읍유통(井邑儒通), 흥덕유통(興德儒通), 고암서원유통(考巖書院儒通), 광주유통(光州儒通), 나주유통(羅州儒通), 남원유통(南原儒通), 전주유통(全州儒通), 본현천장(本縣薦章), 도내천장(道內薦章), 예사(禮斜), 명정(命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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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四年戊寅二月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傳來伏在定只堤下臨字畓十三斗落所耕三十卜庫果深字畓十二斗落所耕三十一卜束庫乙折價錢文參百兩依數捧上是遣幷舊文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持此文記憑考事畓主辛玉年[着名]證人田汝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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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白敏徵爲嘉善大夫行龍驤爲副護軍者乾隆三十九年 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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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隆熙二年戊申二月二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夫伏在萬頃南一面道下堤下坪十二斗落只貞字畓所耕二十七負㐣価折錢文捌佰肆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倂付他卷故以新文記壹丈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憑考事畓主 李公弼[着名]證筆 任喪制殷叔[印]證人 徐敏澤[着名](背面)萬頃石洞李公弼十二斗落文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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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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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7년 오명집(吳明集) 표(票)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丁未六月初九日 吳明集 丁未六月初九日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7년 6월 초9일 오명집(吳明集)이 작성해 준 표(票) 1907년 6월 초9일 오명집(吳明集)이 작성해 준 표(票)다. 오명석은 대석리 앞 들에 있는 콩밭 4두락지에 대한 원세(元稅)를 19말(斗)씩으로 하기로 약속하였다.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본 약속 문서를 누구에게 써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대석리는 만경군 남일면 대석리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김제군 성덕면 대석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수표는 매매, 임대, 전당(典當), 차용(借用) 등을 할 때 서로 간에 맺은 계약이나 약속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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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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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丁未六月初九日大石前坪太田四斗落每年元稅十九斗恒定而日後若有他說則至此本票憑考事吳明集[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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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7년 최인언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一年丁未六月初八日 崔仁彦 光武十一年丁未六月初八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7년(융희 1) 6월 초8일 최인언(崔仁彦)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대석리(大石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7년(융희 1) 6월 초8일 최인언(崔仁彦)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대석리(大石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밭의 주인 최인언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전라북도 만경군 남일면 대석리의 4두락지 밭이며 부수(負數)로는 8부(負) 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3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최인언은 구문기(舊文記)가 중간에 유실(遺失)되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최인언과 증인(證人)은 최영숙(崔永淑) 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일장(一張)은 일장(一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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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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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馹淳 年四十七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四十八子 幼學榜玉年二十九婦 婦興城張氏歲二十八寄口 : 男 口 女 口雇傭 : 男 一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二口 女 二口 共合 : 五口宅家 : 己有 瓦 間 草六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八年二月 日 郡守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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