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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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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3년 정공인(鄭公仁) 방매(放賣)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二年陰五月十日 鄭公仁 大正二年陰五月十日 전북 부안군 [印]2개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3년 5월 10일 정공인(鄭公仁)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913년 5월 10일 정공인(鄭公仁)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모두 세 곳이다. 첫 번째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노곡리 평(坪) 일자답(日字畓) 11두락지(斗落只)이며 결수(結數)로는 30부(負) 5속(束)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동평(同坪) 월자답(月字畓) 3승락지(升落只)이며 결수(結數)로 6속(束)인 곳이다. 세 번째 토지는 동평(同坪) 분자답(盆字畓) 3두락지(斗落只)이며 결수(結數)로 9부(負)인 곳이다. 세 곳의 매매 가격은 모두 460원으로 이를 영수(領受)하였다. 노곡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계약서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되었지만 여전히 면적을 표기하는 방법은 조선 시대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정공인은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도(永永放渡)'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매도인 정공인과 증인(證人) 김화서(金化西)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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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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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모년(某年) 김성언(金聖彦) 표(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金聖彦 金聖彦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모년(某年)에 김성언(金聖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중리(中里)에 있는 밭을 담보로 하여 금전을 빌리면서 작성한 표(標). 모년(某年)에 김성언(金聖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중리(中里)에 있는 밭을 담보로 하여 금전을 빌리면서 작성한 표(標)이다. 김성언이 중리 후평(後坪)에 있는 콩밭(太田) 1.5마지기를 8냥에 전당을 잡히고, 매달 이자(利子)로 5푼(分)을 내고 10월 그믐 안에 본전과 이자를 모두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만약 지불 기한이 지나면 이 콩밭은 영구히 상대방이 차지하게 될 거라고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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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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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壬寅正月二十九日 前手標右典當事以子婚切有緊用處故伏在下西頓池前坪麥田六斗落例夏穀典當是遣右宅前錢文伍拾兩以每朔六分例得用是遣限來四月晦內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若過限不報則以此標憑告爲乎乙事票主 李京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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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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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九年癸未二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一道面定只堤下臨字十三斗落所耕三十卜庫果深字畓十二斗落所耕三十卜束㐣價折錢文參百貳拾兩依數捧上是遣並舊文五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則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田湘玉[着名]證人 幼學 田汝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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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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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2년 김희도(金希道) 표(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壬辰二月十七日 金希道 壬辰二月十七日 1892 金希道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2년(고종 29) 2월 17일에 김희도(金希道)가 작성한 표(票). 1892년(고종 29) 2월 17일에 김희도(金希道)가 작성한 표(票)다. 김희도는 공납(公納)에 급히 돈이 필요하여 25냥을 매달 5푼(分) 이자로 빌리면서 기한은 8월 그믐에 본전과 이자를 모두 갚기로 하면서 돈을 빌렸다. 만약에 기한을 넘기면 관에 고발하여 독촉해 받으라고 하였다. 당시 표주 김희도와 증필(證筆)로 김필문(金弼文)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임진년으로만 되어 있으나, 1888년에 김희도가 전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문서 "1888년 김희도(金希道)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있어서 이를 통해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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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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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二月十七日右手標事有公納緊急處錢文貳拾五兩以每朔五分例得用而限則八月晦內外本利備報是矣若過此限告官督捧爲乎乙事票主 金希道[着名]證筆 金弼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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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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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부안(扶安) 전주이씨(全州李氏) 추수기편(秋收記片) 1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집안에서 작성한 추수기(秋收記) 1 전북 부안군에 거주하는 전주이씨 집안에서 작성한 추수기(秋收記)이다. 추수기란 소작(小作)을 주고받은 소작료(小作料)를 받은 내역을 정리한 것이다. 어느 해에 작성한 소작기인지는 알 수가 없는데, 전체 소작인은 7명이었다. 7명 중 6명은 임씨(任氏)였고, 한 사람은 유(劉)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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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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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任文淑 十三斗落一石十斗任殷淑 正穀 十三斗 十八斗落任道日任世京任道英 十三斗落一石任昌杋劉乃元 十三斗落 二石五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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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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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單子 全羅道扶安縣化民李奎炫李洪善李昌善等恐鑑伏以民等之十四代祖讓寧大君也十三代順城君也十二代祖烏川君也十一代祖任城守也十代祖成均進士公也九代祖成均進士公也八代祖洗馬公也七代祖叅奉公也而墓所在於果川而民之六代祖監役公始寓于治下上栢田里而仍葬于本里大方村後亥坐之原矣而累百年以來守護禁養矣去辛丑年分本里居都百彦爲名人偸葬於單靑龍二十步內故呈于本 官卽爲掘去矣去癸酉十一月今校村居權秉澤爲名人肆然偸葬其父於已掘之地故民等卽地來到將以掘移之言晝夜語之則同權秉澤言內當此冬節甚難周旋而求山後移埋之意累累哀乞數次手標故民等信之無疑而今秋來到則同秉澤終不掘去而又爲容舒云世豈有如許無法不俶之心雖尋常凡夫之塚不可如是慢侮偸葬况於士夫家有官爵之墳墓四山內已掘之處乎噫彼秉澤世居校村素多邑權自恃豪悍蔑視容踪故民等不勝憤寃玆敢 仰籲於 明政之下伏乞城主閤下特垂矜憐之澤同秉澤捉致法庭卽地掘去以保他鄕殘民之先壟之地千萬泣祝行下 向敎 是事城主 前 處分乙亥十月 日單子權秉澤手記二張接聯慶尙道發[署押](題辭)率來對卞向事十九日狀民[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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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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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40년대 부안현(扶安縣) 이하용(李夏容) 산도(山圖)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1840대 경남 함양군 [署押]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0년대 초에 부안현(扶安縣)에 사는 이하용(李夏容)이 제기한 산송(山訟)의 처리 과정에서 작성된 산도(山圖). 1840년대 초에 부안현(扶安縣)에 사는 이하용(李夏容)이 자신의 선산(先山)에 투총(偸塚)을 한 도백언(都百彦)을 대상으로 제기한 산송(山訟)의 처리 과정에서 작성된 산도(山圖)이다. 관련문서 "1875년 부안현(扶安縣) 화민(化民) 이규현(李奎炫) 등 단자(單子)"에 따르면, 1841년(헌종 7)에 함양군(咸陽郡) 백전리(栢田里) 대방촌(大方村)에 사는 도백언(都百彦)이란 자가 대방촌 후록(後麓)의 전주이씨(全州李氏) 선산의 단청룡(單靑龍)에서 20보가 채 안되는 곳에 투장(偸葬)을 하였다. 이에 전주이씨 문중은 부안현에 소를 올려 즉시 무덤을 파가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때 수령은 산도를 그려 형편을 파악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산도에는 도백언의 모친과 조모, 증조부, 고조와 고조모의 무덤이 그려져 있고, 이하용의 증조모와 증조부, 종증조, 고조와 고조모의 무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에서 도백언의 모친 무덤까지 66보가 떨어져 있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 쪽에서 앉거나 서있거나 도백언의 모친 무덤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에서 도백언의 조모 무덤까지 26보 3촌이 떨어져 있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 쪽에서는 앉거나 서있거나 모두 도백언의 모친 무덤을 볼 수 있다고 그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 산도에 수령의 제사는 적혀 있지 않지만, 관련 문서에 따르면 도백언은 패소하여 무덤을 파간 것으로 나온다. 전주이씨 일족은 아마 증조대 이후 함양에서 부안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산도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가 다수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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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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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東道仙隱洞化民李奎煥右謹言情由事民以上東益上里金成叔處捧債納稅事前已呈訴就卞至於其父致西之杖囚是乎矣所謂成叔不念其父之困狀無憚 官令之截嚴小不蕫念頓無報意豈有如許無據之習乎究底事面痛憎莫甚是如乎洞燭敎是後同金成叔卽爲捉上嚴懲牢囚債錢則一一計邊推給俾納 王稅而其父致西卽爲放釋之地千萬望良爲只爲行下 向敎是事城主 處分甲申 四月 日官[署押](題辭)金成叔期給於待後當有決處之道向事十七日 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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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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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4년 이규환(李奎煥)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甲申 東道仙隱洞化民李奎煥 甲申 李奎煥 전북 부안군 [署押] 7.5*7.5 3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4년(고종 21)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사는 이규환(李奎煥)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 1 1884년(고종 21) 5월에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사는 이규환(李奎煥)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이다. 화민이란 교화된 백성이라는 의미로서, 양반이 스스로를 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규환이 본 소지를 올리게 된 이유는 김성숙(金成叔)과의 채무 관계 때문이었다. 이규환이 김성숙으로부터 추심해야 할 돈이 있었는데, 김성숙이 이를 거부하자 이에 소지를 올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하였던 것이다. 이규환의 본 소지에 대해 부안현감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에 김성숙으로부터 추심하겠다는 결정을 내려 주었다. 한편 이규환이 김성숙과의 채무 관계 때문에 소지를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성숙으로부터 추심하라는 처결을 받았었다. 하지만 김성숙이 완강하게 이를 거부하자 다시 또 소지를 올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규환이 김성숙으로부터 추심해야 하는 것은 어떤 성격의 돈이었을까. 개인적으로 빌려준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아마도 이규환은 김성숙이 관에 내야 할 세금을 대신 지급하고 나중에 김성숙으로부터 추심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와 관련한 자세한 내막은 이규환이 본 소지를 올리기 한 달 전에 올린 소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가 다수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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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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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縣內群嶺里辛元凱右謹陳情由事段矣身東道仙隱洞李聚五處畓庫還退事向有所呈訴至承分半之 處分而畓庫賣買辜限自在宜其全退이되伏不勝感激之 分付以其辭而往言聚五則全退半退之間俱不請從惡言悖說奪取狀題豈有如許無法之民乎緣由仰訴自 官別般處分俾爲奠接事 處分伏望行下向敎是事官司主 處分戊戌四月 日官[署押](題辭)旣爲越價成文之地何如是更訴耶無奈於彼隻之不應向事卄二日告朴載勳[官印][官印][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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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甲子年) 이돈선(李暾善)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 弟李暾善 甲子 李暾善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갑자년(甲子年) 이돈선(李暾善) 서간(書簡) 갑자년(甲子年) 이돈선(李暾善)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초행일(初行日)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혼인식과 관련된 편지였음을 알 수 있다. 초행일이란 신랑(新郞)이 혼례식(婚禮式)을 치르기 위해 신부집으로 가는 혼례 의식을 말한다. 발행일시(發行日時)과 입문일시(入門日時)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발행일시와 입문일시가 같은 날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랑집으로부터 신부집까지의 거리가 아주 먼 거리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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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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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向者郵書仰想熟參而今且專人◉係于歸日字之迫所也十分另意期於右日治行焉日家所云若前日理程則甚如不利是此是初行之事不可疎忽也以此諒之如何就審日內禮盡在沽藥旺仁庇句禧◉◉不任區區弟姑率盛寧呌姑今則小差之餘不備禮 甲子元月九日弟李暾善再拜發行日時甲子二月六日巳時入門時仝日酉末戌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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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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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4년 김낙건(金洛鍵)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八年甲辰三月十二日 金落鍵 光武八年甲辰三月十二日 金落鍵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3월 12일에 유학(幼學) 김낙건(金洛鍵)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금강동(金崗洞)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3월 12일에 유학(幼學) 김낙건(金洛鍵)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금강동(金崗洞)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낙건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금강동 전평(前坪)에 있는 모시밭 1마지기와 산세(山稅) 2부를 5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모시밭 주인김낙건과 증필(證筆)로 유학 김우재(金禹載)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구문서는 가대(家垈) 문서와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했다고 기록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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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受証一金貳百円也右本郡下西面老谷坪鄭公仁畓土一石0三升落價肆百陸拾円內에爲先右金額을領受홈鄭公仁畓土價額은金化西으게領受긔로委任홈大正二年陰五月十一日領受人扶安郡上西面老谷里二統五戶金化西[着名]證人仝 仝 頓池里十二統六戶李京白[着名]李承冕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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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정공인(鄭公仁) 영수증(領受証)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二年陰五月二十日 鄭公仁 李承冕 大正二年陰五月二十日 鄭公仁 전북 부안군 [印] 4개 1.2*1.2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3년 음력 5월 20일에 정공인(鄭公仁)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이승면(李承冕)에게 팔고 돈을 받으면서 작성한 영수증(領收證). 1913년 음력 5월 20일에 정공인(鄭公仁)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이승면(李承冕)에게 팔고 돈을 받으면서 작성한 영수증(領收證)이다. 정공인은 노곡리 벌판에 있는 논의 값으로 460원을 받았다. 관련문서 "1913년 정공인(鄭公仁) 영수증(領受証) 1"에 따르면 460원 중 200원을 그해 5월 11일에 김화서(金化西)가 대신 받았는데, 이때에 와서 잔금까지 다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거래된 논의 규모는 1석(石) 3승(升)이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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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6년 유승언(劉承彦) 수표(手票)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丙午正月初五日 劉承彦 丙午正月初五日 유승언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광무 10) 1월 초5일에 유승언(劉承彦)이 작성해 준 약속 문서 1906년(광무 10) 1월 초5일에 유승언(劉承彦)이 작성해 준 약속 문서이다. 유승언은 당초에 논의 가격을 얼마 받기로 약속하는 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그 후 매수자와 합의가 원만하지 않아 이전에 써 준 약속 문서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약속 문서가 유실(遺失)되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약속 문서를 다시 작성하여 주었다.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표(票)'를 가지고 약속을 증빙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본 약속 문서를 누구에게 써 주었는지,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수표는 매매, 임대, 전당(典當), 차용(借用) 등을 할 때 서로 간에 맺은 계약이나 약속을 기록한 문서이다. 이 표를 작성한 유승언은 "1906년 유승언(劉承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에서 논의 매도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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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丙午正月初五日 手票右票事畓價推捧之場旧文以爻周次覔搜則中間遺失故更爲成票以給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票憑考事票王 劉承彦[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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