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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寬裕 崔寬裕<着名>李洛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8월 16일에 최관유가 누군가에게 세 곳의 논 10마지기를 9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8월 16일에 최관유(崔寬裕)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관유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많은 빚 때문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수곡면(水谷面) 칠암촌(七岩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형자(形字)이며, 문문배미(門問夜味) 3마지기[斗落只]와 연안배미(連安夜味) 4마지기, 맥답(麥畓) 3마지기를 모두 합한 10마지기가 매매대상이다. 지금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추수를 하기 전인 8월이므로 이들 논에서 올해 거두게 될 곡식을 포함하여 전문(錢文) 980냥에 거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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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6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龜錫 韓龜錫<着名>李在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10월 20일에 한귀석이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10월 20일에 한귀석(韓龜錫)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한귀석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왔다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사유는 적지 않았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앞이고 자호는 우자(友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7부(負) 7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9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증인으로 이재룡(李在龍)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나 답주와 마찬가지로 착명하지 않은 점이 문서의 격식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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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炳善 柳炳善信 3顆(적색,원형,1.3cm)柳忠熙信 1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1월 20일에 유병선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가옥과 대전을 이봉애와 서로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명문 1916년 1월 20일에 유병선(柳炳善)이 이봉애(李鳳涯)와 빚을 탕감하기 위해 가옥과 대전을 서로 상환하는 명문이다. 유병선은 자신이 직접 조성하여 수년 동안 살아왔던 가대(家垈)를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상환하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두 상환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봉산리(蜂山里)이고, 상환 대상은 초가(草家)와 그에 딸린 대전(垈田)이다. 유병선 소유의 대전은 자호가 부자(夫字)이고 면적은 1마지기이며, 초가는 2통 3호이고 규모는 초가 2칸과 측실 2칸이다. 이곳을 이봉애 소유의 면적을 적지 않은 대전과 2통 3호의 초가 2칸과 측실 2칸 규모의 가옥과 교환하는 것이다. 교환과 동시에 전에 빚진 전곡(錢穀)을 모두 탕감하고, 추가로 전문(錢文) 30냥을 받으면서 이봉애와 영구 교환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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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정석룡(鄭碩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洪乙生 鄭碩龍 朴禮主<着名>洪可民<着名>洪斗緯<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679년 10월 25일에 정석룡이 홍을생에게 10마지기 밭을 사들이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679년 10월 25일에 정석룡(鄭碩龍)이 홍을생(洪乙生)으로부터 10마지기 밭을 사들이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홍을생은 허다한 공채(公債)를 갚을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이 밭은 매득을 통해서 소유하게 되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라고만 적고 자세한 위치는 기재하지 않았다. 자호는 치자(致字)이고 보리 25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의 밭 가운데 남쪽으로 보리 10마지기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이 방매 대상이다. 거래가로 백미(白米) 3섬[石]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되,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넘겨줄 수 없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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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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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聲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61_001 이성진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의 일부 답주 이성진(李聲震)이 자신의 논을 팔면서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준 구문기(舊文記)로 추정된다. 대각선 방향으로 두 번에 걸쳐 오려졌다는 것은 이 문서에 적힌 토지를 2회에 걸쳐 일부 방매하였고, 그때마다 해당 토지가 적힌 부분을 대각선 방향으로 오려서 구문기로 매수인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관련문서로 볼 때 고창군(高敞郡)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에 있는 성자자(性字) 자호의 논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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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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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20년 이천영(李千榮)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李千榮 李千榮信 3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4월 28일에 이천영이 류영선에게 7마지기의 토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20년 4월 28일에 이천영(李千榮)이 류영선(柳永善)에게 토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이다.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예지리(禮知里) 전평(前坪)에 있는 7마지기[斗落只]의 토지는 이천영의 남매 4인의 공동소유인데 매도권을 본인에게 위임하였기 때문에 상채(喪債)를 갚을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토지의 소유관계와 방매 사유를 적었다. 토지의 지목은 적혀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매매대금은 400원이다. 이 대금을 받고 오산면 성곡리(城谷里)에 사는 류영선에게 영구 방매하고, 소유권 이전 증명은 즉시 출급하기로 계약한다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매매명문의 양식과 매도계약서의 양식이 뒤섞여 있어 과도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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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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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21년 권병길(權丙吉)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朴道得 權丙吉 朴道得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 6월 12일에 박도득이 권병길에게 차용한 돈을 갚기 위해 5년 동안 권병길의 토지를 소작하고 곡물로 배상하겠다는 내용의 소작계약서 1921년 6월 12일에 박도득(朴道得)이 권병길(權丙吉)에게 작성해준 소작계약서이다. 박도득이 권병길에게 차용한 90원에 이자를 합한 151원을 갚기가 매우 어려워 채권자인 권병길의 토지를 소작하여 그 토지에서 나온 곡물로 갚겠다는 것이다. 기한은 5년으로 하고 수확한 곡물 전체를 값으로 쳐서 권병길에게 납입함으로써 빚을 덜어내는 것으로 계약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토지의 소재지는 영일군(迎日郡) 죽남면(竹南面) 지동리(芝洞里)에 있는 771호 답(畓) 4마지기[斗落只]와 43호 전(田) 10마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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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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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成泰 李炳禮信 1顆(적색,원형,1.4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음1월 27일에 종손 이성태가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1,0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6년 음1월 27일에 종손(宗孫) 이성태(李成泰)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성태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문중 땅을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비석리(碑石里)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내자(內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1,000냥이다. 이성태의 주소지는 고창군 고수면(古水面) 증산리(曾山里)이고, 같은 마을의 이병례(李炳禮)가 문중의 유사(有司)로서 증인으로 참여하여 도장을 날인하였다. 문서 말미에 소유권보존증명 건은 논 값을 다 받은 뒤에 출급하겠다는 문구가 추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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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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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2년 류영선(柳永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柳孝熙 柳永善 柳孝熙信 2顆(적색,원형,1.1cm)柳忠熙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2년 음5월 13일에 류효희가 류영선에게 3마지기의 논을 240원을 받고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22년 음5월 13일에 류효희(柳孝熙)가 류영선(柳永善)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토지 소재지는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봉산리(蜂山里) 120번지이고, 면적은 843평(坪)이며 괄호 안에 옛 면적표기방식인 마지기[斗落] 수로는 3마지기임을 함께 적었다. 이곳의 지가(地價)는 118원 2전이고 매도대금은 240원이다. 류영선에게 영구 방매하며 등기비(登記費)는 매도인 측에서 담당하기로 약정하였다. 문서 말미에 완척(完尺)은 2섬[石] 5말[斗]로 정하고, 소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바꾸면 본가(本價)에 환퇴(還退)한다는 조건을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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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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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3년 류영선(柳永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金容澈 柳永善 金容澈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음3월 23일에 김용철이 류영선에게 두 곳의 논과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23년 음3월 23일에 김용철(金容澈)이 류영선(柳永善)에게 논과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매물은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계산리(鷄山里) 80번지의 논 2,400평과 681번지의 논 260평, 시장 2필지이며 매매가는 각각 108원, 11원 7전, 480원이므로 총 599원 7전이다. 그리고 소유권 보존등기와 이전등기비용은 매수인이 전부 담당하기로 약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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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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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오연술(吳然述)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吳然述 吳然述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오연술이 토지 5마지기를 매매하면서 작성한 계약서 계약주(契約主) 오연술(吳然述)이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상평촌(上坪村) 전평(前坪)에 있는 5마지기[斗落只] 면적의 토지를 매매한 뒤에 증명서(證明書)를 5월 15일에 넘겨주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다. 일제가 1906년과 1907년에 토지가옥증명규칙과 토지가옥증명사무처리순서 등을 공포 시행하면서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뒤에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의 '인증'과 군수(郡守) 또는 부윤(府尹)의 '증명'을 받도록 하였다. 이것은 계약의 인증이 주된 목적이었고 진정한 소유권의 존부를 증명하고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결함이 있었으므로 1908년 토지가옥소유권증명규칙을 공포하였는데 이는 매매, 증여, 교환, 상속 등으로 인하여 토지 또는 가옥의 소유권을 취득한 자는 소유권의 증명을 군수 또는 부윤에게 신청하여 받도록 하였다. 이 계약서에서 오연술이 넘겨주겠다고 하는 증명서가 이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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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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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小月心 奴 小月心<着名>奴 雲卜<着名>奴 正每<着名>奴 分切<着名>奴 日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11월 9일에 이씨의 노 소월심이 누군가에게 3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11월 9일에 이씨의 노(奴) 소월심(小月心)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씨의 노 소월심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임을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용교동(龍橋洞) 동창원(同窓員)이고 자호는 오자(吳字),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이며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이다. 거래가 120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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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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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來 李錫來<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1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4월 1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석래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吾里洞面) 사반리(沙盘里) 앞의 중보평(中堡坪)에 있는 호자(戶字) 자호의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 1배미[夜味]와 외서평(外嶼坪)에 있는 호자 자호의 1마지기 1배미 두 곳을 합한 4마지기 논이다. 거래가 270냥을 받고 신문기와 구문기 2장으로 방매하였다. 다만, 이후에 살림이 펴지면 본가(本價)에 환퇴(還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고, 도조(賭租)는 매년 1섬[石] 7말[斗]씩으로 정하였다. 이석래가 자신을 인제(姻弟)라고 하였으므로 인척간에 이루어진 거래이다. 문서 말미에 외서평 1마지기 논의 구문기에는 다른 토지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명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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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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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소샹쟝슈월 버려든 지필을 슈묵ᄒᆞ오니 단문 단언의ᄒᆞ언이 션츌하올지 시ᄌᆞᆨ이ᄂᆞᆫ 기오며 연이나마인 곳 업산 유슈시일은 여류ᄒᆞ야 츄국을 마지ᄆᆡ 이목 닷ᄂᆞᆫ 곳마닥 비ᄎᆞᆼ지회을 돕ᄂᆞᆫ ᄎᆞ시의오의 사돈 두로 ᄇᆡᆨ만 ᄌᆞ미 만취ᄒᆞ오셔 기운 안영 식사 졔졀이 연위 조안ᄒᆞ시ᄋᆞᆸ 알고져 굼〃 향사 무궁이외다 밧사돈게ᄋᆞᆸ셔도 두로 괄염ᄒᆞ오신 기후 익슈 강령ᄒᆞ시고 삼공 졔졀이 일안ᄒᆞ시ᄋᆞᆸ 일ᄉᆡᆼ 사모되ᄂᆞᆫ 오의 현낭겹셔도 관쳬 여ᄉᆞᆼᄒᆞ시와 식음다감ᄒᆞ여 유활ᄒᆞ시ᄋᆞᆸ고 소져씨 여려 형졔 남ᄆᆡ분귀쳬 평안들 하시와 가졍 화기 융승ᄒᆞ시ᄋᆞᆸ고 ᄃᆡ쇼ᄃᆡᆨ 합졀이 일안ᄒᆞ시고 각쳐 안신 ᄌᆞ로 연속ᄒᆞ시ᄋᆞᆸ 두로 탐사 간졀하온 이곳 죄인은 근〃 보명ᄒᆞᄋᆞᆸ고시일이 갈ᄉᆞ록 일호 아람업ᄉᆞ신 영젼 안영이 봉ᄒᆡᆼᄒᆞ시고 며ᄂᆞ리 각 ᄂᆡ외 무고ᄒᆞ오니 든〃 각쳐 여아 이 ᄎᆞᆷ 오와 반기고 져의 여려 형졔 즐기니 든〃깃부외다 손아 다종남ᄆᆡ 츙실 기특 어엿부외다 ᄃᆡ솟ᄃᆡᆨ 졔졀이 상ᄒᆞ 차ᄅᆡ로 무현ᄒᆞ오니사ᄒᆡᆼ이ᄋᆞᆸ 할 말은 여산송쥭 밀〃ᄒᆞ오나 ᄎᆞ후로 미루고 이만 졀필ᄒᆞ오니 김ᄌᆞᆨ 살피시ᄋᆞᆸ비로소 이제야 낫업ᄂᆞᆫ 인ᄒᆞ 보ᄂᆡ오나 한 가지 변〃치 못 낫업고 화덕을 임한닷 민망 슈괴하옴을 이갓탄 져룬 셔사의 읏지 다 기록하리요ᄒᆞᄒᆡ 현심의 사인의 모든 허물을 깁피 용셔하여 쥬심을 바라난이다ᄂᆡ〃 ᄐᆡ평안신 바라오이다구월 염일〃 사돈 샹쟝사ᄇᆡᆨ원 보ᄂᆡ오니 고치 조금 사쥬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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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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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오태기(吳泰基) 가대여토지계약서(家垈與土地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朴相佐 吳泰基 朴相佐 1顆(적색,원형,1cm)朴以大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상좌가 오태기에게 가대와 전답 및 과실나무 등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연대 미상의 토지매매계약서 박상좌(朴相佐)가 오태기(吳泰基)에게 가대(家垈)와 전답 등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연대 미상의 매매계약서이다. 매매대금은 50원이다. 이 금액으로 뒤에 적은 가대 및 토지를 귀하에게 확실히 매도하고, 훗날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에 따른 손해를 계약을 위반한 사람이 부담하고, 매수인에게는 손해가 없게 하겠다는 문구를 적었다. 매매대상은 체사(體舍) 3칸과 행랑 1칸짜리 가대, 논 2배미[夜味], 밭 3좌(座), 밤나무 2그루, 감나무 2그루, 작은 감나무 5그루이다. 매도인 박상좌의 거주지는 거창군(居昌郡) 마리면(馬利面) 고학리(皐鶴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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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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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30년 조세주(趙世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東伊 趙世周 金東伊<着名>金老同<着名>金麗興<着名>柳就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가 김동오로부터 10마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趙世周)가 김동오(金東仵)로부터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동오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외가쪽으로부터 상속받은 곳이다. 소재지는 부내(府內)라고만 적어 자세하지 않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보리 10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20냥이다. 이 밭의 소유권을 증빙할 수 있는 본문기(本文記) 1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조세주에게 넘겨주어 영구히 방매하되, 화회문기(和會文記)에는 다른 토지와 노비가 함께 기재되어 있어 효주(爻周) 배탈(背頉)하였으므로 훗날 자손이나 족류 중에 잡담을 하는 일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아뢰어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화회문기는 분재기(分財記) 류의 문서로서 노비나 토지 등의 재산이 재주(財主) 생전에 재주의 의사에 따라 분재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재주 생전에 지정이 없던 경우 재주 사후에 그 자녀들이 화회(和會)하여 합의에 의하여 분집(分執)된다. 이처럼 화회에 의하여 재산을 분집하는 문서가 화회문기이다. 효주는 거래 대상물이 기재된 본문기 상의 기재처에 가위표나 기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를 하여 지우는 행위를 말하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상황 즉 거래사항이나 특이사항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화회문기에 적혀있는 이 밭 부분을 효주하여 표시하고 문서 배면에 방매한 사항을 기재하였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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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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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7년 김백순(金栢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均賢 金栢淳 安均賢<着名>安一文<着名>安奇默<着名>安啓默<着名>安廣默<着名>安均瑞<着名>安應三<着名>安均龍<着名>安均善<着名>安均燮<着名>安均玉<着名>安均煥<着名>安均相<着名>安宗烈<着名>安宗連<着名>安宗旭<着名>安宗珉<着名>朴炳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1_001 1907년 11월 13일에 김백순이 안균현과 안일문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는 토지매매명문 1907년 11월 13일에 김백순(金栢淳)이 안균현(安均賢)과 안일문(安一文)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안균현은 자신의 9대조 산소가 무안군(務安郡) 이로면(二老面) 시장(市場) 뒤쪽 산기슭 남서향[艮坐] 언덕에 있는데 잔약한 자손들이 떠돌고 흩어져 수년간 제향을 지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소송 빚이 적지 않아 선산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자세하게 적었다. 선산의 계하(階下)에 있는 빈자리 한 곳을 대대로 함께 쓰기로 하고 김백순이 부모의 묘지로 입장(入葬)하고자 전문(錢文) 300냥을 받고 허급(許給)한다는 내용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에 구표(舊標) 1장도 함께 넘겨준다는 내용이 추기되었다. 이곳이 안씨 가문의 선산이기 때문에 문장(門長) 안기묵(安奇黙)을 비롯하여 차문장(次門長), 종손(宗孫)들이 이름을 나열하여 적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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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정미년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신년 8월 27일에부터 정미년 9월 10일에까지 세 차례의 수확량 및 사용 내역을 적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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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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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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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60년 김만발(金萬發)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先昇 金萬發 金先昇<着名>金光采<着名>白光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0년(영조36) 3월 22일에 김광정이 김만발에게 9마지기와 1마지기의 밭 두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60년(영조36) 3월 22일에 김광정(金光鼎)이 김만발(金萬發)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광정은 자신의 선대 조상으로부터 전래되어 상속받은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진변(津邊) 점골[點谷]이고 자호는 의자(意字)이며 양작(兩作)을 합해서 면적이 겉보리[皮牟] 9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고 부수(負數)로는 3복(卜) 2속(束)인 밭이다. 여기에 화속전(火束田) 1마지기를 합한 두 곳을 전문(錢文) 7냥을 받고 김만발에게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들 밭의 본문기(本文記)는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입안(立案)에 적혀있는 이 밭을 효주(爻周)해서 말소하였고 문서의 배면에 배탈사급입안(背頉斜給立案)을 받았다고 명기하였다. 효주는 입안에 이 밭이 적힌 부분에 가위표시를 하거나 둥그렇게 그려서 삭제 및 정정표시를 하는 행위이고, 배탈사급입안은 문서의 뒷면에 효주 표시한 부분에 발생한 변동사항을 관청에 신고하여 증명을 받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토지 매매에서 신문기의 작성과 구문기라고도 불리는 본문기 및 기타 증거서류를 매득인 측에 넘겨주는 것이 매매계약의 성립요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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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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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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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2년 노 유복(有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萬石 奴 有福 李萬石<着名>韓奴 日德<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2년(순조32) 12월 21일에 이만석이 남생원댁 노 유복에게 5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32년(순조32) 12월 21일에 이만석(李萬石)이 남생원댁(南生員宅) 노(奴) 유복(有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이만석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하게 된 경위는 자신이 매득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구자(駒字) 자호의 25답과 같은 자호의 101답이 매매 대상이다. 25답의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6부(負) 6속(束)이고 101답은 1부이며, 이 두 곳을 합해서 7부 6속, 파종량 기준의 면적으로는 5마지기[斗落只]이다.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 측에 넘겨주었고, 도지(賭地)는 3섬[石]으로 정하면서 팔았는데, 다만 기한을 두지 않고 본가(本價)에 준해서 환퇴(還退)하겠다는 조건을 두었다. 환퇴는 팔았다가 나중에 도로 무른다는 뜻이므로, 몇 년이 되었든 기한에 상관없이 본가에 이만석이 되사겠다는 것이고, 명문 내에 이 문구가 있다는 것은 남생원 측도 동의한 것이 된다. 도지를 3섬으로 하겠다는 내용이 있고, 문서 배면에 작인(作人)이 이만석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만석이 이 논을 팔고 경작은 계속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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