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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병술년 며느리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息婦 媤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술년 2월 21일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쓴 한글 편지 병술년 2월 21일에 며느리[식부(息婦)]가 시어머니[어마임]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편지는 '문안 알외압나이다'부터 '알외올 말슴 쳡〃ᄒᆞ오나 이만 알외오이다'에 이르기까지 문안 편지의 전형적인 문구들만 쓰고, 실제 안부와 근황은 기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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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京云 姜京云<着名>姜周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12월 모일에 사형 강경운이 아우에게 4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 12월 모일에 사형(舍兄) 강경운(姜京云)이 아우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경운은 자신이 기경(起耕)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고 또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흥면(大興面) 학무평(鶴舞坪)이고 자호는 단자(旦字),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 4마지기[斗落只] 수확량기준 11부(負) 6속(束)이다. 거래가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강경운이 자신을 사형이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매득인은 강경운의 아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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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76년 고강사 향사제관 분정기(高岡祠享祀祭官分定記) 고문서-치부기록류-분정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6년 9월 18일에 고강사(高岡祀) 향사에서 역할분담을 나눈 문서 참여자: 헌관(獻官) 정성채(鄭城采), 박형만(朴炯萬), 홍갑식(洪甲植), 진설(陳設) 민유식(閔濡植), 집례(執禮) 이성규(李星圭), 축(祝) 문재국(文在國), 봉향(奉香) 김정호(金正鎬), 봉로(奉爐) 안재경(安載京), 사존(司尊) 민남식(閔南植), 봉작(奉爵) 윤재평(尹在平), 전작(奠爵) 양동수(梁東壽), 찬인(贊引) 신인규(申仁圭), 학생(學生) 원(原) 양수승(梁壽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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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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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1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사 지낼 날을 정하기 위해 점을 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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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72년 신억복(申億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氏 申億福 田貴得 母 朴氏<右手掌>金祿福<着名>金重燁<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72년(영조48) 11월 13일에 전귀득의 모 박씨가 신억복에게 20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72년(영조48) 11월 13일에 전귀득(田貴得)의 모(母) 박씨(朴氏)가 신억복(申億福)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박씨는 이사할 때 쓰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요하게 된 경위는 자신이 매득했다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의 남문(南門) 밖이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0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21부(負) 1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55냥으로 정하여 받고, 본문기(本文記) 6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신억복은 2년 뒤인 1774년에 김광훈에게 이 밭을 파는데 그 때에도 거래가가 55냥이고, 1799년에도 역시 55냥에 거래된 것을 관련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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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사돈 언간(諺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査 査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9월 21일에 상중에 있는 사람이 사돈에게 쓴 한글 편지 9월 21일에 상중에 있는 사람이 사돈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첫머리에는 상중의 편지를 뜻하는 '소샹장(疏上狀)'을 쓰고, 여러 달 버려두었던 종이와 지필을 다시 잡아 쓰려니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가을을 맞아 사돈과 바깥사돈의 안부와 함께 사위[현낭(賢郞)]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물었다. 딸아이가 이번에 와서 여러 형제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있어 기쁘다고 하였으며, 손아 남매도 충실하고 기특하며 어여쁘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400원을 보내니 고치를 조금 사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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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 종계첨원(宗禊僉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舜羽 宗稧僉員 舜羽<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4년(영조30) 10월 25일에 종말 순우가 종계에 8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54년(영조30) 10월 25일에 종말(宗末) 순우가 종계(宗稧)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순우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하게 된 경위는 원생원(元生員)에게 매득한 논이라고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양천군(陽川郡) 남산면(南山面)이고 자호는 화자(化字), 지번은 10내답(內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8복(卜) 8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8마지기[斗落只]이다. 이 논을 전문(錢文) 18냥을 받고 종계의 계원들 앞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넘겨줄 수 없고, 대신 이 논이 적힌 부분을 효주(爻周)하여 말소하고 배탈(背頉)하였으며, 원생원으로 부터 매득한 원문기(元文記) 1장과 패자(牌字) 1장을 종계에 넘겨주었다. 효주는 본문기내에 이 밭이 적힌 부분에 가위표시를 하거나 둥그렇게 그려서 삭제 및 정정표시를 하는 행위이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것 즉 변동사항이 생긴 것을 일시와 함께 적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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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신재철(愼在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承翰 愼在哲 崔承翰<着名>羅弼珣<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2년(순조32) 12월 25일에 유학 최승한이 유학 신재철에게 1마지기의 논과 4마지기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32년(순조32) 12월 25일에 유학(幼學) 최승한(崔承翰)이 유학 신재철(愼在哲)에게 논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최승한은 자신이 매득해서 경작해왔다고 소유하게 된 경위를 밝혔고, 다른 곳으로 이거(移居)하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선암촌(船巖村)이고 자호는 성자(星字)이고, 1마지기[斗落只] 논과 4마지기 밭 두 곳이다. 논의 부수(負數)는 5복(卜) 1속(束)이고 밭의 부수는 6복 5속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1냥이다. 이 전답의 본문기(本文記)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유학 나필순(羅弼珣)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을 하였다. 논의 면적을 표기할 때 파종량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 있는데, 앞의 마지기는 파종량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곡식의 씨앗을 논밭에 뿌릴 때 그 씨앗의 총부피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부수는 복수(卜數)라고도 하는데 이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다. 이는 수확된 곡식의 낱알 부피를 기준으로 해서 단계별로 파속결부(把束負結)이 있다. 앞의 파(把)는 한 줌, 속(束)은 한 단, 부(負)는 복(卜)과 같은 의미로 한 짐, 즉 지게로 한 번 질 수 있는 양을 뜻한다. 곡식의 수확량은 토지 면적의 단위로도 쓰이고 동시에 전세(田稅)의 과세 단위로도 사용되었다. 이렇게 두락수와 결부수를 병기하는 방식은 조선 후기로 올수록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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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白汶洙 白汶洙<着名>金肇業<着名>金元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14_001 1834년(순조34) 3월 28일에 백문수가 누군가에게 초가와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34년(순조34) 3월 28일에 백문수(白汶洙)가 누군가에게 초가와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백문수는 올해 춘궁기를 당하여 세미(稅米)를 마련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 교동(橋洞)으로, 오늘날 고창군 성내면 지역이다. 매물은 존자(存字) 자호의 3칸짜리 초가와 1마지기[斗落只]면적의 집터[家基], 그리고 상동(上洞)에 있는 이자(以字) 자호의 4마지기 14복(卜) 9속(束) 면적의 밭과 올해 모곡(牟穀)까지 포함한 것이다. 결가(結價) 34복(卜)을 쌀 8말[斗] 7되[刀] 4홉[合]과 병모(幷毛) 10말 4되 5홉으로 바치고 상대방이 영영 차지하되, 본문기(本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할 수 없다고 적었다. 매매가를 백문수가 직접 받은 것이 아니고 세미를 상대방이 직접 바치는 것으로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집(筆執)을 풍헌(風憲)이 담당하고, 증인을 장차(將差)가 담당한 것 역시 세미를 납부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문서를 보면 2년 전 백문수가 이 가옥을 포함한 밭을 살 때에는 이름이 백문휴(白汶休)로 되어 있어 어느 한쪽의 오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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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8년 김시호(金始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順哲 金始浩 李哲孫<着名>郭致尹<着名>金完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31_001 1868년(고종5) 12월 20일에 이순철이 김시호에게 3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68년(고종5) 12월 20일에 이순철(李順哲)이 김시호(金始浩)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이순철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에 대해서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유고개(柳古介)이고 자호는 양자(良字)이며, 지번은 53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1복(卜) 1속(束)이고 구획상으로는 2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는 정조(正租) 3마지기[斗落只]이다. 사표(四標)를 기재하였는데 동쪽은 같은 논이 있고 북쪽은 작은 도랑이 있으며 서쪽은 남치관(南致官)의 논이 있고 남쪽은 김두송(金斗松)의 밭이 있다. 동쪽의 같은 논은 이 명문의 구문기(舊文記)를 보면 같은 사람의 논, 즉 이순철의 논이 있다는 의미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40냥이다. 이철손과 곽치윤이 증인으로, 김완수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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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노 돌몽(乭蒙)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高春心 奴 乭蒙 高春心[着名]金明德[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2월 3일에 고춘심이 최 예안 댁 노 돌몽에게 홍주 금동면 소재 전답 3곳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문서 1904년 2월 3일에 고춘심(高春心)이 최예안댁(崔禮安宅) 노 돌몽(乭蒙)에게 홍주(洪州) 금동면(金洞面) 소재 전답 3곳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취자(聚字) 자호의 논 2두락과, 취자 자호의 밭 6두락, 또 동일한 취자 자호의 밭 6두락으로 모두 3곳이다. 모두 합해 전문 350냥의 가격에 매매가 성립했으며,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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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允洪 金允弘[着名]鄭成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그믐날에 김윤홍이 오동면 소재 논 6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4년 4월 그믐날에 김윤홍(金允洪)이 오동면(五東面) 응청평(應靑坪) 소재 논 6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이고, 값은 전문 30냥이다. 매득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았다. 구문기를 서실(閪失)하여 내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 발급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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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氣還 姜氣還[着名]韓致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1월 10일에 강기환이 오동면 소재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8년 1월 10일에 강기환(姜氣還)이 오동면(五東面) 사계촌평(沙溪村坪)에 있는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의 자호는 우자(友字)이며, 규모는 7마지기이고 부수(負數)로는 21부이다. 값은 전문 140냥이며, 매득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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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사윤기(史允基)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樂洪 史允基 金樂洪<着名>金宗元<着名>朴乃聖<着名>金京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고종12) 2월 27일에 김낙홍이 사윤기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5년(고종12) 2월 27일에 김낙홍(金樂洪)이 사윤기(史允基)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김낙홍은 자신의 선산이 고읍(古邑)의 사금(沙金) 뒤쪽에 있는데 생활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선산 터를 사윤기에게 전문(錢文) 35냥을 받고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산지의 경우 사방 경계를 명시하는 사표(四標)를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서에서는 쓰지 않았다. 구문기(舊文記)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종원과 박내성이 증인으로, 김경범이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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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조학규(趙學奎)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以中 趙學奎 朴以中<着名>朴以彦<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고종12) 2월 17일에 유학 박이중이 조학규에게 2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5년(고종12) 2월 17일에 유학(幼學) 박이중(朴以中)이 조학규(趙學奎)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박이중이 이 논을 소유하게 된 경위는 조상으로부터 전래되었고, 수년 동안 경작해 오다가 형편상 긴히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소재지는 초점면 초치 남쪽 들이고 자호는 장자(章字)이며, 지번은 32, 34, 37답을 합한 세 곳이고 세 곳을 합한 면적은 수확량 기준 8복(卜) 2속(束),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며 구획상으로는 2배미[夜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80냥이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에게 넘겨줌으로써 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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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손부(孫婦) 언간(諺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孫婦 媤祖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523_001 신묘년 12월 11일에 손부(孫婦)가 시조모(媤祖母)에게 쓴 한글 편지 신묘년 12월 11일에 손부[숀부]가 시조모[한마님]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납한(臘寒) 추운 날씨에 건강이 어떠신지 묻고 내내 편안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으며, 자신은 친환(親患)으로 편치 못한 상황임을 알렸다. 손부는 〈신묘년 손부(孫婦) 언간(諺簡) 1〉와 같이 시조부에게도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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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6년 유재형(劉載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劉載亨 劉載亨信 1顆(적색, 원형,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92_001 1916년 2월 17일에 유재형이 논 2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 문서 1916년 2월 17일에 유재형(劉載亨)이 논 2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오산면(五山面) 인동(仁洞)이며, 자호는 부자(父字)이다. 매매한 논의 규모는 2마지기 5야미(夜味)이고 부수(負數)로는 8부 4속이다. 유재형은 이 토지를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소유했는데 이번에 전문 150냥 가격으로 이를 방매하고 있다. 하지만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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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1년 이동철(李東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東喆 李東喆信 1顆(적색, 원형, 1cm)李鍾烈信 1顆(적색, 원형, 1cm)林錫泰信 1顆(적색, 원형, 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92_001 1911년 8월 14일에 이동철이 고창군 오서면 인동리 소재 논 2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 문서 1911년 8월 14일에 이동철(李東喆)이 논 2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오산면(五山面) 인동(仁洞)이며, 자호는 부자(父字)이다. 매매한 논의 규모는 2마지기 5야미(夜味)이고 부수(負數)로는 8부 4속이다. 가격은 전문 220냥이며,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문기 끝부분에 참석자로 증인의 이름과 함께 이장의 이름이 있는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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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신묘년 손부(孫婦) 언간(諺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孫婦 媤祖父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523_001 신묘년 12월 12일에 손부(孫婦)가 시조부(媤祖父)에게 쓴 한글 편지 신묘년 12월 12일에 손부[숀부]가 시조부[하나밤]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납한(臘寒) 추운 날씨에 건강이 어떠신지 묻고 내내 편안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으며, 자신은 친환(親患)으로 편치 못한 상황임을 알렸다. 손부는 〈신묘년 손부(孫婦) 언간(諺簡) 2〉와 같이 시조모에게도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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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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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9년 윤효병(尹孝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秉會 尹孝炳 金秉會[左寸] 金秉會印 1顆(적색, 1.2×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 11월 28일에 김병회가 윤효병에게 논 6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9년 11월 28일에 김병회(金秉會)가 윤효병(尹孝炳)에게 논 6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의 소재지는 청주(淸州) 서강내이상면(西江內二上面)이며, 자호는 윤자(閏字)이다. 방매한 논은 6마지기이고 부수(負數)로는 19卜 4束이다. 값은 전문 575냥이며, 구문기 1장도 함께 건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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