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尙憲 金尙憲<着名>柳樂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6월 19일에 김상헌이 누군가에게 논 6마지기를 4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6월 19일에 김상헌(金相憲)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상헌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간단하게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어등청평(於應淸坪)이고 자호는 적지 않았다. 논의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6마지기[斗落只]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4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유낙기(柳樂基)가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앞면현부 답 바다 ᄉᆞᆯ펴라자아난 만복초ᄅᆡ랄 ᄯᅳ우고 회편 듯기ᄅᆞᆯ셔〃 고ᄌᆞᆨ 할 ᄎᆞ 일야 후 너 시부 오시와 너모다 요조현슉한 쥴 너 싀부 보시고 조ᄒᆞ조하 ᄌᆞ졍ᄋᆡ 잇지 못 자랑 못ᄂᆡ 하압신이 듯기 쾨활ᄒᆞᆫ 심ᄉᆞ이시니 여연 동셔남북앙망ᄐᆡᆨ부하든 소망함 혹 넘쳐 비유할 ᄃᆡ 업ᄉᆞᆸ고 그 후 날ᄉᆞ이 아ᄒᆡ 오기를 셔〃고ᄌᆞᆨ할 ᄎᆞ 문득 닷친이 암ᄌᆞᆨ 탐〃 반기고 너ᄋᆡ 만ᄌᆞᆼ옥필 바다 급〃 양슈ᄋᆡ 마조들고 ᄌᆞ〃 혹 ᄉᆞᆯ핀이 너ᄋᆡ 월부ᄒᆡ용이지ᄉᆞᆼᄋᆡ 가득 어리온닷 옹〃 깃부고 ᄌᆡ슉식슈 업서 ᄉᆞᆯ핀다 슈지 헛것신듸손밧흔이 슈즁 인ᄂᆞᆫ 보화랄 쥬어다가노흔 듯 사오키로 셩〃ᄒᆞᄋᆞᆸ기 이을 ᄌᆡ 업ᄉᆞᆸ 어느듯 즁츈일ᄉᆡ 풍셜ᄒᆞ온ᄃᆡ 연ᄒᆞ와 사돈 양위분 허다 슈션 즁 긧체 일안하압시고 슌셩 졀무신 ᄃᆡᆨ 외ᄂᆡ분 쳡쳡소임 즁 무쳠이시며 깃ᄎᆞ 윤옥 시형ᄌᆡ분 기린봉도로 ᄌᆞ라시며 너도 쳔금신ᄉᆞᆼ 츙실옥안이 기화로 ᄌᆞ라 슈쳑할 젹 업ᄉᆞᆫ가 영〃ᄒᆞ다 소ᄐᆡᆨ 겻사돈뒷면각위분 안ᄉᆞᆼ들 ᄒᆞᄋᆞᆸ시고 근원 당ᄂᆡᄎᆞ〃하오이 화졍이시며 ᄎᆞ곳도 안노친글역 여젼하시고 너 시부겨셔 허다 슈선 즁별쳠 업사시고 시모도 소〃다병 괴롭든이너 현슉한 소문 듯고 괴로오물 모란다슬ᄒᆞ ᄂᆡ외 골물 즁 무ᄉᆞ 깃부고 아ᄒᆡ 혈숙 중ᄂᆞᆫ〃〃 부ᄋᆞ야 그 졍셩 식물과 조한 것이곳 바다 변화 다족 ᄉᆡᆼᄉᆡᆨ할 양 업ᄉᆞᆸ 소위 성답은 빈송 바다 너 오ᄌᆞᆨ 섭〃할가 ᄌᆞᆼᄂᆡ 오복이ᄒᆞ노 관ᄀᆡ 업ᄉᆞ니 무겁ᄌᆞᆫ은 옹극이ᄂᆞ가득 다마오며 ᄉᆞᆼᄎᆡᆨ일다 할 말 수다ᄒᆞᄂᆞ노흔 졍신 모르지 못 이만 긋친다 이후 망은 윤ᄐᆡᆨ한 소문 자 ᄌᆞᄋᆞ 수이 오기 극원〃〃임인 이월 염구일 시모 셔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25년 백종현(白琮賢)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國煥 白琮賢 姜國煥<着名>金順孫<着名>白聖春<着名>白元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 2월 27일에 강국환이 백종현에게 7마지기 논을 6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25년 2월 27일에 강국환(姜國煥)이 백종현(白琮賢)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국환은 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가난 때문에 부득이 할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신동(薪洞)이고, 자호는 정자(靜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0복(卜),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화재로 불타버렸기 때문에 배탈(背頉) 문기를 점련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배탈문기가 배탈사급입안(背頉斜給立案)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간략하게 배면에 변동사항을 기재하였다는 것인지 자세하지 않지만, 배탈은 문서에 적힌 내용의 일부에 매매나 양도 등에 의해 변동이 발생하였을 때 해당 부분을 표시 또는 말소하고 문서의 배면에 변동사항을 기재하는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890년 이성진(李聲震) 밧자기(捧上記) 1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李聲震 도장 3顆(녹색,원형,2.5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61_001 1890년 3월 15일에 이성진이 자신의 논을 판 뒤 매수인에게 매매가 90냥을 받았다는 내용의 밧자기 1890년 3월 15일에 이성진(李聲震)이 자신의 논을 판 뒤 매수인으로부터 매매가 90냥을 받고 발급한 밧자기이다. 이에 앞서 이성진은 동년 3월 1일에 고창군(高敞郡)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에 있는 자호가 성자(性字)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14배미[夜味]인 논을 전문(錢文) 190냥을 받고 누군가에게 파는 내용의 매매명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7일에 매매가 190냥 가운데 100냥을 받았고 남은 잔금 90냥은 15일에 받은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57년 안상흥(尹相興) 토지교환증서(土地交換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煥 尹相興 張明煥信 1顆(적색,정방형,1.3cm)安德扇 1顆(적색,지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7년 2월 18일에 장명환이 윤상흥에게 자신의 밭 400평 6마지기를 상호 교환하면서 작성한 토지 교환증서 1957년 2월 18일에 장명환(張明煥)이 윤상흥(尹相興)에게 작성해준 토지교환증서이다. 토지의 소재지는 신흥리(新興里) 북수동(北水洞) 윗편이고, 이 밭을 중간에서 나눈 400평(坪) 6마지기[斗落只]이다. 이 토지는 장명환의 소유인데 윤상흥에게 서로 교환하되, 여기에 돈 30,000원을 더 얹어서 피차간에 영영 교환하기로 증서를 작성한다는 내용이다. 이 문서에는 윤상흥의 어느 토지와 교환하는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0년 윤행수(尹行秀) 토지매매증서(土地賣買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炳極 尹行秀 尹炳極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음1월 27일에 윤병극이 윤행수에게 밭 2마지기를 82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증서 1920년 음1월 27일에 윤병극(尹炳極)이 윤행수(尹行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증서이다. 토지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909호이고, 지목은 전(田),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137평(坪)이며, 매매대금은 82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士宗 鄭士宗信 2顆(적색,원형,1cm)鄭在源信 1顆(적색,원형,1cm)徐晩容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윤5월 24일에 정사종이 누군가에게 행랑이 딸린 7칸 가옥과 수목 등을 2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4년 윤5월 24일에 정사종(鄭士宗)이 누군가에게 가대(家垈)와 그에 딸린 수목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사종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소유하게 된 가옥을 수년 동안 거주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방화리(芳花里)이고, 가옥의 규모는 체사(體舍) 3칸과 행랑을 합하여 7칸 규모이고, 여기에 시막(柿幕) 2칸과 감나무 9그루, 배나무 1그루가 매물이다. 이 가대는 자호는 적자(積字)이고 면적은 4부(負) 4속(束)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290냥이다. 이 가대의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화재로 없어졌기 때문에 출급할 수 없다는 내용을 문서 말미에 추기하였다. 이 거래에 정재원(鄭在源)이 보증인으로 참여하였고 이장(里長) 서만용(徐晩容)이 참여하여 도장을 날인하였다. 이 당시에 이장이 매매명문에 등장하는 것은 1906년과 1907년에 공포한 토지가옥증명규칙과 토지가옥증명사무처리순서와 관련된 것으로, 이 증명 규칙에 의하면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뒤에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의 '인증'과 군수(郡守) 또는 부윤(府尹)의 '증명'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였는데, 지방의 경우는 이장이 매매명문에 서명 날인함으로써 인증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聲震 李聲震<着名>姜成運<着名>柳致瑞<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61_001 1890년 3월 1일에 이성진이 누군가에게 15마지기의 논을 1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0년 3월 1일에 이성진(李聲振)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성진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이고 자호는 성자(性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14배미[夜味], 매매가는 전문(錢文) 19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강성운(姜成運)이 증인으로, 유치서(柳致瑞)는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기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그리운 그ᄃᆡ의젼 샹쟝유슈광음은 참우로 속한지라 그대와 담화하든그 절도 몽즁에 사라지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마음껏열성하옴는지요 요즈은 그대의 전편이 너무나 적조하여 붓을 물리는 바임니다 때는 변하여 방〃곳〃이아름다운 녹음은 한층 더 짙여가는 이때ᄋᆡ 연이나쾨활치 못한 몸이나 슈척지 안이하온가 도로혀 가슴만 떳ᄂᆞᆫ 바임니다 벡사일〃의 족음의 음〃 면치지못하와 우연이 아버님은 동장과 막〃 신간이 있어서 지서까지열락이 있고 이런 별일이 단치고 아버님은 병환이 대단하온이 아마 회츈하시 어려운 일임니다그대의 입장이 이러하온대 우야든지 사정하야 상관님의 좋흔 명령ᄋᆡ 부대 한 슌 시금히어 단녀가시기만고대함니다 이러한 필세 즁ᄋᆡ 그대시 너무 신경을올릴까 용여 마러시기를 츅복하나이다 그리고 영친한이한테 편지를 바다보았는지요 대단 굼겁함니다 이이넘어서 편지조차 전키는까 싶으요 일데 소로 당신오시기만 뻐스연에 몸을 기대고 종일토록춤없이 기다립니다 여기는 한창 순기가 한창임니다그대는 어너 지방에 간장을 녹이고 무정 세월을 허송할까집안 제절리 무고하옵고 어린 것도 성식하오며 다행이옵나이다 먼저 번 편지를 바다보았는지요이날 슈소식이 무소식이니 그 변은 어떻타는 심정을 속세ᄉᆞ듣들 소원하는 바임니다 할 말 다 못 괴ᄉᆞ하온니 웃지난 마음언제나 좋흔 바리 다시 만나 악슈 상봉하여잇ᄀᆞ 고로 등일체로 편하신지요 끝으로 몸이나 잘 보즁하시기만 두손 모아 비나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사돈 언간(諺簡)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査弟 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봄철에 사돈에게 쓴 한글 편지 봄철 사돈[사형시(査兄氏)]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귀한 가문과 인연을 맺어 사돈이 되었음을 즐거워하면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차에 도착하여 정성스러운 음식과 편지를 받았다며 기뻐하였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봄철에 사돈 내외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며느리가 수척해지지는 않았는지 궁금해하였다. 자신[ᄉᆞ제(査弟)]은 홀로 계신 시어른께서 큰 병환이 없으시나 항상 염려하고 있는 등의 가족들 근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사돈이 받은 것 없이 항상 정성스러운 음식물을 보내주시는 데 대하여 민망해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演注 鄭演注<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윤5월 26일에 사돈 정연주가 사돈댁에 논 1마지기를 20냥을 받고 전당을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 1876년(고종13) 윤5월 26일에 사돈[査末] 정연주(鄭演注)가 사돈댁에 논을 전당(典當)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정연주는 긴급한 빚 때문에 부득이 자신이 매득했던 논을 전당 잡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난현내원(蘭縣內員)이고 자호는 국자(鞠字), 면적은 1배미[夜味] 2마지기[斗落只]이다. 가격은 20냥으로 결정하되 1냥에 황조(荒租) 7되[升]씩으로 정하여 상대방에게 전당을 잡혔다. 그리고 훗날 약속한 화곡(禾穀)을 기일 안에 내지 못하면 이 문기를 근거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 팔아도 된다고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박치윤(朴致允)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致祺 朴致允 朴致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10월 26일에 박치기가 박치윤에게 12냥을 받고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10월 26일에 동수(洞首) 박치기(朴致祺)가 박치윤(朴致允)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본 동(洞)이 올해 큰 흉년을 당한 나머지 호포(戶布)와 각종 역(役)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어 부득이 마을 뒤쪽에 있는 동답(洞畓)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동답은 10배미[夜味]의 콩밭으로 면적이 파종량 기준으로는 10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10부(負) 4속(束)인 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2냥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12년 박상좌(朴相佐)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朴以馨 朴相佐 朴以馨 1顆(적색,원형,1.2cm)金錫煥 1顆(적색,원형,0.7cm)朴壕箕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2월 7일에 박이형이 박상좌에게 송전을 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12년 2월 7일에 박이형(朴以馨)이 박상좌(朴相佐)에게 송전(松田)을 팔면서 작성한 계약서이다.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간단하게 적었다. 소재지는 신평(新坪)이고 이곳의 양지쪽 한 편(片)의 송전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박상좌에게 방매한다는 내용이고,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이장(里長) 박호기(朴壕箕)가 참여하여 이름을 적고 도장을 날인하였다. 이 문서는 일본 연호를 사용하여 연월일을 표기하고 명문 대신 계약서(契約書)라고 썼으며 이장(里長)이 등장한다는 점 등 계약서와 명문의 양식이 혼재하는 이 시기 문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43년 조국형(趙國衡) 영수증(領受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徐正涵 趙國衡 徐正涵 1課(적색,타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3년 4월 5일에 서정함이 조국형에게 족보 간행비 2원을 받고 발급해준 영수증 1943년 4월 5일에 서정함(徐正涵)이 조국형(趙國衡)에게 족보 간행비를 받고 발급해준 영수증이다. 금액은 2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918년 임야정리사무소증거서(林野整理事務所證據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장 安明舜 務安郡一老面支壯里林野整理事務所 安明舜信 1.5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8년 4월 1일에 무안군 임야정리사무소에서 박경운이 안처중에게 계약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서 1918년 4월 1일에 무안군(務安郡) 임야정리사무소(林野整理事務所) 총대(總代) 안명순(安明舜)이 발급한 증거서(証據書)로, 괘선이 그려진 인찰지에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된 문서이다. 내용은 무안군 박곡면(朴谷面) 귀학리(貴鶴里)에 사는 박경운(朴京云)이 본군 이로면(二老面) 서암동(西岩洞)에 사는 안처중(安處仲)에게 계약을 승낙한 날짜가 확실하다고 한 것에 대해 임야정리사무소에서 확실히 조사한 결과 안처중이 무술년 12월 10일에 사망하였기에 이에 계약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서는 무안군 일로면 지장리 임야정리사무소의 조사 처리에 의하여 등출(謄出)한다고 하였다. 일제는 종래 한국의 토지·임야소유제를 반봉건적 소유제도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사적 소유제를 형식적으로 도입한 임야조사사업을 실시해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식민지 수탈의 양대 기초로 삼았다. 토지조사에서 제외된 임야의 소유권과 경계를 법적으로 확립하고 임야에 근대적인 등기제도를 도입해서 사유림의 소유관계를 재편하려고 하였는데 실제 목적은 한국인의 소유권과 사유림을 약탈하려는 의도였다. 이 사업은 1917년부터 1924년까지 9년간 조사와 측량을 포함하는 1차 사정사무를 실시했는데, 이 문서도 임야의 거래 및 소유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26년 현학규(玄鶴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金貞根 玄鶴圭 玄鶴圭信 1顆(적색,원형,1.2cm)全行圭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1월 13일에 김정근이 현학규에게 1마지기의 논을 12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26년 1월 13일에 김정근(金貞根)이 현학규(玄鶴圭)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정근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담양군(潭陽郡) 고서면(古西面) 고읍리(古邑里) 향교평(鄕校坪) 590번지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가는 120원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며 훗날 다른 말을 하게 되면 이 문기가 증빙자료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일본 연호를 쓴 점과 매도인, 매수인이라는 용어를 쓴 것 외에는 기존 매매명문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매매계약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문서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29년 이의홍(李義洪)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金富德 李義洪 金富德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월 22일에 김부덕이 이의홍에게 밭 2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29년 1월 22일에 김부덕(金富德)이 이의홍(李義洪)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이다. 매매가 73원을 받고 이의홍의 영구 소유가 되기로 증서를 작성한 것이다. 매매 부동산의 지목(地目)은 전(田)이고 4마지기[斗落只]에서 2마지기를 분할한 것이다. 번지는 82번지라고 썼는데 토지의 소재지는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면적을 기존 두락수로 쓰면서도 일본식 평수(坪數)도 함께 기재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30년 조세주(趙世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天漢 趙世周 梁天漢<着名>金老東<着名>金麗興<着名>柳就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가 양천한으로부터 10마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趙世周)가 양천한(梁天漢)으로부터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양천한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처가로부터 상속받은 밭을 팔게 되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라고만 적고 자세한 위치는 기재하지 않았다. 자호는 치자(致字)이고 이 밭의 북쪽으로 면적이 수확량 기준으로 10부(負), 파종량 기준으로 10마지기[斗落只]인 곳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 1장과 입지(立旨)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또 화회문기(和會文記)에 효주(爻周) 배탈(背頉)하였다고 하였는데, 화회문기는 분재기(分財記) 류의 문서로서 노비나 토지 등의 재산이 재주(財主) 생전에 재주의 의사에 따라 분재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재주 생전에 지정이 없던 경우 재주 사후에 그 자녀들이 화회(和會)하여 합의에 의하여 분집(分執)된다. 이처럼 화회에 의하여 재산을 분집하는 문서가 화회문기이다. 효주는 거래 대상물이 기재된 본문기 상의 기재처에 가위표나 기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를 하여 지우는 행위를 말하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상황 즉 거래사항이나 특이사항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화회문기에 적혀있는 이 밭 부분을 효주하여 표시하고 문서 배면에 방매한 사항을 기재하였다는 의미이다.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한 사람이 처남과 사촌처남인 것은 이 토지의 취득 경위가 처가에서 상속받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宗修 安宗修<着名><手掌>安一文<着名>任奉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18일에 안종수가 누군가에게 소송으로 발생한 빚을 갚기 위해 선산의 일부를 허급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18일에 안종수(安宗修)가 누군가에게 선산의 일부를 매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안종수는 자신의 7대조 선산이 무안군(務安郡) 이로면(二老面) 덕정(德亭)의 오른쪽 산기슭 면우동(眠牛洞)에 있는데 집안의 운수가 불행하여 영암(灵岩) 영보(永寶)의 최성윤(崔成潤)이 투장(偸葬)을 한 일로 6~7차례 정소(呈訴)하여 대변(對卞)한 뒤에 그동안 들어간 비용이 7~800냥에 이르게 되었고, 형편이 부득이한 상황이라 선산 아래를 영구히 방매하여 빚을 갚는 의미로 상대방에게 허급(許給)한다는 내용이다. 방매인 안종수와 함께 아들 안일문(安一文)도 함께 이름을 적고 착명(着名)하였다. 매수인의 이름은 기재하지 않았고, 유학 임봉신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2년 김도윤(金道允) 수표(手標)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道允 金道允<着名>丁聖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1월 27일에 김도윤이 누군가에게 20냥을 주면서 산소를 함께 사용하기로 약속하는 뜻을 문서로 작성한 수표 1902년 1월 27일에 김도윤(金道允)이 누군가에게 작성해준 수표이다. 자신이 이곳에 무덤을 쓴지 이미 30여년이 되었는데 지금 무덤을 파가라고 운운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김도윤은 무덤주인의 처지에서 상대방에게 무덤을 파내지 않는 대신에 돈 20냥을 주면서 이 수표를 작성하였다. 훗날 자손 중에 누구든 혹은 타인이라도 이에 대해 소란을 야기하는 폐단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