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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瑨基 瑨基<着名>金斗萬<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고종4) 8월 6일에 족질 진기가 족숙에게 가옥과 밭 5마지기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67년(고종4) 8월 6일에 족질(族侄) 진기(瑨基)가 족숙(族叔)에게 가옥 등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진기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중리(中里)에 있는 정침(正寢) 4칸과 사랑채 3칸의 초가(草家)와 회자(懷字) 자호의 대전(垈田) 5마지기[斗落只], 뽕나무[桑木] 5그루, 감나무[柿木] 5그루인데, 후원(後園)에 있는 감나무 위쪽으로부터 1파(把)를 한계로 한다고 하였는데 이때의 '파'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미상이다. 여기에 더하여 회자(懷字) 자호의 면전(綿田) 3마지기와 그동안 경식(耕食)해오던 논 아래에 11마지기, 사계촌(沙溪村) 앞에 있는 6마지기를 모두 합하여 전문(錢文) 40냥을 받고 족숙에게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이들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김두만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는데 방매인이나 증인 모두 착명을 하지 않은 점이 불완전한 문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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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妻母]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妻母 壻君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모가 사위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장모[처모(妻母)]가 사위[서군(壻君)]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첫머리에 '사위에게 답장으로 부치는 편지[서군답기서(壻君答寄書)]'를 써서 수신자를 명시하였다. 며칠 머물지 못하고 훌훌 떠난 사위에게 무사히 사돈 두 분 슬하로 돌아갔는지 묻고, 사위의 어여쁜 모습과 목소리를 그리워하였다. 함께 지낼 때 자정(慈情)을 베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하루빨리 부자(父子)가 행차하시어 옹서(翁婿) 간 정회를 풀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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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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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사돈 언간(諺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査弟 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연말에 사돈에게 쓴 한글 편지 연말에 사돈[ᄉᆞ형씨(査兄氏)]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해가 바뀌는 때에 사돈 두 분의 안부를 묻고, 현부(賢婦)를 비롯한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였다. 돈아(豚兒)는 오늘 보내니 반기실 듯하나, 답례로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말로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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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任運模 任運模<着名>丁錫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8년(고종5) 3월 29일에 임운모가 누군가에게 논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8년(고종5) 3월 29일에 임운모(任運模)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임운모는 자신이 매득해서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수곡면(水谷面) 칠암촌(七岩村) 모퉁이이고 자호는 형자(形字),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5배미[夜味]인 곳이다. 거래가는 전문 35냥이다.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건네줄 수 없다고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정석의(丁錫義)가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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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고생원댁 노 봉문(鳳文)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春成 奴 鳳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고종6) 12월 12일에 전춘성이 고생원댁 노 봉문에게 2마지기 논과 2마지기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6) 12월 12일에 전춘성(全春成)이 고생원댁(高生員宅) 노(奴) 봉문(鳳文)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춘성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상속을 통해 소유하게 된 전답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방매 사유는 이매(移買)라고 적었다. 이매는 원거리의 전답을 팔아 인근의 땅을 산다는 의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석정촌(石亭村)이고 논의 자호는 우자(羽字)이고 밭의 자호는 상자(翔字)이다. 우자 논의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19속(束)이고, 밭은 2편(片)으로 태종(太種) 2마지기, 부수는 12복(卜) 9속(束)이며, 여기에 묵은 밭 1복 1속을 합하여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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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明三 金明三[着名]柳公眞[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3월에 김명삼이 오동면 봉산리 소재 모시밭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3년 3월에 김명삼(金明三)이 저전(苧田)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계약 문서이다. 매매한 모시밭은 오동면(五東面) 봉산리(蜂山里)에 있으며, 가격은 전문 50냥이다. 매수한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구문기는 값을 받은 후에 내어 준다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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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송윤호(宋允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璟國 宋允浩 金璟國<着名>金軫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6년(고종23) 1월 22일에 김경국이 송윤호에게 밭 6마지기를 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6년(고종23) 1월 22일에 김경국(金璟國)이 송윤호(宋允浩)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경국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사유는 이 밭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 남양면(南陽面) 하거촌(下巨村) 뒤 금정허동(金丁虛洞)이고 자호는 훼자(毁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6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3부(負) 5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8냥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한다고 하였고 본문기(本文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 거래에 김진현(金軫鉉)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흥양군 남양면 하거리는 현재의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와 신흥리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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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曺瑛承 曺瑛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6년(고종23) 2월 25일에 조영승이 누군가에게 가대와 전답 등을 37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6년(고종23) 2월 25일에 조영승(曺瑛承)이 누군가에게 가대(家垈)와 전답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영승은 세미(稅米)와 각 공전(公錢)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중리(中里)이고, 매물은 회자(懷字) 자호의 가대 4칸, 대전(垈田) 1마지기[斗落只] 2부(負), 논 1마지기 5부, 모시밭[苧田] 1마지기 2부, 콩밭[太田] 5되지기[升落只] 1부 7속(束), 목화밭[綿田] 3마지기 2부 7속이다. 이들을 모두 합하여 전문 37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는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조영승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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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學烈 金學烈<着名>劉洛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8월 21일에 김학열이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5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2년 8월 21일에 김학열(金學烈)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학열은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천남면(川南面) 역해하평(驛海下坪)이고 자호는 시자(始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5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김학열의 이름 앞에 도(屠)라고 쓴 것은 백정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낙선(劉洛善)이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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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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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田福洪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11월 28일에 출신 전복홍이 누군가에게 논 1마지기를 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2년 11월 28일에 출신(出身) 전복홍(田福洪)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복홍은 선대로부터 내려온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 남양면(南陽面) 대고음평(大古音坪)이고 자호는 모자(慕字), 면적은 1마지기[斗落只] 2복(卜)인 논을 전문 3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사촌인 전찬범(田贊範)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는데 착명을 하지 않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명문인지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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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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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1년 이 박사댁(李博士宅)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錫奉 李博士宅 朴錫奉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11월 10일에 박석봉이 이 박사댁에게 논 2마지기를 8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1년 11월 10일에 박석봉(朴錫奉)이 이 박사댁(李博士宅)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석봉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많은 사채(私債)로 인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면(大面) 학동(鶴洞) 신기후평(新基後坪)이고 자호는 봉자(奉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9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6부(負) 4속(束)인 논을 전문(錢文) 85냥을 받고 팔았다. 구문기는 없어졌으므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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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列郡通文(45) 右文爲通諭事伏以後學之於先賢生則師事之歿則祀享之亘萬古不易之常典也接準羅州鄕校來通則以爲高山祠是蘆沙先生三十年講道之所而卽退栗尤之陶石華也湖南之士及門而薰沐列於四科十哲者衆而若鄙鄕難窩吳公以詩禮家肖嗣承襲庭訓早有求道之志贄謁先生先生一見許其德容文華先以修齊正心之要白圭之玷可磨斯言之玷不可爲等語責勉則公尤自刻厲膺服訓誨眷眷乎心胸之間努力前進先生見其一心着工後因書疏之答以魯論先難後獲之說敎之曰聖人不曰先難而後獲乎後獲而自獲然後是眞實獲自得是訓作爲書紳而佩之以今日行一難明日行一難策勵以操心克已踐言發三難作詩而仰稟則先生極其奬詡而樵樓三難可以掃于建衆作不意老來又見三難蓋知其難則不難矣可愛可愛和之詩曰羊腸畏道世云難持守莫如方村難妙訣須求幾字上於斯得力亦無難其奬詡期待之意於同門諸公鮮有其倫而其氣像之溫厚和平言行之謹愼謙恭學問之博雅淵深造詣之精密縝篤一世之公評自在溫溫有德君子而無上下貴賤而咸一口稱辭至若松沙公之丙申義擧同爲周旋於干戈俎豆之間庚戌屋社以後却讎金於衆流奔波之中跡公平生溫厚和平之中自有剛大不枉之氣而足以增光吾道以是松沙公作公墓文曰吾先子倡道南服門徒傾一時菀然爲先進高足難窩吳公其一也而一見卽被奬詡且曰戒愼乎幽獨沈潛乎義理而心性理氣之辨篤信師說默識心解悠然有自得之味其見重於思孫又可見矣今高山祠配享已有論定諸賢且有擧論諸賢雖蘆沙先生院宇遍滿一國所重在此則士林之瞻仰矜式當一倍矣及門諸賢之配侑有不可已者而湖儒爲多若東魯閩中之人多配於曲阜考亭也今此難窩吳公以師門之奬詡儕友之推重一世踐履之功觀之可合從配故已有屢度發議云鄙等居在同鄕其操飭之不失尺寸持心之謹愼詳密凡於生平用工之心耳濡目染無容更議玆以敬通惟願僉君子發通于高山祠俾爲同配事而爲其冠儒服儒者孰不景仰鄙等亦發公議玆以文告亟令同配于貴祠以副士林之衆望士氣幸甚吾道幸甚右敬通于高山祠僉座下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年己巳四月 日全州鄕敎發文李錫龍 梁海純 金時龍 柳鶴根 宋奎鎭 梁夏永李周鎬 朴榮來 金昌性 朴勝玉 林秉徹 黃義贊鄭淇朝 吳在珣 朴喜東 宋柱澈 尹榮植 蘇致觀姜濟國 李炳仲 金炳權 柳壯根 趙喆衡 權喆壽羅鴻植 金洛朝 朱鍾鐸 柳彰根 韓台源 南宮慶姜翔煕 洪景夏 金容燦 柳允根 梁冀錫 柳哲秀白南翼 金性泰 車鶴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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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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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4년 정재익(鄭在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敬碩 鄭在翊 鄭敬碩<着名>鄭榮彦<着名>鄭致聖<着名>鄭致珹<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4년(고종11) 7월 모일에 정경석이 정재익에게 논 8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4년(고종11) 7월 모일에 종원(宗員) 정경석(鄭敬碩) 등이 정재익(鄭在翊)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경석, 정영언, 정치성은 자신들의 종중답에서 수년 동안 세를 받아왔는데 지금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서림리(西林里) 상산적동(上山積洞)이고, 월자(月字) 자호의 4마지기[斗落只] 논과 하평(下坪)의 4마지기 한 배미[夜味] 논을 합하여 8마지기를 전문(錢文) 180냥을 받고 파는 내용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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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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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雲洛 鄭雲洛<着名>嚴大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2년(고종29) 1월 21일에 정운락이 누군가에게 밭 3마지기를 2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29) 1월 21일에 정운락(鄭雲洛)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운락은 방매사유를 이매(移買)라고 적었는데 이는 이 토지를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소솔방원(素率方員)이고 자호는 필자(筆字)이며 지번이 25전, 26전, 31전 세 곳으로 모두 합해서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6부(負) 2속(束) 면적의 밭을 전문(錢文) 26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엄대영(嚴大永)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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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斗重 姜斗重<着名>金相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2년(고종29) 3월 말일에 강두중이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10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29) 3월 말일에 강두중(姜斗重)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두중은 예동(禮洞)의 이씨(李氏) 문중답을 흩어서 매입하고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내독전평(內篤前坪)이고 자호는 적지 않았으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 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인 논과 또 다른 4마지기 3배미 논을 각각 65냥과 40냥을 매겨서 모두 105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기재되어 있어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말미에 덧붙였고, 신문기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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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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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임인년 시모(媤母)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媤母 賢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인년 2월 29일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쓴 한글 편지 임인년 2월 29일에 시어머니[시모(媤母)]가 며느리[현부(賢婦)]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아들의 혼례 소식을 기다리던 차에 너의 시부(媤父)가 와서 너의 요조현숙함을 자랑하면서 흡족해하였음을 전하였다. 그 후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차에 너의 편지를 받아보니 예쁜 얼굴을 마주한 듯 기뻤다며 사돈 식구들의 안부를 궁금해하였다. 그리고 며느리 댁에서 정성스레 보낸 음식물에 고마워하면서 답례가 보잘것없어 서운해할까 염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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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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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在龍 李在龍<着名>韓龜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7월 20일에 이재룡이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를 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7월 20일에 이재룡(李在龍)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재룡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이고 자호는 우자(隅字), 지목은 태종전(太種田), 면적은 파종량 기준 2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30냥이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을 출급한다는 문구가 추기되어 있다. 이 거래에 한귀석(韓龜錫)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고, 필집은 따로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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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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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然述 吳然述<着名>金禹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11월 18일에 오연술이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2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11월 18일에 오연술(吳然述)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오연술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蜂山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입자(入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2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4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 2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김우범(金禹範)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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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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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卞鐘斗 卞鐘斗信 3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음2월 2일에 변종두가 누군가에게 3칸 초가와 5되지기 대전, 1마지기의 논을 42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4년 음2월 2일에 변종두(卞鐘斗)가 누군가에게 집과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문서는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다. 변종두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거주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리(蜂山里)이다. 매물은 초가(草家) 3칸과 목자(睦字) 자호이고 지번이 33번인 대전(垈田)으로 면적이 5되지기[升落只] 2부(負) 2속(束), 그리고 전평(前坪)에 있는 같은 목자 자호이고 지번이 8번이며, 2열(㽝) 1마지기 2부 8속의 논이다. 열은 논의 구획으로 방언에 배미[夜味]와 같은 의미이다. 이들을 모두 합해서 매매가 42원(円)을 받고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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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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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季玉 李季玉<着名>李聖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18일에 이계옥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1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4월 18일에 이계옥(李季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계옥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추산촌(秋山村) 전등선평(前嶝仙坪)이고 자호는 빈칸으로 두어 기재하지 않았다.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17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2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이성민(李聖敏)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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