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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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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류영선(柳永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容澈 柳永善 金容澈 1顆(적색,원형,1.2cm)金容圭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일제시기 김용철이 류영선에게 711평의 논을 24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일제시기 김용철(金容澈)이 류영선(柳永善)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증서의 작성시기가 적혀 있지 않아 미상이지만 류영선의 다른 문서들을 통해 일제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용계리(龍溪里) 377번지이고 지목은 답(畓), 면적은 711평(坪), 지가(地價)는 85원 32전이고, 매매대금은 240원이다. 단 소유권이전 증명비용은 매수인이 담당하는 것으로 약정하였다. 아산면 학산리에 사는 김용규(金容圭)가 이 거래에 보증인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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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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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0년 서보진(徐寶鎭) 증서(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金源佐 徐寶鎭 金源佐信 1顆(적색,타원형,1cm)朴炳壽 1顆(적색,타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1_001 1920년 8월 22일에 김원좌가 서보진에게 임야 매매 잔금을 인도하는 조건에 대한 증서 1920년 8월 22일에 김원좌(金源佐)가 서보진(徐宝鎭)에게 임야 매매 잔금을 인도하는 조건에 대한 증서이다. 김원좌가 묘지로 사용하기 위해 서보진의 산판(山坂)을 매수하였고 잔금 60원은 이곳 산판에 무덤을 쓴 뒤에 인도하기로 약속하는 내용이다. 다만 암석이나 기타 사고가 발생하여 매장할 수 없을 때에는 1920년 8월 22일에 작성한 임야 매매계약은 당연히 해약하되 계약금은 묻지 않는 것으로 하는 조건이다. 관련문서에 서보진이 계약금 10원을 김원좌에게 주고 받은 영수증이 존재한다. 김원좌는 무안군 박곡면 청천리가 주소이고, 입회인 박병수(朴炳壽)는 무안군 석진면 대치리가 주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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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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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8년 신씨종중(申氏宗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得伊 申氏宗中 張得伊<左寸>宋玄渡<着名>李聖麟<着名>申慶稷<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01_001 1818년(순조18) 12월 3일에 동몽 장득이가 신씨 종중에 두 곳의 논 5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8년(순조18) 12월 3일에 동몽(童蒙) 장득이(張得伊)가 신씨 종중(申氏宗中)에 두 곳의 논을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장득이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매득(買得)을 통해서였다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경기도 이천군 백토리면(栢土里面) 조읍동(助邑洞)인데 지금은 백사면(栢沙面) 지역이다. 자호는 국자(鞠字)이고 지번이 735답이며 면적이 5복(卜) 6속(束)인 논의 아래쪽 1배미[夜味]가 방매 대상이며, 이 논의 면적은 3복 6속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정조(正租) 3마지기[斗落只]이다. 또 북범(北犯) 6답과 7답도 방매 대상이며 이 두 지번을 합하면 9배미 2마지기이다. 이들을 합해서 정조 5마지기 논을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파는 내용이다.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본문기(本文記) 1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씨 종중 측에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송현도(宋玄渡)와 이성린(李聖麟)이 증인으로, 경직(慶稷)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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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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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5년 김재연(金在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術玉 金在年 金術玉<着名>金洛英<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5년(고종2) 1월 21일에 김술옥이 유학 김재연에게 2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65년(고종2) 1월 21일에 김술옥(金術玉)이 유학(幼學) 김재연(金在年)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김술옥은 이매(移買)하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조상으로부터 전래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興陽郡) 고읍면(古邑面) 소곡평(蘇谷坪)으로, 지금은 소곡리가 안동리(安洞里)로 통합되어 고흥군 고읍면 안동리가 되었다. 자호는 종자(從字)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는 2마지기[斗落只], 1살매(㐊每) 1배미[夜味]이다. '배미'는 밭이나 논의 두렁을 기준으로 인지 가능한 전답의 지형적 경계구분 즉 구획상으로 표시한 면적이다. '살매'는 전라도 지역의 명문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용어인데 의미는 미상이다. 이 논의 위쪽은 오노(吳奴) 명례(命礼)의 년이 연접해 있고 아래쪽은 한노(韓奴) 오단(五丹)의 논이 연접해 있다고 설명하였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32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매수인에게 영구히 방매한다고 명기하여 훗날 구문기가 없는 것으로 인한 분쟁의 소지를 방지하였다. 유학 김낙영(金洛英)이 증인 겸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상중이라 착명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상불착(喪不着)'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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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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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仁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광무1) 11월에 유인선이 자신의 족숙에게 자신의 밭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7년(광무1) 11월에 유학(幼學) 유인선(柳仁善)이 자신의 족숙(族叔)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이다. 선대로부터 유래되어 경작해오던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사유는 형편이 부득이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주곡촌(蛛谷村) 우와야평(右瓦冶坪)이고, 자호는 형자(兄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5부(負) 6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1냥이다. 유인선은 해당 토지의 본문기(本文記)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한다고 명기하여 본문기가 없는 것으로 인한 훗날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유인선은 상중(喪中)이라 착명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상불착(喪不着)이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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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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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俊煥 朴俊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 4월 17일에 박준환이 누군가에게 2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 4월 17일에 박준환(朴俊煥)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준환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을 수년간 세를 거두어왔다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사유는 적지 않았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우자(友字) 논이고 구획상으로는 2배미[夜味]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7부(負) 7속(束)이다. 거래가 3냥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다른 증인이나 필집은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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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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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서보진(徐寶鎭)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徐寶鎭 金源佐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1_001 1920년 8월 22일에 서보진이 김원좌에게 임야 매매 계약금 10원을 받고 작성해준 영수증 1920년 8월 22일에 서보진(徐宝鎭)이 김원좌(金源佐)에게 임야 매매 계약금을 받고 작성해준 영수증이다. 금액은 10원이다. 관련문서에 동일한 날짜에 묘지로 사용하고자 김원좌가 서보진의 산판(山坂)을 매수하면서 임야대금 잔액 60원을 인도하는 조건에 대한 증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 매매대금은 70원이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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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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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9년 윤씨댁(尹氏宅) 대종중(大宗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正卜 尹氏宅 大宗中 奴 正卜<左寸>奴 中介山<左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 11월 20일에 유생원댁 노 정복이 윤씨댁 대종중에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9년 11월 20일에 유생원댁(柳生員宅) 노(奴) 정복(正卜)이 윤씨댁(尹氏宅) 대종중(大宗中)에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 즉 원거리의 전답을 팔고 인근의 땅을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포천(抱川) 청량면(淸涼面) 마전리(麻田里)이고 자호는 조자(弔字)이고 지목은 모전(茅田)이다. 면적은 하루갈이[一日耕] 면적 가운데 논으로 만든 6마지기[斗落只]와 일식경(一息耕) 2부(負) 4속(束) 면적을 합한 곳이다. 이 토지의 동남쪽은 길이고 서쪽은 조 내시댁(曹內寺宅) 논이며 북쪽은 하천이 경계인 곳이라고 사표(四標)를 적었다. 이곳을 전문(錢文) 55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 3장과 패지(牌旨) 3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이생원댁 노 중개산(中介山)이 증인으로 참여하였고 필집은 따로 두지 않고 답주인 유생원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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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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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德三 鄭德三<着名>吳永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55_001 1887년(고종24) 11월 15일에 정덕삼이 누군가에게 논 7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7년(고종24) 11월 15일에 유학(幼學) 정덕삼(鄭德三)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부득이해서라고 간략하게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서면(五西面) 비립평(碑立坪)이고 자호는 우자(優字)와 영자(榮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80냥이다. 본문기(本文記)에 대한 언급이 없어 신문기(新文記)로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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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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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9년 노 손이(孫伊) 배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上典 洪 奴 孫伊 上典 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철종 10) 11월 28일에 상전 홍 아무개가 노 손이에게 전답의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작성해 준 배지 1859년(철종 10) 11월 28일에 상전 홍(洪) 아무개가 노 손이(孫伊)에게 전답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발급한 배지(牌旨)이다. 방매하고자 하는 토지는 포천(抱川) 청량면(淸凉面) 마전리(麻田里) 소재 위자(位字) 자호의 밭이다. 규모는 11복(卜) 9속(束)이다. 문서의 발급자는 상전 '홍(洪)'이라고만 기재했으나, 앞의 배지와 동일한 '홍 김포(金浦) 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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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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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6년 노 순정(順丁) 배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尹生員 奴 順丁 上典 尹生員宅[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85_001 1876년(고종 13) 12월 22일에 윤 생원 댁이 노 순정에게 전답의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작성해 준 배지 1876년(고종 13) 12월 22일에 상전 윤(尹) 생원 댁에서 노 순정(順丁)에게 전답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발급한 배지(牌旨)이다. 방매하고자 하는 토지는 포천(抱川) 청량면(淸凉面) 마전리(麻田里) 소재 국자(囯字) 자호의 논이다. 규모는 5마지기이고, 부수(負數)로는 1복(卜) 6속(束)이다. 아울러 매매명문 작성과 함께 본문기 4장, 배지 3장도 건네줄 것을 명하고 있다. 동일한 토지의 방매를 위임했던 '1858년 노 손이(孫伊)' 배지에서 본문기 1장, 배지 1장이 첨부할 문서로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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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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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9년 김락서(金洛敍) 차용증(借用證) 고문서-증빙류-차용증 金洛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음력 6월 9일에 김낙서가 34원 80전의 돈을 차용하면서 빌려준 이에게 발급한 차용증 1919년 음력 6월 9일에 하서면(下西面) 운암리(雲岩里)에 사는 김낙서(金洛叙)가 34원 80전의 돈을 차용하면서 작성해 준 차용증이다. 같은 해 음력 8월말까지 빌린 금액을 변제한다는 것과, 기한을 넘기면 10원을 추가하여 갚는다는 조건 등을 적시하였다. 누구로부터 차용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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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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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31년 고창룡(高昌龍)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河達海 高昌龍 文鳳 1顆(적색,원형,1cm)河辛淳信 1顆(적색,정방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3월 29일에 고창룡이 하달해로부터 밭 2마지기를 사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 1931년 3월 29일에 고창룡이 하달해로부터 밭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이다. 매매계약서의 양식에 맞춰 작성되었고 한글 한자를 병용하였다. 첫째 항목에는 좌측에 표시한 토지를 매주(賣主)가 매주(買主)에게 영구히 매도하며 좌측에 기록한 대금 전부를 영수하고 이제부터 매주의 소유가 됨을 계약한다는 것이다. 둘째 항목에는 이 계약이 훗날 어긋남이 없도록 보증하기 위해 보증인 일동이 서명 날인한다는 내용이다. 셋째 항목에는 토지의 소재지, 지번, 종목(種目), 면적, 사표(四標)를 기재한 토지의 상세 정보이고, 넷째 항목은 거래대금이다. 이 토지는 제주도 신우면 신암리 감수전원에 있고 종목은 밭이며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이다. 사표는 토지의 동서남북 사방에 누구의 토지와 접해있는지를 적은 것이다. 거래대금은 150원이다. 그 다음에 날짜를 적고 매도인, 연대인, 매수인, 보증인이 각자 서명을 하고 연대인과 보증인이 개인 도장을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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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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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42년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証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錫潤 金錫潤 1顆(적색,타원형,1cm)京東 1顆(적색,타원형,1cm)星同 1顆(적색,타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4월 14일에 김석윤 등 3인이 김제김씨 군자감정파에 1,237평의 토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42년 4월 14일에 김석윤(金錫潤) 등 3인이 김제김씨(金堤金氏) 군자감정파(軍資監正派)에 토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토지 소재지는 김제군 김제읍 순동리(蓴洞里) 838-2에 있는 내답(內畓)이고 면적은 654평(坪)과 583평을 합해서 1,237평이다. 거래가는 872원 58전이고, 수세(收稅)는 금년도부터 매주(買主)가 거두어들이기로 하였다. 소유권 이전등기 수속은 이 토지의 명의가 본인 등의 명의와 관계가 없으므로 소화(昭和) 21년인 1946년 무렵에 수속하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양력 날짜를 기재하고 괄호 안에 음력 날짜를 병기해주었다. 매주(賣主)는 3인이고 사는 곳이 각기 익산, 김제, 만주국으로 되어 있으며 각자 개인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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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24년 박문억(朴文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夢弼 朴文億 李夢弼<着名>金在化<着名>金善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4년(경종4) 11월 4일에 이몽필이 박문억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 1724년(경종4) 11월 4일에 이몽필(李夢弼)이 박문억(朴文億)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이다. 이몽필은 고조부 산지를 수년 동안 금양(禁養)해오다가 어쩔 수 없는 형편에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나주 남평면(南平面) 지석강(砥石江) 상력동(上歷洞)이고 거래가는 50냥이다. 산지의 위쪽과 좌우측의 경계를 상세하게 적었고 본문기(本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김재화(金在化)는 증인으로 김선일(金善一)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기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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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16년 김씨문계(金氏門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申應祿 金氏門契 申應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3월 26일에 신응록이 김씨 문계에 6되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6년(순조16) 3월 26일에 신응록(申應祿)이 김씨 문계(門契)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신응록은 올해 춘궁기를 당하여 살아갈 길이 어려워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이 논은 자기 조부모의 위답(位畓)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興陽郡) 고읍면(古邑面) 율치평(栗峙坪)이다. 지금은 고흥군 고읍면 율치리이다. 자호는 봉자(奉字)이고 3마지기[斗落只] 논 가운데 북쪽으로 8되지기[升落只] 1배미가 방매 대상이고, 이 논의 아래쪽으로는 한씨(韓氏)의 노(奴) 덕남(德南)의 땅이 있다고 적었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9냥이다.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는 도문서(都文書)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 측에 넘겨주지 못한다고 넘겨주지 못하는 사유를 적음으로써 훗날 본문기로 인한 분쟁을 미연에 방지코자 하였다. 신응록은 이 거래에 다른 증인이나 필집을 참여시키지 않고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여 당사자 간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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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有白 姜有白<着名>金春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철종12) 12월에 강유백이 누군가에게 2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61년(철종12) 12월에 강유백(姜有白)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방매 사유와 소유 경위는 쓰지 않고 곧바로 매물 정보를 기재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서면(五西面) 대성촌(大成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부자(父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는 6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는 8복(卜) 4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4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이 거래에 김춘화(金春化)가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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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임진년 노태현(盧泰鉉) 소상(疏上) 고문서-소차계장류-소장 盧泰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 8월 12일에 노태현이 쓴 답장 서신 임진년 8월 12일에 노태현(盧泰鉉)이 쓴 답장 서신이나, 누구의 서신에 대한 답장인지는 알 수 없다. 편지를 보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며느리가 여러 차례 학질을 앓는다고 하자 기혈이 허약한 탓이라며 처방을 충고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아들, 동생의 근황을 전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다. 끝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소상(疏上)'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상중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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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51년 고생원댁(高生員宅)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相錫 高生員宅 金相錫<着名>朴萬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1년(영조27) 3월 15일에 종손 김상석이 고생원댁에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51년(영조27) 3월 15일에 종손(宗孫) 김상석(金相錫)이 고생원댁(高生員宅)에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상석은 춘궁기를 당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일남(一南) 마근동(磨斤洞) 선산의 용미(龍尾) 위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이라고 하였고, 이곳에 고생원이 부모의 산소로 쓰려고 했던 시기와 맞아서 팔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산지의 거래가는 전문(錢文) 100냥이다. 매물이 산지일 경우에는 지번이 없으므로 산지의 동서남북 경계를 자세하게 적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서에는 사표(四標)를 적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 자손들도 이 산지에 그대로 따라서 입장(入葬)할 수 있다는 문구를 덧붙여 적었다. 이 거래에 박만갑(朴萬甲)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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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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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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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2년 백문휴(白汶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命佑 白汶休 張命佑<着名>高時順<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14_001 1832년(순조32) 11월 24일에 장명우가 백문휴에게 가대와 초가 및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32년(순조32) 11월 24일에 장명우(張命佑)가 유학(幼學) 백문휴(白汶休)에게 가대와 초가 및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장명우는 자신이 매득해서 살아오고 있었다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판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 교동(橋洞)으로 지금은 고창군 성내면 지역이다. 존자(存字) 자호의 대전(垈田) 5되지기[升落只] 3부(負)와 3칸짜리 초가와 이자(以字) 자호의 밭 5마지기 14부 9속, 그리고 존자 자호의 저전(苧田) 1마지기 3부인 곳을 합해서 전문(錢文) 16냥을 받고 팔았다. 이 가옥과 토지의 본문기(本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하였다. 관련문서로 볼 때 매수인 백문휴는 2년 뒤 이 가옥을 포함한 밭을 팔게 되는데 그 명문에서는 백문수(白汶洙)로 기재되어 있다. 어느 한쪽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학 고시순(高時順)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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