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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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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1년 노 홍산금(鴻山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致實 奴 鴻山金 李致實<着名>韓永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1년(고종18) 11월 22일에 이치실이 노 홍산금에게 초가 3칸짜리 가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1년(고종18) 11월 22일에 이치실(李致實)이 노(奴) 홍산금(鴻山金)에게 가대(家垈)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치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소재지는 야인원산(也仁院山)이고, 가사(家舍)는 초가 3칸과 행랑 2칸이다. 자호는 복자(伏字), 부수(負數)는 9속(束)이라고 하였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3냥이고, 이 가대의 구문기(舊文記) 2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가대는 주로 집에 부속되어 있는 농지를 총칭하는 것으로 사용되며 대전(垈田), 기지(基地) 등의 용어와 함께 쓰이며, 면적은 전답과 같은 방식인 두락수(斗落數)나 결부수(結負數)로 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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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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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17년 부동산표시목록(不動産表示目錄)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朴判龍信 2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47_001 1917년 9월 박판룡이 류영선에게 부동산을 매도하면서 매도증서와 별도로 작성한 부동산표시목록 1917년 9월 박판룡(朴判龍)이 류영선(柳永善)에게 토지를 팔면서 매도증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때 부동산의 목록을 별도로 작성하여 첨부한 문서이다. 매매 대상 부동산은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우평리(牛坪里)와 동군 동면 주곡리(蛛谷里)에 소재한다. 소재지별로 각 지목의 번지, 평수(坪數)와 결수(結數)를 적었다. 우평리의 가대(家垈)는 525번지 323평(坪), 전(田)은 526번지 300평, 답(畓) 523번지는 46평이고, 동군 동면 주곡리(蛛谷里)에 소재한 답은 695번지 46평, 답은 700번지 342평, 전은 699번지 348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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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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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7년 류영선(柳永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朴判龍 柳永善 朴判龍信 4顆(적색,원형,1.3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47_001 1917년 9월 박판룡이 류영선에게 가대 및 전답을 130원을 받고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 1917년 9월 박판룡이 류영선에게 가대 및 전답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이다. 매도 부동산은 별지의 목록으로 작성하여 첨부하였고, 매도대금은 130원이다. 관련문서에 별지로 작성한 부동산표시목록과 박판룡이 매매대금을 받고 발급한 영수증이 함께 전한다. 부동산은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우평리(牛坪里)와 동군 동면 주곡리(蛛谷里)에 소재하며, 우평리의 가대(家垈)는 525번지 323평(坪), 전(田)은 526번지 300평, 답(畓) 523번지는 46평이고, 동군 동면 주곡리(蛛谷里)에 소재한 답은 695번지 46평, 답은 700번지 342평, 전은 699번지 348평이다. 매도증서의 양식에 맞추어 일본어로 작성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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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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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38년 윤상흥(尹相興)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田在鶴 尹相興 田在鶴 3顆(적색,타원형,1.1cm)大邱地方法院蔚珍出張所印 1課(적색,정방형,2.2×2.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12월 16일에 윤상흥이 전재학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고 대구지방법원 울진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 제출한 매도증서 1938년 12월 16일에 윤상흥(尹相興)이 전재학(田在鶴)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고 대구지방법원 울진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 제출한 매도증서이다. 일본어로 인출된 용지에 대서인(代書人)이 해당 사항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다. 매매 부동산의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446번지이고, 지목은 답(畓), 면적은 683평(坪)이며, 매매대금은 350원이다. 문서의 위쪽에는 일본정부에서 발행한 수입인지 5전짜리가 두 개 붙어있고 매도인 전재학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 오른 쪽에 있는 붉은색 인주의 장방형 등기제(登記濟) 인은 수부(受附)를 적은 것으로, 수부는 접수의 의미이다. 즉 등기 신청을 접수한 날짜는 소화(昭和) 14년 2월 9일이고, 접수번호는 제800호이다. 아래 정방형 도장은 '대구지방법원울진출장소인(大邱地方法院蔚珍出張所印)'이다. 그리고 문서 우측 하단의 작은 장방형 도장은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기번호를 기입한 것인데, 번호는 제885호이고, 순위번호는 2번이다. 이 문서에는 매도증서를 작성한 사법대서인(司法代書人)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지만 작성은 사법대서인이 하도록 되어 있다. 사법대서인은 1895년 재판소구성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생긴 새로운 직업으로, 변호를 담당하는 경우 대언인(代言人), 서류를 담당하면 대서인이라고 하였다. 주로 토지의 소유권이나 전당권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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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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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8년 류영선(柳永善)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劉冕鐥 柳永善 劉冕鐥 3顆(적색,타원형,1.2cm)劉甲龍 3顆(적색,타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53_001 1918년 음2월 4일에 유면선과 유갑룡이 류영선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18년 음2월 4일에 유면선과 유갑룡이 류영선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이다. 매도인인 유면선과 유갑룡 2인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으나 한 장의 계약서에 함께 작성하였다. 우선 매도인별로 토지소재지, 지목, 자호, 지번, 지적, 가격이 기재되었다. 유면선의 토지는 고창군 아산면(雅山面) 목동리(木洞里)이고 지목은 답(畓), 지번은 142번지, 구(舊) 자호는 정자(靜字)이며, 지적은 1,446평이고 이는 구(舊) 7마지기[斗落只] 37복(卜) 5속(束), 4배미[夜味]이다. 이 토지의 매매대금은 469원이다. 유갑룡의 토지는 고창군 아산면 중월리(中月里)이고 지목은 답(畓), 지번은 643번지, 구(舊) 자호는 성자(性字)이며, 지적은 2,614평이고 이는 구(舊) 15마지기 48복(卜) 8속(束), 12배미[夜味]이다. 이 토지의 매매대금은 1,005원이다. 문서 말미에 계약서의 날인은 임시 신용을 요하며, 대금의 인도기한 음2월 20일을 지나면 이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추기되어 있다. 관련문서인 영수증을 보면 20일 이전인 14일에 계약금 200원을 받았고, 나머지 잔금을 21일과 29일에 두 차례 나누어 매매대금 전부를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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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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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在驥 崔在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5년 12월 9일에 최재기가 누군가에게 7마지기의 논을 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5년 12월 9일에 최재기(崔在驥)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재기는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필요한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이고 자호는 정자(靜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9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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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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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49년 최부용(崔芙容)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裕喆 崔芙容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9년 윤7월 19일에 김예철이 최부용에게 60평의 대지와 지상에 있는 목조 가옥을 팔면서 작성한 매도증서 1949년 윤7월 19일에 김예철(金禮喆)이 최부용(崔芙蓉)에게 대지와 가옥을 팔면서 작성한 매도증서이고,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되었다. 매도인 김예철과 매수인 최부용 모두 전주부(全州府)에 거주하며, 김예철은 갑이 되고 최부용은 을이 되어 체결한 조항을 나열하였다. 매도물은 전주부 노송동(老松洞) 171-20번지에 있는 대지(垈地) 60평, 동 대지 위에 있는 기와지붕의 목조주택이다. 목조주택의 규모는 체사(體舍) 4칸, 행랑 4칸 반이며 부속품 일체도 포함한다고 하였다. 매매대금은 380,000원이다. 그 외 조항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갑은 매도인으로서 을에게 위의 건물 및 대지를 영구 매도한다. 을은 앞의 매매대금으로 갑으로부터 매수하는 동시에 당일 계약금으로 6만원을 지불하고, 다음에 쓴 조항을 위배하는 동시에 계약금을 손실하기로 한다. 을은 대금 지불 방법을 2회로 나누고, 1회에는 100,000원을 음력으로 이번 달 25일로 정하고, 다음 1회는 가옥 명도일로 정하기로 하되 명도일자는 음력 이번 달 말일 이내로 정한다. 갑은 이 매도물에 대하여 하등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명도일자까지 명도가 되지 않을 때에는 위의 계약금을 배상하기로 한다. 갑은 이전수속을 이번 달 25일에 대지 및 건물 수속을 이행하기로 한다. 다만 저축은행 관계 일체는 저당을 말소하여 이전하기로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매도인과 매수인이 각각 이름을 적고 개인 도장을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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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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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賣渡証書全州府宣北洞四十番地甲 金禮喆全州府太平洞貳貳番地의四乙 崔芙蓉右金禮喆은 甲이되고 崔芙蓉은 乙이되야 左의 條項을 締結함一. 賣渡物의 表示 全州府老松洞壹七壹의貳0番地垈地六0坪及同地上에 在한 木造瓦葺体舍四間半行廊四間半也(但行廊은 井水中間으로됨 附屬品一切)一. 賣渡代金은 參拾八萬圓也一. 甲은 賣渡人으로서 乙의게 上記建物及垈地을 永永賣渡함一. 乙은 前記代金으로서 甲에게 買受하난 同時 本日 契約金으로一金六萬圓也을 支拂하고 左記條項을 違背同時난 契約金을 損失하긔로함一. 乙은 代金支拂方法은 貳回로 分하야 壹回에난 一金拾萬圓也은旧今月貳拾五日로 定하고 次壹回난 家屋明渡日로 定하긔로 하되 明渡日字난 旧今月末日以內로 定함一. 甲은 此賣渡物에 對하아 何等의 故障이 生하거나 明渡日字ᄭᅡ지 明渡不能時난 上記契約金을 陪償하기로함一. 甲은 移轉手續을 今月貳拾五日에 垈地及建物手續을 履行하기로함(但貯蓄銀行關係一切은 抵當抹消하여 移轉하기로 함)檀紀四二八二年陰閏七月拾九日右 賣渡人甲 金禮喆[印]右 買受人乙 崔芙蓉[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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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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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9년 윤성원(尹聖元) 표(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尹聖元 尹星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12월 4일에 윤성원이 8마지기 논을 팔면서 없어진 구문기를 대신하여 매수인에게 작성해준 수표 1899년 12월 4일에 윤성원(尹聖元)이 8마지기 논을 팔면서 없어진 구문기(舊文記)를 대신하여 매수인에게 작성해준 수표이다. 논의 소재지는 남원(南原) 폐문리(閉門里) 원평(院坪)이다. 폐문리는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척동리(尺洞里)와 병합하여 척문리(尺門里)가 되어 이백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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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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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6년 강주일(姜周一) 증서(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姜周一 姜周一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1월 16일에 강주일이 임도진에게 논 3마지기를 매도하는 매도증서 1916년 1월 16일에 강주일(姜周一)이 임도진(任道鎭)에게 논을 매도하는 증서이다. 강주일은 임도진 소유의 제위답을 경작하면서 몇 년 동안의 소작료와 기타 보리 콩 등을 합한 14섬[石]의 빚을 갚을 길이 없어서 자기 소유의 논 3마지기[斗落只]를 시가 30원으로 결정하여 매도 계약을 한다는 내용이다. 논은 장흥군 대덕면(大德面) 연평리(蓮坪里)에 있는 책자(策字) 자호이고, 수확량 기준으로 8부(負) 1속(束)의 면적인 토지이다. 문서 말미에 보존증명은 자신이 제출하기 어려우므로 신장(信章)을 내주면서 위임하고 위임은 매주(買主)로 한다는 문구가 추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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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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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1년 윤자형(尹滋馨) 수기(手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滋馨 金東一 尹滋馨<着名>尹滋晩<着名>尹滋弘<着名>徐有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40_001 1891년 2월 5일에 윤자형이 김동일에게 두 차례에 걸쳐 산지를 방매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내용의 수기 1891년 2월 5일에 윤자형(尹滋馨)이 김동일(金東一)에게 작성해준 수기(手記)이다. 윤자형 자신은 지난 정묘년 2월에 죽을 위기에서 살 계책으로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개화동(開花洞) 선산의 뒤쪽 산록을 105냥에 김동일에게 방매하였고, 또 기묘년 12월에 시장(柴場) 한 곳을 10냥을 주고 방매하였는데 이곳은 바로 김씨 산의 백호(白虎)이며, 두 차례에 걸쳐 방매한 명문 2장이 분명하지만 이를 믿지 않는 후손이 일을 벌여 관(官)에 소송을 제기하여 바로잡고자 하므로 다시 수기를 작성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훗날 자손들이이 문제로 시비를 거는 일이 발생하면 이 수기를 가지고 관에 아뢰어 바로잡으라는 내용이다. 수표는 종손인 윤자형과 지손(支孫)인 윤자만(尹滋晩)과 윤자홍(尹滋弘) 3인이 작성한 것이다. 서유갑(徐有甲)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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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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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有煥 親門中 趙有煥<着名>趙性裕<着名>趙性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철종12) 12월에 조유환이 친가 문중에 2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61년(철종12) 12월에 조유환(趙有煥)이 친가(親家) 문중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조유한은 선대로부터 유래된 논을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어쩔 수 없는 형편이라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興陽郡) 남양면(南陽面) 상도월평(上道越坪)이고 자호는 기자(豈字)이며 위쪽으로 이종인(李宗仁)의 논이 연접해 있는 아래쪽이다. 논의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는 6복(卜) 2속(束)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6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과 신문기(新文記) 2장을 문중에 넘겨준다고 하였는데, 신문기는 현재 이 거래로 인해 생성된 문서를 말하므로 2장이 될 수가 없어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유환의 삼촌인 조성유(趙性裕)가 증인으로, 5촌인 조성모(趙性模)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고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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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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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才同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6년 1월 13일에 한노 재동이 누군가에게 밭과 감나무 및 밤나무 등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96년 1월 13일에 한씨(韓氏)의 사내종 재동(才同)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적었고, 소유하게 된 경위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밭이라고 하였다. 매물은 호계면(虎溪面) 갑동촌(甲洞村) 앞에 있는 텃밭[基田] 한 뙈기와 뽕나무밭[桑田] 한 뙈기, 감나무 한 그루이고 텃밭은 자호가 조자(調字)이고 면적이 2부 6속이다. 여기에 야청동(冶廳洞) 작은 시내 위쪽으로 왼편에 있는 밤나무밭 한뙈기와 감나무 한 그루, 그리고 오른편 평전(平田)에 있는 두 그루까지 포함해서 전문(錢文) 17냥을 받고 파는 내용이다.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가 전하지 않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적었다. 한씨의 사내종 만복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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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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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德三 鄭纘朝<着名>金海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6년 4월 20일에 정찬조가 누군가에게 모시밭 1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6년 4월 20일에 정찬조(鄭纘朝)가 누군가에게 모시밭[苧田]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이다. 정찬조는 이 밭이 자신이 매득(買得)한 것이라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 사유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蜂山邨) 왼편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 1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0냥이다. 본문기(本文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유학 김해운이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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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廷臣 朴廷臣[着名]田五長[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정신이 이동 사기점동 소재 시장 70복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계약문서 박정신(朴廷臣)이 시장(柴場)을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첫 행이 결락되어 있어 작성시기나 매득자는 확인할 수 없다. 매매하는 시장은 이동(二東) 사기점동(沙器店洞) 상곡(上谷)에 있으며 사표(四標)를 명시해 놓았다. 규모는 70복(卜)이다. 박정신은 이 시장을 스스로 매득한 후 수호해 오다가 2냥의 가격으로 이를 방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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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5년 윤행수(尹行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炳國 尹行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1월 22일에 윤병국이 윤행수에게 3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25년 1월 22일에 윤병국(尹炳國)이 윤행수(尹行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윤병국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경위는 적지 않았다. 매물의 소재지는 경북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북평(北坪)이고 지목은 삼밭[麻田]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1부(負) 8속(束)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85원이다.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윤병국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여 거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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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8년 고창룡(高昌龍)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昌道 高昌龍 金昌道 1顆(적색,원형,1cm)梁己弘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2월에 고창룡이 김창도로부터 7마지기의 밭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 1928년 12월에 고창룡이 김창도로부터 밭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이다. 첫 번째 부동산표시 항목은 매매대상 토지에 대한 상세정보이다. 소재지는 제주도 신우면(新右面) 고내리(高內里) 경계의 마수물원(馬水物員)이고 종목(種目)은 밭, 면적은 모종(牟種) 7마지기[斗落只]이다. 사표(四標)는 동서남북 사방이 누구의 토지와 접해있는지를 적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매매가로, 232원에 거래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매매명문의 담보문언과 비슷한 내용으로, 본인의 소유부동산을 앞의 대금으로 귀하에게 영구 매도하고, 해당 부동산에 관해서 장래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본인이 일체 인수처리해서 귀하에게 조금의 손해도 입히지 않게 하는 뜻으로 이 계약을 한다는 내용이다. 계약 일시를 적은 뒤 매도인과 보증인 및 매수인이 각각 주소를 적고 서명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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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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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13년 노 무경(戊京)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同 奴 戊京 李同<着名>姜惡伊<左寸>朴海命<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90_001 1713년(숙종39) 12월 19일에 양인 이동이 재사 노 무경에게 4마지기 논과 1마지기 밭 두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13년(숙종39) 12월 19일에 양인(良人) 이동(李同)이 재사(齋舍) 노(奴) 무경(戊京)에게 논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이동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이 토지는 조상으로부터 전래되어 받게 되었다고 소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은 두 곳인데, 한 곳은 예안(禮安) 서면(西面) 화림원(花林員)이고 자호는 개자(芥字), 지번은 28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8부(負) 5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4마지기[斗落只]인 논이다. 또 한 곳은 서면 마암원(馬岩員)에 있는 개자 자호이고 지번은 28, 토지의 등급은 4등답(等畓), 면적이 15부 5속 가운데 남서쪽으로 2부 1마지기인 밭 2곳과 5되지기[升落只]인 곳이다. 이들 전답을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 6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는 내용이다. 양인 강악이(姜惡伊)가 증인으로, 평인(平人) 박해명(朴海命)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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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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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8년 노 손이(孫伊) 배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洪金浦 奴 孫伊 上典 洪金浦宅[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85_001 1858년(철종 9) 3월 6일에 홍 김포 댁에서 노 손이에게 전답의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작성해 준 배지 1858년(철종 9) 3월 6일에 홍(洪) 김포(金浦) 댁에서 노 손이(孫伊)에게 전답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발급한 배지(牌旨)이다. 방매하고자 하는 토지는 포천(抱川) 청량면(淸凉面) 마전리(麻田里) 소재 국자(囯字) 자호의 논이다. 규모는 5마지기이고, 부수(負數)로는 1복(卜) 6속(束)이다. 아울러 매매명문 작성과 함께 본문기 3장, 배지 2장도 건네줄 것을 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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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앞면현부야 이곳 소식 후 혼몽간 환세하여 슈일되오니 너곳은 오래굼겁고 앗쳐고ᄂᆞᆫ 져리 풀일 시 업ᄉᆞ나무미 ᄌᆞ졍 일모 갓쳐 업다 연이여 ᄎᆞ시 신원의 ᄉᆞ돈 두위분기후 안영 뫼온 초래 나ᄌᆞᆨ하며소즁 이곳은 근ᄉᆞᆼ 심즁 무양이 지ᄂᆡ며 도령시 다 형제 남ᄆᆡ분 츙윤 션갑 ᄋᆡ진이회업ᄉᆞ오며 두로 영셩일문과 각ᄃᆡᆨ소식 ᄌᆞ로 연속 굼겁지 안니며곳 ᄉᆡ모난 명완무지ᄅᆞ 길여 지ᄂᆡ고 너 동셔 ᄂᆡ외 ᄋᆡ회 즁 슈쳡골물 아연〃〃 깃ᄎᆞ 면〃셩〃이 ᄋᆡ〃 너의 시ᄉᆞᆷ춘 슉 낙〃 굼겁고 영셩일뒷면문이 느리 안슌들 ᄒᆞ시니 ᄉᆞᄒᆡᆼ〃〃이다 ᄋᆡ가 세월 갈ᄉᆞ록촉쳐 구리 셔릴 곳 업ᄉᆞᄂᆞ 슬ᄒᆞ 호위로 한다 신예심 조흔 시졀 막〃ᄒᆞ미 조흔 일악ᄎᆞᆨ 신ᄌᆡ며 조무리 시기ᄒᆞᆫ미라지원극통 〃〃 무엇 ᄒᆞᆫ로이닷 괄염ᄒᆞᆫ인 수란〃〃존고은 공회 셥〃ᄒᆞᆫᄂᆡ직일 싀모 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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