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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길룡(李吉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東根 妻 金菜仙信 1顆(적색, 정방형, 1.1×1.1cm)殷允吉 1顆(적색, 타원형, 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 2월 20일에 이수암이 무림면 자양리 소재 논 5마지기를 이길룡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21년 2월 20일에 이수암(李壽岩)이 이길룡(李吉龍)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토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에 있으며, 규모는 5마지기이다. 값은 전문 8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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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고시문(高時文)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祥亨 高時文 趙祥亨<着名>鄭在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5년(고종2) 11월 15일에 고시문이 조상형으로부터 6마지기 논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 1865년(고종2) 11월 15일에 고시문(高時文)이 조상형(趙祥亨)으로부터 논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조상형은 자신이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상속받은 논을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되어 팔게 되었다고 소유경위와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계촌(桂村)의 석정촌(石亭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우자(羽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6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는 5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36복(卜) 5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4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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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卜乭 奴 卜乭<着名>奴 德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1년(고종18) 윤7월 모일에 노 복돌이 누군가에게 논 1말 3되지기를 7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1년(고종18) 윤7월 모일에 노(奴) 복돌(卜乭)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노 복돌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골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행정원(杏亭員), 자호는 상자(賞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말[斗] 3되지기[刀落只]인 곳을 전문(錢文) 70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논의 구획상 면적을 뜻하는 1경(庚)은 야미(夜味)와 같은 의미인 경미(庚味)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 말미에 덧붙인 문구는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글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는 말인데, 다른 글이라는 것은 다른 토지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는 뜻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구문기를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는 사유를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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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종중(宗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友燮 宗中 <左寸><右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고종21) 3월 17일에 우섭이 자기 종중에 논 5마지기를 53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4년(고종21) 3월 17일에 우섭(友爕)이 자기 종중(宗中)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우섭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북강(北江) 사동평(寺洞坪)이고 양안(量案)의 4책(冊)에 올라있으며 자호가 군자(軍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9배미[夜味]인 논과, 같은 자호의 밭 5마지기를 합해서 22복(卜) 9속(束)을 전문(錢文) 53냥을 받고 팔았다. 이 전답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와 함께 종중에 넘겨주었다. 종중의 문장(門長) 병준(秉駿)이 우섭과 나란히 이름을 적었고 의섭(義爕)이 증인 겸 필집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같은 종중 사람들 간에 거래하여 성을 적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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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김재연(金在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聖仁 金在年 金聖仁<着名>金英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2년(철종3) 10월 4일에 한량 김성인이 유학 김재연에게 3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52년(철종3) 10월 4일에 한량(閑良) 김성인(金聖仁)이 유학(幼學) 김재연(金在年)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김성인이 이 논을 소유하게 된 경위는 선대로부터 유래된 논이라고 하였고, 방매사유는 적지 않았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興陽郡) 고읍면(古邑面) 소곡평(蘇谷坪)으로, 지금은 소곡리가 안동리(安洞里)로 통합되어 고흥군 고읍면 안동리가 되었다. 자호는 존자(存字)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 부수(負數)로는 10부(負)이며, 위쪽은 노(奴) 금단(今丹)의 토지이고 아래쪽은 김종학(金宗鶴)의 토지라고 적어 정확한 위치를 표기하였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4냥에 거래되었고,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유학 김영기(金英基)가 증인 겸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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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첩보(牒報) 고문서-첩관통보류-첩보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선전관이 올라올 때 교군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징급하여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상황을 보고한 첩보의 초 선전관(宣傳官)이 올라올 때 각종 비용을 징급(徵給)하는 폐단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고하는 첩보의 초(草)이다. 정식 첩보를 작성하기 위한 초문서로서 곳곳에 수정한 흔적이 있고, 문서의 발급자와 수신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관인이나 작성자의 서압 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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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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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爲牒報事 察訪向前馳進時 以模符宣傳官轎軍雇貰不爲徵給事 奉 分付傳令各站矣 卽接七站站司連報內 各站處在孔路 使星之行 草料之役 式日斯生 而況當此斂歲戶卒不得仰哺 馬匹不善喂養 雖按例入把 猶恐生頉是如良中 去月晦間 宣傳官上來時 人馬與步卒 依路文例等待 則轎軍雇貰與馬匹乳價名色 或徵十餘兩 或八九兩是乎所 以無於例之事 出示 營飭與官傳令則聽若不聞 視若不見 結縛站司 毆打驛卒不勝其毒乙仍于 釜鼎之屬 田器等物 盡爲放賣 不得已酬應是乎乃 驛站之擧行 只是馬匹與走卒 則轎貰何關於馬乳價 何關於卒乎 若此不已 則將至絶站之竟是乎所 各站所徵錢 後錄馳報爲去乎 以此辭緣 論報巡營 以杜後弊亦爲置 聞甚驚駭 更爲査實 則果如所報是如乎 盖朝家之設置馬匹與走卒法意果何如 而今此宣傳官之威脅 各站風靡波盪 勒徵非例之物 合爲七十五兩也今若置而不論 則貧殘馬戶 何以料生乎 此路一開後弊無窮 玆敢擧實牒報爲去乎 參商敎是後 特爲啓聞 以爲殘驛支保之地爲只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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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경인년 사돈 성씨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査 成氏 査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3월 29일에 사돈 성씨가 사돈에게 쓴 한글 편지 경인년 3월 29일에 사돈 성씨가 사돈에게 쓴 한글 편지이다. 요사이 소식이 없어 답답했다면서 안사돈과 바깥사돈의 안부를 비롯하여 사위도 무탈한지 자세히 듣고 싶다고 하였다. 올해 농사는 태평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며, 이제는 어여쁜 사위를 보고 싶다며 보내주시기를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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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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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시모(媤母) 언간(諺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媤母 子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네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소식을 기다리던 차에 하인이 와서 너의 어여쁜 수필 편지를 받으니, 직접 얼굴을 마주한 듯하여 기뻤음을 전하였다. 편지와 함께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여 섭섭해할까 염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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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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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權希俊 權希俊<着名>權煥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9월 23일에 권희준이 누군가에게 논 5되지기 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9월 23일에 권희준(權希俊)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희준은 선대로부터 전래받은 논을 경작해오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성동(星洞) 학천촌(鶴天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효자(孝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되지기[刀落只] 1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 20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매수인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문구를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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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樂基 柳樂基<着名>韓龜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21일에 유낙기가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를 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21일에 유낙기(柳樂基)가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낙기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간단하게 적었다. 매물은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앞 대로변에 있는 태전(太田) 1마지기[斗落只]와 강변의 다리 앞에 있는 1마지기 밭 두 곳을 합한 2마지기를 전문(錢文) 3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문서는 유낙기가 자필로 작성하였으며 한귀석(韓龜錫)이 증보(證保)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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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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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9년 이주일(李周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觀成 李周一 金觀成<着名>全世綠<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14_001 1899년 11월 13일에 권관 김관성이 이주일에게 12마지기의 논을 7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9년 11월 13일에 권관(權官) 김관성(金觀成)이 이주일(李周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관성은 선대로부터 유래되어 소유하게 된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올해 세곡(稅穀)을 마련할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보성(寶城) 도촌면(道村面) 상도(上道) 석대평(石岱坪)이고 자호는 염자(廉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2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 48부(負) 8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720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렸기에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만 영구 방매한다고 적었다. 이 거래에 전세록(全世綠)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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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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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별지(別紙)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14_001 양안에 기재된 두 곳의 토지에 대한 자호, 지번, 면적, 사표를 적어놓은 연대 미상의 기록 양안(量案)에 올라있는 자신의 토지에 대한 주요 정보를 기재해 놓은 연대 미상의 기록이다. 자호는 랑자(朗)이고 지번은 61과 62번이며, 각각의 결부수(結負數), 그리고 사표(四標)를 적어두었고, 지목은 적지 않았다. 사표는 해당 전답이 접하고 있는 사방의 경계를 말한다. 61번 토지의 남쪽은 이균태(李均泰)의 논이고, 서쪽은 하천, 동쪽은 산, 북쪽은 황원중(黃元中)의 논이 접해있다. 그리고 이 토지의 결부수는 31복(卜) 9속(束)인데, 신양안(新量案)에는 3복이 줄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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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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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6년 사종수(四從嫂) 김씨(金氏) 입후성문(立後成文) 고문서-증빙류-입후성문 李載杰 金氏 金氏<手掌> 李載烋信 1顆(적색,원형,1cm)朴源圭 1顆(적색,원형,1.2cm)李錫鎭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2월 26일에 유학 이재휴가 사종수 김씨에게 자신의 둘째 아들 이태행을 양자로 보내면서 작성한 입후성문 1916년 2월 26일에 유학(幼學) 이재휴(李載烋)가 사종수(四從嫂) 김씨(金氏)에게 작성해준 입후성문(立後成文)이다. 사종제(四從弟)인 이재환(李載煥)이 후사 없이 사망하였고 과부가 된 사종수 김씨가 와서 간청하므로 종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도리 상 물리칠 수 없어 자신의 둘째 아들인 경자생 태행(泰行)을 양자로 보내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 문서를 작성한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입후와 관련한 문기에는 문장(門長)을 비롯하여 양가의 관계자들이 문서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입후문기의 증인 및 필집은 어떤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지 유추하기가 어렵다. 조상의 봉사(奉祀)를 중시하는 유교적 규범하에서 종가나 가계의 계승은 막중한 일이었으므로 사대부가에서는 입후를 위해 당사자와 관계자들은 소지(所志), 함사(緘辭) 등을 예조에 올려 입안(立案)을 발급받았다. 이 입후성문과 관련한 입안 등이 함께 전하는지는 미상이지만, 조선후기에는 예조의 입안 없이 양가와 관계자들의 합의와 간단한 성문(成文)으로 입후가 성립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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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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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5년 박중문(朴仲文)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應悟 朴仲文 全應悟<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 1월 24일에 박중문이 전응오로부터 4마지기 논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5년 1월 24일에 박중문(朴仲文)이 전응오(全應悟)로부터 논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응오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온 논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내독(內篤) 앞의 중보평(中湺坪)이다. 취자(吹字) 자호의 논 3마지기[斗落只] 1배미[夜味]와 같은 곳의 슬자(瑟字) 자호의 1마지기 1배미를 합하여 4마지기 12부(負) 1속(束)을 전문(錢文) 53냥을 받고 박중문에게 영구히 방매하는 내용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고,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내어주지 못한다는 문구를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전응오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여 당사자간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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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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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7년 신가팔(申加八)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申加卄 申加八 朴大口<着名>李同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7년(고종24) 1월 3일에 신가가 신가팔에게 논 2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7년(고종24) 1월 3일에 신가(申加)가 신가팔(申加八)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문서는 한글이 섞여 있고 오자(誤字)가 많아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 방매사유는 필요한 곳이 있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토항원(土項員)이고 자호는 적자(的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미속(米粟)으로 3부(負)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0냥이다. 이 신문기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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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仁周 鄭仁周<着名>朴相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55_001 1889(고종26) 10월 20일에 유학 정인주가 누군가에게 논 7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9(고종26) 10월 20일에 유학(幼學) 정인주(鄭仁周)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서면(五西面) 비립평(碑立坪)이고 자호는 우자(優字)와 영자(榮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26부(負) 8속(束)이고 구획으로는 7배미[夜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90냥이다. 유학 박상기(朴相基)가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하여 이름을 적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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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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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9년 이일천(李一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弼根 李一天 李弼根[着名]鄭允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 9) 9월 26일에 이필근이 이일천에게 고읍면 소재 밭 2두락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9년(철종 9) 9월 26일에 이필근(李弼根)이 토지 방매 건으로 이일천(李一天)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방매자 이필근이 스스로 매득했던 밭으로, 고읍면(古邑面) 소재 여자전(與字田) 2두락지이다. 방매 사유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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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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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1년 조영신(趙榮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致中 趙榮臣 鄭致中[着名]鄭致默[着名]鄭致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철종 12) 12월 7일에 정치중이 조영신에게 논 6두락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61년(철종 12) 12월 7일에 정치중(鄭致中)이 조영신(趙榮臣)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방매자 정치중의 계부(季父)가 몫으로 받아 수년간 갈아 먹던 곳으로, 서상면(西上面) 소재 6두락지 규모의 논이다. 값은 72냥이고, 방매사유는 이매(移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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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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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學瑞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고종17) 9월 21일에 오학서가 누군가에게 논 11마지기를 1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17) 9월 21일에 오학서(吳學瑞)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오학서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주을촌(注乙村) 중보평(中堡坪)이고 자호는 등자(嶝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11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인 논을 전문 100냥을 받고 도조(賭租)는 30말[斗]로 정하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문기를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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