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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谷遺稿義助 高興贈工曹參議柳公墓誌銘 柳晟 先祖學生柳公行狀 〃通政柳公墓碣銘 〃春汀小說 〃三悔堂柳公墓碣銘 柳元暉 六世祖 合四孺人朴氏墓表 〃學生柳公墓碣銘 〃五泉柳公墓碣銘 〃五泉亭記 〃虎村柳公墓碣銘 柳重益 五世祖 合六三梧柳公墓碣銘 〃築巖柳公行狀 〃重益号德山序 〃鰲峯柳公墓碣銘 柳汰日 祖考 合四東山柳公墓碣銘 柳禧錫 祖考古隱實記跋 朴世經 非高興人南隱柳公墓碣銘 柳碩鏞 先考安谷柳公墓表 柳相根 先考溪軒柳公行狀 柳時浚 先考孺人宋氏墓表 柳與根 先妣竹下丁公墓碣銘 丁炳敎 祖父學生金公墓表 金相鳳 祖父僉中樞柳公墓碣銘 占岩面 艮川 柳承旭 柳云錫 十世祖華錫泰錫 請文孝烈婦宋氏傳 碑 柳重宰 妻重益 介野隱遺稿序 朴孟鎭 先考忍軒朴公墓表 〃黙軒朴公墓碣銘 幷序 朴孟鎭 請文琴雲朴公墓表 朴泰信 先兄艮溪朴公墓碣銘 幷序 朴泰信 六代祖竹山朴公墓表 〃 祖父池山書室記 朴瑛鎭 請文珎原朴氏世稿序 朴南竹寶城毫谷朴氏 泰三重益序 重出 泰鎬 朴泰鎬三乎齋宋公墓碣銘 幷序 宋孝燮 請文斗陽宋公墓誌銘 幷序 〃 〃宋氏三世孝烈傳 宋基奭孺人宋氏墓表 重出 柳興根養心齋金公墓碣銘 金鎭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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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英泰 李英泰<着名>金在亮<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고종3) 1월 27일에 이영태가 누군가에게 6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 1866년(고종3) 1월 27일에 이영태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영태는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들이고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아면(大雅面) 독곡평(篤谷坪)이고 자호는 의자(疑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6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는 4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20부(負)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47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득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유학 김재량(金在亮)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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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廷和 趙廷和<着名>趙璜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고종3) 10월 11일에 조정화가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 1866년(고종3) 10월 11일에 조정화(趙廷和)가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 문서의 작성연도의 연호와 간지에 착오가 있다. 동치(同治) 7년은 1868년이고 병인년은 1866년인데 여기에서는 간지년을 우선하여 연도를 비정하였다. 조정화는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소유하게 된 밭을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천(順天) 황전면(黃田面) 하곡(下谷) 용림동(龍林洞)이고 자호는 칙자(則字), 면적은 태종(太種) 2마지기[斗落只]이고 결복(結卜)은 없는 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7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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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宗國 白成壽<着名>金斗榮<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고종21) 2월 16일에 김종국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3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4년(고종21) 2월 16일에 김종국(金宗國)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종국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하다가 춘궁기에 세미(稅米)를 마련할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독곡촌(篤谷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전자(轉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12복(卜) 7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8냥이다. 구문기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 측에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김종국은 상중(喪中)이라 착명하지 않았고, 백성수(白成壽)는 증인으로 김두영(金斗榮)을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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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泰賢 金泰賢<着名>全應寶<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고종21) 2월 20일에 전태현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3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4년(고종21) 2월 20일에 전태현(全泰賢)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독곡평(篤谷坪)이고 자호는 의자(疑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5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11부(負) 3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6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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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허점록(許點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禮用 許黙錄 李禮用<着名>金光祿<着名>金齊奉<着名>朴君鎭<着名>金士彦<着名>李丹瑞<着名>鄭日在<着名>趙乃彦<着名>朴作別<着名>李德柱<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6년 9월 28일에 허점록이 이예용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6년 9월 28일에 허점록(許點錄)이 이예용(李禮用)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예용은 자신의 증조부 산소가 보성군 도촌면(道村面)의 아래 회령(會寧) 끄트머리 정남향[子坐午向]에 있는데, 우리 문중 종손의 근래 처한 상황이 이를 지키기 어려워졌으므로 선소(船所)에 사는 허점록과 이 산지에 묘를 함께 쓰고자 전문(錢文) 120냥을 받고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도촌면은 득량면(得粮面)으로, 회령면은 회천면(會泉面)이 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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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권중보(權重寶)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奉元 權重寶 金奉元 1顆(적색,직사각형,1×2cm)金大原信 1顆(적색,원형,1cm)崔正玉 1顆(적색,원형,0.8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권중보가 김봉원으로부터 2되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3년 권중보(權重寶)가 김봉원(金奉元)으로부터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종원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권중보가 이곳에 부모의 산소로 입장(入葬)하고자 누누이 간청을 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창군 풍남면(豊南面) 월산리(月山里) 성덕평(聖德坪)이고 자호는 월자(越字), 지번은 34-1번지이며, 구획상으로는 1배미[夜味]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되지기[升落只]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0원 30전이다. 월산리의 이장(里長)인 김대원(金大源)이 보증인을 겸하여 도장을 찍었고 최정오(崔正五)가 집필인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1898년 대한제국을 공포한 뒤 양전(量田)사업과 관계(官契) 발급을 추진하여 토지소유권을 보호하고 새로운 지세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는데 국권 약화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이후 일제는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土地家屋證明規則) 및 일련의 법령을 공포했고 1907년 토지가옥증명 사무처리순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절차에서 증명신청자가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에게 서류를 첨부하여 증명을 신청하면 통수 또는 동장은 접수부에 해당사항을 기입한 뒤 계약서의 내용을 조사하여 인증부(認證簿)에 기입하고 계약서에 인증하여 신청자에게 돌려주는 단계가 있다. 이 절차를 지방에서는 이장(里長)이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 문서처럼 이장이 매매명문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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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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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洛汝 趙炳雅信 1顆(적색, 원형, 0.8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84_001 1907년 11월 21일에 강낙여가 누군가에게 3말 5되지기 면적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907년 11월 21일에 강낙여(姜洛汝)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강낙여는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왔다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굴어보(屈魚㙅) 상단평(上端坪)이고 자호는 견자(堅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刀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9부(負)이며 구획상으로는 2배미[夜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50냥이다. 본문기(本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이 거래에 조우경(趙禹敬)과 이장(里長)인 조병아(趙炳雅)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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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시모(媤母) 언간(諺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媤母 子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편지를 받은 당일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편지를 받은 당일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가운이 좋지 않아 너의 길일을 남들처럼 하지 못함을 억울해하며 사무칠 즈음에 창두가 와서 너의 옥필을 받아보니, 어여쁜 용모가 편지에 묻어온 듯하여 신기했다고 하였다. 사돈 두 분과 함께 편안히 지내기를 바라며 시모와 식구들의 무탈한 근황도 전하였다. 너희 내외가 잘 지내는 것이 으뜸이라고 하면서 답례 물품이 허무하여 무안하다는 말로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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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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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며느리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息婦 媤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중추절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쓴 한글 편지 중추절을 맞아 며느리[식부(息婦)]가 시어머니[어만임]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그동안 문안 편지를 올리지 못한 것을 죄송해 하였고, 더위를 보내고 시원한 중추가절을 맞아 외롭게 계시는 어머님의 안부를 궁금해하였다. 조모님 등 식구와 함께 잘 지내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하인을 부려 편지를 보내지만 빈손으로 보냄을 민망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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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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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東善 柳東善<着名>安淵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25일에 유동선이 누군가에게 논 12마지기와 초장 두 곳을 1,2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25일에 유동선(柳東善)이 누군가에게 논과 초장(草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동선은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이 논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군개평(群開坪)이고 자호는 상자(上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24부(負)인 논에 초장 2편(片)을 합해서 전문 1,200냥을 받고 방매하였으며,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안연수(安淵洙)가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고, 별도의 필집(筆執)은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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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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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相烈 柳相烈<着名>柳重熙<着名>金錫根<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27일에 유상열과 유중희가 누군가에게 논 7마지기를 3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27일에 유상열(柳相烈)과 유중희(柳重凞)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상열과 유중희가 방매하는 계답(稧畓)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던 논이고,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리(蜂山里) 이보평(而湺坪)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 330냥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구문기에는 다른 내용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내어줄 수 없다는 문구가 말미에 추기되어 있다. 이 거래에 김석근(金錫根)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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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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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徐錫煥 徐錫煥<着名>柳宗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10월 28일에 서석환이 누군가에게 11마지기의 전답을 4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8년 10월 28일에 서석환(徐錫煥)이 누군가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서석환은 긴급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오서면(五西面) 가양평(柯洋坪)이고, 의자(宜字) 자호의 논 10마지기[斗落只]와 같은 의자 자호의 태종전(太種田) 1마지기를 합해서 11마지기의 전답을 전문(錢文) 45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는 내용이다. 필집(筆執)은 따로 두지 않았고 유종선(柳宗善)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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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편지ᄎᆞ시 화츈의 일긔 온슌ᄒᆞ온ᄃᆡ ᄒᆞ즐ᄒᆞ옵서신긔 여상ᄒᆞ오시며 밧ᄉᆞ돈긔ᄋᆞᆸ서 험ᄃᆡᄒᆞ온 산노의 편안이 회정ᄒᆞᄋᆞᆸ시 노독 업ᄉᆞ시고 금옥 갓ᄉᆞ온 조영 ᄋᆡ긔들 다 편ᄒᆞᆫ들 ᄒᆞ오신잇가 ᄌᆞ시 아ᄋᆞᆸ고저 적ᄉᆞᆸ나이다 이곳 시ᄒᆞ의 근〃ᄒᆞ오서 시어르신긔ᄋᆞᆸ서도 섭〃환은 업ᄉᆞ시며 ᄌᆞ여들 다무ᄐᆞᆯᄒᆞ오니 두로 든〃 긔특〃〃 일긔 천ᄒᆡᆼ으로됴ᄉᆞ와 길여을 슌성ᄒᆞ오니 남 업ᄉᆞ온 경ᄉᆞ온 즁어엿브오신 우리 사회긔서 쥰슈 석리 ᄌᆞᆯ 오신이 이곳 피ᄎᆞ 쇼망이로쇼이다 ᄂᆡ 집 경ᄉᆞ 그밧 ᄯᅩ 잇ᄉᆞ오리잇가 연이나 이곳 신세 블성ᄒᆞ와 각ᄉᆡᆨ 범절이 영성할 분안이라 선언할 것 업ᄉᆞ오니 성문 첨시의ᄎᆞᆷ괴 무ᄉᆡᆨᄒᆞᄋᆞᆸ 천만 즘ᄌᆞᆨ 살피옵쇼서 적ᄉᆞ올 말ᄉᆞᆷ 여ᄉᆞᆫ여ᄒᆡ오나 슈요 즁 리만 쥬리ᄋᆞᆸ 이ᄋᆞᆸᄂᆡ외분 만슈무강 쇼식 쇼츅〃〃임신 ᄉᆞᆷ월 념육일 ᄉᆞ돈 됴봉투謹拜上候狀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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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손부 잠시 살펴라미거 손아을 두고 동서 구혼하든 차귀텍과 손아에 월노 흥성 연분으로 천ᄉᆡᆼ가약 굿ᄀᆡ 메자 굴지 ᄀᆡ일하야 당일이 엇더할고 용여 무궁ᄒᆞ식이 불감튼이 당일 명〃 화창ᄒᆞ여앙증초헹을 차려가 화병송쥭을 비겨 청홍 양인이 예을 마친 후너을 보온이 요조슉여 아람다온 기상옛날 숙낭ᄌᆞᄋᆡ 테도로다 월노 흥성메진 너ᄋᆡ 네외 봉황상유 ᄶᅡᆨ을 지어 원앙 앙이 노난 모양 눈 압ᄑᆡ 보이난듯 무심한 이 노물은 틈〃이 너 잇난 곳을 향하여 너에 ᄭᅩᆺ다온 면목 낫비 보온이 눈에 삼〃 보고저라 아ᄒᆡ 손부야 너을불너 빈 수지라도 두어 자 적난다 근간일기난 즁춘 가절ᄋᆡ 너 뫼신 사돈ᄀᆡ압서 양테후 복강하압서 연유 아심 ᄋᆡ복 상우려 어수록하오며 너 동기ᄃᆡᆨ 각 네외분 귀솔 즁 평안ᄒᆞ시며 데소제절 두루 균상들 하오며 각 처 문후 삭뒷면삭ᄒᆞ온가 두루 향염일다곳 시조부난 누은 통증언 업사나 자황을 당할사로 비감을 늣기지 못하며 니 시어미도 별 수 업스며 손아도 온 후 부ᄃᆡ 남ᄆᆡ 무탈 기특〃〃 질부각 네외 다솔 즁 무탈 든〃〃 각처 안신 자로 듯지 못 궁겁다 아헤 손부야 우리 조손 수다 정곡노흔 감〃〃 모우지못 이만 주린다 오자 낙서 고치여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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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종숙모(從叔母)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從叔母 從姪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초봄에 종숙모(從叔母)가 혼례를 마친 종질부(從姪婦)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신축년 초봄에 종숙모(從叔母)가 혼례를 마친 종질부(從姪婦)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첫머리에 '종질부 잠시 ᄉᆞᆯ펴라'로 시작하여 수신자가 종질부임을 알 수 있다. 질아(姪兒)가 신축년 초춘월에 멀지 않은 곳의 명문가와 백년가약을 맺고 어서 오기만을 바랐다고 하면서 봄철 가족들 안부를 물었다. 질부의 아름다운 용모도 수척하지는 않았는지 염려하면서 그리운 마음을 전하였다. 종숙모 또한 가족들의 무탈한 근황을 전하고 두루 평안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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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洪在善 洪在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3월 8일에 홍재선이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16) 3월 8일에 홍재선(洪在善)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홍재선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도조(賭租)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붕조평(鵬鳥坪)이고 자호는 빈칸으로 두어 적지 않았다. 면적은 2배미[夜味] 9마지기[斗落只]이고 거래가는 전문 8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정복원(鄭福源)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였고, 상중이라 착명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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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9년 윤씨종중(尹氏宗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喆鎭 尹氏宗中 尹喆鎭<着名>尹達鎭<着名>尹一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 11월 28일에 종손 윤철진과 문장 윤원진이 제위조로 밭을 마련한 사실을 윤씨 종중에 밝혀두는 명문 1859년 11월 28일에 종손(宗孫) 윤철진(尹喆鎭)과 문장(門長) 윤원진(尹遠鎭)이 제위조(祭位條)로 밭을 마련한 사실을 윤씨 종중에 밝혀두는 명문이다. 매매명문의 형식처럼 작성되어 있으나 실제 내용은 일정 사안에 대해 밝혀놓은 증서 성격의 명문으로 볼 수 있다. 선비가 당이 없으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데 하물며 시골 사는 빈한한 유가(儒家)의 경우 위토(位土)가 없으면 사시(四時)의 차례와 여러 대의 기진(忌辰)을 어떻게 봉향하겠는가라는 생각에서 고조(高祖)가 같은 세 집안이 함께 재물을 모아 포천(抱川) 청량면(淸凉面) 마전리(麻田里)에 있는 일일반경(一日半畊) 면적의 밭을 전문 105냥을 주고 매득하여 고조와 증조 2대의 제위조로 삼고, 훗날 자손들이 팔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기 2장을 작성하여 한 장은 종손 윤철진 집에 두고 또 한 장은 문장 윤원진 집에 두어서 천년만년 변치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밭의 자호는 위자(位字)이고 지번은 27전, 31전, 49전 세 곳을 합하여 일일반경의 면적이다. 일일반경은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땅의 면적을 표시하는 방법이고, 주로 논보다는 밭의 면적을 표기할 때 사용되었다. 일경(日畊)은 조선시대 관습적으로 사용된 면적 표시인데 우경(牛耕)을 표준으로 소 한 마리가 하루에 가는 면적을 1일경, 그 반의 면적을 반일경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일일반경은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 갈아야 하는 면적인 것이다. 또 이들 밭의 사표(四標)도 기재하였는데, 동쪽은 홍삼가댁 노 소득의 논이고 남쪽은 방축, 서쪽은 이득명의 밭이고 북쪽은 홍생원댁 노 구손의 밭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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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2년 박만종(朴萬宗)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三伊 朴萬宗 韓三伊[着名]李仲文[着名]安進權[着名]李大奎[着名] 1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2년(철종 13) 2월 26일에 한삼이가 박만종에게 주암면 소재 가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가대매매명문 1862년(철종 13) 2월 26일에 한삼이(韓三伊)가 박만종(朴萬宗)에게 가대(家垈)를 방매하며 발급한 가대매매문서이다. 매매한 가대는 방매자 한삼이가 수년간 살아온 곳인데, 갚아야 할 부채가 많아서 하는 수 없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소재지는 주암면(住巖面)이며 매물은 초가 1지(旨) 3칸, 부수(負數) 2복(卜)의 가대이다. 값은 전문 7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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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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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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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凡煥 朴凡煥<着名>金琪淳<着名>鄭歡祚<着名>金洛中<着名>朴儀<着名>朴平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 양력 1월 19일에 계의 공원 박범환이 누군가에게 계답 1마지기를 29냥 6전 4푼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9년 양력 1월 19일에 계(稧)의 공원(公員) 박범환(朴凡煥)이 누군가에게 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계에서 논을 팔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 논을 매입할 당시에 작성된 명문인 구문기(舊文記)에 '본가(本價)로 땅을 바꾼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부득이 1마지기[斗落只] 4부(負) 9속(束)인 논을 본가인 14냥 8전 2푼을 받고 여기에 이 논 값 14냥 8전 2푼을 합해서 29냥 6전 4푼을 받고 본답주(本畓主)에게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계답을 방매하는 일이므로 답주는 계에서 공원이고, 증인 가운데 김기순(金琪淳)은 계의 유사(有司)이며 이외에도 정석조를 비롯한 계원들이 증인과 필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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