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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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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9년 조준섭(趙俊燮)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黃仲燮 趙俊燮 黃仲燮信 1顆(적색, 1cm)程道元信 1顆(적색, 1cm)曺士憲信 1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1월 10일에 황중섭이 조준섭에게 적상면 소재 보리밭 1마지기와 논 3되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9년 1월 10일에 황중섭(黃仲燮)이 조준섭(趙俊燮)에게 모전(牟田) 1마지기와 논 3되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토지의 소재지는 적상면(赤裳面) 삼유리(三柳里) 고전동(高田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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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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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小作契約書茂朱郡 安成公立普通學校 財産管理者賃貸人 茂朱郡守 金鍾淳茂朱郡 赤常面 三柳里 一,三四七番地賃借人 趙俊性右當事者間ニ於テ 土地賃貸借ノ爲メ 左ノ契約ヲ 締結ス第一條 賃貸人茂朱郡守ハ 茂朱郡安成公立普通學校財産所屬ノ左ノ土地ヲ 賃借人趙俊性ニ賃貸シ 其ノ使用及收益ヲ爲サシムルコトヲ約シ 賃借人趙俊性ハ 之ヲ賃借シ 借賃ヲ 拂フコトヲ約セリ記茂朱郡 赤常面 三柳里 一,四八八番地 四六一坪 此代付料 拾參員四拾五錢也仝 郡 面 里 番地 坪 仝仝 郡 面 里 番地 坪 仝仝 郡 面 里 番地 坪 仝仝 郡 面 里 番地 坪 仝仝 郡 面 里 番地 坪 仝仝 郡 面 里 番地 坪 仝計第二條 賃貸人ハ 土地ノ租稅 其ノ他公課ヲ負擔ス第三條 借賃ハ 一ケ年 拾參圓四拾五錢トシ 每年十二月二十日 其ノ年分ヲ 茂朱郡廳二納入スべシ第四條 賃貸借ノ存續期間ハ 此ノ契約締結ノ日ヨリ 昭和十一年三月三十一日迄トス第五條 各當事者ハ 前條ノ存續期間內ト雖トモ 解約ヲ爲メ 權利ヲ有ス 此ノ場合ニ於テハ稻作ノ收穫季節後 次ノ耕作ニ着手スル前ニ 解約ノ申込ヲ爲シ 爾後六ケ月ノ經過ニ因リテ 賃貸借ハ 終了ス第六條 賃借人ニ於テ 土地改良又ハ 借賃ノ支拂ヲ怠リタルトキハ 賃貸人ハ何時ニテモ 土地明渡ヲ請求スルコトヲ得 但シ 賃借人延滯ノ借賃ヲ 支拂フ 義務ヲ 免スルコトヲ得ス第七條 賃借人ハ 賃貸人ノ承認無ク 地目ヲ變更スル事ヲ得ズ 承認ヲ得テ變更シタル時ハ土地返還ノ場合二於テハ 之ヲ 原狀二復スベシ第八條 本契約ニ關スル疑義ハ 賃貸人ノ決スル所ニ依ル 右契約ヲ證スル爲メ證書二通ヲ作リ 各署名捺印シ 各其ノ一通ヲ 保存ス昭和 六年 六月 九日茂朱郡 安成公立普通學校 財産管理者賃貸人 茂朱郡守 金鍾淳 代 [印]茂朱郡 赤常面 三柳里 一,三四七番地賃借人 趙俊性茂朱郡 赤常面 三柳里 一,三ㅇ八番地保證人 崔亨魯茂朱郡 赤常面 三柳里 一六三番地保證人 裵儀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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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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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千秀 崔千秀<着名>朴箕格<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5년 11월 21일에 계수 최천수가 누군가에게 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5년 11월 21일에 계수(稧首) 최천수(崔千秀)가 누군가에게 계답(稧畓)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천수를 계를 만들어서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받아왔다고 하여 소유 경위를 적었고, 계를 나누게 되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복하변(福下邊) 회룡촌(回龍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왕자(王字)와 명자(鳴字) 논 2마지기[斗落只] 5배미[夜味]이고 부수(負數)로는 4부(負) 면적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33냥이고,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기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유학 박기환(朴箕煥)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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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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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8년 구치규(具致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高弘鎭 具致圭 高弘鎭<着名>金漢水<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8년 12월 10일에 구치규가 고홍진으로부터 시장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8년 12월 10일에 구치규(具致圭)가 고홍진(高弘鎭)으로부터 시장(柴場)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고홍진은 상속을 통해 초생동(草生洞)에 있는 시장 한 곳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소송 빚이 많아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9냥이다. 이 토지의 구문기 1장을 분실하였으므로 신문기 1장으로만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유학 김한수(金漢水)가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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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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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5년 김창호(金昌浩)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林莫同 金昌浩 金昌浩信 1顆(적색,원형,1cm)林莫同信 1顆(적색,원형,1cm)白朱洪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9_001 1915년 1월 18일에 김창호가 임막동으로부터 택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 1915년 1월 18일에 김창호(金昌浩)가 임막동(林莫同)으로부터 택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이다. 문서의 제목을 택지매매계약서라고 하였으나 본문은 명문의 양식으로 작성되었고 계약일시를 뒤에 썼다거나 계약주를 뒤에 쓴 것 등은 명문과 계약서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과도기의 문서형태를 띠고 있다. 임막동은 자신이 매득한 택지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남상면(南上面) 봉황리(鳳凰里)이고 자호는 의자(儀字), 지목은 택지이며 규모는 3칸이고 부수(負數)는 8속(束)이다. 택지나 가대(家垈)는 주로 집에 부속되어 있는 농지를 총칭하는 용어로 대전(垈田), 기지(基地) 등의 용어로도 사용되어 면적을 표기할 때 전답과 같은 방식인 마지기[斗落只]나 결부수(結負數)로 기재되는데, 여기에서도 결부수를 표기하고 있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106냥이고 본문기(本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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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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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692년 김악철(金岳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唜奉 金岳哲 崔唜奉<左寸>朴石立<着名>李金伊同<着名>李厚誠<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90_001 1692년(숙종18) 12월 9일에 양인 최말봉이 양인 김악철에게 8복5속 면적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692년(숙종18) 12월 9일에 양인(良人) 최말봉(崔唜奉)이 양인 김악철(金岳哲)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최말봉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고, 소유 경위는 매득(買得)을 통해서였다고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예안(禮安) 서면(西面) 화림원(花林員)이고, 자호는 개자(芥字), 지번은 28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8복(卜) 5속(束)이다. 거래가는 세목(細木) 25필(疋)이다. 김악철에게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박석립(朴石立)이 증인으로, 이금이동(李金伊同)이 증보(證保)로, 평인(平人) 이후성(李厚誠)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증인이 거래 사실의 진위 여부를 입증하는 사람이라면 증보 혹은 보인(保人)은 거래상의 채무 불이행이나 불완전 이행 시에 보증 책임과 관계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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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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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英和 金英和<着名>金日孝<着名>金永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11월 30일에 김영화가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4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16) 11월 30일에 김영화(金英和)가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영화는 선대로부터 상속을 통해 전래받아 경작해오다가 상채(喪債)를 마련할 길이 없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주을촌(注乙村) 하대방평(下大防坪)이고 자호는 시자(是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10부(負)인 논을 전문(錢文) 45냥을 받고 선자(先尺)를 2섬[石]으로 정하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문구를 말미에 덧붙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매득인에게 구문기가 없는 것으로 인해 훗날 발생할지 모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답주인 김영화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조카와 족형(族兄)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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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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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聖執 柳聖執<着名>林文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 7월 11일에 유성집이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1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7년 7월 11일에 유성집(柳聖執)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성집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상평리(上坪里)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기자(氣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6배미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5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없어져서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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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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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8년 노 군복(君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三立 奴 君福 庫直 月根<着名>奴 三立<着名>奴 松乭<着名>奴 又哲<着名>奴 順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80_001 1898년 12월 20일에 장노 삼립 등이 임노 군복에게 논 2마지기를 14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8년 12월 20일에 장노(張奴) 삼립(三立) 등이 임노(林奴) 군복(君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 즉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항원(釜項員)이고 자호는 상자(嘗字), 지번은 89답,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4부(負) 9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45냥이다.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하였다. 해당 논의 소유 관계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미상이지만, 수서서당(水西書堂) 고직(庫直)과 도청(都廳)이 이름을 적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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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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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김재연(金在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順吉 金在年 金順吉<着名>趙允植<着名>趙斗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고종17) 10월 27일에 김순길이 김재연에게 8마지기의 밭을 1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17) 10월 27일에 김순길(金順吉)이 김재연(金在年)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김순길이 매득해서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 숙부가 죽은 뒤에 숙부의 빚으로 인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소유 경위와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興陽郡) 남면(南面) 도야리(道也里)의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상자(傷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 1살매(㐊每)인 곳이며, 매매가는 전문 16냥이다. 흥양군 남면 도야리는 오늘날 고흥군 남면 도천리(道川里)로 편입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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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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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0년 홍병철(洪秉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驥鎭 洪秉喆 金驥鎭<着名><左寸>曺錫範<着名>權龍鎬<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고종17) 1월 25일에 김기진이 남양홍씨 문장 홍병철에게 4마지기의 논을 4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17) 1월 25일에 김기진(金驥鎭)이 남양홍씨(南陽洪氏) 문장(門長) 홍병철(洪秉喆)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기진은 자신의 5대조인 승지공(承旨公)의 위토(位土)를 상채(喪債)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북강(北江) 사동평(寺洞坪)이고 양안(量案)의 4책(冊)에 올라있으며 자호가 용자(用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5복(卜)인 논을 전문(錢文) 4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득인에게 넘겨줄 수 없어 신문기(新文記) 1장만 넘겨주었다. 이 거래에 조석범(曺錫範)이 증인으로, 권용호(權龍鎬)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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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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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1년 신재철(愼在哲)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愼東鎭 愼在哲 愼東鎭<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1년(헌종7) 11월 27일에 족질인 유학 신동진이 신재철에게 노비 3구를 팔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 명문 1841년(헌종7) 11월 27일에 족질(族姪)인 유학(幼學) 신동진(愼東鎭)이 신재철(愼在哲)에게 노비를 팔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 명문이다. 신동진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부득이한 상황이라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방매 대상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앙역비(仰役婢)인 임술생 복섬(卜暹)과 복섬의 첫째 소생인 갑오생 계집종 옥금(玉今), 둘째 소생인 기해생 사내종까지 모두 3구(口)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5냥이다. 기해생인 사내종 이름은 빈칸으로 두고 이름을 적지 않았다. 증인이나 필집을 두지 않고 신동진이 자필로 작성하였고, 자신을 족질이라고 하였으므로 신재철은 족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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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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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4년 박창순(朴昌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仁守 朴昌淳 金仁守<着名>金達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4년(순조14) 12월 12일에 유학 김인수가 박창순에게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4년(순조14) 12월 12일에 유학(幼學) 김인수(金仁守)가 박창순(朴昌淳)에게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인수는 시장을 소유하게 된 경위를 자신이 매득한 곳이라고 밝혔고, 사채가 많은데 올해 흉년까지 당하여 사채를 갚을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능주군 서면(西面) 화남촌(花南村) 뒤쪽의 불당곡(佛塘谷)이고 지목은 시장 한 곳이다. 그리고 시장의 위쪽과 좌우 경계를 효죽봉(孝竹峰)의 등성이를 끼고 자세하고 묘사하여 적었다. 이곳의 거래가는 전문(錢文) 40냥이고, 본문기(本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유학 김달갑(金達甲)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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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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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노 순정(順丁)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京居 洪金浦宅 奴 孫伊 尹生員 宅 奴 順丁 申完金<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철종10) 11월 28일에 서울 사는 홍김포댁 노 손이가 윤생원댁 노 순정에게 세 곳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59년(철종10) 11월 28일에 서울 사는 홍김포댁(洪金浦宅) 노(奴) 손이(孫伊)가 윤생원댁(尹生員宅) 노 순정(順丁)에게 세 곳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상전댁이 이매(移買)를 하기 위해서라고 적었는데, 이매는 이 논을 팔아서 다른 토지를 사들이는 것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포천(抱川) 청량면(淸涼面) 마전리(麻田里)이고 자호는 위자(位字), 지번은 27전과 31전과 49전이다. 면적은 27전이 5복(卜) 4속(束), 31전이 3복 3속, 49전이 3복 2속이고 경작시간 기준으로 하루 반일갈이[一日半耕]이다. 이 토지의 사표(四標)는 동쪽은 같은 사람 즉 홍김포댁 논이고 남쪽은 방축(防築)이며, 서쪽은 이득명(李得明)의 밭이고 북쪽은 서울의 사내종 금손(今孫)의 밭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사표는 사방 경계의 지형지물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사지(四至)라고도 한다. 이들 밭의 거래가는 전문(錢文) 105냥이고,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거래에 신완금이 증인으로, 유생원댁 노 복노미가 필집으로 참여하였다. 신완금은 착명을 하고 노비는 좌촌(左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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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재당질(再堂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箕祐 再堂侄 □箕祐<着名>李洙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9월 24일에 재당숙 기우가 재당질에게 논 1말 5되지기를 6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9년 9월 24일에 재당숙(再堂叔) 기우(箕祐)가 재당질(再堂侄)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성이 같은 친족끼리의 거래인지 성을 적지 않았다. 기우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화순군 송석면(松石面) 용암리(龍巖里) 상평(上坪)이고 자호는 옥자(玉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12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1말[斗] 5되지기[升落只], 부수로는 3부(負) 2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5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어 신문기 한 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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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福安 朴福安<着名>全公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11월 13일에 박복안이 누군가에게 밭 5마지기를 1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9년 11월 13일에 박복안(朴福安)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복안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후평(後坪)이고, 지목은 태종전(太種田), 면적은 파종량 기준 5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전공원(全公員)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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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啓宇 南啓宇<着名>柳重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3월 모일에 유학 남계우가 누군가에게 논 2섬 4마지기를 1,6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7년 3월 모일에 유학(幼學) 남계우(南啓宇)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계우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다른 곳으로 주거지도 옮기고 논도 옮기고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가 여러 곳인데, 먼저 무장(茂長) 성골면(成骨面) 포동(蒲洞) 전평(前坪)에 있는 경자(競字) 자호의 논 4배미[夜味] 7마지기[斗落只]와 같은 자호의 논 몇 마지기, 시자(是字) 자호의 논 2배미 11마지기, 같은 자호 2배미 5마지기, 같은 자호 1배미 5마지기, 그리고 성골면 복동촌(福洞村) 전평(前坪)에 있는 복자(福字) 자호의 논 8배미 5마지기와 백석면(白石面) 방축(防築) 후평(後坪)에 있는 혜자(鞋字) 자호의 논 9배미 7마지기를 합하여 모두 2섬[石] 4마지기를 전문 1,600냥을 받고 거래하였다. 이들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한다고 하였다. 문서 말미에는 구문기는 논 값을 다 받은 뒤에 넘겨주겠다고 추기하였다. 이 거래에 유중희(柳重熙)가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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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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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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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4년 고종환(高宗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瑞權 高宗煥 朴瑞權<着名>李基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03_001 1814년(순조14) 12월 10일에 유학 박서권이 유학 고종환에게 선산에 있는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4년(순조14) 12월 10일에 유학(幼學) 박서권(朴瑞權)이 유학 고종환(高宗煥)에게 선산에 있는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박서권은 올해 흉년을 당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어 이를 도모하고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선산의 나머지 산기슭인 일남(一南) 마근동(磨斤洞)이고 자호는 문자(問字)이며, 숙부의 무덤 뒤쪽 긴 골짜기를 한계로 하고 위쪽은 다른 사람의 무덤을 한계로 한다고 하여 경계를 적었다. 거래가 11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되, 본문기(本文記)는 도문기(都文記)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기재함으로써 훗날 본문기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될 소지를 방지하였다. 조선시대 매매명문에서 도문기는 일반적으로 부모로부터 분재 받은 내용을 적어놓은 분재문서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다른 전답이나 노비 등이 함께 병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따로 이를 분리하여 소유를 증명하는 용도로 넘겨줄 수가 없다. 이때는 이 문서의 경우처럼 도문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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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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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9년 문중(門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承庸 門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4월 6일에 이승용이 문중에 면전 2마지기를 7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9년 4월 6일에 이승용(李承庸)이 문중(門中)에 면전(綿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승용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담양군 대덕면(大德面) 매산리(梅山里) 후평(後坪)이고 지목은 면전, 자호는 자자(子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4부(負) 3속(束)이며, 거래가는 70원이다. 이 문서의 작성연도는 기미년으로 되어 있는데 거래가를 표시할 때 원(円)으로 표기하였으므로 연대를 1919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거래에는 다른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당사자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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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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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得滿 李得滿<着名>張允叔<着名>姜應三<着名>姜乃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 12월 16일에 이득만이 누군가에게 두 곳의 논 8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 12월 16일에 이득만(李得滿)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자신이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부득이한 이유로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소재지가 서상림리 산적동(山赤洞)이고 자호는 월자(月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이고 지형적 구획으로는 5배미[夜味]이며 수확량은 10부(負) 4속(束)인 곳과 교월평(橋越坪)에 있는 영자(盈字) 자호의 논 4마지기 5배미 13부 2속인 두 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10냥이다.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적었다. 장윤숙과 강응삼이 증인으로,강내언이 증필(證筆)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기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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