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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公姓鄭諱運字昌辰系出河東鼻祖諱道正以團練鄕兵有名於三國之季至諱國龍始脫吏籍仕高麗官密直副使是生諱芝衍僉議贊成五傳而諱宜叔監察諱三光進士諱允直長寔公之高曾祖也考諱應禎參奉贈工曹判書妣善山林氏遇元之女參判秀之孫也以嘉靖癸卯九月初十日生公于靈巖玉泉建橋山下早失判書公之訓事母極其誠孝爲洲里所稱性倜儻不羈勇銳絶人其在幼時以貞忠報國四字銘其所佩刀以張巡岳飛自期待治弓馬業而恥失學耽玩書史手不釋卷厲操律己凡諸聲色不接耳目夫人之于歸也有女使之工於樂者隨至取其樂器碎之嘗置駿馬價直萬錢御者爲其所踶而死卽斬而償之登隆慶庚午武科初爲居山道察訪一心盡職不爲威屈杖監司從人之巡路作弊者監司不悅公卽棄官後監熊川亦以直道見忤於監司卽日投綬通判濟州又不合於牧使罷歸而不以一駒自隨間歷二堡將皆以廉謹自持所在吏民愛敬如父母至以鄭爺稱之而勁直不撓爲權貴所擠沈滯多年逮萬曆辛卯宣廟注擬方勤以鹿島一堡賊路要衝特遣公防之公深念王事不遑寢食繕城池修器械又造戰艦三艘極其輕疾以備緩急之用越明年壬辰夏四月倭變猝起賊艘蔽海連陷釜山東萊等地慶尙一道望風瓦解無敢當其鋒者右水使元均呼救於全羅左右水使左水使李公舜臣卽傳檄列鎭大會諸將而議之或曰賊鋒甚銳不可輕出外洋姑留兵於此以待右水使李億祺未爲晚也或曰大駕西矣守此無益或曰國事已矣各宜罷兵或曰退保覘時見可而爲或曰擧帆西歸以圖勤王衆皆恇㥘失措論議紛紜無一人決計欲進者李公亦猶豫未決公不勝憤慨佩弓劍瞋目而前請還歸本鎭李公曰何也公曰嶺南已爲賊所陷嶺南我國之地也湖南亦我國之地也越視而不救則湖南其能獨全乎今賊未犯湖南急引兵逆擊一以衛湖南一以援嶺南可也乃反爲洋前防禦之計苟如是諸鎭之軍何必虛留於此以度時日乎又況君父蒙塵此正主辱臣死之秋也水兵尙完當以此時亟遏賊勢則鑾輿回轄指日可俟今欲兵不接刃先劫自退朝廷擢公爲主將之意安在大衆一散難可復合吾豈撓於群議而擁兵不敢出乎我軍之於今日猶睢陽之於江淮也願公速決策誓衆衆若持難我當決死先登焉言益峻而色愈厲李公作而謝曰鹿島之言是也微鹿島大事去矣卽下令諸軍登船軍士或有逃者竝斬之翌日曉發船直接固城之蛇梁時賊勢甚急嶺南諸鎭兵皆惶㥘奔竄自沈其船元均亦以一夾船竄伏于赤梁島聞李公至來見垂泣曰吾固苦待之矣吾之戰艦無一隻在此此將何爲李公慰撫之與之俱進屢過諸島諸浦出于梁巖之峽則倭船五十餘艘屯在玉浦望我軍至遽擧帆將避于加德島李公率諸船逐之左右斥侯諸將畏不敢逼公以後部將遂鳴鼓促櫓突出諸將之前軍士撓櫓少緩則公拔釼親督船疾如飛直衝賊船於是諸將不敢後幷進力戰賊不得支棄船登岸而走遂盡焚其船自是乘銳前進遇船必破破則燒盡李公還營更治兵器又發向嶺南至泗川之十巖遇賊船四十餘艘向我放砲據岸之賊亦依高放砲聲震天地諸將皆莫敢進公獨促櫓直迫層船之下督令諸壯士連弩仰射之賊盡力禦之終不能支皆棄船登岸公亟令斷其碇索曳出兩層船而焚之烈炎漲天諸將皆乘勢爭進岸上之賊亦懼而走遂竝燒其船又乘勝搜討之唐浦所在賊船及月明浦小峽間隱伏之諸賊船多敗死下陸而走兩處所棄船悉焚之已而忽逢賊船七十餘艘李公欲姑退覘其勢遂麾軍賊先鋒二小船電飛而追諸將懼而走篙楫之具皆投之水公獨殿後不棄一物又令毋促櫓夾船將申進世急呼促行活命公愈益遲重賊亦疑之不敢進逼俄而二小船從旁徑出若將遮截我諸船者然於是公始促櫓追之賊知不得脫至家阜島前棄船登岸而走公遂焚其船其在後七十餘艘見之皆畏㥘遁去李公還營未幾又出轉至前河渡見賊船屯於紙島其勢充斥非復前日之比李公將欲進擊公曰紙島厠於固城巨濟之間狹隘不可戰若誘出大洋而擊之庶可破也李公曰諾麾諸船佯退諸軍棄篙而走惟公與李公所棄船緩櫓而徐行賊盡兵追我一瞬間踰前河渡幾過閑山大洋距我咫尺而其先鋒己迫於是公與李公麾旗回櫓急與之角枹鼓動天矢石如雨賊氣大奪諸將亦返旗幷進殊死戰大破之悉焚其船浮尸蔽水腥血漲海其大樓船一隻脫而遁走我軍乘勝追擊之賊到閑山島側棄船緣岸而走諸將士以强弩射之盡殲之是日之戰全船捕捉者無慮七十餘艘而公之獨當捕捉者過半焉翌日夕還到于前河渡有一人自島上呼曰昨日賊船七十餘艘過是島去其夜惟四艘獨還哭聲如蛙向溫乃島去李公以爲必是閑山零賊踵而追之四賊艘果泊於栗浦之內遂進擊盡焚之公實破其三矣捷聞行朝上特嘉之超授公折衝將大任之也我軍之前後俘獲之多專由於公之每每先登乘勝鏖戰而公未嘗以首功自居也八月李公又率諸將而發九月初一日直赴釜山未至遇賊船二艘於沒雲臺下公以沒雲之雲與運同音自畵必死處置軍事曰我若死勿以死聞于賊使賊生氣遂進擊之賊大敗棄船登岸而走公使軍人投火賊船以焚之南海縣令奇孝謹貪其貨寳?水滅之鹿島軍投火不止遂爲孝謹所打傷公憤甚大聲叱曰孝謹孝謹何不竝力討賊反害殺倭之人乎孝謹大慚而退我軍遂進釜山之絶影島獨公及助防將丁傑先至傑謂公曰日已暮賊兵又盛不若明日更戰公勃然曰助防亦爲是言耶吾當與賊不俱生何待明日俄而李公繼至公令諸軍曰賊有一大船放銃甚猛我當先破其船遂力戰不已竟中丸而歿李公大驚仰天嘆曰已矣已矣國家失右臂矣命鹿島船載公尸使軍官宋希立護送遂卷甲而退我師皆號痛失措而賊相賀曰鄭將軍死矣餘無足憂李公還鎭爲文而哭之甚哀訃聞行朝上爲之震悼遂贈嘉善大夫北道兵馬節度使又因李公請命鹿島幷祀李大源祠大源亦以鹿島萬戶死於丁亥損竹島之戰者也後上下御札于勳府曰方李舜臣之會諸將議其援也鄭運力贊之及其討賊運之功居多終至於力戰而死則是以身殉國也加贈嘉義大夫兵曹參判旌表門閭錄其事蹟於三綱行實官其子之彦至報恩縣監至于周甲之壬辰郡人因牛山安先生邦俊之首議建祠于玉泉鏡湖之上肅廟辛酉賜額忠節遣官致祭若曰天植純孝粵自童孺拔身弓馬勵志儒素誓心報國銘釼自努歷試丞宰遴畀鎭浦繕修器械聿備陰雨島夷構釁賊勢蜂午海防失險危迫朝暮主辱臣死挺身遠赴抆淚登舟杖釼督櫓快帆雲駛焚鏖賊藪一身捍衛防截海路時維九月轉戰于釜雨飛赤丸風折大樹白日慘惔雷哭部伍翌年癸亥又賜鹿島祠額雙忠遣官致祭若曰南嶺赴援詢謀齟齬衆惟㥘㥘獨吐健語挺身犯難張睫決籌成吾輔車梗賊牙喉玉浦之戰紙島之捷拔釼督衆促櫓赴合腥焰臭岸醜血膏海尙賈餘勇轉戰窮界刳蛇殪豕誓蕩巢穴銳氣方馳飛丸潛掣英廟乙卯又賜祭于雙忠祠若曰勇絶倫輩文知大義選畀南鎭前人舊莅繕兵勵士誓心報主雕題稔惡傾國入寇萊釜先潰羽檄旁午聞變卽赴雪涕催船部雖扞後戰輒居前進死爲榮退生爲辱三十餘戰自夏徂秋沒雲臺邊日黑氛浮賊勢方盛衆請且俟忠膽忽張快颿飄駛轉鬪深入赤丸洞中長鯨偃波寃虹結穹諸鎭失臂群酋加額噫前後列聖朝所以崇獎之典昭如日星則靡有遺憾於英雄滿巾之淚豈不盛哉公之墓在本郡北平海林山壬坐從先塋也配淸風金氏牧使佐漢之女各葬于海南縣綠山烏巢峙向艮原生一男三女男卽縣監之彦女適都事愼汝謜都事朴輖虞侯柳大立縣監無子以再從姪時雄爲後郡守生泰道履道益道外孫男女曰昭曰曄曰尹善昌皆愼出餘不盡記嗚呼公以眇然乘障之將英圖毅略畵節度制勝之策鼓諸鎭未盈之氣奮不顧身所當必破誓使倭虜片帆無還遽殞於中丸之毒竟致邦域搶攘乎八年之久抑天之氣數使然而然耶嘗按吾祖玉峯公與人書曰昌辰兔六鎭無人地萬戶受點守門將仕路可望一善足以行身又按安牛山釜山記事曰國家之恢復由於湖南之保全湖南之保全由於李公之水戰李公之水戰皆出於鹿島萬戶鄭運首事之力也後之人欲知公之行誼勳業則盍考信於玉峯之書牛山之記哉受璥以玉峯之孫猥述公狀德之辭以備太史氏採覽水州後人白受璥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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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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諡狀末段 嗚呼今去壬辰二百有餘年國人雖婦人孺子尙能誦慕李忠武奕奕如前日事若其決策於先倡勇於後以基我國家重恢之績其忠誠功烈公猶李公也古所謂死則同傳者其二公之謂歟然公則當時微而不能自遂故久而聲名漸就泯翳向非我聖上追記而闡揚之則世之知公者或幾乎尠矣嗟呼是可以鼓一世忠義之氣而亦必使英魂毅魄感泣於泉下矣公之後承亦未蕃顯今之被收錄而官於朝者僉使曁內乘繼周也鍾顯職宗伯獲覩聖朝樹風獎節之盛典有不勝其欽仰感歎遂致排纂公事蹟上太常以備節惠之考崇政大夫行禮曹判書兼弘文館提學閔鍾顯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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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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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墓誌銘 壬辰島夷之難提數千烏合羸卒殲賊蕩艘于滄海之上而豐勳盛烈至今炳朗霄壤咸曰李統制舜臣爲第一余讀牛山安公釜山記事而不覺爽然自失其言曰國家恢復由於湖南保全湖南保全由於舜臣水戰舜臣水戰寔出鹿島萬戶鄭運首事之力也余於是始知李統制麾下又有鹿島奇男子也嗚呼睢陽張許之功在於蔽遮江淮沮遏百萬日滋之賊而慷慨捐軀爲張許前驅則南八愈奇得韓愈氏而霽雲之忠節與巡遠昭于無窮今余徵牛山之信筆焉鄭氏系出河東上世有諱國龍密直副使密直之子曰芝衍都僉議贊成事事載麗史入本朝襲冠冕監察宜叔進士三光直長允公之高曾祖三世考諱應禎以公功推恩贈判書妣林氏遇元之女參判秀其祖也嘉靖癸卯九月十日生公于靈巖郡玉泉村幼而失怙事母以孝聞倜儻不羈有三百曲躍之勇嘗以貞忠報國銘諸佩刀人皆奇之以岳武穆稱焉登庚午武科沈屈不騫棘棘嫉謏居山熊川皆投紱而返通判濟州亦忤而罷歸舟蕭然無一匹漢拏駒見者嘖嘖再爲堡將廉謹自持吏卒愛敬呼之曰鄭爺績著名彰朝廷方期大用而權貴不悅連騫摧挫公亦不求苟合於當路辛卯遴公拜鹿島萬戶賊之咽喉也慨然赴堡敽干鍛矛無不弔善卒有警公可以辦也及島夷大擧入寇嶺南瓦解無一人嬰其鋒時李統制爲湖南舟師左節度檄召鎭邑群帥會館計事咸縮頸懷遁未見有投袂起者公忽瞋目按劍而前曰願歸本鎭統制曰何故公曰湖嶺唇齒之勢嶺陷而湖可全乎賊未犯湖天之幸也決死一戰時不可失今至尊蒙塵狐疑懾伏豈主辱臣死之義扼腕灑涕色厲辭凜不欲與賊俱生統制瞿然變色曰鹿島之言起予微鹿島大事去矣下令軍中卽日登舟遂有閑山之大捷當是時李統制爲巡遠而湖南一路唐之江淮也元均孤軍朝夕魚肉鎭邑擁兵坐而觀望者相環獨公握刀佩弓奮不圖軀忠驅義感激主帥之心倡諸軍之勇俾湖南免其蛇食豕突是誰之功也南八拔刀斷指不能出賀蘭之師公以片談折群帥成敗之觀銅柱奇勳耀諸琬琰使公不遘李統制則無以戮力同心成其宿昔忠報之心也李統制非公則無以風勵將士蹂躪卉服樹其磊落之烈也然則李統制之功固不讓巡遠而公亦無愧霽雲若其感激驕將悍卒之心不敢遲頓玩寇冒刃競死以捍王室公無浮屠着矢之憤則古今人有幸不幸而賊未掃淸身先就義公與霽雲相侔三復國殤何其悲也公之前後擊賊凡有四捷而玉浦之戰公以敢死先登鳴鼓促櫓直薄賊艘腥烟漲穹釃血濺浪風飇電擊馮夷瑟縮赤亭之蕩十巖之踣公所燬鏖百有餘舳若夫閑山之捷則世之人惟稱李統制洪功偉略而區劃韜靲誘出紙島之巢穴大膊前洋別有鄭萬戶奇算惜乎世未有諳者公之忠赤顧不在衒勞而誇謀則復何恨也九月一日公隨李統制將赴釜山傳沒雲臺下公曰雲與運侔音我其死于斯仍戒左右曰我雖死毋使賊知我死遂進攻賊方酣戰焚艫南海縣令奇孝謹黷賊貨?水撲焰鹿島之士多傷公憤叱孝謹驅帆乘勝到絶影島日已夕矣助防將丁傑謂公曰日昏賊熾詰朝決戰何如公奮然曰丁公亦有是言耶吾已決一死奚待詰朝賈勇苦戰遂中飛丸噫嘻公果死矣沒雲其眞示讖而公竟殞身于絶影公之形影果若海雲滅沒乎吾知公之忠魂毅魄鞭霆駕風登頓九天而廓掃妖氛於萊山馬島之間公身雖沒而公影未絶試望公擊楫誓士之海隱隱有生氣焉當其捷聞行朝宣廟嘉歎招授公衣緋之秩及公立慬上聞而震悼贈公關北節度使命享李將軍鹿島之祠名曰雙忠後思公殉國忠節特賜御札褒美加贈嘉義大夫兵曹參判棹楔公閭官其子敍功獎忠於是焉無憾而牛山老人作南蕫之史則千載之下頌鄭萬戶者不獨鹿島之民湖嶺亦皆頌之不獨湖嶺國論史乘煌煌之勳奕奕之名振輝不泯麟閣慚色豈但均謹而已乎公之冡孫始漸千里持狀丐余幽宮之銘余素奇公純忠大節把筆無蔡中郞之愧也公字昌辰娶淸風金氏牧使佐漢之女生一子三女子之彦無子婿都事愼汝謜都事朴輖虞侯柳大立外裔繁而未艾紹公祀者之彦螟蛉繄屬忠臣之後側室男女寔多其昆公墓在郡北坪海林山壬坐之原從先兆也銘曰國之遘難歲値龍蛇矯矯忠武疇礪干鎁奮戈登陣鹿島之忠黑齒吞囓梫氛彌空忘君惜軀噫彼驕悍撾鼓盪穴海艘鳥竄閑山奏捷決籌尤奇雲帆星矛奚有島夷統制之勞萬戶之勇矢死扞王旂常光寵視天夢夢赤丸洞胸蛟踴鰐舞孰敢嘬鋒莫曰沒雲横亘其氣飇輪犀甲鯨戮雕卉鏡湖俎豆庶妥公靈茫茫終古眎此鑱銘正憲大夫原任兵曹判書兼弘文館提學元景夏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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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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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06년 이형태(李亨泰)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李亨泰 李亨泰[着名]李賢五[着名]鄭緇賢[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4월 15일에 이형태가 김기회에게 산지를 방매한 후 서로 경계를 정하고 화해하기로 약속하면서 발급한 약속 문서 1906년 4월 15일에 이형태(李亨泰)가 읍 동천리(東川里)에 있는 선산을 김기회(金基會)에게 방매한 후 환퇴(還退)를 요구하다가 다시 내용을 수정하여 화해할 것을 약속하는 문서이다. 문서상에 산주(山主)는 이형태로 되어 있으나, 원래 방매한 사람은 이부춘(李富春)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손자 이형태가 선산을 방매할 수 없어 환퇴를 요구하였다. 그러다가 화호(和好)의 뜻으로 경계를 나누어 영구히 허급(許給)한다는 뜻으로 이 약속 문서를 작성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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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16년 이길룡(李吉龍)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崔期東 李吉龍 崔文厚信 1顆(적색, 원형, 1cm)孔銀澤信 1顆(적색, 원형,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6월 25일에 최문후, 최기동이 이길룡에게 가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계약 문서 1916년 6월 25일에 최문후(崔文厚), 최기동(崔期東)이 이길룡(李吉龍)에게 가대(家垈)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가대매매계약서이다. 가대는 집터와 건축물을 합하여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집터만 지칭할 경우 공대(空垈)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본 계약서에서 매매한 가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에 있으며, 체사(體舍) 4칸과 행랑(行廊) 10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액은 260원이다. 매도자 이름에 2인이 쓰여 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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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앞장답 상장쳡출설화 제번ᄒᆞ압고 거월노파편 헤합 밧ᄌᆞ옵고 답ᄌᆞᆼ치 못오ᄌᆞᆨ 무심타 ᄒᆞ섯시리요 심중일킨이오나 수란 중 그리 되엿ᄉᆞ오이서량ᄒᆞ옵시기 바라오며 ᄎᆞ시화진 녹엽의 외로오신기운 안ᄉᆞᆼᄒᆞ오신가요 우리 현서계서도 독공중 안ᄉᆞᆼᄒᆞ오시며 수월간 만이 ᄌᆞᆼ성ᄒᆞ섯실 닷 소ᄃᆡᆨ 층졀절 일안ᄒᆞ오신잇가척질부도 모ᄌᆞ 평길ᄒᆞ며 본가ᄃᆡᆨ이ᄂᆞᆫ 안과ᄒᆞ신 겨ᄋᆞᆸ 각 신연통ᄒᆞ시며 ᄎᆞ곳슨 ᄉᆞ고 업ᄉᆞᆸ고 외당계서도 안ᄉᆞᆼᄒᆞ시고 현부각 ᄂᆡ외 ᄉᆡᆨ기들 다리고 골물중 무탈ᄒᆞ며 여아 다 숙질 충실 든〃 ᄃᆡ소 각ᄃᆡᆨ 일안ᄒᆞ시고시숙모 수슉분 노흔 기력 강건ᄒᆞ옵시이 복위ᄋᆞᆸ고 각신종〃 경시 ᄌᆞ식 조식 동〃ᄒᆞ나조야 못 잇난 심신 ᄌᆞᆷ전 잇지 못ᄒᆞ나 쓸ᄃᆡ잇ᄉᆞᆸ ᄒᆞᆯ 말 여출이나 총요 중 이만 근치오이다이제ᄉᆞ 셩ᄉᆡᆨ ᄒᆞ인 부리오나 갓초지 못 첨시 무안〃〃ᄒᆞ오나 다 우리 현서 무ᄉᆞ 왕님ᄒᆞ기뒷장바라오이다무진 ᄉᆞᆷ월 염일김 상ᄌᆞ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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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무진년 사돈 김씨(金氏)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査 金氏 査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3월 20일에 김씨가 사돈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무진년 3월 20일에 김씨가 사돈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지난달에 사돈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하지 못해 무심하게 여기셨을 듯하다면서 어수선하여 그리되었음에 용서를 구하였다. 공부에 열중하는 사위의 안부를 물으며 몇 개월만에 장성하셨을 듯하다고 하였다. 자신도 식구들 근황을 두루 전한 뒤 이제야 하인을 부려 편지를 전하나, 물품을 갖추어 보내지 못함을 무안해하였다. 그리고 사위가 하루빨리 왕림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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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앞면청상의 연분으로 월로가 매파 되고 표매에 택길하와 불초한 여식을 존문에 출가되여 한미한 이 가정에 만장에 셍색일 뿐 속례에 풍로 여려신 초행을 당일 치루오니 밧사돈계셔 원로에 행차하섯다가 진시 도라가시온 일이며 인간에 첫 자미인 상수범절조차 존문 첨시에무안 참괴하일 원좌홍안일 구 측량키 어려우며이곳 만금 서랑 석대 비범 진지 대장부의 풍체일 뿐아니라일동일정이 볼사록 범가의 교양인 듯 탐〃 반가운 마음 장중에 보옥갓치 노키 실흐나 이도 또한 시대의 풍속이라 흐뭇시 못 보옵고 떠나보낼 때도 노마도 없이 척헹 공수로 보ᄂᆡ오니 여려 가지 부족한 일 무엇이라 사과하오리가관대하신 도량으로 눌너 용서하시압기 바라오며 요사이동한 날세 고르지 못하온대 연하와밧사돈계압서 외로우신 기력 여강여릉 숙침등절이 여일강상하옵시며 뫼시압고 절무신 사돈 호번 다단하신 중만〃 평안하시오며 겻사돈 각위분 첨상이나 아니시며 이곳 만금 서랑도 신혼 정성을 밧든 중 여전 평길하오며 대소첨절이 균안하시온지 구〃 사려 원문〃〃이올소이다 이곳사인은 안밧 와증 업사오며 슬하 아해들 면〃 무고 외처 각 집무고한 줄 든〃 연이오나 여아를 존문에 보내오나 아모 한가지 가르친 일 업서 존전에 보내오니 귀곳 널부신 자에시로 친여갓치 지도하여주시옵기 바라오며 소위 정성은 보잘 것 업사오니 가지〃〃 무안수치이로 형언할 수 업사오나 만문 용서하시압기 바라오며 이후 내〃 평안 소식 복축〃〃하옵고 사연 무〃〃 이만 긋치압나니다경술 지월 십삼일 사인 권 상장뒷면상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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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思一 金思一<着名>宋學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4월 10일에 김사일이 누군가에게 8마지기 논을 82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4월 10일에 김사일(金思一)이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김사일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선자(先尺)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백석면(白石面) 건지산(乾地山) 아래 연지동평(連池洞坪)이고 자호는 난자(難字), 면적은 8마지기[斗落只] 8배미[夜味] 23복(卜) 7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 82냥이다. 구문기와 신문기 2장을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였다.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마지기는 파종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배미는 논이나 밭의 두렁을 기준으로 지형적 경계 구분이며, 복속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한 방식이면서 동시에 전세(田稅)의 과세 단위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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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九鉉 朴九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4월 14일에 박구현이 누군가에게 1말 5되지기의 논을 1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4월 14일에 박구현(朴九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구현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세미(稅米)를 납부할 길이 없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추산평(秋山坪)이고 자호는 충자(忠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5부(負)인 곳을 전문(錢文) 10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를 잃어버려서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문구를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상인(喪人) 이윤호(李潤浩)가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였고, 상중이라 착명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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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숙모(叔母)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叔母 姪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봄철에 새로 맞이한 질부에게 숙모가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봄철에 새로 맞이한 질부에게 숙모가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첫머리에 '질부(姪婦) 잠시 견독(見讀)하여라'라고 시작하여 수신자가 질부임을 알 수 있다. 명문가 집안에서 시집온 질부가 혼례를 무사히 치르고 직접 쓴 편지를 받은 감회를 서술한 뒤 친가와 시가 양가에 유복한 사람이 될 일을 기뻐하였다. 조카[질아(姪兒)]의 나이가 어리지는 않으나, 아무 견문이 없어 높은 안목에 못 미치는 것이 있으면 금실 좋게 가르쳐 주라는 당부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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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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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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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重熙 柳重熙<着名>金海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8월 모일에 종인 유중희가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1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 8월 모일에 종인(宗人) 유중희(柳重熙)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자신을 종인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매수인 역시 종인으로 추정된다. 유중희는 선대로부터 유래된 논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峰山村) 사야평(沙也坪)이고 자호는 비자(卑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16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 9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 27부(負) 2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80냥이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화재로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어줄 수 없다는 문구를 추기하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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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華卿 金華卿<着名>金益大<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고종32) 8월 20일에 유학 김화경이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133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고종32) 8월 20일에 유학(幼學) 김화경(金華卿)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화경은 자신이 매득하여 도조(賭租)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포동촌(蒲洞村) 동중보평(東中堡坪)이고, 자호는 경자(競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8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 27부(負) 4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33냥이다. 구문기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 측에 넘겨줄 수 없고, 금년에 수확하는 곡식도 매수인이 갖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를 말미에 덧붙였다. 대부분의 전답거래는 수확을 마친 뒤 겨울에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는 매매 시기가 8월이므로 이러한 조건이 기재된 것이다. 김화경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김익천(金益天)이 증인으로 참여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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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有福 奴 有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고종32) 11월 17일에 황생원댁 노 유복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6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고종32) 11월 17일에 황생원댁(黃生員宅) 노(奴) 유복(有福)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복은 방매사유를 이매(移買)라고 적었는데, 이는 이 논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려고 한다는 의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산동(山東) 송본원(松本員)이고 자호는 연자(硏字), 지번은 34답, 면적은 수확량 기준 12복(卜), 파종량 기준 4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노 유복은 다른 증인이나 필집을 두지 않고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여 거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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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然述 吳然述<着名>柳景老<着名>柳季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6월 15일에 오연술이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1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6년 6월 15일에 오연술(吳然述)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오연술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峰山村)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존자(尊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130냥이다. 구문기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유경로(柳景老)는 증인으로, 유계명(柳季明)은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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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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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21년 류영선(柳永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應哲 柳永善 金應哲信 2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 1월 2일에 김응철이 류영선에게 500냥을 받고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21년 1월 2일에 김응철(金應哲)이 류영선(柳永善)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응철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여러 곳의 밭을 각각 소재지와 지목, 지번, 면적, 매매가 등을 적었는데 면적은 기존의 마지기[斗落只]와 일본식 평수(坪數)를 혼용하였고, 매매가 역시 기존의 냥(兩)과 원(円)을 혼용하여 적었다. 회동평(回洞坪)에 있는 태종전(太種田)은 면적이 3마지기이고 지번은 538번, 평수로는 675평이고 지가(地價)는 67원(円) 5전(錢)이다. 죽림리(竹林里)의 대전(垈田)은 지번이 479번, 면적은 218평, 지가는 26원 16전이다. 또 다른 밭은 면적이 29평, 지가는 2원 90전이고, 또 다른 밭은 면적이 62평, 지가는 4원 24전이다. 이들 모두를 합한 매매가는 전문(錢文) 500냥이다. 이들 밭의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 류영선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기존의 매매명문 양식에 따라 본문을 작성하였지만 이 시기의 새로운 용어 및 전주(田主)와 증인(證人)의 주소지를 이름 앞에 쓴 점, 착명 대신 도장을 날인한 점 등이 매매계약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문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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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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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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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29년 현학규(玄鶴圭)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玄英圭 玄鶴圭 玄英圭信 1顆(적색,원형,1cm)光州地方法院潭陽出張所 1顆(적색,정방형,3.7×3.7cm)司法代書人吳昌俊 1顆(적색,정방형,1.5×1.5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월 20일에 현학규가 현영규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고 광주지방법원 담양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 제출한 매도증서 1929년 1월 20일에 현학규(玄鶴圭) 현영규(玄英圭)로부터 밭을 매입하고 난 뒤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담양출장소(潭陽出張所)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 제출한 문서이다. 일본어로 인출된 용지에 대서인(代書人)이 해당 사항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매매 부동산은 담양군(潭陽郡) 고서면(古西面) 고읍리(古邑里) 180번지이고 지목은 전(田), 면적은 186평(坪)이다. 문서에는 붉은색 인주의 장방형 도장 두 개가 날인되어 있는데, 우선 하단의 등기제(登記濟) 인은 수부(受附)를 적은 것으로, 수부는 접수의 의미이다. 즉 등기 신청을 접수한 날짜는 소화(昭和) 4년 1월 29일이고, 접수번호는 적혀있기는 한데 종이가 겹쳐서 알기 어렵다. 문서 상단에 있는 다른 장방형 도장은 토지등기부에 등록이 완료된 등기번호를 기입한 것인데 번호는 제5595호고 순위번호는 2번이다. 등기제인 아래에는 정방형의 '광주지방법원울진출장소인(光州地方法院潭陽出張所印)'이 찍혀 있다. 맨 마지막에는 사법대서인(司法代書人) 오창준(吳昌俊)이 이름을 적고 도장을 날인하였으며, 서기요금은 16전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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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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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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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豐山洪丙憙 果能天地位賴有聖賢存民善幸亡墜千秋道彌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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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晉州鄭乗恂 天縱三賢聖影明道亦存泮泮如在矣精禋百世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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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全州李東咸 孔朱安子學千載道東存丹雘數間廟儼然遺像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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