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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류씨 사직공파보 권2편(高興柳氏司直公派譜 卷二編)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사회-가족/친족-족보 高興柳氏司直公派 高興柳氏司直公派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흥류씨 사직공파보(高興柳氏司直公派譜)의 제2권에 실을 초본. 다른 파보가 활자로 가본이 나온 것과 달리 이 파보 초본은 모두 수기로 작성되어 있다. 거제공파(巨濟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송암공파(松庵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의 22세부터 27세까지의 족보가 기재되어 있으며 확인하고 보완한 원본으로 9장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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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정재훈(鄭在勳)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寅七月初三日 內從 鄭在勳 甲寅七月初三日 1914 鄭在勳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인년 7월 초3일에 內從 鄭在勳이 모친상을 당한 외종사촌에게 보내는 慰狀. 갑인년 7월 초3일에 內從 鄭在勳이 모친상을 당한 외종사촌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이다. 편지 내용은, 뜻밖의 흉변으로 先夫人 丁氏가 色養(어버이 안색을 살펴 孝養함)을 갑자기 버리셨으니 부고를 받고서 놀라고 슬픈 마음을 그칠 수 없다고 하면서 효심이 순수하고 지극한 상대방이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를 묻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장례를 지내게 되었으니 애통함과 망극함을 어찌하겠느냐, 모친상을 당한 뒤로 기력은 어떠한지, 억지로 죽이라도 먹고 禮制를 따르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집에 얽매여 직접 달려가 위로할 길이 없는 처지라 괴롭다고 하였다. 편지 봉투가 남아있지 않아 수신자를 알 수 없으나 고흥류씨가에 소장된 문서임을 볼 때 편지 수신인은 柳敬浚(1855~1935)이고, 돌아가신 모친인 先夫人 丁氏는 柳永蒔의 부인인 영광정씨이며, 편지 작성일인 갑자년은 1924년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전형적인 위장 형식을 갖추고 있는 서간문으로 작은 글씨로 정서하였으며 서두는 "頓首再拜言"이라는 용어로 시작된다. 위장은 일반 서간에 비해 특별한 서식을 갖추고 있는데, 일반 서간에 비해 글씨를 작게 쓰고 초서가 아닌 정서를 쓰며 지면의 상단을 확연하게 띄워 쓴다. 용어 역시 수취인이 喪人일 경우 哀座下, 哀座前, 哀座, 哀次 등의 용어를 쓰고,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孝廬, 廬所, 廬下, 廬次, 廬史 등으로 쓴다. 편지 문두에는 稽顙, 稽顙再拜, 頓首, 頓首再拜, 省禮, 省式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용어들 역시 발급인 또는 수취인의 당시 상황이나 위계관계 등에 따라 구분하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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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납기(願納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경제-회계/금융-치부책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萬宗齊를 보수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성출한 금전을 기록한 帳簿 萬宗齊를 보수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성출한 금전을 기록한 帳簿. *앞표지: 丙午九月日, 萬宗齊 *1冊 15張, 空紙 2張이 假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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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日榮字達夫號滄溟高興人都護府使東起玄孫德行純眞文學富贍親病血指茹素寿終制登薦剡旣孤事兄如父事多人所難能之行敎育兄子至蒙孝贈年二十餘三中鄕解初試著家訓以貽子孫搜採先蹟編成數卷卽信菴實記誠齋全集又有遺稿四卷藏于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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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이차형(李次炯)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甲寅十一月二十七日 慶州后人 李次炯 甲寅十一月二十七日 李次炯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인년 11월 27일에 慶州后人 李次炯이 큰아들 在成의 신부인 류생원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 갑인(1854)년 11월 27일에 慶州后人 李次炯이 큰아들 在成의 신부인 柳生員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이다. 편지는 따님을 큰아들 在成의 아내로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며, 옛 어른들의 예절에 따라 납폐(納幣)의 의례를 행한다는 내용이다. 연결문서로 피봉(皮封) 1점, 涓吉 1점이 있다. 고흥류씨 족보에 柳世榮(1774~1846)의 사위로 李在成이 기록되어 있어 이 문서의 수신인인 신부 柳生員댁은 류세영가로 짐작된다. 이 시기의 혼인은 지역과 가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議婚, 납채, 연길, 納幣, 大禮, 于歸의 6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랑 측에서 중매인을 통해 혼인 의사를 표시하고(의혼) 신부 측에서 혼인을 받아들인다는 의식인 납채를 치른다. 납채를 할 때 신랑 측에서 예물과 함께 사주단자를 신부 측에 전해주고, 신부 측에서는 신부의 궁합과 비교하여 혼인날을 택해 신랑 측에 연길을 보낸다. 날짜까지 확정이 되면 신랑 측은 각종 예물을 함에 담아 신부 측에 보내는데 이를 납폐라 한다. 혼인날이 되어 신랑은 목욕재계를 하고 조상 사당에 배례를 하고 신부집으로 떠나 신부와 처음 만나고 대례인 교배례와 합근례가 이어진다. 대례가 끝나면 신랑은 신부의 친척과 인사를 하고 첫날밤을 치른 후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것을 우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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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회계/금융-치부책 壬午正月日 壬午正月日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壬午) 작성한 추수기. 1982년(壬午) 1월 기준으로 작성한 추수기이다. 읍내 호동(虎東)에서 노(奴) 춘매(春每)가 30을, 노 효돌(孝乭)이 50을 가져갔다. 노 유월(六月)이 34복(卜)을 내주었는데 그 중 5복2속을 수원(水元)이 가져갔다고 적었다. 이후 노 팔□(八□)에게 내 준 것은 춘금의 몫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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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류영심(柳永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卯閏三月三十日 三從弟 永心 虎山柳生員宅 族案 己卯閏三月三十日 柳永心 柳生員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에 春川譜廳에서 三從弟 柳永心이 족보 일로 고흥의 종인에게 보낸 간찰 1939년에 春川譜廳에서 三從弟 柳永心이 족보 일로 고흥의 종인에게 보낸 간찰. *간찰 오른편을 접어 수신자와 발신자를 적음 *원문: 錢後已閱了矣伏未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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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류영선(柳永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卯六月十四日 族弟 永善 己卯六月十四日 柳永善 柳重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1939년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원문: 久阻之餘忽伏拜下狀就承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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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고흥유림대성회(高興儒林大成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酉十二月十五日 高興儒林大成會 柳重憲 座下 乙酉十二月十五日 高興儒林大成會 柳重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5년에 高興儒林大成會에서 고흥 호동의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1945년에 高興儒林大成會에서 고흥 호동의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국한문혼용 *원문: 敬啓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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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류삼석(柳三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二月十三日 族弟 三錫 丁未二月十三日 柳三錫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완주 柳三錫가 고흥 族人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완주 柳三錫가 고흥 族人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원문: 客冬新元荐承下緘到今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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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선(柳永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二月念五日 族從 永善 二月念五日 柳永善 柳重益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益에게 보낸 간찰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益에게 보낸 간찰. *원문: 元月惠狀何等感篆病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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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남양송씨문중(南陽宋氏門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寅二月二十一日 南陽宋氏門中代表 宋秉憲 壬寅二月二十一日 宋氏門中 柳氏門中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인(壬寅)년 2월 21일에 남양송씨문중(南陽宋氏門中)에서 류씨문중(柳氏門中)으로 보낸 간찰(簡札). 임인(壬寅)년 2월 21일에 남양송씨문중(南陽宋氏門中)에서 류씨문중(柳氏門中)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두 가문이 함께 운곡사(雲谷祠) 중수를 하게 되고 함께 하자는 의견을 내주시고 도움을 많이 받아 감사한다는 내용과 함께 추후에 양 가문의 어르신들이 모두 모여 서원에 선조를 모시고자 하니 많이 참석해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행정(杏亭)은 송인(宋寅)으로 추정된다. 송인은 고려 말에 판도판서(版圖判書)ㆍ정당문학(正當文學)등을 지낸 후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러 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켰다. 그후 태조(太祖)가 여러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송림촌(松林村)으로 내려와 스스로 호(號)를 송촌(松村) 또는 행정(杏亭)이라 불렀다고 한다. 운곡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730번지에 있는 사당으로, 고흥유씨와 남양송씨 15위를 모시고 있다. 여산송씨 송간(宋侃),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과 고흥유씨 유탁(柳濯), 영광정씨 정연희(丁運熙)등을 배향하기 위하여 1785년(정조 9)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곡리에 창건한 사당이다. 1796년(정조 20) 여산송씨 문중에서 서동사(西洞祠,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55호)로 송간·송대립 등의 위패를 모셔갔고, 같은 해에 남양송씨 송인(宋寅)과 영광정씨 정걸(丁傑) 등이 운곡사에 추배되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0년 유덕산 기슭의 고흥유씨 집성촌인 고흥읍 호동리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설화문학의 대가였던 유몽인에게 광해군이 내린 교서인 '유몽인 위성공신교서(衛聖功臣敎書, 보물 제1304호)'가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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