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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이재훈(李載勳)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載勳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49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재훈(李載勳, 3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호주(戶主) 이석량(李錫良)이 이재훈(李載勳)으로 개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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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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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이재훈(李載勳)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載勳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7x6.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52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재훈(李載勳, 41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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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부의록(賻儀錄) 고문서-치부기록류-부의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부의록(賻儀錄) 대문(大門) 부의미(賻儀米)라 쓰고 보평(寶坪)에서 부의한 곳의 성명과 수량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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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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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1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를 치르기 위해 택일(擇日)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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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2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를 치르기 위해 택일(擇日)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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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나순좌(羅舜佐)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舜佐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7_001 1795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795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순좌와 처(妻) 방씨(房氏), 아들 나득검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순좌의 거주지는 현내면 삼천동리이고, 나이는 65세이다. 나순좌의 사조(四祖)와 처 방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나순좌의 사조에는 생부(生父)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유노비는 앙역비(仰役婢)와 각거질(各居秩)로 나누어 기재하였는데, 앙역비는 1구(口)이고 각거질은 4구이다. 각거(各居)는 외거(外居) 노비를 가리킨다. 이 호구단자는 관의 확인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 주묵(朱墨)이 실제 구성원 위에 찍혀 있고, 오가작통(五家作統)을 한 것으로 보이는 통호(統戶)가 역시 주묵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지방관의 서압(署押)과 관인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날인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호구단자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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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나득검(羅得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得儉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6_001 1819년 나득검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819년 나득검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환부(鰥夫) 나득검과 어머니 방씨(房氏), 아들 정열(廷說)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51세이다. 이때 나득검은 상처(喪妻)를 하고 홀아비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사조(四祖)만 기재하고 아내에 대한 인적사항은 없다. 대신 아들 정열의 외조(外祖)만 기재한 것을 볼 수 있다. 소유노비는 도망노비 1구(口)만 기재되어 있다. 도망노비의 경우도 빠뜨리지 않고 기재하는 것은 훗날 추심할 경우를 대비하여 소유를 분명히 해두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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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병○년 배석문(裵錫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裵錫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년 음력 4월 7일, 배석문이 병록을 올리며 약을 지어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사실을 덧붙여 올리니 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병○년 음력 4월 7일, 배석문(裵錫文)이 병록(病錄)을 올리며 약을 지어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사실을 덧붙여 올리니 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어제 족숙(族叔) 편에 보낸 편지는 읽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며 밤사이 경서를 읽으시는 상대의 안부 및 아드님 형제분들이 공부 잘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어제와 같은 모양이라고 한 후 자신의 족조(族祖) 지평공의 손자인 배석영(裵錫瑛)을 천거하면서 그의 할아버지 의행(懿行)이 문제가 되었기에 일찍이 정단(呈單)하지 못한 것은 감수한다고 하였다. 병록(病錄)을 올리며 고명하신 솜씨로 몇 근을 더해 약을 만들어 주시고, 석두(錫斗)의 이름으로 달아놓아 달라고 하였다. 자신의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 이오헌공(二娛軒公)의 사실(事實)은 이미 전 것이 있는데, 문헌록에 실려 있는 것을 보태어서 다시 초록하여 올리니 봐주시기를 바라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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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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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이노경(李老景)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老景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음력 2월 28일, 생 이노경이 동고를 약속했던 상대에게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자신의 집으로 와서 의논할 것을 권한 서간. 음력 2월 28일, 생(生) 이노경(李老景)이 동고(同苦)를 약속했던 상대에게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자신의 집으로 와서 일을 의논하자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지난번에 상대가 왔을 때 이후로 오랫동안 소식이 막혔다는 인사로 시작하여 최근의 상대 안부를 물은 후 생(生)인 자신은 현재 병이 낫지 않아 치료하는 일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주요 할 말은 지난번에 고생을 함께 하겠다고 했던 말을 잊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일간 우리 집에 와서 의논하고 결정하자고 하였다. 그를 위해 기다릴 터이니 와주길 바란다고 하며 봄에 복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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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66년 정일신재선생연원록(鄭日新齋先生淵源錄) 간소(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6년 10월에 정일신재선생연원록 간소에서 유림에게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한 통문. 1966년 10월에 정일신재선생연원록(鄭日新齋先生淵源錄) 간소(刊所)에서 유림(儒林)에게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한 통문(通文)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의 연원록(淵源錄) 간행을 결정했으니 통문을 보는 즉시 명단(名單)을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한 내용이다. 일신재선생연원록간소는 능주향교(綾州鄕校)이다. 통문의 발기인은 도유사 배석면(裵錫冕) 외 부유사 민홍기(閔弘基), 홍규식(洪圭植), 총무 김윤정(金潤貞), 재무 박병용(朴炳容), 편집 2인, 교정 2인, 감인 2인, 사서 2인, 고문 16인, 특별유사 20인, 추진위원 35인이다. 얇은 종이에 석판인쇄 기법으로 인쇄하였다. 실제로 『일신재선생연원록(日新齋先生淵源錄)』은 1967년 석인본으로 1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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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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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8년 노 팔룡(八龍)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婢 聖梅 奴 八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3월 22일에 강씨의 비 성매가 돈을 빌려 쓴 후 밭 3마지기를 전당하고자 조씨의 노 팔룡에게 써 준 수표 1908년 3월 22일에 강씨(姜氏)의 비(婢) 성매(聖梅)가 모전(牟田) 3두락지를 전당(典當)하면서 조씨(趙氏)의 노(奴) 팔룡(八龍)에게 발급한 수표이다. 내용은 성매의 상전이 조씨의 돈 5냥을 내다 쓰고 1년이 지났으나 갚지 못했으므로, 밭을 전당하며 우선 수표를 작성해 주고 훗날 갚겠다는 것이다. '전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밭 3두락지를 성표(成標)한다고만 했으나 실질적 내용은 빚을 갚을 때까지 담보로 이 토지를 맡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당한 토지는 모전 3두락지이며, 자호(字號)는 충자(忠字), 지번은 95이다. 표주(標主)로 강씨의 비 성매가 나선 것이 이채로우며, 특히 필집이 따로 없고 비 성매가 이 수표를 작성하고 서압(署押)까지 남겼다는 점이 눈에 띈다. 보통 노가 상전을 대신하여 매매문기 등을 작성한 사례는 많으나 비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수촌(手寸)을 하지 않고 어설프지만 서압을 남긴 것도 특이한 점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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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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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戊申 三月 二十二日 趙奴 八龍前 手標右手標事段 矣上典宅 要用所致 右宅錢伍兩出用是除可 周年已過 勢無奈何 故秋牟忠九十五田參斗落只㐣姑爲成標 日後備報之意 固手標印標主 姜婢 聖梅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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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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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74년 윤창효(尹昌孝)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朴來東 尹昌孝 朴來東[着名]朴致東[着名]尹相伯[着名]成鍛[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4년(영조 50) 10월 10일에 박내동이 노비 3구를 윤창효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노비매매명문 1774년(영조 50) 10월 10일에 박내동(朴來東)이 노비 3구를 윤창효(尹昌孝)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노비매매명문이다. 노비를 매득한 윤창효는 박내동의 매부(妹夫)이다. 방매한 노비 3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몇 년간 사환하던 것이다. 모두 비(婢) 명심(明心)의 소생으로 노(奴) 명금(明金, 16세), 노 명재(明才, 11세), 비 납을덕이(臘乙德伊, 8세)이다. 본문기는 도문기(都文記)에 재록(載錄)되어 있어 내어줄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분재문기에 수록된 노비를 방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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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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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乾隆參十玖年甲午 十月 初十日 妹夫 幼學 尹昌孝前 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 祖上流來衿得奴婢 累年使喚是如可 生道爲難乙仍于 婢明心一所生奴明金年十六 二所生奴明才年十一 三所生婢臘乙德伊年八三口等乙 價錢拾參兩以 交易依數捧上爲遣 右前永永放賣爲乎矣 本文段 都文記載錄 故不得出給爲去乎 日後良中同生子孫中 如有雜談之弊是去等 此文記 告 官憑考者奴婢主 幼學 朴來東 [署押]證 同生弟 幼學 朴致東 [署押]證叅 幼學 尹相伯 [署押]筆 幼學 成鍛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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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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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1년 김이종(金利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仁淳 金利宗 金仁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1년(순조 31) 12월 27일에 김인순이 자신에게 전래해 온 밭을 김이종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1년(순조 31) 12월 27일에 김인순(金仁淳)이 자신에게 전래해 온 밭을 김이종(金利宗)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고읍면(古邑面) 사동평(蛇洞坪)에 있는 8두락지의 밭으로, 전문 10냥의 값으로 매매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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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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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文爲通諭事 道學之有淵源盖古矣 上自洙洄▣ 至洛閩莫不傳守之實斯文之正脉而時之汚隆世之治亂 繫于此淵源之関重 於名敎可謂大矣 惟我日新齋鄭先生以蘆門嫡傳 其於天人性命之蘊奧理氣帥役之微妙 心得而體驗之 因講道于南服 學者傾一時而坌集各隨其才質之高下而導迪之如洪鍾之待扣鼴鼠之各充弟子散在四方 以所受於師者 授其却下生徒以至再三傳儘 是先生之淵源也 不有當日之攸錄百世之下 孰知延平之學 出於河南紫陽之道 傳于金華耶 以是詠歸享祀 享日輿議詢同將刊淵源錄 玆仰通惟願 僉尊 覽通後卽爲修送名單 以完鉅役則於斯文世道 幸甚幸甚丙午十月 日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印]綾州鄕校都有司 裴錫晃副有司 閔弘基 洪圭植總 務 金潤貞財 務 朴炳容編 輯 李基來 朴準台校 正 鄭淳熙 梁在述監 印 朴濟相 安鍾基司 書 朴菶來 李炳根顧 問 朴炳壽 朴道東 李弘信 金正煥 李基允文在茂 安道淳 閔長植 具敎洛 崔璣炫奇老章 洪錫憙 魏錫漢 林驥洛 朴琪鉉裵鍾球特別有司 洪潤植 金龍熙 李鍾祿 李白休 朴喆周金冑連 朴淸圭 裵賢洙 尹在東 高光榮曺東熙 安鍾千 李基春 梁琪承 曺圭平趙三顯 廉元燮 申仁圭 韓秉玉 鄭淳周推進委員 金九炫 高光泳 黃起采 鄭城采 文濟俊李承瑨 趙來錫 邪時億 金煥奎 金道熙安圭文 李炳栽 文基雄 朴炳斗 廉敏燮朴德周 李承佑 裵錫原 安炫淳 李鎭白李炳午 鄭翔鎭 邪甲鍾 閔井植 奇世國崔貞鉉 金奉熙 洪甲植 文仁植 趙炳植梁壽承 金貞熙 洪承達 魏鴻奎 吳在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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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윤재남(尹在楠)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在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윤재남(尹在楠)이 당숙모의 상을 당해서 상대방의 초대에 부응하지 못함을 알리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3월 5일에 윤재남(尹在楠)이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이 편안히 지내는지 묻고, 자신은 당숙모(堂叔母)의 상을 당해서 평소 자신을 아껴주시는 정성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어 몹시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렇게 변변치 못한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심하게 꾸짖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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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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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이기래(李基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基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47_001 경술년 2월에 이기래(李基來)가 칠송사(七松祠)에서 일곱 집안의 회의를 개최하므로 참석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경술년 2월 18일에 이기래(李基來)가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오는 24일 오전에 칠송사(七松祠)에서 일곱 집안의 회의를 개최하고 채무 청산 및 봄 향사(享祀)에 대해 상의하고자 하니 바쁘더라도 참석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후산(後山)에게는 각각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전해주고 당일에 함께 참석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칠송사는 전남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에 있었는데, 칠송정은 영조 때에 일곱 성씨가 홍수 피해를 위해 제방을 쌓고 제방 위에 소나무 일곱 그루를 심어 기념했고, 그 아래에 칠송정을 세웠기 때문에 칠송마을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칠송사가 있어서 일신재(日新齋)정의림(鄭義林)만 향사하다가 이후 정의림의 문인인 치암(恥庵) 홍승환(洪承渙), 우곡(愚谷) 김윤형(金潤亨), 약포(藥圃) 민병춘(閔丙春), 경당(敬堂) 문제술(文濟述), 인산재(仁山齋) 배현기(裴玄基), 성재(誠齋) 임태주(任泰柱), 시헌(時軒) 홍찬희(洪纘憙), 양곡(良谷) 이승복(李承福)을 추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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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一年辛卯 十二月 二十七日 金利宗處 明文右明文事段 矣流來田是在 伏在於古邑面蛇洞坪婦字丁今種八斗落只 負數束庫乙 以要用所致 價折錢文拾兩 依數捧上爲遣 右人處 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雜談是去等 以此憑考事田主 自筆 幼學 金仁淳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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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정(程)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允憲 程 李允憲[着命]金日甫[着命]李啓文[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02_001 1839년(헌종 5) 11월 25일에 이윤헌이 사위에게 논 2두락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9년(헌종 5) 11월 25일에 이윤헌(李允憲)이 사위에게 토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사위의 이름은 '정(程)'이라고만 되어 있어 자세한 인명은 알 수 없다. 매매한 토지는 처부(妻父) 이윤헌이 몫으로 받아 여러 해 갈아먹던 것으로, 이윤헌은 이매(移買)할 목적으로 사위에게 토지를 방매하고 있다. 소재지는 창평(昌平) 장북면(長北面) 개보평(介甫坪)이며 신자(臣字) 자호의 논 2두락지이다. 값은 전문 44냥이다. 사위와 장인 사이에 토지를 매매한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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