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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64년 이태흠(李台欽)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台欽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7.0x7.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64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태흠(李台欽, 3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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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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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간찰별지(簡札別紙)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간찰 별지 작성일자와 발신자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간찰에 함께 보낸 별지로 추정된다. 내용은 상대방이 보낸 준시(蹲柿)는 이미 받았고 준시값 1민(緡)을 보낸다는 것과 서울 인편이 막혀서 역서(曆書)를 얻지 못했는데 이번 인편을 통해 올려 보내며, 성부(聖九)도 평안한지를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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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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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原州李氏門長李學先李時淳李載憲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民等雖曰僻居海隅 豈無常禮遵法之道乎 奉先之節 東國之盛禮 禁護之道 子孫之常誠也 民等之▣…▣墓在於馬浦面卯洞▣▣之麓 而累百年守護禁養 而四山局內 一無族塚 與他塚犯葬矣 噫 彼族人李泰永 妄發私慾 渠矣子婦之葬 昨年九月日 偸埋於先山靑龍墱 故同十一月十五日 一門子孫 齊會于齋閣 而招致同泰永 以此犯葬怪擧之意 擧理責之 則同泰永自知其罪 無數謝罪 而卽日渠以渠手自破封墓莎土 而還爲懇乞曰 當此嚴冬 掘移極爲窘迫 以待明春 永移云云 故恕其情 私容 或無怪而封門 則蓋蘋置之矣 經春經夏 終不移去 故今年十月 祭享時 更招泰▣(永)▣之 則同泰▣(永) ▣…▣十一月初六日內 期於掘移之意 丁寧成標 ▣第待其日矣 其日又不掘移 究此泰永所爲 則萬萬痛駭 渠亦同祖之子孫 少無爲先之道 只以行臆之心施之 天地間 無法無禮者 豈有如泰永者乎 民等招會諸子孫 而渠之墓莎 渠已去土 則已爲自掘之墳墓也 法何自關哉使諸子孫等 餘墳掘移矣 凶此泰永不知經緯 但以愚蠢之心 橫訴于 官庭 而有此族人李贊祚 至於推捉之境 同贊祚 奚獨掘墓乎 掘之移之 乃是一門之同力也 不勝罪悶 前後事歷曁悉 齊聲仰溷 伏願閤下細細垂察 一以明奉先之道 一以分自掘之法例 使此迷門 以保百年奉先之節 願望千萬世頌德之地 泣祝祈懇之至城主閤下 處分甲申十一月 日民 李載燁 李載會 李載權 李載浧 李載希 李載九 李 烋 李敏銓 李圭河 李元欽 李任茯 李圭銓 李權欽 李斗欽 李漢欽 李學欽 李時行 李錫祚 李化權 李道欽 李德欽 李萬欽 李致原 李馥欽 李殷欽 李應應 李啓欽 李來銓 李喜銓 李東齡 李正欽 李台欽 李永欽 李秉彦 李商欽 李守永 李天欽 李源欽 李震九 李吉欽 李成欽 李周欽 李仲欽 李載五 李夏欽 李德欽 李孝欽 李文欽 李景欽 李在欽 李昌欽 等(題辭)雖是先塋局內 旣是該族之嚴禁 則宜遵宗法是去乙 不顧廉隅 偸埋手下喪 尤極可駭是在果 自知犯禁理屈 成標自掘 更何(背面)敢開喙於其間哉 嗣後若有冒禁偸葬 前非但有李門之宗法 亦有公法向事卄四日官[着押][海南縣監之印](粘連文書)手標右標段 門末子婦 犯葬於先山靑龍餘麓矣 門肖齊發 故今十一月初六日內掘移之意 玆以納標爲去乎 若違限不掘 則以此標記 告 官憑考事甲申十月十六日 標主李泰英[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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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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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61년 이태흠(李台欽)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台欽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8x6.8),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61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태흠(李台欽, 3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아버지 이재훈(李載勳) 사망하고 대신하여 아들 이태흠(李台欽)이 호주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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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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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69년 김정필(金廷弼) 처 김씨(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金廷弼 妻 金氏 施命之寶(10.0×10.0)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56_001 1869년 김정필의 처 김씨를 정부인에 추증하는 교지 1869년 김정필의 처 김씨를 정부인에 추증하는 교지이다. 김정필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경복궁오위장에 임명하는 고신과 함께 전하고 있으며, 발급연도 좌측에 '종부직(從夫職)'이라는 발급사유가 적혀 있다. 즉 남편의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에 맞는 외명부 문무관 처의 품계인 정부인에 추증한 것이고, 이는 법전의 규정대로 '망처(亡妻)의 종부직'이 추증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추증교지와 더불어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추증교지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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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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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2년 나대운(羅大運)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大運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3_001 1902년 나대운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 1902년 동복군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대운이 36세 때에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호구단자는 기존 조선시대 구호적의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나 세부 내용은 신호적(新戶籍)의 기재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896년 「호구조사규칙」과 「호구조사세칙」이 시행된 이후, 인쇄된 호적표에 기입하여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문서는 신호적의 기재요소는 기입하되 작성방식은 구 호구단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열서(列書)로 작성한 것은 구 호구단자의 방식이지만, 신호적의 기입 요소를 충실히 기재하고 있다. 먼저 호주(戶主)의 사조를 적도록 한 것은 구 호적과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기재하였고, 기존 직역을 신호적에서는 '직업(職業)'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나대운은 자신의 직업을 '사업(士業)'이라고 적었다. 처(妻)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은 것은 신호적의 양식대로 따른 것이고, 어머니 송씨(宋氏)부터 처 임씨(林氏), 아우 경운(京雲)은 실제 '동거친속(同居親屬)'을 기입한 것이다. 신호적에서는 실제 동거하고 있는 사람을 '현존인구(現存人口)' 항목에 남녀로 구분하여 적도록 하였는데 이 문서에서도 그에 따라 남녀를 나누어 남자 둘, 여자 둘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신호적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택(家宅)이 기유(己有)인지 차유(借有)인지, 그리고 가택의 형태가 기와인지, 초가인지, 또 칸수는 몇 칸인지를 구분 기재하도록 한 점인데, 이 문서에서는 '초가 4칸'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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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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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4년 나한규(羅漢珪)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漢珪 行縣監<押> 同福縣監之印(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14_001 1894년 나한규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94년 나한규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동복현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한규가 48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박씨의 사조, 아들 대운(大運)과 뇌운(雷雲) 그리고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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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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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10년 배진묵(裵振黙) 산야약도(山野略圖) 1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裵振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94_001 1910년 11월에 배진묵(裵振黙)이 소유권 증명을 위해 제출한 산야약도(山野略圖) 대상: 전라남도 능주군 회덕면 백암동(全羅南道 綾州郡 懷德面 白岩洞) 안산(案山) 면적(面積): 23町 9反 1畝 13步 3合 7勺 5卜 소유자(所有者): 배진묵(裵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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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박준학(朴準學)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朴準學 牧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24_001 1885년에 능주목에서 박준학에게 발급한 준호구 이 문서는 1885년에 박준학이 능주목(綾州牧)으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의 등본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면, 준호구는 신분 증명 이외에도 소송관련 사건이 있을 때나 도망간 노비를 찾을 때, 부역을 부과할 때에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준호구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담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관에 먼저 제출해야 했다. 관에서는 호구단자를 살펴본 뒤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경우 새로운 종이에 준호구를 작성하여 신청인에게 발급하였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작성하는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용문자식(用文字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절차가 점차 간소화되어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인이 준호구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살펴본 뒤 수령의 서명과 관인을 찍어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준호구에 따르면 박준학의 주소는 능주목 오도면(吾道面) 오도곡(吾道谷) 1통 3호이다. 박준학의 현재 나이는 46세이고 처 이씨(李氏, 47세)를 가족으로 두었다. 이밖에 귀매(貴每, 15세)라는 이름의 비(婢)를 소유하고 있다. 준호구에 답인한 [周挾無改印]은 삭제[周挾]하거나 수정[改]한 글자가 없다는 의미인데,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周挾改幾字]를 답인하고 '幾'부분에 변경된 사항이 몇 개인지 숫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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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2년 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允洪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51_001 1932년 고광선(高光善)이 매성(梅城)의 이윤홍(李允洪)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은 이질을 오래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신년(1932) 6월 20일에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이 매성(梅城)의 이윤홍(李允洪)에게 보낸 간찰이다. 형제분들의 생활은 편안하고, 봄에 아드님의 혼례는 잘 치렀으며 집안 식구들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설사와 이질을 오래 앓느라 좋은 일은 전혀 없이 고생스럽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병으로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혹 빠른 시일 안에 가능할지 물었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고광선은 갑술년(1934) 가을부터 이질로 고생하다가 12월 25일에 현와정사(弦窩精舍)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와유고(弦窩遺稿)》 권9 부록에 〈가장(家狀)〉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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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5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병술년 1월 23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병술년 1월 23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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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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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5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12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12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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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金弘植) 회함피봉(回啣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弘植 李東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단골리 김홍식이 해남 선달 이동흠 댁에 보내는 회함의 피봉. 단골리(丹骨吏) 김홍식(金弘植)이 해남(海南) 이동흠(李東欽) 댁에 보내는 회함(回啣)의 피봉(皮封)이다. 회함(回啣) 10장이 들어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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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해남현(海南縣) 아전(衙前)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海南縣 衙前 傳關色 金<押> 3顆(원형,3.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유년에 해남현 아전들이 발급한 자문 을유년에 해남현 아전들이 발급한 자문이다. 총 3건의 자문이 점련되어 있는 형태인데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자문은 을유년 6월 29일에 전관색(傳關色) 김(金)이 작성한 것이다. 전관색은 관청끼리 주고받는 문서인 관(關)의 발신을 담당하는 아전으로 추정되는데, ?영총(營總)?에 따르면 전관색은 대동색(大同色)이 겸하고 전관세(傳關稅)의 수취, 전관인(傳關人)에 대한 급료 지급 등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자문의 내용은 해남현 마포면(浦面五) 소평(小坪)의 세전(稅錢)을 수취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자문은 을유년 5월 20일에 장세색(裝稅色) 안(安)이 작성한 것이다. 장세색은 세미 혹은 세전을 선박에 적재하는 아전으로 추정된다. 자문의 내용은 마포면 냉천리(冷川里)의 세전을 수취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자문은 을유년 7월 8일에 색리 안(安)이 작성한 것이다. 맥락상 앞의 장세색과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자문의 내용은 마포면 냉천리(冷川里)에서 명례궁(明禮宮)에 납부하는 세전을 수취했다는 것이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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去月卄六日書, 得於昨日, 稍豁抑㭗之懷. 所以大槩還付其便, 其或先此覽否. 信后已閱月矣. 更未認汝母氏, 能免添損, 兒輩暑症俱已向差, 鶴寓亦無他憂, 仁兒已還, 汝亦已出做着工否. 種種懸念, 雖無暫弛. 而不能得此聽,何者之例也, 而前頭將何以堪遣. 竹川之報,此何言此何言, 慘慘, 不忍言不忍言. 汝兄去就, 將何爲之云耶. 父姑免身憂, 寢食俱安,莫非主惓惓情念殊幸. 第大政已至於去晦, 而李台則以實幰臨時見解, 僉同確鎬尙之雖不無左右周章, 而一無尙窠之可合者, 未免虛度. 承宣則姑未承批, 似或以禮葬, 吾悲臆之致, 而大称則亦當有後之公議之如何矣. 已得薄祿, 姑爲遲留於此, 歲前計而久寓, 凡百多艱,末由措施其利?, 惟在運數之如何.難以料度, 其爲懆悶節之難狀, 東銓應當自吾來後已七八次遞多,今時事事皆如此矣. 今則趍時衛金宇鎭耳. 麥粮之絶, 今年穡事就已料其如此. 而前頭之計, 惟在於還, 而鶴寓則想拘於倒物矣. 此意言,則沈風憲之使之□□而以此今以抵當, 此亦汝一念處也. 須順度, 而無生疾症, 俾爲長(背面)益之工, 是所區區忘也. 尹台方帶札, 則兼魂宮堂上, 而 天眷漸隆, 如我之心, 亦無减耳.許居昌家, 則移寓南洞云, 而一往未得見,更圖一進收送發簡計. 眼昏 難裁各書,此紙每幷照可也. 所在家秋省, 須預備,以待後奇, 而使之專送也. 京耗別無可聞, 而亦非還之可旣耳. 農形八路同然云, 如是而得免殺年, 則豈非幸耶. 京中向來時氣, 今已乾淨, 而南鄕疹疫, 亦不熾云可幸. 京中雨勢, 自月初已成霖客愁, 以玆亦多難堪耳. 只竢後便, 不一一.七夕翌日, 父 [着名]此後傳書之道, 惟在邑便, 而邑使朴東春之弟, 以京炮手方在京,而人亦着實矣. 以此言於春?爲好矣.龜下送伻之道, 須在命無相議速啚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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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부)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父(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8월 추석날에 서울에 있는 아버지가 고향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아들에게 사조의 직함을 쓰는 란에 자신의 직함을 무엇으로 쓸지 전달하고 시험을 잘 볼 것을 당부한 서간. 8월 추석날에 서울에 있는 아버지가 고향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아들에게 사조(四祖)의 직함을 쓰는 란에 자신의 직함을 무엇으로 쓸지 전달하고 시험을 잘 볼 것을 당부한 서간이다. 뜻밖에 이놈이 와서 편지도 받고 조카도 만났다며 아이가 홍역에 걸렸음을 알았다며 염려했다. 늦게 도착한 사내종을 탓하고 꾸짖으며 자신은 잘 있다고 전했다. 주요 내용은 시지(試紙)의 봉하는 부분에 자신의 직함을 무엇이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금의 직함인지, 이전의 직함인지 등에 대해 시관(試官)에게 물어서 결정한 후에 써서 봉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다. 시험에 붙을 수 있도록 잘 처리할 것을 당부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이 노의 노잣돈으로 1냥5전을 주라는 것, 자신의 직함을 '통정대부 행 김해도호부사【김해진병마첨절제사】'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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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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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99년 송병기(宋秉夔)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秉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7월 12일, 세제 송병기가 상대가 간소에 더해 주기 위해 자신이 맡아둔 돈 11냥을 자신이 유용해 버린 것을 전하고 곧 마련하여 함열 간소로 보낼 것이니 걱정하지 말 것을 청하기 위해 쓴 답장서간. 1899년 7월 12일, 세제(世弟) 송병기(宋秉夔)가 상대가 간소에 더해 주기 위해 자신이 맡아둔 돈 11냥을 자신이 유용해 버린 것을 전하고 곧 마련하여 함열 간소로 보낼 것이니 걱정하지 말 것을 청하기 위해 쓴 답장 편지이다. 봄에 이별한 뒤로 그리워 맘이 괴로웠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아 장마철 무더위에 어른 모시고 잘 지내며, 아드님 잘 있음을 알았다며 위로되었다고 인사했다. 자신은 어른이 더위를 만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며 걱정하고, 다른 거머리처럼 붙은 걱정거리들로 또 고통스럽다고 했다. 상대가 편지로 한 말은 잘 알겠다는 것, 지난번 맡아 두었던 간소(刊所)에 더해 보내는 11냥의 돈을 마침 궁한 상황이어서 다 써버렸다며 곧 힘닿는 대로 마련하여 함열(咸悅)에 보내고, 답을 받아 보내줄 것이니 양해해 주시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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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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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8년 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柄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51_001 1918년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그의 조카가 공부하러 찾아왔는데 자신이 병중이라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는 내용의 간찰 1918년 2월 24일에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보내준 서신은 아름드리 보옥과 한 자나 되는 거북을 얻은 것 같았다고 기쁨을 표현하였고, 식구들의 안부까지 편안한지 두루 묻고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의 조카가 지금 묘령의 나이이고 앞으로 진취할 가망이 많을 텐데 자신이 병중이라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공부하러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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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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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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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전서(篆書) 시(詩) 감원(甘園) 고문서-기타-서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두보(杜甫)의 시(詩) 〈감원(甘園)〉을 전서체로 써놓은 체본(體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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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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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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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전서(篆書) 시잠편(視箴篇) 고문서-기타-서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사물잠(四勿箴) 중에서 시잠편(視箴篇)을 전서체로 써놓은 체본(體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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