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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객록(弔客錄) 5 고문서-치부기록류-조객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조객록(弔客錄) 윤흥호(尹興浩) 등 9명 조문객(弔問客)의 성명, 生年, 字, 本貫, 거주지 등을 기록한 명부(名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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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기(扶助記) 고문서-치부기록류-부조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입암문중(笠岩門中)에서 36兩4錢을 보내면서 작성한 문서 송금 내역 부역전(扶役錢) 13兩, 맹진전후파전(孟津前後派錢) 8兩4錢, 산수동제각부의(山水洞祭閣扶儀) 5兩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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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通諭事 伏以 故判中樞松窩鄭公 以儁偉之姿通敏之才 早遊雲坪宋先生之門 卒業爲己之學 又請益于金漢湖先生 精於性理 嫻於禮說 達於文辭 與宋性潭李鏡湖朴謙齋諸賢 最相善資 切偲而見 推許其餘從遊 亦皆當世鴻碩 則可見師友之盛趨向之正 而繡使以孝友純至禮 識精邃之目 再度啓薦特除寢郞 公以疏辭旌招曰 讀書修身 士子本分 無實資名 誤蒙聖恩 至愚極陋何敢抏顔於天陛之下 云云 晩年 召對前席 陳忠讜啓沃之言 則健陵盛除上曰 汝年齡隆高 宜除壽爵 特加嘉善因命留侍經筵 公又辭以老昏不堪 遂具箚進聖學十圖 上極加稱獎 陞判中樞 亦可見聖朝禮遇之隆也 伏地成一絶以獻曰 勤越天顔 志願新神明聖 至老昏臣 崇恩報答 無多日 但祝南山萬壽春 因乞骸還鄕 寓樂林泉 日與學者疑問答解 每月朔 行鄕飮禮 講太極圖說 此乃公一生踐儀之槪也 有遺集草藁六冊及儀要補遺上編 而子孫甚零替 常不過三數人 家勢隨而殘窶 汨於生計 遺集尙未脫藁 或有紙毛而難記處 此不啻後昆之痛迫 凡我人士之閗公之行 見公之文者孰能不䝴恨興喟乎 今至五世孫煥琫甫深懼其愈久愈泯 切欲校印幾帙略頒粗傳 而其資赤乏 有志莫遂者 復有年矣鄙等 旣在同郡 稔知其由 彛性所激 不勝慨惜 公議同辭 將修一契 而補其資 玆以仰告 伏願僉尊 一齊和應 俾成煥琫甫之志 而不朽松窩公之名 則迨此陽錮之會庶或爲扶持斯文之一端 ■■■(美規也) 成事也特軫涵亮 千萬幸甚年月日 褒忠祠書設會中 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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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김성수(金性洙)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性洙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8월 13일, 김성수가 사돈댁에 안부를 전한 서간. 1925년 8월 13일, 김성수(金性洙)가 사돈댁에 안부를 전하고 손자가 향교에서 공부 잘 하고 있다는 것, 사돈댁 농장이 피해를 본 것에 염려스럽다는 것, 아들이 일전에 읍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인 것, 그래서 약재를 보내지 못한다는 내용 등을 담아 보낸 서간이다. 몇 번 온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라며 어찌 용서를 바라겠느냐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보내주신 인편이 와서 아들에게 준 편지를 받고 대개의 안부를 들었다며 위로되었다고 했다. 밤사이 상대와 아드님, 종씨 형님도 잘 계시고, 우리 집 사람도 잘 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사계(査契)인 자신은 늙은 것이 더욱 심해졌다며 봄·여름간에 자신이 겪은 일을 하나하나 들어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손자아이가 읍의 향교에서 머물고 있는데 충성스럽게 굳건하게 잘 공부하고 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아들이 일전에 읍에 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것, 내행(內行)은 9월 23로 정해서 보낼 것이니 혹시 농사일에 구애되는지 물었다. 농장에 손해가 있다는 말에 걱정을 표한 뒤 편지를 마쳤다. 추신으로는 약재(藥材) 값을 자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보내드릴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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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삼산단재소(三山壇齋所) 통문(通文) 초(草)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三山壇齋所 澹對軒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19_001 1957년 3월에 화순의 삼산단 재소에서 노사 기정진 선생 향사 문제로 장성 담대헌에 보낸 통문 초안. 1957년 3월에 화순(和順) 삼산단(三山壇) 재소(齋所)에서 장성(長城) 담대헌(澹對軒)에 노사 기정진 선생을 향사하는 문제로 보내는 통문(通文)의 초안이다. 삼산단 재소에 기정진과 정의림을 향사하는 것에 대해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이는 사문에게 다행이며, 세상의 교화를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적었다. 작성처인 삼산단 재소는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으며, '모모(某某)'가 연명하였다고 적고는 뒷면에 연명할 사람들의 이름을 한 줄당 한 명씩 단을 나누어 작성하였다. 이로 보아 이미 작성된 통문을 베낀 것이 아니라, 통문을 작성하기 위해 초안을 앞에 적고 뒷면에 연명할 사람들의 이름을 마련하며 한 사람씩 나열하여 적은 것으로 보인다. 배면에 나열된 사람들의 이름은 조석홍(曺錫鴻), 문중환(文中煥), 배석면(裴錫冕)등 총 26명이다. 화순의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삼산사(三山祠)는 노사 기정진, 일신재 정의림, 인산재 배현기 3위를 향사하고 있다. 1952년 2월 29일 삼산단(三山壇)을 설단(設壇) 석채(舍菜)하여 오다 1962년 4월 10일 본사우를 건립하여 매년 가을 9월 27일에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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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3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병술년 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병술년 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7말 6되 1홉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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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여름철에 시어머니가 친정에 며느리의 편지와 물품을 받고서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여름철에 시모(媤母)가 며느리의 편지를 받은 당일에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한동안 소식이 막혀 답답하던 차에 며느리의 편지를 받고 반가워하면서 사돈댁의 무탈한 소식에 기뻐하였다. 그리고 시모 또한 할머니를 비롯하여 시부, 시숙부, 숙모, 시매 등 식구들이 무탈한 소식을 전하면서 할 말이 밀려 있으나, 인편이 급하여 줄인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갖추어 보낸 물품들을 잘 받았다며 고마워하였고, 침선에 애쓴 며느리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먼 길 빨리 집으로 돌아온다는 회편(回便)을 기다린다면서 그동안 무탈하게 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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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총요 졍신의 아모 말도 ᄀᆡ구치 못 너 곳소식 ᄉᆞᆨ도 막혀 답답 ᄉᆞ렴일 ᄎᆞ 은연즁 ᄎᆞᆼ두 닷치오며 반기고 굼굼 너의슈유 ᄎᆡ필 바다가 슈 업셔ᄒᆞ이 너아람다온 화용 월ᄐᆡᄅᆞᆯ 일셕의 ᄃᆡᄒᆞᆫ ᄃᆞᆺ 신기 신기ᄒᆞ다 연이ᄂᆞ 극ᄒᆞᆫ 셩염의 쳔금 신ᄉᆞᆼ 즁시봉 무양 다식ᄒᆞᆫ 일 든든 기특 기특 너 즁셩후 기력강건 부지ᄒᆞ심 위ᄒᆞ 만만이며 너의동기 외ᄂᆡ분 상즁 지안ᄒᆞ시며 너의 곳 수다 형졔분 안지ᄒᆞ시고 일문각ᄃᆡᆨ 현우 업ᄉᆞ시야 곳 시모ᄂᆞᆫ 츌신극ᄂᆞᆫ 극ᄂᆞᆫ 한마님 양위분 만슈 강건ᄒᆞᄒᆞ시오니 쳔위 ᄃᆡ덕이다 너의 시부긔셔도 긔후 영안 소ᄃᆡᆨ 너의 시슉부각각 형졔 ᄂᆡ외분 여ᄉᆞᆼ들 ᄒᆞ시고 ᄭᅳᆺ테 슉모 동기은 ᄌᆡ령ᄒᆞ여다 양곳소식 막혀 답답 져도 셩공 다식든든 네 시ᄆᆡ 다종 남ᄆᆡ 무양 즁 실가져져 솟ᄃᆡᆨ 한마님 각 양위분 하솔(뒷면)ᄒᆞ미 긴긴ᄒᆞ신 쥬 무환 나문 합ᄂᆡ연고 업ᄉᆞ이 심히 든 할 말 밀이ᄂᆞ 임ᄒᆡᆼ총급 이만 근ᄂᆞᆫ다 무엇ᄒᆞ려 각ᄉᆡᆨ인ᄉᆞ 이 북 갓초 갓초 너 침션 ᄋᆡ씬 ᄋᆡᄉᆡᆨ ᄋᆡᄉᆡᆨ무익 공탄 ᄲᅮᆫ이로다 아ᄒᆡ들 졔 이북 각각들 고로와ᄒᆞ이 우습다 시어미ᄂᆞᆫ ᄀᆞᆺ초 밧고 공지 셥셥 ᄋᆡ답다져ᄂᆞᆫ 보ᄂᆡ이 반길 ᄃᆞᆺ ᄌᆞᆼ노의 수히 입ᄀᆞ 바란 회편 너의 금옥 신ᄉᆞᆼ 느리 무양 소식 바란다 즉일 시모 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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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조객록(弔客錄) 1 고문서-치부기록류-조객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조객록(弔客錄) 1월 17일부터 3월 16일 애소상(哀小祥)까지 조문객(弔問客)의 성명∙生年∙字∙本貫∙거주지 등을 기록한 명부(名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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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文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文鈺 性伯老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제 문옥이 성백 노형에게 『중헌집』을 기록하는 일은 완료했는지 묻고 지난달에 최흠이 보내온 부조금 2천원을 지금 보내니 받아달라는 서간. 제(弟) 문옥(文鈺)이 성백(性伯) 노형(老兄)에게 『중헌집(重軒集)』을 기록하는 일은 완료했는지 묻고 지난달에 최흠(崔欽)이 보내온 부조금 2천원을 지금 보내니 받아달라는 서간이다. 재사에 거주하고 있는 상대가 어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중헌집(重軒集)을 기록하는 일은 완료했는지 물었다. 자신은 일전에 동복(同福)에 갔다가 도중에 아내가 거의 넘어간다며 앞으로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최흠(崔欽)이 지난달에 부쳐 온 부조금 2천원을 오랫동안 내가 가지고 있다가 이제야 이번에 온 노인 박병은(朴炳殷)씨에게 부치니 받으시라고 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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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나순좌(羅舜佐)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舜佐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7_001 1792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792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순좌와 처(妻) 방씨(房氏), 아들 나득검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순좌의 거주지는 동면 삼지천리이고, 나이는 62세이다. 나순좌의 사조(四祖)와 처 방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나순좌의 사조에는 생부(生父)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유노비는 앙역비(仰役婢)와 각거질(各居秩)로 나누어 기재하였는데, 앙역비는 1구(口)이고 각거질은 4구이다. 각거(各居)는 외거(外居) 노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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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나채성(羅綵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綵成 □…□(6.5×6.5),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76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76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채성이 67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의 사조, 아들 한규(漢珪)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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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나현성(羅鉉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鉉成 □…□(6.5×6.7),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 나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79년 나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제5보암리에 거주하는 나현성이 46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 아들 漢根,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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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通諭事 惟我 蘆沙先生 以道大德宏學博行修幸 而作於我東群賢之後 折衷群言 其繼開之功 莫大於此 及門諸子 不爲不多 而卒爾得聞凉議猥筆之至 論祗二三止 日新齋鄭先生 以嫡傳之學 爲後學之高景 舍菜于鄙鄕之三山壇 有年所士林之公議 以爲知流而不知源 甚不可 將欲以 蘆沙先生躋享 事體極爲鄭重 誠不可踰禮 玆敢仰龥 伏願 僉君子 勿以人廢言齊會詢論 一以慰鄙等慕賢之微悃 一以扶叔世罔極之秉彛 則於斯文幸甚 於世敎幸甚右 敬 通 于澹 對 軒僉君子 座下丁酉三月日元綾州 道谷面 大谷里三山壇齋所某某等(背面)曺錫鴻文中煥裴錫冕梁會善朴魯學閔弘基梁炫承朴準台朴東春朴魯宗高昌柱安鍾起文元植文濟曄梁斗承盧在亨崔南杓梁在德文仁植金九炫徐廷彩李瀅昌程良基朴萬年金雷聲宗東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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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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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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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72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2년 4월 12일, 정현규가 간행된 선집(先集)의 배포에 관한 내용으로 쓴 서간. 1972년 4월 12일, 정헌규(鄭憲圭)가 최근 간행된 선집(先集)의 배포에 관한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지리했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지만 모두 적막하여 회포를 풀 수 없었던 이때에 뜻밖에 편지를 받았다며 놀랐고 감사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가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어 기쁘다는 인사, 자신은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머니는 우선 평안하시다고 인사했다. 자신의 선집(先集)을 언급하며 원근 사우(士友)의 도움을 받아 큰 문제없이 잘 이루어져 다행이라고 하였다. 다만 일을 준공한 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일은 고금이 같을 것이라고 하며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용성(龍城)에는 지난달에 이미 사람을 보내어 한 질을 납부했고, 영신(嶺信)에는 좋지 않은 일이 있어 어찌 했다며 분질(分秩)과 책값의 문제 등에 대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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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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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삼호회안(三乎會案)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仁山精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오년 2월에 작성된 인산정사(仁山精舍)에서 개최하는 계(契)의 명단 등을 적은 삼호회안(三乎會案) 서문(序文), 규례(規例), 계원(契員) 명단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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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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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장택기(葬擇記) 입댁(入宅) 날짜, 유족의 생년, 금기 사항 등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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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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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조객록(弔客錄) 2 고문서-치부기록류-조객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조객록(弔客錄) 10월 15일 조문객(弔問客)의 성명∙生年∙字∙本貫∙거주지 등을 기록한 명부(名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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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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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나순좌(羅舜佐)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舜佐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7_001 1780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780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순좌와 처(妻) 방씨(房氏), 아들 나득검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순좌의 거주지는 동면 삼지천리로 되어 있으며,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나이는 50세이다. 나순좌의 사조(四祖)와 처 방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나순좌의 사조에는 생부(生父)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유노비는 앙역비(仰役婢)와 각거질(各居秩)로 나누어 기재하였는데, 앙역비는 1구(口)이고 각거질은 5구이다. 각거(各居)는 외거(外居) 노비를 가리킨다. 앙역 노비는 사노비(私奴婢)의 하나로 주인의 집에서 같이 살거나 그 근처에 거주하면서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종을 말한다. 솔거노비(率居奴婢), 혹은 가솔노비(家率奴婢)라고도 한다. 이와 반대로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고 그 대신에 신공(身貢)을 납부하는 사노비를 납공노비(納貢奴婢), 혹은 외거노비(外居奴婢)라고 한다. 이 호구단자는 관의 확인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 주묵(朱墨)이 실제 구성원 위에 찍혀 있고, 오가작통(五家作統)을 한 것으로 보이는 통호(統戶)가 역시 주묵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지방관의 서압(署押)과 관인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날인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호구단자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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