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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파전봉미봉구별기(各派錢捧未捧區別記)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각파(各派)별 금전 납부내역을 기록한 봉상기(捧上記) 향동파(向洞派), 산막파(山幕波), 맹진파(孟津波), 강진파(康津波) 등 각 파별로 선배전(先排錢), 원사전(院祠錢) 등의 비용을 납부한 내용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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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3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를 치르기 위해 택일(擇日)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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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和劑) 고문서-치부기록류-화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화제(和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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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나한규(羅漢珪)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漢珪 行縣監<押> □…□(6.5×6.7), 周挾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14_001 1888년 나한규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88년 나한규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동복현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한규가 42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박씨의 사조, 그리고 아들 대운(大運)과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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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나대운(羅大運)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大運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3_001 1901년 나대운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 1901년 동복군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대운이 35세 때에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호구단자는 기존 조선시대 구호적의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나 세부 내용은 신호적(新戶籍)의 기재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896년 「호구조사규칙」과 「호구조사세칙」이 시행된 이후, 인쇄된 호적표에 기입하여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문서는 신호적의 기재요소는 기입하되 작성방식은 구 호구단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열서(列書)로 작성한 것은 구 호구단자의 방식이지만, 신호적의 기입 요소를 충실히 기재하고 있다. 먼저 호주(戶主)의 사조를 적도록 한 것은 구 호적과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기재하였고, 기존 직역을 신호적에서는 '직업(職業)'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나대운은 자신의 직업을 '사업(士業)'이라고 적었다. 처(妻)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은 것은 신호적의 양식대로 따른 것이고, 어머니 송씨(宋氏)부터 처 임씨(林氏), 아우 뇌운(雷雲)과 제수 이씨(李氏)는 실제 '동거친속(同居親屬)'을 기입한 것이다. 신호적에서는 실제 동거하고 있는 사람을 '현존인구(現存人口)' 항목에 남녀로 구분하여 적도록 하였는데 이 문서에서도 그에 따라 남녀를 나누어 남자 둘, 여자 셋으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신호적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택(家宅)이 기유(己有)인지 차유(借有)인지, 그리고 가택의 형태가 기와인지, 초가인지, 또 칸수는 몇 칸인지를 구분 기재하도록 한 점인데, 이 문서에서는 '초가 4칸'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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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이재훈(李載勳)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載勳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54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재훈(李載勳, 6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이재훈(李載勳)의 나이(65) 및 생년(庚戌)이 수정 기재됨, 이전 호구에서 나이는 41세, 생년은 임신(壬申)으로 기재되었음 子 이방흠(李邦欽) 개명 (개명 全 이순흠(李順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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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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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8년 이재훈(李載勳)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載勳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58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재훈(李載勳, 68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이재훈(李載勳) 생년 경술(庚戌) 기재, 子 이태흠(李台欽) 개명한 것으로 보임 (개명 全 이방흠(李邦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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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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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3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11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11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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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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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4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官<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11월 29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11월 29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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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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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1년 나한규(羅漢珪)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漢珪 行縣監<押> □…□, 周挾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14_001 1891년 나한규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91년 나한규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동복현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한규가 45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박씨의 사조, 그리고 아들 대운(大運)과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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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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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父(부)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칠월칠석 다음날에 서울에서 관직 생활 중인 아버지가 고향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안부 서간. 칠월칠석 다음날에 서울에서 관직 생활 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안부 서간이다. 지난달 26일의 편지를 어제 받아 울적했던 마음이 위로 되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그 후로 여러 달이 지났다며 그간 너의 어머니는 별 탈이 없고, 아이들의 서증(暑症)은 다 낫고, 학우(鶴寓)도 다른 근심 없고, 인 아(仁兒)는 이미 돌아왔는지, 너는 이미 나가서 착실히 공부 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죽천(竹川) 소식은 무슨 말이냐며 차마 말로 할 수 없이 참혹하다고 하고, 너의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하더냐고 물었다. 자신은 우선 몸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데 이는 주인의 정성스런 마음 때문이라며 다행이라고 했다. 대정(大政)이 이미 지난달 말일에 있었던 것, 누구에게 적당한 직자리가 있지 않아 관직에 제수되지 않은 것, 자신이 있는 지금의 자리가 박록(薄祿)하며 관직은 운수(運數)에 달려 있다는 한탄, 보리쌀이 떨어 졌으니 이제 환곡으로 살아야 한다며 앞으로의 생계 걱정 등을 한 후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기만을 바란다고 전했다. 그 외 허(許) 거창(居昌) 댁은 남동(南洞)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데 한번 갔더니 만나지 못했다며 다시 편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눈이 흐려서 여러 사람에게 각기 편지 하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라고 당부하고 집의 추성(秋省)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데 뒤의 편지를 기다려서 전송하라는 당부, 농사의 상황이 흉년은 면하겠다는 것, 서울의 돌림병이 이미 깨끗해 졌고, 남쪽 고향도 매우 심하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것, 서울의 비는 이달 초부터 장마가 되어 걱정이라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추신에는 앞으로의 편지를 전할 방도가 읍편(邑便)이 있을 듯 하다며, 읍의 서리 박동춘(朴東春)의 아우가 서울 포수(炮手)로 있어 서울에 살고 사람도 착실하다며 이 말을 누구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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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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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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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726년 최진한(崔鎭漢) 상소(上疏)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상소 1726 [崔鎭漢] 英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6년(영조2)년 5월 16일에 경상좌병사 최진한이 김시민 등을 모신 사우에 병향된 이욱 등에게 증직을 내려줄 것과 논개에게 정표를 내려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올린 상소의 등초본 1726년(영조2)년 5월 16일에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최진한(崔鎭漢)이 국왕에게 올린 상소의 등초본(謄抄本)이다. 내용은 김시민(金時敏) 등을 모신사우에 병향(幷享) 된 이욱(李郁) 등에게 증직(贈職)을 내려줄 것과 논개(論介)에게 정표(旌表)를 내려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앞부분이 결락되어 이욱의 증직을 청하는 내용 끝 부분부터 남아 있다. 마지막에는 논개 정표에 대한 국왕의 비답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7언 율시 1수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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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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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유형분류 :
서화

전서(篆書) 동잠편(動箴篇) 고문서-기타-서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사물잠(四勿箴) 중에서 동잠편(動箴篇)을 전서체로 써놓은 체본(體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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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2년 이석량(李錫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錫良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40년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석량(李錫良, 31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아버지 이기춘(李基春) 사망하고 대신하여 아들 이석량(李錫良)이 호주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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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6년 이재량(李載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載良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46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재량(李載良, 3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호주(戶主) 이석량(李錫良)이 이재량(李載良)으로 개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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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병술년 북창색(北倉色) 오(吳)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色 北倉色 安<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79_001 병술년 1월 30일에 북창색(北倉色) 오(吳)가 발급한 자문 병술년 1월 30일에 북창색이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가부미(加付米) 1말 9되 8홉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다른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으나, 여기서는 도감관 대신 실무자인 북창색 오(吳)가 착압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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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9년 나순좌(羅舜佐)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舜佐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7_001 1789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789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순좌와 처(妻) 방씨(房氏), 아들 나득검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순좌의 거주지는 동면 삼지천리이고, 나이는 59세이다. 나순좌의 사조(四祖)와 처 방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나순좌의 사조에는 생부(生父)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유노비는 앙역비(仰役婢)와 각거질(各居秩)로 나누어 기재하였는데, 앙역비는 1구(口)이고 각거질은 3구이다. 각거(各居)는 외거(外居) 노비를 가리킨다. 호구단자는 국가에서 부세나 군역 등의 행정을 위한 기반자료로 삼기 위해 각 가호의 규모를 정기적으로 파악하여 호적대장에 반영하기 위해 관에 제출하는 문서로, 3년마다 식년(式年)에 작성하였는데, 식년은 간지가 자(子), 묘(卯), 오(午), 유(酉)로 끝나는 해를 가리킨다. 호구단자는 본래 2통을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구대장(舊臺帳)과 대조하여 사실여부를 확인한 뒤 1통은 호적 작성에 사용하고 1통은 제출자에게 돌려주었는데 이렇게 돌려받으면 준호구적인 효력도 함께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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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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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연길 피봉(涓吉 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연길단자의 피봉. 연길단자(涓吉單子)의 피봉(皮封)이다. 연길은 신부측에서 혼인 일자를 정하여 신랑측에 올릴 때 사용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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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김홍식(金弘植) 회함(回啣)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弘植 李東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단골리(丹骨吏) 김홍식(金弘植)이 해남(海南) 이동흠(李東欽)에게 보내는 회함(回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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