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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김해김씨(金海金氏) 문계안(門契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金昌完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10월에 김해김씨 문중에서 작성한 문계안(門契案) 무술년 10월에 김해김씨 문중에서 작성한 문계안(門契案)이다. 10월 하순에 김창유(金昌裕)와 김규두(金奎斗)가 서문을 지었고 그 아래에 문장(門長) 김창완(金昌完) 등 문중 사람들의 좌목(座目)을 적었다. 서문에 따르면 김해김씨는 농은공(農隱公)·참봉공(參奉公)·부사공(府使公)이 무오사화로 화를 입어 호남 금릉(金陵) 세정동(洗鼎洞)으로 유배되어 여기서 살아온지 11대가 지났다. 대를 이어 살아오는 동안 가문이 번성하고 관직에 오른 이들도 생겨나 하나의 계(禊)를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고 종의(宗議) 또한 일치하니 문계를 만들어 서로 화목을 도모하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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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연길(涓吉)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인생 신랑과 갑술생 신부의 혼례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혼례택일기 병인생 신랑과 갑술생 신부의 혼례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혼례택일기이다. 신부 집에서 혼례 일정에 따른 날짜와 시간 및 방향 등을 정하여 신랑 집에 택일단자를 보낸 것으로 연길(涓吉)이라고 한다. 단자를 보내는 날짜는 8월 20일, 가관(加冠)과 전안(奠鴈)을 하는 날 아침에는 서남쪽을 향하여 앉아야 하고, 신랑이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전안례는 11월 11일 사시(巳時)로 정하였으며 우귀(于歸)도 같은 날에 행하며, 교배례(交拜禮)를 할 적에는 남북으로 서로를 향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당(周堂)이 당(堂)에 있으니 청중(廳中)에서 예를 행하는 것은 꺼려야하고 신혼식을 치른다면 꺼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당은 혼인이나 장례 등과 같은 의례에서 꺼리는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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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나우록(羅又祿) 예물단자(禮物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부조기 羅又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에 나우록(羅又祿)이 장례에 쓰도록 현훈(玄纁)을 보낸 단자 임술년 1월 8일에 나우록(羅又祿)이 보낸 예물 단자이다. 현(玄) 하나와 훈(纁) 하나인데, 이 현훈은 매장할 때 올리는 폐백으로, 광중(壙中)에 넣는 검은 비단과 붉은 비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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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50년 형시백(邢時伯)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邢時伯 裵玄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0년 1월 20일, 생 형시백이 배현기에게 봄날의 안부를 전하고 상대의 뛰어남을 칭찬하며 농사일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자신을 멀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50년 1월 20일, 생(生) 형시백(邢時伯)이 배현기(裵玄基, 1881~1954)에게 봄날의 안부를 전하고 상대의 뛰어남을 칭찬하며 농사일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자신을 멀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가 가문의 학문을 전수받아 자신을 닦고 학문하는 모습을 칭찬하고 자신이 분수를 모르고 일찍이 공부를 잃고 고루한 모습이 되었다고 하였다. 봄이 한창이니 상대가 더욱 생각나지만농사일로 직접 만나 인사하지 못하여 황송하고 민망하다며 선생께서 자신을 멀리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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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7년 12월 7일, 정헌규가 상대 여러분들에게 『인산유고』의 미흡한 부분을 변명하며 용서해 주시고 내년에도 잘 돌봐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57년 12월 7일, 정헌규(鄭憲圭)가 상대 여러분들에게 『인산유고(仁山遺稿)』의 미흡한 부분을 변명하며 용서해 주시고 내년에도 잘 돌봐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상대가 먼저 안부를 물어 준 것에 감사를 전하고 첨현(僉賢)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인산(仁山) 유고(遺稿)를 재서(再書)한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쳤지만 종종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 행장을 서술하는 일은 문장을 잘하는 동문(同門)과 후배들의 책임이라는 것, 문장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부쳐서 보이겠느냐며 마음 풀고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내년에도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고 인사하고 답장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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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삼산사(三山祠) 헌관(獻官) 명단(名單)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三山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62_001 기미년 9월 17일에 삼산사(三山祠) 향사(享祀) 헌관(獻官)의 명단(名單)을 적은 기록 향사(享祀) 날짜, 헌관(獻官) 명단 등이 적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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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삼산사(三山祠) 헌관(獻官) 명단(名單)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三山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62_001 신유년 9월 17일에 삼산사(三山祠) 향사(享祀) 헌관(獻官)의 명단(名單)을 적은 기록 향사(享祀) 날짜, 헌관(獻官) 명단, 제향(祭享) 순서 등이 적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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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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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67년 이동흠(李東欽)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東欽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7.0x7.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67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출신(出身) 이동흠(李東欽, 3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문서 기재사항을 봤을 때 이태흠(李台欽)이 이동흠(李東欽)으로 개명한 것으로 짐작되며, 직역도 유학(幼學)에서 출신(出身)으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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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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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5년 이학원(李學元)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學元 海南縣監 官<押> □…□ 3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24_001 1885년 11월에 이학원 등 29명이 해남현에 올린 상서 1885년 11월에 이학원 등 29명이 해남현에 올린 상서이다. 이들은 해남군 마포면(馬浦面)에 있는 11대조 강릉도호부사공(江陵都護府使公)의 묘소를 300여년간 지켜왔는데 작년 9월에 같은 문중의 이태영(李泰永)이 며느리를 선산에 몰래 묻는 행동을 저질렀다. 11월 15일에 문중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불러 죄를 묻고 다음 봄에 묘소를 옮기도록 하였는데 여름이 지나도 묘소를 옮기지 않았고, 금년 10월에 이태영을 다시 불러서 11월 6일까지 묘소를 옮기겠다는 수표(手標)를 받았다. 그러나 11월 6일이 되어도 묘소를 옮기지 않자 문중 자손들이 회의를 통해 이태영 며느리의 묘소를 옮겼는데, 이태영이 이러한 경위를 알지 못하고 관에 소송하여 문중 사람인 이찬조(李贊祚)가 관에 붙잡히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잘 살펴서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학원 등이 올린 상서에 대해 해남현감은 문규(問規)에 따라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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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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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原州李門門長化民李學元李載憲李時淳 謹再拜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葬之法 律典昭然 爲先之道 子孫之誠誼也 民等十一代祖江陵都護府使公墳墓 在於馬浦面榮山之麓 而定山直三百餘年守護禁養 雖子孫中敢不犯葬▣…▣門規也 千萬意外 族人李泰永 渠矣子婦 無后白骨 偸埋於靑龍墱 故昨年良中 列邑諸族 會于齋閤 招致泰永而擧理責之 則同泰永自謝渠罪 卽爲掘移矣 噫 彼泰永暗釀凶計 誣訴於 官家 而至於對質之場 其是其非 自在 官決 立旨斷案是白遣 渠亦妄葬於先隴樣 納侤門中 故更無後慮置之矣 今年又爲更葬於龍尾右邊咫近之地是乎則 究厥所爲 何以謂之哉 罪作於先榮 法亂於門規 竄之可也 殺▣▣ 噫噫痛哉 一箇泰永 豈若是蔑沒諸族乎去三月日 諸族又會齋閤 招致泰永而責之 則以九月初九日掘移之意 納侤不掘 故更招是非 則十月晦內掘移次 丁寧又爲納侤矣 亦過此限不掘 故今番諸族 又會泰永家 則同泰永仍爲逃避不現矣 日前誣訴于 官家 而自稱宗子宗孫云 世豈有如許奪宗亂門之類乎 且以宗孫言之 譜牒昭穆 自在派系 分明是去乙 暫以奸橫之計 誣訴 官家 穢亂法政 泰永之所爲 去益莫甚 不勝忿怨 前呈斷案題音 與渠矣前後納侤手標帖聯 齊聲仰溷 同泰永 捉致法庭 一以治欺 官自稱宗孫之罪是白遣 一以治累先犯葬之罪 而同偸塚 卽爲掘移 依律報 營勘處 以雪先祖白骨累汚之恨 千萬世頌德 泣祝祈懇之至城主閤下 處分乙酉十一月 日化民 李載會 李載燁 李載權 唐津 李瀅欽 李文欽 靈巖 李 烋 李載九 李▣…▣ 李正欽 李相欽 李圭浩 李時行 李正銓 李東欽 本縣 李敏銓 李載仲 李吉輝 長興 李時鶴 李仕欽 李景鍾 李成欽 李太欽 李繼欽 李元欽 李鍾欽 李慶欽 李起鎬 等(題辭)從門規施行向事初十日官[着押][海南縣監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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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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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10년 배진묵(裵振黙) 산야약도(山野略圖) 2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裵振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94_001 1910년 11월에 배진묵(裵振黙)이 소유권 증명을 위해 제출한 산야약도(山野略圖) 대상: 전라남도 능주군 오도면 미동 (全羅南道 綾州郡 吾道面 美洞) 동산(東山) 면적(面積): 7反 2步 4合 소유자(所有者): 배진묵(裵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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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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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10년 배진묵(裵振黙) 산야약도(山野略圖) 3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裵振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94_001 1910년 11월에 배진묵(裵振黙)이 소유권 증명을 위해 제출한 산야약도(山野略圖) 대상: 전라남도 능주군 도장면 야산리(全羅南道 綾州郡 道莊面 野山里) 후산(後山) 면적(面積): 10町 4反 2步 5合 소유자(所有者): 배진묵(裵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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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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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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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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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88년 박준학(朴準學)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朴準學 牧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24_001 1888년에 능주목에서 박준학에게 발급한 준호구 이 문서는 1888년에 박준학이 능주목(綾州牧)으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의 등본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면, 준호구는 신분 증명 이외에도 소송관련 사건이 있을 때나 도망간 노비를 찾을 때, 부역을 부과할 때에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준호구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담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관에 먼저 제출해야 했다. 관에서는 호구단자를 살펴본 뒤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경우 새로운 종이에 준호구를 작성하여 신청인에게 발급하였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작성하는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용문자식(用文字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절차가 점차 간소화되어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인이 준호구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살펴본 뒤 수령의 서명과 관인을 찍어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준호구에 따르면 박준학의 주소는 능주목 오도면(吾道面) 오도곡(吾道谷) 1통 4호이다. 박준학의 현재 나이는 49세이고 처 이씨(李氏, 50세)를 가족으로 두었다. 이밖에 귀매(貴每, 18세)라는 이름의 비(婢)를 소유하고 있다. 준호구에 답인한 [周挾無改印]은 삭제[周挾]하거나 수정[改]한 글자가 없다는 의미인데,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周挾改幾字]를 답인하고 '幾'부분에 변경된 사항이 몇 개인지 숫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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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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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0년 이동흠(李東欽)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東欽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70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출신(出身) 이동흠(李東欽, 4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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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6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1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1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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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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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북창색(北倉色) 정(鄭)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色 鄭<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79_001 정유년 1월 28일에 북창색 정(鄭)이 발급한 자문 정유년 1월 28일에 북창색 정이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다른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으나, 여기서는 도감관 대신 실무자인 북창색이 착압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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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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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거문문계전 식리 봉상책(擧門門契錢殖利捧上冊)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묘년부터 계미년까지 거문문계전 식리 봉상책(擧門門契錢殖利捧上冊) 날짜, 전유사(錢有司), 금액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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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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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柄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51_001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을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낸 간찰 초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이 이병성(李柄聖)에게 보낸 간찰 초(抄)이다. 지난번 보내준 서신은 아름드리 보옥과 한 자나 되는 거북을 얻은 것 같아서 지금까지 어루만지다보면 어느덧 낡은 서탁이 화려해지는 것 같다고 기쁨을 표현하였고, 근래 생활이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의 조카가 지금 묘령의 나이이고 앞으로 진취할 가망이 많을 텐데 자신이 병중에 있어서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언제라도 한번 만나서 회포를 풀고 싶지만 각자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느라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고, 자신이 지은 시를 보내니 웃으며 받아달라고 하였다. 조카 이야기는 아마도 자신에게 공부하러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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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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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간찰(簡札) 초(抄)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재종형(再從兄)에게 보내려고 쓴 간찰의 일부 재종형(再從兄)에게 보내려고 쓴 간찰의 인사말 부분이다. 재종형의 안부가 강녕하고 집안 사람들 모두 평안한지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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