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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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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綾州幼學朴道漢尹再衡金遇喆等 謹齋沐上書于巡相公閤下 伏以 孝爲百行之源 而萬代之所不泯 故天必感之 而有氷魚雪筍之驗 國必褒之 而有旌閭贈職之典 矧乎 一家雙孝 嫂叔並出 俱養其親者乎一門雙孝 卽本州士人裵以仁及其弟嫂氏是也 裵以仁卽前太師武烈公諱玄慶密直公諱廷芝及開 國元勳貞節公諱克廉之後 而孝行參奉允德之五世孫也 且以烈行旌閭金氏 卽其高祖母則其家孝烈 亦其箕裘也 以仁家甚貧寒 與其弟嫂文氏 俱養其親 躬自傭賃負米 以供甘旨 倘所謂體尙無全衣 而親極滋味者也 其父享年八十有四而逝 其母享年一百有五而逝 鄕隣咸稱以其子其婦之至孝 而以致其親之壽考也云耳 一日則其▣(母)病谻 醫云可用山蔘 而山蔘難得云 故以仁與其弟以潑 求採山蔘 遍行深山 數日竟無得處 號泣 歸路暫憩林下 忽見老蔘伏于岩阿 採歸煮服 因致其積病之皆瘳 而又得其肌膚之豊厚 此實天感之致 而宜與氷魚雪筍匹美也 其弟嫂文氏 係出南平 卽江城君三憂堂之後 性本慈孝 躬執採汲 以養舅姑 便身宜齒之物 極力求之 必以供之 是故 其姑年至百有五 而尙無{忄+恙}焉一日則其姑病深口焦 百味皆失 食飮頓廢之際 忽有野鶉 飛入竈下 文氏因煮而供之 以啓病中粥餌之念 亦豈非天感之致 而寔與崔山南家乳姑之婦齊孝者也 玆故文氏之誠孝皆出於隣里之觀感 而便成兒童之歌謠云耳 生等居在同鄕 瞻聆所及 不勝欽獎 前年冬 槪擧耳熟目擊者 而仰稟於本州 城主之下 則題內旣得萬萬嘉尙 而文?晩到 轉報過時 是可咄歎 其有極乎 玆敢齊聲 仰籲於巡宣孝理之下 伏願 勿以人廢言 而另 加採賢 俾得 登聞 使此一門雙孝無至湮沒 千萬顒祝之地 伏惟藻鑑▣午九月 日幼學 梁伯永 洪吉文 尹再衡 文思稷 閔喆邦 李志徽 鄭趾煥 梁樂三 宋桓黙 李文國 朴海鵬 金德敏 閔珏顯 安命禧 南鎬 文永伯 李應奎 梁相楫 具光烈 鄭德煥 李龍正 金德權 安橚 高鎭泰 李時必 奇夏三 梁柱永 朴相堯 金遇喆 文琪休 朴道漢一門兩孝 聞甚嘉尙是矣仰 啓已過事初四日[兼使]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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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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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2년 임태주(任泰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任泰柱 裵致黙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11월 28일, 임태주가 배치묵에게 지난번의 만남을 회상하며 형님의 수고와 우리들의 나아갈 바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보낸 답장 서간. 1912년 11월 28일, 제(弟) 임태주(任泰柱)가 배치묵(裵致黙)에게 지난번의 만남을 회상하며 형님의 수고와 우리들의 나아갈 바를 다짐의 마음으로 답하여 보낸 편지이다. 거의 얼굴을 잊을 뻔했는데 서로 만날 수 있었다며 선사(先師)의 내려주심이 아니겠냐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또 오래되지 않은 날에 연이어 편지를 주시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번에 가서 선사의 뜻을 저버리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이 구업(舊業)에만 국한된 것이었겠느냐 물으며 우리들이 헤어진 뒤에 형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반드시 하려고 했던 것은 가릴 수 없는 일이라고 치하했다. 또한 그동안 아무것도 돕지 못한 자신을 꾸짖지 않아 주겠느냐고도 했다. 형님의 고마움과 우리 벗들의 모임, 한마음 등을 이야기하고 추운 날씨에 잘 계신지 안부를 묻고 축원한 후 편지를 마쳤다. 겉봉투에 대곡(大谷)의 사문(斯文) 배치묵(裵致黙)에게 물계(勿溪)에서 답장한다고 적었다. 작성자 임태주(任泰柱, 1881-1944)의 자는 우경(宇卿)이고, 호는 성재(誠齋)이며, 본관은 장흥이다.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능주(綾州), 지금의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초방리(草坊里)에 거주하였다. 유고로 『성재문집(誠齋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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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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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산장수원의 피차 소식이즉 막ᄒᆡ야 펜지로서 안부로 뭇기 됨이다 일기ᄂᆞᆫ 차교 차운 잇ᄯᆡ의종헹주 기체후 알영하시교 종질 양위도 안가하시메 ᄐᆡᆨ절이 주〃ᄐᆡ평하시온지 왈고조하는 중 이곳 종숙은 그간의 別無大頉한이불ᄒᆡᆼ 중 다ᄒᆡᆼ이오이다 연하와 부탁지사는 다럼안이라 종숙이□……□1)1) 원본이 오랫동안 접혀서 보관됨으로 인하여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게 되었다.신사의 조여부모〃사의 참예는 못할지라도 그양 지ᄂᆡ기가 느무 다 섭〃ᄒᆡ야 작연 도의도금五円을 인펜의다 보ᄂᆡᆺᄯᅥᆫ이 그 와갓 유실이 되고 말라심으로 금연의ᄂᆞᆫ 특벨이 쥬이하고 금十二円을 위펜으로 부송ᄒᆡ야쌉던이 잘바다섯난지 왈교즈할 ᄲᅮᆫ 우종숙이 ᄀᆡᆨ지 ᄉᆡᆼ할의 몸이 조그 나여 가〃이서 더멘 기일 동안 올나가서 어룬들도 만ᄂᆡ보고 수상수하 모도 만ᄂᆡ종숙으 ᄀᆡᆨ지의서 상처한 리약이메 ᄉᆡᆼ할하는 리약이메 고ᄒᆡᆼ가종으리약이메 서로 상담하기로 작정이로서 사업의 이ᄒᆡ야 부득이 못 가기 됨이다 용서하시고 회시ᄂᆞ 속키 하시소(헹술리ᄉᆡᆨ조는 웟지 되ᄂᆞᆫ지 무러보시고 회답시 말숨ᄒᆡ야 주십시오)(前面)全南 和順郡 道谷面 大谷里裵致黙 殿釜山府 瀛州洞 五百十一番地物産委托販賣 裵 相 珍湖南旅館旧十月十八日[郵便日附印: 釜山, 13.12.9, 后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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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대곡동안 속수 서 언해(大谷洞案續修序諺解) 초(抄)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裵錫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배석면(裵錫冕)이 작성한 대곡동안속수서언해(大谷洞案續修序諺解) 초(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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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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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15년 배진묵(裵振黙) 묘지약도(墓地略圖)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裵振黙 和順憲兵分隊長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5년에 11월 26일에 배진묵(裵振黙)이 제출한 묘지약도(墓地略圖) 대상: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야산리(全羅南道 和順郡 道巖面 野山里) 후산(後山) 묘지(墓地) 면적(面積): 30坪 소유자(所有者): 배진묵(裵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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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화순(和順) 달성배씨(達城裵氏) 분묘계(墳墓屆) 초(草)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화순(和順) 달성배씨(達城裵氏) 선조(先祖)의 묘지를 작성한 분묘계(墳墓屆) 초(草) 10명의 선조 묘소 위치와 사망자 성명, 평수(坪數) 등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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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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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5년 박상호(朴相浩)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朴相浩 牧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24_001 1855년에 능주목에서 박상호에게 발급한 준호구 이 문서는 1855년에 박상호가 능주목(綾州牧)으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의 등본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면, 준호구는 신분 증명 이외에도 소송관련 사건이 있을 때나 도망간 노비를 찾을 때, 부역을 부과할 때에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준호구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담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관에 먼저 제출해야 했다. 관에서는 호구단자를 살펴본 뒤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경우 새로운 종이에 준호구를 작성하여 신청인에게 발급하였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작성하는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용문자식(用文字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절차가 점차 간소화되어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인이 준호구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살펴본 뒤 수령의 서명과 관인을 찍어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준호구에 따르면 박상호의 주소는 능주목 오도면(吾道面) 오도곡(吾道谷) 1통 2호이다. 박상호의 현재 나이는 40세이고 처 김씨(金氏, 38세)를 가족으로 두었다. 이밖에 고담(古談, 62세)이라는 이름의 비(婢)를 소유하고 있다. 준호구에 답인한 [周挾無改印]은 삭제[周挾]하거나 수정[改]한 글자가 없다는 의미인데,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周挾改幾字]를 답인하고 '幾'부분에 변경된 사항이 몇 개인지 숫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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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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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을미년 삼산단 유계 출자록(三山壇儒契出資錄)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 3월 14일부터 삼산단유계(三山壇儒契)의 출자금(出資金)을 낸 계원(契員) 명단을 작성한 문서 을미년 3월부터 정사년까지 기록되었으며, 출자인 이름, 생년, 字, 주소, 출자금을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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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15년 배유의(裵有義), 배유의(裵有義) 처(妻) 노씨(盧氏) 묘적계(墓籍屆)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裵振黙 和順憲兵分隊長 裵振黙 2顆(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85_001 1915년 11월 26일에 배진묵(裵振黙)이 화순헌병 분대장(和順憲兵分隊長)에게 신고한 묘적계(墓籍屆) 6世조(祖) 배유의(裵有義)와 6世조모(祖母) 노씨(盧氏)의 묘를 신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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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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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조비(祖妣) 김씨(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聖輝 妻 金氏 施命之寶(10.0×10.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용승의 조모 김씨를 숙부인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용승(朴龍昇)의 조모 유인(孺人) 김씨(金氏)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조모로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추증된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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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15년 배광곤(裵光袞), 배광곤(裵光袞) 처(妻) 이씨(李氏) 묘적계(墓籍屆)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裵振黙 和順憲兵分隊長 裵振黙 2顆(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85_001 1915년 11월 26일에 배진묵(裵振黙)이 화순헌병 분대장(和順憲兵分隊長)에게 신고한 묘적계(墓籍屆) 7世조(祖) 배광곤(裵光袞)과 7世조모(祖母) 이씨(李氏)의 묘를 신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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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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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덕문(德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德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즉일에 덕문이 상대방이 보내준 100냥의 처리 계획을 알리는 간찰 즉일에 제(弟) 덕문(德文)이 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물은 뒤 보내준 100냥은 말씀대로 계산해두었지만 아직 쓸 만한 사람이 없어 믿을만한 인편을 두루 찾아서 처리할 계획임을 알렸다. 또 형이 담배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담배 1줌[把]을 보낸다고 하였고, 품직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하였다. 어디론가 행차를 잘 다녀오기를 바라고 돌아오면 다시 기별을 주어 한번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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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간찰(簡札) 초(抄)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윤경록(尹景祿)에게 보낸 답장과 배순문(裵順文)에게 보낸 편지를 베껴놓은 간찰 초 윤경록(尹景祿)에게 보낸 답장과 배순문(裵順文)에게 보낸 편지를 베껴놓은 문서이다. 윤경록에게 보낸 답장은, 지난여름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뒤로 항상 그리웠는데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그간 생활은 평안하며 집안 식구들도 두루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래 황달기가 있어 수십일 고생하다가 지금은 겨우 괜찮아졌고 집안 식구가 무탈한 것이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환제(丸劑)는 자신의 정성을 나름대로 표했던 것인데 지나치게 추어주시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조카는 보소(譜所)의 정단(正單) 일을 이미 끝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이 벌써 몇 달 전이고, 근래는 간역(刊役)이 긴급해서 또 출발했다고 소식을 알렸다. 배순문에게 보낸 편지는, 작년 여름 만남을 통해 수년간 쌓인 정을 풀 수 있었다고 인사하고, 경록 형의 위문편지를 받고서 주헌(住幰)이 편안하다는 소식을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여행 중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근래 황달기로 한 달이 넘도록 고생을 하다가 지금은 나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기력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언제나 다시 만나서 속에 가득 쌓인 회포를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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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97년 이돈상(李敦相) 명문(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李昌緖 李敦相 行縣監[着押] 咸平縣印 3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06_001 1797년 이창서(李昌緖)가 이돈상(李敦相)에게 자신의 노비 1구(口)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명문 1797년 3월에 이창서(李昌緖)가 이돈상(李敦相)에게 작성해준 노비 매매명문이다. 명문의 내용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자신이 상속받은 계집종 오목개(五木介)를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후소생(後所生)까지 아울러 이돈상에게 영영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이사걸(李師杰)은 증인으로, 이사철(李師哲)은 증보(證保)로, 이유덕(李儒德)은 필집(筆執)으로 참여하고 각각 착명하였다. 노비를 매득한 이돈상은 이 명문을 첨부하여 함평현에 제출하면서 입안(立案)을 신청하였고, 입안 발급 과정에서 함께 작성된 초사(招辭)와 입안이 함께 현전한다. 이 문서의 뒷면에는 함평현에서 작성한 배탈(背頉) 입안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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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증조고(曾祖考) 박만익(朴萬益)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萬益 施命之寶(10.0×10.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만익을 통훈대부 군자감정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만익(朴萬益)을 통훈대부 군자감정에 추증한 교지이다. 박만익이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증조부이므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증직을 제수한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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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정축년 안종기(安鍾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鍾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축년 10월 5일에 안종기가 산소를 쓴 이후의 갈등을 상대방이 주선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정축년 10월 5일에 안종기(安鍾基)가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봄에 자신이 산소를 쓴 이후 남들이 이런저런 말을 한 것은 뜻밖이었고 먼 사람을 경시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남들의 의견에 약간 부응한다면 자신이 선조를 위하는 도리에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형께서 양쪽 모두에게 유감이 없도록 주선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말미에 아이들을 가르쳐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나머지 이야기는 아들 편에 구두로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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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윤달영(尹達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達榮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윤달 10일에 윤달영이 상대방이 보내준 책자를 잘 받아 읽었다는 감사를 전하는 간찰 모년 윤달 10일에 윤달영(尹達榮)이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이 보내준 경의(經義) 책자를 잘 받아서 읽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누군가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힘써 주선해서 부응하도록 하겠고 사람들의 모함이 전보다 심해서 불안하다고 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려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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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57년 전시복(田時復) 초사(招辭) 고문서-증빙류-초사 田時復 官[着押]田時復(手決)田致祥(手決)金應虎(手決) 4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05_001 1757년 노비 매매에 증인으로 참여한 전시복(田時復)과 증보(證保)로 참여한 전치상(田致祥), 그리고 필집(筆執)으로 참여한 김응호(金應虎) 3인이 함평현에 진술한 초사 1757년 전복재(田福載)가 이명룡(李命龍)에게 노비 6구(口)를 방매할 때 증인으로 참여한 전시복(田時復)과 증보(證保)로 참여한 전치상(田致祥), 그리고 필집(筆執)으로 참여한 김응호(金應虎) 3인이 함평현에 진술한 초사이다. 전복재로부터 노비를 매득한 이명룡이 함평현에 노비 매매 사급입안(斜給立案)을 신청함으로써 매매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평현에 그들의 거래가 사실임을 확인해주는 내용의 진술서로, 이는 입안을 발급하는 데에 필수 과정이다. 주요 내용은 전복재가 증조모인 여옥(汝玉)이 상속받은 변음화(卞音花)의 이후 소생들 6구를 이명룡에게 방매할 때 자신들이 증인으로 참여한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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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57년 전복재(田福載) 초사(招辭) 고문서-증빙류-초사 田福載 官[着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05_001 1757년 전복재(田福載)가 이명룡(李命龍)에게 노비를 방매한 사실이 확실함을 증빙하는 내용의 초사 1757년 전복재(田福載)가 함평현에 제출한 초사(招辭)이다. 이 초사는 전복재로부터 노비를 매득한 이명룡이 함평현에 사급입안(斜給立案)을 신청함으로써 입안을 발급하기 위한 진행과정에서 작성된 문서이다. 아우의 상채(喪債)로 인해 생활이 곤란해진 자신은 본인 소유의 노비6구(口)를 암소 한 마리와 전문(錢文) 16냥을 받고 이명룡에게 방매한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다. 이때 증인과 필집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초사와 이명룡의 사급입안이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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