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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무진년 정진돈(鄭鎭敦)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鎭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11월 21일 아침에 복제 정진돈이 상대의 둘째 동생 죽음을 슬퍼하고 자신이 직접 위문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보낸 안부 위문 서간. 무진년 11월 21일 아침에 복제(服弟) 정진돈(鄭鎭敦)이 상대의 둘째 동생 상(喪)을 위문하고 문상가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안부를 전한 후 농사가 흉년이 된 것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쓴 편지이다. 정진돈이 눈물을 훔치며 상대의 둘째 아우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러한 나쁜 상황은 덕의 씨를 뿌린 집안에서 있을 수 없는 변이라는 것, 당해본 사람이 더 두렵다는데, 자애로움이 많은 상대가 어찌 슬퍼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또한 형이 이러한 일을 당했는데, 자신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지금까지 위로를 미루었다며 정리에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큰 아이가 와서 상중인 형이 잘 계신 것과 아버님 강녕하신 것, 여러분들 잘 계신 것을 알았다며 위로되었다고 해다. 공복(功服) 상을 입고 있는 자신은 집안에 화가 겹쳐 음력 8월에 큰댁 종숙모 상을 당했고, 또 집안에 크고 작은 상고(喪故)가 있어 매일 슬퍼하고 걱정하는 것이 일이라고 전했다. 농사가 흉년으로 판별이 나서 걱정스러운 것, 귀하의 농장이 피해가 많다 하니 설상가상이라며 어찌 살아야 하냐고 걱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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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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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大谷面大谷里 化民具相鳳金始五洪彦宗等 謹沐浴齋戒上書于城主閤下 伏以 孰無父母 而不孝於父母哉 挽古罕有 孝於父母 誠得天感之天性 人道之大綱矣 表賞旌美 國家之常典 而施及野氓之淸化也 而特使褒▣▣之至孝 而未蒙於表揚之典 則非但士林公議之嗟惜 而實爲 昭代之欠事也 竊唯本里士人裵以仁 卽太師武烈公太師密直公開國元勳貞節公之後孝行參奉諱允德之五世孫也 其慈親光山金氏 卽壬辰功臣忠壯公之後 而以庚申生享年于今一百四歲 而其言語精神少無昏耗 永保賦命 尙且無恙 在昔稀聞 至今罕見 此豈非古今稀罕之老乎 其子裵以仁 年期九十 而家雖貧窶 與其弟裵以發裵以赫裵以斗竭誠奉養 自少至老 晨昏定省之禮 小不懈怠而朝夕甘旨之供 期於適口 心志之養 容色之婉 極盡其道矣 欲爲其親喜悅 至於無方 則誠出於王延之色 養孝益於老子之弄雛 驚乎惜哉 金氏之享年一百四歲 天聊人聊 孝感於天 天感於誠 然則其親壽考無量 全由於其子孝養之致也 此豈有古今罕聞之孝乎 民等 居在同隣 聞已久矣 見已知之 不勝欽歎 而每欲陳達于 天門者也 伏願 閤下極垂孝莅之致 特以四人孝誠友愛之由 轉聞于 天閽 幸蒙褒賞之典 則其所以樹風 而禆此民彝者 豈泯滅也哉更伏願 閤下留神垂察焉藻鑑癸卯十一月 日化民 具相鳳 金始五 朴彩鉉 金斗溢 洪致岩 尹一龍 朴章赫 吳再迪 邢啓達 金遇喆 朴英樹 洪碩岩 金基安 朴海達 金得鉉 吳漢益 李萬亨 鄭龜相 梁八永 尹匡衡 朴文孝 具正源 文士一 李泰亨 洪彦宗等聞甚嘉尙事卄五日[使]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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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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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정태호(鄭泰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泰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즉일에 작은 동생 정태호가 형에게 동전 15민을 출급해줄 것을 당부하는 간찰 즉일에 작은 동생 정태호(鄭泰鎬)가 형에게 보낸 간찰로, 앞부분이 잘려나간 일부이다. 모전(牟錢)을 사용할 곳이 있어 이 벗을 보내니 동전 15민(緡)을 출급해주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내용이다. 정태호가 자신을 소제(小弟)라고 칭한 것은 형에 대해서 자신을 칭하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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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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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2년 김상지(金相之)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金相之 李生員 金相之 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16_001 1852년 김상지(金相之)가 이계화(李啓華)에게 이전에 약속했던 굴이(掘移) 날짜를 넘겼음을 인정하고, 다시 4월 20일 안으로 무덤을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의 수기 1852년 3월에 김상지(金相之)가 이계화(李啓華)에게 작성해준 수기이다. 김상지는 평릉면 사산리에 사는 이계화의 조모 산소에 투장(偸葬)하여 산송 과정에서 패소하였다. 이로 인해 지난 1월 말일 안으로 무덤을 파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수기를 작성하였는데 갑자기 신병으로 인해 지체되었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관의 판결에 따라 오는 4월 20일 안에 파 옮기겠다고 약속하며 다시 수기를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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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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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1년 김상지(金相之)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金相之 李啓華 金相之 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16_001 1851년 김상지(金相之)가 이계화(李啓華)의 선산에 자신이 투장(偸葬)하였음을 인정하고, 오는 1월 말일 안에 무덤을 파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의 수기 1851년 12월에 김상지(金相之)가 이계화(李啓華)에게 작성해준 수기이다. 김상지는 평릉면 사산리에 사는 이계화의 조모 산소에 자신이 우매한 탓에 범장(犯葬)을 하였음을 인정하고 오는 1월 말일 안에 무덤을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다. 관련문서를 통해 볼 때, 김상지는 이 기한을 넘겨 이계화 측이 다시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로 인해 다시 4월 20일 안에 옮기겠다는 수기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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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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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6년 이기춘(李基春)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基春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7.0x7.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36년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기춘(李基春, 61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妻 민씨(閔氏) 나이와 생년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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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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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임술년 정씨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4월 25일, 사돈 정씨가 사돈 윤생원댁에 보낸 한글 서간. 임술년 4월 25일, 사돈 정씨가 사돈 윤생원댁에 보낸 한글 서간이다. 사돈을 4~5일 모시고 있었다가 가시게 되었다며 섭섭한 마음과 자신 쪽의 안부를 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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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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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40년 이기춘(李基春)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基春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6x6.6),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40년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기춘(李基春, 6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妻 민씨(閔氏) 생년 이전 정유(丁酉)에서 병신(丙申)으로 기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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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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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병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1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병술년 1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병술년 1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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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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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병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2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병술년 1월 27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병술년 1월 27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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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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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월남(月南) 간찰피봉(簡札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월남에서 해남 묘동 전주이씨 여러분에게 보낸 답장 서간의 피봉. 월남(月南)에서 해남(海南) 묘동(卯洞)에 계시는 전주이씨 대문중 여러분에게 보낸 답장편지의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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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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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동흠(李東欽) 방목(榜目) 1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李東欽 □…□ 2顆(8.0x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한량(閑良) 이동흠(李東欽)이 삼등(三等) 이인(貳人)으로 합격한 시험의 방목 한량(閑良) 이동흠(李東欽)이 삼등(三等) 이인(貳人)으로 합격한 시험의 방목으로, 이동흠이 기재된 부분만을 오린 일부이다. 이동흠과 관련한 호구단자가 6건이 현전하는데, 그에 따르면 거주지는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산막동(山幕洞)이고,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아버지는 재훈(載勳), 조부는 기춘(基春), 증조는 복광(馥光), 외조는 김상의(金尙儀), 처는 신풍최씨(新豊崔氏)이다. 1867년 이동흠의 39세 호구단자에 '출신(出身)'으로 기재되어 있고, 1885년 57세 때의 호구단자에는 '부사과(副司果)'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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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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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동흠(李東欽) 방목(榜目) 2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李東欽 □…□ 3顆(8.0x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한량(閑良) 이동흠(李東欽)이 우도(右道)에서 일등(一等) 일인(壹人)으로 합격한 시험의 방목 한량(閑良) 이동흠(李東欽)이 우도(右道)에서 일등(一等) 일인(壹人)으로 합격한 시험의 방목으로, 이동흠이 기재된 부분만을 오려낸 방목의 일부이다. 이동흠과 관련한 호구단자가 6건이 현전하는데, 그에 따르면 거주지는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산막동(山幕洞)이고,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아버지는 재훈(載勳), 조부는 기춘(基春), 증조는 복광(馥光), 외조는 김상의(金尙儀), 처는 신풍최씨(新豊崔氏)이다. 1867년 이동흠의 39세 호구단자에 '출신(出身)'으로 기재되어 있고, 1885년 57세 때의 호구단자에는 '부사과(副司果)'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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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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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7년 이한효(李漢孝)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李漢孝 綾州牧使之印(7.0x7.6), 周挾字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7년 이한효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37년 이한효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능주목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이한효가 34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어머니, 처(妻) 신씨(申氏)의 사조와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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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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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9년 이칠권(李七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李七權 綾州牧使之印(7.0x7.7), 周挾字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9년 이칠권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39년 이칠권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능주목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한량(閑良) 이칠권이 46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김씨(金氏)의 사조, 그리고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이 문서는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주묵(朱墨)으로 각 항목을 확인하였고, 오가작통(五家作統)의 흔적인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능주목사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날인되어 있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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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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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추수기(秋收記) 대양내평(大陽內坪) 등 9곳의 토지면적과 수확량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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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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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68년 김조이(金召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金召史 綾州牧使之印(7.0x7.2), 周挾字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0_001 1768년 능주목에서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김소사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김소사에게 발급한 준호구 1768년 능주목에서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김소사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김소사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준호구는 김소사가 59세 때의 것으로, 김소사의 사조(四祖)와 자녀가 기재되어 있다. 김소사의 아버지는 한량(閑良) 막생, 조부는 양인(良人) 막쇠, 증조는 노직(老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진(眞), 외조는 업무(業武)인 최논세(崔論世)이다. 자녀는 셋으로, 금위영의 보인(保人)인 28세 작은아기[者斤惡只] 아들과 두 딸이 있다. 이 문서의 특이사항은 김소사에게 자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신분을 과부로 표기했어야 할 것 같은데 독녀(獨女)라고 표기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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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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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74년 김조이(金召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金召史 綾州牧使之印(7.0x7.3), 周挾字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0_001 1774년 능주목에서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김소사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김소사에게 발급한 준호구 1774년 능주목에서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김소사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김소사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준호구는 김소사가 65세 때의 것으로, 김소사의 아버지는 한량(閑良) 막생, 조부는 양인(良人) 막쇠, 외조는 업무(業武)인 최논세(崔論世)이다. 본래 호주(戶主)의 사조(四祖)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준호구에는 김소사의 증조가 누락되어 있다. 김소사의 이전 준호구에 기재되어 있던 아들과 딸 하나는 빠져 있고 막내딸만 기재되어 있다. 분가와 출가 등으로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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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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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46년 나득검(羅得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得儉 □…□(6.5×6.5),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6_001 1846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46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78세이다. 나득검은 이때 홀아비였기 때문에 앞에 환부(鰥夫)라고 표기하였고, 아들 원익(元翼)과 원경(元慶) 그리고 손자인 수성(綏成), 만규(萬奎), 갑회(甲晦)가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처(妻)가 사망하여 처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는 대신 아들과 손자의 외조(外祖)가 기재되어 있다. 높이를 낮추어 천구질(賤口秩)을 기재하였는데, 도망한 노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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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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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8년 나수성(羅綏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綏成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58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58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제5보암리에 거주하는 나수성이 39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의 사조, 아우 채신(埰臣)과 현성(鉉成)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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