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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自封)德城 經几下 執事謹再拜候狀傾造高軒 穩襲芳香 歸臥窮廬 鄙吝復萠 未知自分愚陋無緣於君子之側耶冬序過半 日氣稍溫 伏惟際玆靜中觀玩 益加崇深 子舍侍彩平穩大宅近節何如 而從孫嬌能免他{疒+恙} 不至貽憂否 竊念渠素蔑敎方 恐爲漏家之瓢 必不合於尊門閨範矣 周切溸仰不任騂顔耳 弟蟄伏殘狀 無足奉溷崇聽 而惟幸各家粗遣棠底吉禮 業已過行 郞才與凡節極稱 以是爲近日滋况 但先兄之思 輒發於邀送之際也 斯文大擧近發於花府 普合之後 將以明禮刊出退溪先生書節要云 此是吾林百年未遑之事 或自今有挽回元氣之道耶 鄙家譜牒搜覓之約 其間想已付送書信 而兒輩汨於冗務尙此遷稽 不誠之嘆 烏可已也 聞從侄哀前日晉向云相會爛議 期於覓得周旋敎導▣▣▣…▣處 勿使▣▣如何 春和景明之日 或賜命駕 以攄鬱懷千萬切仰 餘不備伏惟尊察▣…▣月念五日 査弟 柳道寔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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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시집간 여동생이 친정 오빠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 시집간 여동생이 친정 오빠[오라바님]에게 답장으로 쓴 한글 편지이다. 편지의 앞부분에 결락이 있어 일부 판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편지를 받고서 친정 식구들의 안부를 알았으나, 어머님의 환후가 조금도 낫지 않은 것을 염려하였다. 자신과 시댁 식구들의 근황도 전한 뒤 온양의 논을 파는 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온양의 논문서는 이곳에 오지 않았음을 밝히며 배지(牌旨)와 문서가 그곳에 있는지 잘 살펴보고 보관하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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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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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충효사 유회소(忠孝祠儒會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忠孝祠儒會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인년 충효사(忠孝祠) 유회소(儒會所)에서 오는 3월 15일에 묘정비(廟庭碑) 제막식을 거행하므로 참석해달라는 내용의 간찰 갑인년 3월 1일에 충효사(忠孝祠) 유회소(儒會所)에서 보낸 간찰이다. 오는 3월 15일 정오에 충효사의 묘정비(廟庭碑) 제막식을 거행하므로 바쁘더라도 참석하여 전현(前賢)의 충효를 흠모하고 후예들의 성의를 찬양하여 자리를 빛내고 축복해달라는 내용이다. 충효사는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 있는 향토문화유산 제4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운남면에 거주하는 김(金), 기(奇), 정(鄭), 이(李)씨의 4성 6인이 선대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창건한 사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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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66년 대곡리(大谷里) 대동계(大同契) 토지매도 계약서(土地賣渡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裵鎭萬 大谷里 大同契 裵鎭萬(원형), 梁會東(원형), 吳澈鎬(타원형), 朴鍾堤(타원형), 裵錫奎(타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6년 12월 30일에 배진만(裵鎭萬)와 화순 대곡리(和順 大谷里) 대동계(大同契)가 작성한 토지매도 계약서(土地賣渡契約書) 대상: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全南 和順郡 道谷面 大谷里) 七拾壹番地 一四六拾坪 中 貳拾七坪 가격: 3,060원 참여자: 매도자(賣渡者) 배진만(裵鎭萬), 대곡리(大谷里) 대동계(大同契) 대표(代表) 배진만(裵鎭萬), 양회동(梁會東), 오철호(吳澈鎬), 박종제(朴鍾堤), 배석규(裵錫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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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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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間在稍阻, 晩炎幷?俱酷, 政用瞻懸. 卽拜下札, 謹審政候淸裕, 雖則仰慰, 聞遭夭慘, 不任驚愕. 服人經暑以後, 如過一劫, 本疾諸證,俱無所减. 泄候雖不大段, 已過一月. 但自今番晩雨後,暑氣似已快退, 從此可尋一分生路耶. 室中憂冗亦云非細已. 近一朔餘, 尙未差安, 三秠亦云, 無力, 此甚爲悶. 家兄篤老, 纔輕重患,幸得之和, 餘憂猶覺懍然有生, 則有憂經所固然, 亦復奈何. 今農又爲大登云, 邑弊優可蘇祛否. 是尤惻念.惠貺諸種,多荷多荷. 第有難覓充數之段, 何必乃爾, 雖空簡可也.雖一種可也. 此等外待可歎可歎.及不光其爲感也. 間埃前後來者多矣. 終無入眼▣想未及親梁而只所在▣者, 而送之▣▣則已之▣(亦)可矣.李康▣喪慘然▣名未解一也. ▣出客地一也. ▣其家勢文▣(識)未及通情一也. 逝者何知, 不勝去舊之傷惜, 想同之也. 餘紙縮, 不宣, 上謝狀.戊申八月十三日, 服弟 命植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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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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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무진년 유재호(柳在浩)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柳在浩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4월 1일, 죄시생 류재호가 나생원에게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안부 및 자신의 근황, 집을 거의 다 지었다는 소식, 창호지가 필요하니 구해주기를 바란다는 부탁 등의 내용을 전하기 위해 보낸 서간. 무진년 4월 1일, 죄시생(罪侍生) 류재호(柳在浩)가 나생원(羅生員)에게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안부 및 자신의 근황, 집을 거의 다 지었다는 소식, 창호지가 필요하니 구해주기를 바란다는 부탁 등의 내용을 전하기 위해 보낸 서간이다. 전 달에 돌아가면서 산문(山門)을 지났지만 그 때 여정이 잠시도 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워하기만 하고 방문하지 못했다는 것, 요즘의 날씨에 상대가 어찌 계신지 궁금하다는 안부 인사, 아드님은 아버지 모시고 공부 잘하는지, 주인장 및 여러 이웃들은 다 평안한지에 대한 물음, 상을 지내는 자신은 여러 가지 일들이 다 힘들다는 것, 연이어 말을 달리느나 본래의 질환인 격담(膈痰)과 기체(氣滯)가 왔고, 설사증세도 심했다는 것, 여러 번 창약을 먹고 어제 겨우 위급함을 면하였지만 원기가 다 사라졌고 완쾌의 기약이 없다는 것, 무언가를 조성하는 일은 거의 완료하기에 이르렀지만 범절을 처리함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 약 열흘 정도면 택일(擇日)하고 들어갈 계획이라는 것, 자신이 이곳에 살면, 장차 좌우 친지들이 이후로 이곳에 들어올 것인데, 한 사람도 원하는 자가 없는 것은 자신이 근사하지 않고, 가난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한탄, 창호지 3~4장이 절실히 필요하니 이 뜻을 문오(文五) 보(甫)에게 말하여 사서 수일 내로 찾아와 준다면 매우 감사하겠다는 부탁의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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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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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두문록(杜門錄) 수단(收單) 고문서-치부기록류-역사기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두문동(杜門洞)과 관계된 인물의 행적 기록 윤지(尹志), 윤동야(尹東野), 윤재성(尹載性), 윤태혁(尹泰赫)의 행적을 적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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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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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명단(名單)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7명의 명단(名單) 기록 어떤 문적(文籍)에 기록했거나 기록하기 위해 작성된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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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이윤흠(李閏欽)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李閏欽 海南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에 이윤흠(李閏欽, 36세)이 해남현(海南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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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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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 윤기영(尹機榮)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尹機榮 行縣監<押> □…□ (7.0x7.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66년 8월에 해남현에서 유학 윤기영에게 발급한 준호구 이 문서는 1666년 8월에 윤기영이 해남현으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의 등본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면, 준호구는 신분 증명 이외에도 소송관련 사건이 있을 때나 도망간 노비를 찾을 때, 부역을 부과할 때에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준호구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담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관에 먼저 제출해야 했다. 관에서는 호구단자를 살펴본 뒤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경우 새로운 종이에 준호구를 작성하여 신청인에게 발급하였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작성하는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용문자식(用文字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절차가 점차 간소화되어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인이 준호구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살펴본 뒤 수령의 서명과 관인을 찍어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준호구에 따르면 윤기영의 주소는 해남현 비곡면(比谷面) 비곡리(比谷里)이다. 윤기영의 현재 나이는 53세이고 처 이씨(李氏, 28세)를 가족으로 두었다. 이밖에 노(奴) 돌모치(乭毛赤, 38세), 매득비(買得婢) 예성개(禮成介, 27세), 피노(被奴) 길남(吉南, 47세), 비(婢) 차옥(次玉, 26세)를 소유하고 있었다. 준호구에 답인한 [周挾無改印]은 삭제[周挾]하거나 수정[改]한 글자가 없다는 의미인데,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周挾改幾字]를 답인하고 '幾'부분에 변경된 사항이 몇 개인지 숫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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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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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배진만(裵鎭萬) 사실증명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광주보선사무소장 裵鎭萬 □…□ 2顆(1.5×1.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5년 4월 28일에 광주 보선 사무소장이 배진만(裵鎭萬)에게 발급한 사실증명 배진만이 1953년 12월 16일부터 1967년 5월 11일까지 광주보선사무소 재직중에 공무부상을 입어 1968년 5월 12까지 전남대학교 병원 치료 만료로 부의원에 해직되었음을 증명한다는 내용 배진만의 본적과 주소, 직위, 생년월일이 기록, 사진 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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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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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병신년 배현수(裵顯洙) 토지매도 계약서(土地賣渡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吳萬鎬 裵顯洙 吳萬鎬(타원형), 裵興洙(타원형), 裵錫仁(타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 11월 8일에 오만호(吳萬鎬)이 배현수(裵顯洙)에게 발급한 토지매도 계약서(土地賣渡契約書) 대상: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和順郡道谷面大谷里) 152番地 畓 約300坪(779坪內) 가격: 12500圜 참여자: 매도인(賣渡人) 오만호(吳萬鎬), 입회인(立會人) 배흥수(裵興洙), 입회인(立會人) 배석인(裵錫仁), 매수인(買受人) 배현수(裵顯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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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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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알들ᄒᆞ오신 ᄉᆡᄃᆡ 답소셩네언선친의 ᄉᆞᆼ사 말ᄉᆞᆷ 그시의 경달 경달 위모 가이 업ᄉᆞ오며무ᄉᆞᆷ 말ᄉᆞᆷ으로 형현 위로ᄒᆞ오릿가 셩쳔니 무지 불셩ᄒᆞᄉᆞ ᄉᆡᄃᆡᆨ 다남ᄆᆡ분의 츌쳔셩효의 무량 탕제 효렴을 보시와 ᄇᆡᆨ세 향안을 오히려 낫비 바라시다 일조 일셕의 화고을 당ᄒᆞ실 제 일월리 무광ᄒᆞ고 명염이 나려 두상을 분쇄ᄒᆞ신 듯 호쳔 망극 ᄋᆡ통 얼마나 ᄒᆞ실가 셩네로 좃ᄎᆞ 초종 셩복과 양에 위졸갓 맛자오시고 아람 업ᄉᆞ오신 영젼 ᄇᆡ셜ᄒᆞ오셔 육시곡음 ᄋᆡ통ᄒᆞ신들 무산 아람 게실잇가 어린 동긔들위로ᄒᆞ시고 ᄉᆡᄃᆡᆨ의 어린 심ᄌᆞᆼ 과도히 상치 마시압긔 순소져 형치 얼마나 비통 망극ᄒᆞ난고 아인 아인 가이 업ᄉᆞ오며 상쥬님 형제분 각 ᄂᆡ외분 셩효의 ᄋᆡ회 즁지안들 ᄒᆞ오심잇가 ᄉᆡᄃᆡᆨ 조모긔셔난 ᄯᅡᆯ님 ᄯᅡᄅᆞ가신 듯 게유 여러 ᄂᆞᆷᄆᆡ도 건강ᄒᆞ오며 인졍 윤날ᄒᆞ오신ᄉᆡᄃᆡᆨ게셔난 이 무용 인ᄉᆡᆼ을 잇지 안니시고 종종편지ᄒᆞ시니 감사ᄒᆞ옵고 졍니가 더옥 깁펴가며 인졍 이만ᄒᆞ신 거슬 우리 여러 고부이 탄복 마지 안슴이다 이곳슨 무심 즁의도 슈슈ᄒᆞ여 진즉 회답 못ᄒᆞ여 너모나 감졍ᄒᆞ고 소박ᄒᆞ여 언마나 무졍타설레임이다 ᄂᆡ의 가량 보시압 존고 양외분 긔력 강건ᄒᆞ시며 시동긔 여러분들 평안들 ᄒᆞ시고 ᄃᆡ소 합졀리 균안들 ᄒᆞ심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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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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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36년 신길균(申吉均) 봉상기(捧上記)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9월 昭和十一年度舊丙子九月日 신길균씨(申吉均氏) 소작료(小作料) 수입(收入) 문서 소작료 수입은 총14石8斗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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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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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84년 이태영(李泰英)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李泰英 門中 李泰永<着名>, 閔學錫<着名>, 朴相宜<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24_001 1884년 11월 19일에 이태영이 문중에 작성해 준 수표. 1884년 11월 19일에 이태영이 문중에 작성해 준 수표이다. 이태영은 자신의 며느리를 문중 선산 언덕에 몰래 매장하여 문중으로부터 꾸짖음을 당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과오로 무덤을 파옮긴 뒤에 관가에 정소하기까지 하였다. 관가에 출두하여 대질한 뒤 관의 분부에 따라 서로 화합하여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작성하였다. 수기(手記)와 수표(手標)는 매매 등 쌍방 간에 맺어진 약속을 기록한 문서이다. 내용상 주로 산송(山訟)과 관련한 수기·수표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어떠한 내용이든 그것을 다짐하고 약속하며 써주는 문서라면 수기·수표로 볼 수 있다. 수기와 수표는 문서의 특성상 정확한 구분 없이 혼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문서로 불망기(不忘記)가 있다. 불망기는 어떠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다. 개인이나 문중의 기록 차원에서 작성하는 불망기도 있었지만 주로 매매 등 타인간의 거래관계에서 증빙을 위해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수기·수표와도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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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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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6년 박태직(朴泰稷) 산지허급명문(山地許給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奎鎭 朴泰稷 李奎鎭<着名>, 張東煥<着名>, 劉龜基<着名>, 徐五賢<着名>, 金成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6년 2월 20일에 개산동중(盖山洞中) 이규진 등 5명이 박태직에게 발급한 산지허급명문 1836년 2월 20일에 개산동중(盖山洞中) 이규진 등 5명이 박태직에게 발급한 산지허급명문 이다. 명문을 작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본 고을 주산(主山) 아래에 장사지내는 사안과 관련하여 전문 50냥을 받고 허락하니 뒷날 말꼬리를 잡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는 내용이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가리킨다. 토지나 노비 등 부동산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지만 위 문서와 같이 특정한 권리가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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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묘동문중 수집강 전장기(卯洞門中首執綱傳掌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묘동문중(卯洞門中)의 수집강(首執綱) 전장기(傳掌記) 문중전(門中錢) 지출금액 및 품목과 잔액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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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50년 배진만(裵鎭萬) 상환증서(償還證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農林部長官 裵鎭萬 綾州面仁(1.0×1.0), □…□(3.5×3.5), □…□ 5顆(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0년 3월 1일에 농림부 장관(農林部長官)이 배진만(裵鎭萬)에게 발급한 상환증서(償還證書) 1950년에 농림부장관이 농지개혁법 13조에 의해 배진만에게 농지를 분배해 주면서 발급한 증서 상환대상: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和順郡 綾州面 南亭里) 794번지 畓 823坪 상환액: 正租 13石 3斗 7升 상환액, 상환자, 약정 등의 항목으로 구성 배면: 분배토지표시(分配土地表示), 영수란(領收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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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9년 정제현(鄭濟玄)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鄭濟玄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0_001 1879년(고종16) 1월에 정제현(鄭濟玄)을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879년(고종16) 1월에 정제현(鄭濟玄)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절충장군은 무관 정3품 당상(堂上)의 관계이다. 용양위 부호군은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에 소속된 종4품의 관직이다. 일자 부분을 종이를 떼어냄으로써 지운 흔적이 있으며, 인장을 찍을 때 연호의 한 글자와 숫자에 답인해야 하는데 어보가 연호에 닿아있지 않아 인장을 찍는 형식에 맞지 않다. 또한 ?승정원일기?에 임명기록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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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경오년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에 신부측에서 신랑측에 대례(大禮) 날짜를 적어 보낸 연길단자 경오년 10월 6일에 신부측에서 신랑측에 보낸 연길단자(涓吉單子)이다. 대례(大禮) 날짜는 10월 28일이며, 존안(尊鴈)과 납폐(納幣)는 같은 날 사시(巳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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