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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下東面化民梁一永梁直永梁柱永等右謹言切憤事 伏以民等與南俊玉 累次山訟 官題內 官决之下 何敢肆惡 殯處當刻內撤去 形止報來敎是乎矣 面任搆於私情 不得移殯 但以圖形狀敎是乎矣 圖形 題內 明日內卽刻徹去 面任與南俊玉捉來是乎乃 風憲不遵 官題 移殯新返 而當初偃然在家揚臂大談曰 官家發行 只在明日 若過明日 則更無餘憂云 無法蠢頑 莫此尤甚 玆以仰訴 該面面任及南俊玉段分付於留鄕 嚴囚後 待其移殯 放送之地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四月 日使[署押](題辭)風憲所爲萬萬可痛今將嚴懲使新面任擧行向事 初一日[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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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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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35년 능주목 유향좌수(留鄕座首) 서목(書目) 2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座首 李 [綾州牧] 官[着押], 座首 李[手決] 3顆6.3×6.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12월 12일에 능주 유항좌수 이씨가 남준옥을 풀어주는 줄로 능주겸관에게 올린 서목 1835년(헌종1) 12월 12일에 능주(綾州) 유항좌수(留鄕座首) 이씨(李氏)가 능주겸관에게 올린 서목(書目)이다. 본 고을에 갇혀있는 남준옥(南俊玉)을 방송(放送)하는 일을 처분해주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능주겸관은 "이미 이장(移葬)을 하였으니 남준옥을 풀어보내주라"고 13일에 유향좌수에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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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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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綾州留鄕座首 書目本州在囚民南俊玉放送事 處分事狀乙未十二月十二日 座首 李[着名]兼官[署押](題辭)旣已移葬 則南俊玉放送向事十三日[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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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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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5년 양준묵(梁俊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幼學 南廷洙 幼學 梁俊默 南廷洙[手決], 李武應[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9_001 1875년(고종12) 9월 21일에 시장주 유학 남정수가 능주목 도림면 쌍봉리에 있는 시장을 유학 양준묵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매매명문 1875년(고종12) 9월 21일에 시장주(柴場主) 유학 남정수(南廷洙)가 능주목(綾州牧) 도림면(道林面) 쌍봉리(雙峯里)에 있는 시장(柴場)을 유학 양준묵(梁俊黙)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매매명문이다. 본 면(도림면)의 쌍봉촌 뒤 기지(基址)와 시장(柴場)을 여러 대 수호하다가 형세 상 부득이 시가(時價)에 따라 양상락(梁相樂)에게 방매하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밝혔다. 이웃에 사는 양준묵(梁俊黙)이 기지(基址)와 시장(柴場)을 본래 주인에게 환퇴해야한다는 뜻으로 여러 차례 정소(呈訴)하여 환퇴하라는 뎨김이 있었기에 앞의 기지와 시장을 전문(錢文) 64냥을 받고 신문기 1장으로 물러준다고 명시하였다. 기지와 시장의 범위는 '집 뒤 텃밭 위에서부터 배나무 언덕으로 빙 둘러싸인 곳 및 상봉(上峰)에 이르기까지이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토지이 주인인 유학 남정수와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 유학 이무응(李武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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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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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下東面 雙峯里 化民 梁一永梁直永梁柱永▣…右謹言 伏以民等之宗家祠堂後主脉之地 以南哥欲爲勒葬之意 昨日呈訴特蒙 公決 而以禁葬之意 南哥乙卽爲囚獄是乎乃 同南哥頃日退殯于禁葬地數步內曰 雖身死良置 終必暗葬之說 揚臂行惡是乎所 若不移其殯於洞外 村人所共見之處 則南哥之宿習 不顧其母之薄葬 而因殯加土是如可籍其塚名而後 必有勒葬之弊也 卽刻移殯於洞外 然後必無後弊是乎旀 且昨日相訟時 同南哥以無根暗說 誣訴 官庭 右地買得於民之祖父云 民之祖父若有賣之之理 則祖父生時曾何有禁葬呈訴 而至于今爲世嫌乎 以此說論之 渠矣行臆可知是遣 以山地論之良置 禁葬山卽爲一村主脉 而禁養之地也 渠矣家後?爲渠矣柴場 而限界昭然是去乙 南哥之言言臆談 豈有記極乎 玆敢具顚末更訴爲去乎 伏乞執法▣公之下 上項南哥之母殯乙 卽使之移出於洞外 俾無後弊敎是乎旀 山地禁養界限主脉等事乙 以爲日後憑考之意 特爲立旨題下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三月 日使[署押](題辭)旣有官決 渠又移殯 何可更閙 以此憑考向事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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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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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35년 능주목 유향좌수(留鄕座首) 서목(書目) 1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座首 李 [綾州牧] 官[着押], 座首 李[手決] 3顆(6.3×6.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12월 8일에 능주목 유향좌수 이씨가 남준옥을 붙잡아 올리는 일로 능주겸관에게 올린 서목 1835년(헌종1) 12월 8일에 능주목(綾州牧) 유향소(留鄕所)의 좌수(座首) 이씨(李氏)가 작성하여 능주겸관(綾州兼官)에게 올린 서목(書目)이다. 능주에 사는 남준옥(南俊玉)을 붙잡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능주겸관은 "남준옥(南俊玉)이 완강히 거부하며 파가지 않은 것이 매우 통탄스러우니 징치를 더하여 엄히 가두고 독굴한 후 형지(形止: 일이 되어가는 형편)를 보고하라"는 판결을 9일에 유향좌수에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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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綾州留鄕座首 書目本州南俊玉捉上 緣由事狀乙未十二月初八日 座首 李[着名][署押](題辭)南俊玉之頑拒不掘 極爲可痛 略加徵治 使之押送 嚴囚督飭掘去後形止報來向事初九日[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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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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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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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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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8년 양재선(梁在善)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梁在善 牧使[着押] *周挾字改印, 1顆(墨印, 14.8×3.8)*1顆(6.6×7.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67_001 1898년 능주목에서 유학(幼學) 양재선(梁在善, 3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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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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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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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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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右通告事伏以在昔盛時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時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徑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光州鄕校儒林 僉尊 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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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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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5년 이표(李豹)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崔京烈 李豹 3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80_001 1935년(소화10) 3월 28일에 이표가 최경렬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대지를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 1935년(소화10) 3월 28일에 매수인(買受人) 이표(李豹)가 매도인(賣渡人) 최경렬(崔京烈)로부터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峯里) 토지 두 곳을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賣渡證書)이다. 매도증서에는 1935년 3월 28일에 최경렬이 자신의 소유 땅을 96원을 받고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230번지에 사는 이표에게 매도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표가 매입한 토지는 삼봉리 96번지 대(垈) 229평(지가 22,90, 가격 46원)과 동리(同里) 80번지 대(垈) 250평(지가 25,00, 가격 50원)이다. 매도증서의 우측 상단에 일본정부에서 받은 3전(錢)짜리 수입인지가 붙어 있다. 등기제인(登記濟印)은 등기 신청을 관서(법원)에서 접수한 수부일자와 번호가 적형 있는데 수부일자는 신청 다음날인 29일이고 접수번호는 1981호이다. 거래 대상 토지인 두 곳 대지 기록 상단에 찍은 세로로 긴 장방형의 도장은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록번호와 순위이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담당한 곳은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이며, 이 서류를 작성하여 처리를 담당해 준 사법대서인은 허병두(許炳斗)로 대서료 16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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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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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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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933년 최경렬(崔京烈) 토지 등기명의인 표시갱정 등기신청(土地登記名義人表示更正登記申請)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崔京烈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3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76_001 1933년 5월 11일에 최경렬(崔京烈)이 대리인(代理人) 허병두(許炳斗)로 하여금 전주지방법원 임실 출장소(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에 제출한 토지 등기명의인 표시갱정 등기신청(土地登記名義人表示更正登記申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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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賣買契約証書一. 不動産ノ表示 別紙記載ノ通リ此賣渡代金 貳佰拾五圓也右記載ノ不動産ヲ 貴殿二 賣渡シ 前記代金 正二 領收候事確實也依テ 后日 該不動産二對シ 他ヨリ異議無之ハ勿論ノ義二候慮 故障相起リ候場 合ハ拙者等二於テ 一切ノ責二任シ 毫モ貴殿二御迷或相掛ケ申問敷爲後日 本証書仍而如件昭和七年 貳月 十九日全州郡 全州邑 完山町 貳七貳番地賣渡人 崔在仁[印]全州郡 全州邑 高砂町 貳四九番地賣渡人 崔甲孫[印]仝 仝 仝 仝賣渡人 崔鍾業[印]右 親權者 崔禮煥[印]買受人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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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27년 이호(李虎)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金孔宇 李虎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3.6×3.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09_001 1927년 5월 1일, 매도인(賣渡人) 김공우(金孔宇)가 매수인(買受人) 이호(李虎)에게 진안군의 토지를 매매하면서 작성한 증빙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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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右通告事伏以在昔盛峕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峕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經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南原鄕校儒林 僉尊 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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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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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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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4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全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4_001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5인이 전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5인이 전주향교(全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바빠서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소상을 정성껏 지내고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서로 바라보며 통곡하니 측은한 감정이 들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광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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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右通告事伏以在昔盛峕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峕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經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全州鄕校儒林 僉尊 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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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30년 이호(李虎)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李鳳鎬 李虎 4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소화5) 4월 10일에 이호가 이봉호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의 논을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 1930년(소화5) 4월 10일에 이호(李虎)가 이봉호(李鳳鎬)로부터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의 논을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賣渡證書)이다. 매도증서에는 1930년 4월 10일자로 이봉호가 자신의 소유 토지를 539엔(円)을 받고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230번지에 사는 이호에게 매도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호가 매입한 토지는 삼봉리 485번지 답(畓) 1,923평이다. 지가(地價)는 매269,22이다. 매도증서의 우측 상단에 일본정부에서 받은 수입인지 1장이 붙어 있으며 금액은 20전(錢)이다. 등기제인(登記濟印)에는 접수 번호인 수부일자(受附日字)와 수부번호가 적혀 있는데 수부연월일은 소화 5년 5월 19일이며 수부번호는 3938호이다. 또 하나의 등기제인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소화6년 8월 31일에 제4647호로 접수된 것으로 임실군 임실면 이도리(二道里) 607번지에 있는 임실금융조합에서 저당권설정(抵當權設定)을 목적으로 신청하여 접수한 것이다. 거래 대상 토지 상단에는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록번호와 순위가 기재되어 있는데 그 번호는 1,648호와 제2번으로 적혀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담당한 등기소는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이며, 이 서류를 작성하여 처리를 담당해 준 사법대서인은 허병두(許炳斗)로 서기요금(書記料金)으로 16전(錢)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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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34년 영수증(領收証)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朴允行 朴允行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15_001 1934년(소화9) 음력 3월 12일에 영수인 박윤행이 자신이 매도한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의 건물 값을 받고 증명을 위해 작성해 준 영수증 1934년(소화9) 음력 3월 12일에 영수인 박윤행(朴允行)이 자신이 매도한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의 건물 값을 받고 증명을 위해 작성해 준 영수증(領收証)이다. 영수증에는 박윤행이 자신이 매도한 삼봉리 249번지 상의 건물인 체사 3칸 행랑 2칸의 댓가로 3원(圓)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영수인 박윤행 1인으로 자신의 이름자를 새긴 원형주인(圓形朱印)을 찍어 서명하였다. 관련 건물 매도증서로 볼 때 매도인 박윤행은 연대인(連帶人) 심한경(沈漢卿)을 세워 건물을 대지를 제외한 건물을 매도하였다.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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