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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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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7년 이규호(李奎鎬)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朴順玉 李奎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01_001 1927년 음력 3월 4일, 영수인(領收人) 박순옥(朴順玉)이 이규호(李奎鎬)에게 금액을 영수하였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발급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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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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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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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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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71년 김시흥(金時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白致三 金時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1년(영조47) 12월 11일에 전주 백치삼(白致三)이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에 있는 밭을 유학 김시흥(金時興)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771년(영조47) 12월 11일에 전주(田主) 백치삼(白致三)이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에 있는 밭을 유학 김시흥(金時興)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백치삼은 자신의 몫으로 분재 받은 밭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가난 때문에 유지 보존할 수가 없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장자(莊字) 전(田) 2마지기(결부수: 5부)이다. 이 곳을 전문(錢文) 3냥을 받고 팔았으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논과 붙어 있어서 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상인(喪人) 백치삼과 증인 유학 최만창(崔萬昌), 필(筆: 문서 작성자) 유학 이능백(李能白)이다. 연호와 간지가 불일치하여 작성연도를 간지를 기준으로 산출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장학리, 도석리, 보산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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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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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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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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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金溝縣儒林幼學崔敬烈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養志婉容孝莫大焉轉死回甦孝莫至焉本縣士人郭永春正懿公鏡之後淸白吏安邦之十 四世孫也系出玄風家傳忠孝備載 國乘史記固不待生等之臚列而可以俯燭矣斯人也自其髫齡能知家法事親之節出於至性矣甘旨之奉耰鉏之借皆適親意養其志而婉其容者也其父有疾甞糞甜苦以願身代其母庶死裂脂垂口以終天年轉其死而回其甦者也如非世襲之家行而出天之至性則豈至於斯㢤孝㢤斯人也鄕老村嫗敎子恒言以如郭生矣街童蕘竪事親諸節欽仰郭生矣四隣咸服一鄕共稱故生等瞻聆所在不敢含嘿好懿輿情玆敢齊聲仰籲于 本倅則題內果如狀辭則郭永春之孝友無愧於古人余庸嘉尙而報營軆重更待公議敎是故更訴于 巡相閤下則題音內孝行聞甚嘉尙敎是故伏乞 春官閤下則題音聞極嘉尙褒掦之節惟在式年道 啓向事敎是故仰籲于繡衣閤下則題音內卓行可勝欽歎 啓聞容俟商處敎是則挽近以來習俗漸降虛美紛騰實行泯沒者也如斯卓行尙未蒙褒掦之盛典大傷於風化所關矣故生等敢冒猥越之誅玆敢仰籲伏乞 閤下慱採公議以爲闡掦以補風化之萬一之地千萬祈懇不勝屛營巡相閤下 處分丁巳十二月 日儒林幼學崔敬烈 宋夏源 金坦 金宇植 景明淳 張昇燁 林宗哲 李敏鳳 崔采榮 朴凞柱 景采浩 宋濬源 鄭駿朝 具楨寅 金在璜 白景鑑 溫鳳奎 景光淳等〈題辭〉聞極嘉尙褒掦之典姑俟日後向事 十九日[官印]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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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土地賣買契約書一土地의 表示面 名 里洞坪名 字番號 地目 面積 結 數 賣買年月日 賣買代金上東面■■舟岩洞中坪庸六六 畓 二斗落 八負八束 大正二年八月十日 六十円【二字削, 二字入[李奎鎬信]】一前記賣買代金은 全部領受ᄒᆞ야 將來買主의 所有됨을契約홈一保証人은 右土地賣買契約의 確實ᄒᆞᆫ 事을 証ᄒᆞ기 爲ᄒᆞ야 署名捺印홈大正二年八月十日全北任實郡上東面垈雲里二統四戶賣主 宋在浩[宋在浩]全北任實郡上東面三峰里三統六浩買主 李奎鎬[李奎鎬信]前輩任實郡上東面三峰里二統四戶保証人 朴允行[朴允行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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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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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토지면적(土地面積) 문서(文書)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토지면적(土地面積)을 기록한 문서 토지 정보를 기록한 문서로 면적은 892평이고 지번은 196번이며 가격은 27조(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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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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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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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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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2년 차용계약서(借用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張富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2년 7월 18일에 장부술이 2원 50전을 차용하면서 작성한 차용계약서 1932년 7월 18일에 장부술(張富述)이 돈 2원 50전을 월 4리(利)의 이율로 빌리면서 작성해 준 차용계약서이다. 차용 기한은 음력 10월 보름이며, 이때까지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을 갚기로 계약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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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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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84년 선순흥(宣順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漢佐 宣順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4년(정조 8) 12월 26일에 전답주 상인 장한좌(張漢佐)가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촌에 있는 밭과 논을 선순흥(宣順興)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784년(정조 8) 12월 26일에 전답주(田畓主) 상인 장한좌(張漢佐)가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촌(學堂村)에 있는 논과 밭을 선순흥(宣順興)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장한좌는 자신이 매득한 전답을 쓸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한 토지는 학당촌에 있는 장자(莊字) 대전(垈田) 3마지기(결부수: 10부 5속)와 장자(莊字) 답(畓) 3도락지(결부수: 8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2냥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있어 내어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전답주인 상인 장한좌와 필(筆幼: 문서작성자) 유학 김덕겸(金德兼)이다. 김덕겸만 서명을 하고 방매자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촌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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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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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2년 매매계약(賣買契約) 부동산목록(不動産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86_001 1932년 2월 19일에 최재인 등 3인이 매도한 부동산 목록 1932년 2월 19일에 최재인(崔在仁), 최갑손(崔甲孫), 최종업(崔鍾業) 3인이 215원에 매도한 부동산의 목록이다. 계약서에 매매 대상 부동산을 별지에 기재한다고 썼는데, 이 문서가 바로 별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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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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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不動産目錄任實郡 聖壽面 三峰里 壹百五拾九番地一. 畓 參百六拾五坪 地價 八.七六仝 仝 仝 壹百六拾番地一. 垈 壹百貳拾六坪 地價 八.八二仝 仝 仝 五百六拾八番地一. 畓 參百五拾五坪 地價 五拾六員八十戔仝 仝 仝 五百八拾六番地一. 畓 五百八拾壹坪 地價 五五.壹九仝 仝 五峯里 拾四番地一. 畓 貳百五坪 地價 壹四.參五任實郡 聖壽面 枉訪里 七百六拾壹番地一. 畓 壹百五拾四坪 地價 壹八.四八仝 仝 仝 七百六拾四番地一. 畓 參百拾壹坪 地價 參七.參貳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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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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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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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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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927년 이호(李虎) 토지 소유 보존 등기 신청서(土地所有權保存登記申請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李虎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3.6×3.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09_001 1927년 7월 22일, 신청인 김공우(金孔宇)가 전주지방법원 진안 출장소에 토지등기의 인명 표시를 변경 신청하고 발급받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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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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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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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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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84년 장한신(張漢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錫老 張漢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92_001 1784년(정조 8) 12월 26일에 번답주 유학 강석로(姜錫老)가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촌에 있는 논을 유학 장한신(張漢臣)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84년(정조8) 12월 26일에 번답주(反畓主) 유학(幼學) 강석로(姜錫老)가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촌(學堂村)에 있는 논을 유학 장한신(張漢臣)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강석로는 자신이 매득하여 갈아 먹던 논을 다른 땅으로 옮겨 사기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학당촌 앞에 있는 장자(莊字) 논[畓] 2마지기(결부수: 7부 2속)과 아래쪽 논 2마지기(결부수: 9부 5속)로 논 총4마지기(총부수: 16부 7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36냥을 받고 팔았으며, 본문기도 아울러 준다고 명시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강석로와 증인으로 답주의 형인 유학 강석후(姜錫垕), 문서작성자로 답주의 동생 강석주(姜錫胄)가 참여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촌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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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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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乾隆四十九年甲辰十二月二十六日 幼學張漢臣前明右明文事段 自己買得耕食是如可 移買次 伏在學堂村前莊字員反畓二斗落只卜數七負二束庫果 下过同字反畓二斗落只九負伍束庫乙 價折錢文三十六兩 依數捧上爲遣 本文記並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某人中 幸有雜談是去等 將此文卞呈事反畓主 幼學 姜錫老[着名]訂 同生兄 幼學 姜錫垕[着名]筆 幼學 弟 姜錫冑[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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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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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64년 보성증시(寶城增試)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7월에 보성(寶城)에서 설행된 증광시(增廣試) 합격자의 방목과 동년 8월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동당시(東堂試) 합격자의 방목 1864년(고종1) 7월 29일에 보성(寶城)에서 설행된 증광시(增廣試) 합격자의 방목과 동년 8월20일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동당시(東堂試) 합격자의 방목이다. 보성에서 설행된 증광시의 상시관(上試官)은 오덕영(吳德泳)이다. 증광시는 비정기 과거시험으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설행되는 시험으로, 초장(初場)·중장(中場)·종장(終場)으로 진행되었다. 시험 장소는 서울 거주자를 위한 한성시(漢城試), 성균관 유생들을 위한 관시(館試), 지방 거주자를 위한 향시(鄕試)로 구분되었고, 향시의 경우 도별로 관찰사가 도내의 군현 중에서 정하였는데 이 문서의 경우는 보성과 전주에서 설행된 것이다. 초장은 사서오경(四書五經) 의(疑)·의(義) 또는 논(論) 중에서 2편을 제술하고, 중장은 부(賦)·송(頌)·명(銘)·잠(箴)·기(記) 중 1편, 표(表)·전(箋) 중에 1편을 선택하여 모두 2편을 제술로 시험하고, 종장은 대책(對策) 1편을 제술로 시험하였는데, 보성 증광시의 경우는 초장은 부(賦)로, 종장은 의(義)로 시험하였고, 시(詩)와 의(疑)에서 합격한 사람도 따로 분류하여 적었으며, 합격자의 이름 아래에는 거주지를 적었다. 전주에서 설행한 동당시(東堂試)는 전라도관찰사 정헌조(鄭憲朝)가 주관하였다. 합격자의 명단 아래에 시험 문제가 적혀 있는데, 논제(論題)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백성들은 날마다 그것을 쓰지만 알지 못한다."에 대해 논술하는 것이고, 부(賦)는 〈순리전(循吏傳)〉의 "경술(經術)로 이도(吏道)를 꾸미다."이고, 표(表)는 한(漢)나라에서 현량방정(賢良方正)을 천거하여 등용하는 것에 대해, 책문(策問)은 사단(四端)가운데 사양지심(辭讓之心)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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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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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3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3顆(6.9×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4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 양직영, 양주영 등 3인이 남준옥의 모총 늑장 사건으로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4월에 능주목(綾州牧)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 양직영(梁直永), 양주영(梁柱永) 등 3인이 남준옥(南俊玉) 형제의 모총 늑장 사건으로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남준옥과의 여러 차례 산송 중 장사지낸 곳을 즉시 철거하고 상황을 보고하라는 관의 뎨김이 있었지만 면임(面任)이 개인적인 정에 구애되어 이빈(移殯)하게는 하지 않고 도형(圖形)만 작성해 올렸다는 것, 도형의 뎨김에 내일내로 즉각 철거하고 면임과 남준옥을 붙잡아 오라고 했는데 그것을 풍헌(風憲)이 따르지 않고 이빈(移殯)한 곳을 되돌리고서 "관가의 발행이 내일이니 내일만 지나면 남은 근심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며 관에 처분을 청하였다. 양일영 등은 해담 면임과 남준옥을 유향소에 분부하여 엄히 가두게 이빈하기를 기다렸다가 풀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1일에 '풍헌의 행위가 매우 통탄스럽다. 지금 엄징하고자 하니 신면임으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라.'라고 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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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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