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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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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所有權保存登記申請不動産ノ表示 :任實郡聖壽面三峰里 六百九拾八番地-八林野壹千貳百八拾壹坪價格金拾參円也[登記番號 第六六0四號]附屬書類 : 土地台帳謄本 壹通, 委任狀 壹通, 登記原因ヲ證スル西面存在ャザルニ付申請書副本 壹通任實郡舘村面芳水里五百九拾七番地申請人 崔昌錫任實郡任實面城街里貳拾五番地右代理人 朴世洪[朴世洪]昭和拾參年六月拾五日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御中課稅標準: 不動産價格金拾參円也登錄稅: 金六錢也[受附: 昭和拾參年六月拾六日 第參四九六號, 登記濟][受附: 昭和拾參年六月拾六日 第三四九七号, 原因及其日附: 昭和十三年六月一日 賣買, 目的: 所有權ノ移轉, 權利者ノ氏名住所: 李豹, 登記濟][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 2箇處書記料金十六錢, 司法書士 朴世洪[司法書士朴世洪](皮封_前)任實郡 任實面 二道里代書所內朴世洪 殿(皮封_後)德峙面 勿憂里韓仁煥 付[全北·高興, 13.6.1, 后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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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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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3년 이준영(李駿泳)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証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梁海宣 李駿泳 海宣 3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3년(소화8) 2월 12일에 증주 양해선이 자신의 토지를 이준영에게 맡겨 매도하려 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도증서 1933년(소화8) 2월 12일에 증주(證主) 양해선(梁海宣)이 자신의 토지를 이준영(李駿泳)에게 맡겨 방매하려 하면서 발급해준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이다. 본 토지매도 증서에는 양해선이 자신의 토지를 후록하고 그 토지에 대하여 이준영이 타인에게 팔 경우에 언제든 이전서류에 날인(捺印)하기로 확실히 약속한다고 적었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증주 양해선 본인으로 직접 작성하여 자신의 도장을 날인한 후 이준영에게 올리는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후록으로 기록된 토지는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峯里)의 829번지 답(畓) 1,328평, 245번지 대(垈) 130평, 250번지 전(田) 323평, 192번지 전(田) 1,015평, 663번지 전(田) 226평, 678번지 답(畓) 363평, 233번지 대(垈) 270평, 685번지 답(畓) 135평, 성수리(聖壽里) 420번지 전 591평, 임실군 지사면(只沙面) 안하리(雁下里) 27번지 畓 585평, 안하리의 27번지 답 외 5필지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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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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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3년 이기호(李起鎬) 영수증(領收証)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李曾甲 李起鎬 李曾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31_001 1923년(대정12) 9월 13일에 이회갑이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전록에 있는 산 일편을 방매하면서 이기호로부터 대금을 받고 작성해 준 영수증 1923년(대정12) 9월 13일에 이회갑(李曾甲)이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峯里) 전록(前麓)에 있는 산 일편(一片)을 방매하면서 이기호(李起鎬)로부터 대금을 받고 작성해 준 영수증(領收証)이다. 매도대금으로 산지값 일금 26원(圓)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회갑은 자신의 주소지인 임실군 오천면(烏川面) 복흥리(福興里)를 적고 자신의 이름을 적은 후 적색 원형 도장을 찍어 서명하였다. 관련자료로 동일자로 작성된 토지매매계약서가 함께 남아 있다. 영수증의 작성 문체는 국한문 혼용으로 한자로 문서를 작서하고 이두부분만 한글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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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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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領証一金貳拾陸圓也右金額은 任實郡聖壽面三峰里前麓에 在한 一片山地價로正ニ히 領收候也大正十二年九月十三日 領收人烏川面福興里李曾甲[李曾甲]李 起鎬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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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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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47년 이호(李虎) 해약증서(解約證書) 1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任實金融組合 李虎 6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55_001 1947년 8월 7일에 임실금융조합(任實金融組合)에서 이호(李虎)에게 발급한 해약증서(解約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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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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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97년 남원향교(南原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南原鄕校 王之田約所 1顆(墨印, 7.0×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09_001 1897년 2월에 남원향교 교임 노경수·최병량 등 6인이 왕지전 향소에 이동우의 인효를 관에 보고하여 포상받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향교(南原鄕校) 교임(校任) 노경수(盧景壽)·최병량(崔炳亮) 등 6인이 왕지전 향소(王之田約所)에 이동우(李棟宇)의 인효(仁孝)를 관에 보고하여 포상받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왕지전에 살고 있는 선비 이동우는 효령대군 보(補)의 15대손이자 호은공(壺隱公) 수(洙)의 11대손으로, 남쪽 지방에 떨어져 영달하기를 바라지 않고 힘써 농사짓고 살았으니 이는 선조가 그에게 편안함을 남겨 준 것이다. 이동우는 태어난 지 3일만에 부친상을 당하여 죽을 때까지 애통해 하였다. 그의 홀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아침저녁으로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쏟은 피를 모친 입에 넣어 회생시켰다. 모친상에는 달을 넘겨 집 가까운 5리 즈음에 안장(安葬)하고, 날씨에 상관하지 않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묘하여 곡하며 집안 일을 함께 간섭(看攝)하면서도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어리를 베고 자는 데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언급할 때마다 먼저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인효가 아니라면 이처럼 능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남원향교에서는 침묵할 수 없어 왕지전 향소에 이 통문을 보내 이동우의 인효에 대해 관에 전보(轉報)하여 포양(褒揚)하게 할 것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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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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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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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金溝縣儒林幼學宋喆鑑等謹齋沐再拜上書于春官閤下伏以璞玉在山抱之而泣者以其美寶之不收也芝蘭在谷遇之而歎者以其幽香之見遺也然則人之有出天之孝希世之行而在於遐鄕窮谷未蒙褒美之 典者豈非玉之在山蘭之在谷而凡爲士林之觀感者可無抱玉而獻遇蘭而薦耶本縣士人郭永春系出玄風世襲忠孝而正懿公諱鏡之後也淸白吏諱安邦之十四世孫也壬辰功臣伴松堂興懋之七世孫也旌閭孝子聽溪堂后泰之五世孫也源淸者流潔根深者枝茂固其理也而斯人之克追家風又以孝行名於世者其在秉彝之同得而豈無欽仰而艶慕㢤斯人也禀質純粹孝親敬長自有天成其母遘疾累月沈痼百藥無效幾至殞絶裂脂垂口竟至回甦其父宿病累年委席極誠孝養不懈不怠賞糞甜苦驗其差劇晝夜祝天願以身代其他順旨之事養體之方無所不用其極盡人子職且與其弟永福友愛甚篤初無物我之心衣食相讓貨財相推其父母常曰吾兒孝子吾兒孝子鄕隣稱之曰郭孝子之孝友古人莫過云則其實行實心可推而知也盖毁身成孝人情之所難也穢口供職人子之未易而斯人則每於侍湯之際例以賞糞爲常事或在危急之際以裂脂爲恒式苟非一心純至之誠感天之孝則安有轉死回生之理乎孝㢤斯人猗歟所行遐鄕逖未蒙褒賞之 典故生等裂裳褁足匍匐仰籲於春官閤下伏乞摭實 啓達于天陛之下以爲微顯闡幽之地千萬祈懇不勝屛營春官閤下 處分禮曹[署押]庚子二月 日儒林幼學宋喆鑑 張友一 崔光岳 金淑 宋承源 李昉 金昌鉉 張友仁 溫鳳元 金在鉉 崔錫珪 吳致瓛 李晩 宋永源 李魯赫 溫德基 等〈題辭〉聞極嘉尙褒揚之節惟在式年道 啓向事十四日[禮曹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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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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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1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羅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4_001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4인이 나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4인이 나주향교(羅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서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분주하여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통곡하니 그녀는 측은한 감정을 느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나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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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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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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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契約書右約事 本人所有山 在於任實郡聖壽面三峯里前麓一片인바 數代守護是多可 勢不得已 價折金貳拾陸圓을 依數捧上是遣 以新文壹張 右前永永放賣이되 若有支障而携貳則 損害費與本金을 賠償하키로 確實契約홈大正十二年九月十三日烏川面福興里 契主 李■■(榮植)〔曾甲〕[李曾甲]烏川面福興里 証人 崔仁弼[崔仁弼]李起鎬 殿(피봉)莊甲洞山 許可願李曾甲ヨリ買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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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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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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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8년 최창석(崔昌錫) 토지소유권보존등기신청서(土地所有權保存登記申請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崔昌錫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5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08_001 1938년(소화13) 6월 15일에 최창석이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 있는 임야의 토지 등록을 위하여 전주지방법원임실출장소에 제출한 토지소유권보존등기신청서 1938년(소화13) 6월 15일에 최창석(崔昌錫)이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 있는 임야의 토지 등록을 위하여 전주지방법원임실출장소(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에 제출한 토지소유권보존등기신청서(土地所有權保存登記申請書)이다. 앞서 최창석은 동년 6월 1일에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698-8번지의 임야(林野) 1281평(坪)을 이표(李豹)에게 대금 13엔(円)을 받고 매도하였다. 이에 이표는 자신의 토지가 된 본 임야를 등기소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하였지만 최초의 등기(토지 등록)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원래의 소유자였던 최창석이 먼저 토지소유권 보존 등기를 하고 차후에 이표로의 권리 이전 등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때 작성된 소유권보존등기로 보인다. 보존등기신청서에는 본 임야의 가격이 13엔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6월 1일에 이표가 신청한 매도증서에서 부여받은 등기번호인 6604번이 찍히고, 이표가 소화13년 6월 1일에 신청하여 매매(賣買)를 통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였다는 등기제인(登記濟印)이 찍혀 있다. 본 소유권보존등기 신청에 따른 등기제인이 장방형 적색인으로 찍혀 있는데 그 안에 받은 수부일자와 수부번호는 소화13년 6월 16일, 제3496번이다. 곧 이표의 등기제인 번호인 3497번호보다 1번 앞선 번호를 부여하였다. 본 등기를 위하여 치른 세금도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토지를 등록한 등록세가 토지가격인 13엔(円)인 점을 참고하여 6전(錢)으로 책정되어 적혀 있다. 본 등기를 해준 등기소는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이며, 이 서류를 작성하여 처리를 담당해 준 사람은 대리인 사법서사(司法書士) 박세홍(朴世洪)이었다. 박세홍이 최창석으로부터 받은 서기요금(書記料金)은 16전(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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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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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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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23년 이기호(李起鎬)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李曾甲 李起鎬 6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31_001 1923년(대정12) 9월 13일에 이회갑이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전록에 있는 산을 이기호에게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계약서 1923년(대정12) 9월 13일에 이회갑(李曾甲)이 이기호(李起鎬)에게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峯里) 전록(前麓)에 있는 산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계약서(契約書)이다. 이회갑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삼봉리 앞산등성이에 있는 한 편(片)의 산을 여러 대에 걸쳐 수호(守護)해 오다가 형세 상 부득이하여 돈 26원(圓)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을 작성하여 이기호에게 방매(放賣)한다고 적었다. 만약 지장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면 손해비용과 본 거래 금액을 배상하기로 약속한다고 하였다. 일제 강점 이전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비슷한 형식으로 붓을 이용하여 이두 부분만 한글로 작성하여 기록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임실군 오천면(烏川面) 복흥리(福興里)에 사는 계약주 이회갑과 증인(證人) 최인필(崔仁弼)이다. 서명은 붓이 아닌 이름자를 새긴 붉은색 원형 도장을 찍었다. 문서 상단에는 일본정부에서 발행한 수입인지 1장이 붙어 있으며 가격은 3전(錢)이다. 피봉에는 '장갑동(莊甲洞) 산(山) 허가원(許可願), 이회갑에게서 매수함.'이라고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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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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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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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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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1년 이호(李虎) 근저당권 설정 계약서(根抵當權設定契約書) 1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任實金融組合 李虎 12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55_001 1931년 8월 29일에 임실금융조합(任實金融組合)과 이호(李虎)가 맺은 근저당권 설정 계약서(根抵當權設定契約書) 임실금융조합으로부터 500원을 빌리기 위해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의 논을 근저당권으로 설정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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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32년 한기성(韓寄誠) 경락허가결정서(競落許可決定) 2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全南地方法院 朝鮮總督府判事 韓寄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80_001 1932년 12월 16일, 경매에서 임실군에 있는 임야와 전답을 낙찰받아 전주지방법원이 경매인에게 지급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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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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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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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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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2년 최재인(崔在人), 최창석(崔昌錫) 부동산 영소작권 설정급 저당권 설정(不動産永小作權設定及抵當權設定)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崔在人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3.6×3.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2년 2월, 최재인(崔在人)과 최창석(崔昌錫)이 임실군에 있는 자신의 부동산 소작권과 저당권을 전주지방법원에 설정하고자 신청하고 발급받은 서류 부동산 영소작권 설정급 저당권 설정(不動産永小作權設定及抵當權設定) 영소작권과 저당권을 설정한 부동산의 목록(目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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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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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27년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朴順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01_001 1927년 4월 15일, 영수인(領收人) 박순옥(朴順玉)이 금액 40조(條)를 토지값으로 영수하였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발급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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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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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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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夫人이莫不有其親而能盡其孝者盖尠矣며莫不有其兄弟而能盡其友愛者又鮮矣라今按本洞洞會之衆薦則本里士人李冕儀은孝寧大君十六世孫이오掌令壺隱先生之十二世孫也라世世家行이孝友稱道는一鄕所共知也라自孩提로本性이至溫至厚하야每遊戱ᄋᆞㅣ罔敢父母之咈志하며遊外에或得實果면必綶獻之려니及其長也하야事父母호ᄃᆞㅣ甘旨之供을未甞乏絶하며冬溫夏淸과晨昏定省을無一闕漏하며與數多男妹로共食共衣에未有睨視呼叱之事하고與其弟等으로累次分家分財이되均平無私하야未有毫髮之怨에一家堂內가和氣自樂터니時乎大正八九年間因於物價之瀑騰瀑落하야暗悉中損失家業하고困苦莫甚이라當此客年之旱害하야所農이全無라恐其父母之供儒〖需〗無備하야典身得債에區外負米를無日不絶하야內無十有餘眷之飢餓하고外無朋友之失信하니此何異於古人之百里負米乎아如此罕睹罕聞之孝友로無心覌過爲難而今纔依衆論仰布하오니後來爲人子者垂範慕仰之地를千萬切仰耳乙丑十二月十五日 王峙面廣峙里 [王峙面廣峙里勞働稧所] 勞働稧長 李相儀[王峙面廣峙里勞働稧長之印] 總務 朴炳南[印] 顧問 李譱宇[印] 書記 韓弘錫[印] 評議員 張順容[印] 李鳳儀 趙永玉[印] 梁承鶴 朴東奎[印] 金成文[印] 李日成 張壽巖[印]讚成長 韓鐸履[印] 許泰[印] 張奎錫[印] 梁萬錫[印] 朴魯化[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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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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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앞면任實郡 聖壽面 三峰里 二三○番地李 虎 氏殿봉투 뒷면任實郡 任實面 二道里 慶南宿李鍾徠上편지1섭〃히 작별하온 후 소식리 적조하와 그간의기치후 알ᄒᆡᆼ 만강하옵심니갓그간의 졔난 전과 갓치 일반리옴니다 근오도그간의 몸도 편하고 공부도 잘하옴니다양도의 ᄆᆡ우 골난ᄒᆡ서 차인 보내오리살 소도 十말만 보ᄂᆡ주시요 五月 十六日 장날 살 五말 갑 돈 七百二十五圓 실수업시주그심니다 역부로 인부 사서 보ᄂᆡ옴니다 실수업시 보내주요그마만 근침니다그도 부친 시전五月 十二日李鍾徠任實邑 大谷里徐海成[별지]인부 윤님 五十圓 줌니다 六月 十六日 살 五말갑 주그옴니다 실수업시 보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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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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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누나 언간(諺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30_001 12월 초9일에 누나가 남동생에게 쓴 한글 편지 12월 초9일에 누나가 남동생[아오]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편지지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의 글씨체가 〈광주 민종기_233357〉, 〈광주 민종기_233359〉, 〈광주 민종기_233360〉, 〈광주 민종기_233362〉와 동일할 뿐만 아니라, 편지지의 규격도 같아서 발신자 또한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편지는 '아우님 보시오[ᄋᆞ오님 보시ᄋᆞᆸ]'로 시작하는데, '우리 남매'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수신자는 남동생으로 추정된다. 쇠약한 남동생의 건강을 염려하며 보약을 먹어서 건강하기를 빌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편지 한 번 하지 못함을 슬퍼하면서 식구들 근황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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