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안석원(安錫元)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安錫元 暗行御史 暗行御史[着押] 3顆(마패지름 9.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09_001 1878년 2월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안석원·이기충 등 유생 50인이 암행어사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종도의 부인 청주 한씨와 이종익의 부인 광주 이씨의 뛰어난 열행을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의 포상을 내려 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2월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안석원·이기충(李基忠) 등 유생 50인이 암행어사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종도(李鍾道)의 부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와 이종익(李鍾益)의 부인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뛰어난 열행(烈行)을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의 포상을 내려 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효열(孝烈) 두 글자는 우주에 동표(棟標)이자 인륜에 벼리이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정려하여 포상하는 은전이 있었고, 사림들은 밝히고 드러내는 도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중 하나도 행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효열을 모두 겸비한 경우라면 더욱 정포하고 드러내야 한다. 남원읍 왕지전(王之田)에 사는 선비 이현범(李玹凡)은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4세손이자 서원군(瑞原君)의 13세손이며, 고림군(高林君)의 12세손, 칠산군(柒山君)의 11세손, 호은공(壺隱公)의 10세손으로, 대대로 효행과 우애로 칭송되는 집안임을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현범의 맏아들 종도(鍾道, 족보 이름은 會{各+日})는 청주 한씨 계륜(啓倫)의 딸과 혼인하였고, 셋째 아들 종익(鍾益)은 광주 이씨(廣州李氏) 상순(尙珣)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 두 부인은 모두 효부이자 열녀로, 혼인 전에는 부모를 봉양하는 데 한번도 법도를 어김이 없었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뜻을 유순하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였으며, 혼인한 뒤로는 친정부모에게 했던 대로 시부모를 봉양하였다. 1869년(기사) 즈음에 맏아들 종도가 우연히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그의 부인인 청주 한씨가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줄 것을 하늘에 빌고, 남편의 똥을 맛보면서 차도를 시험하여 모두를 감탄시켰다. 남편이 죽음에 이르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나온 피를 종도의 입에 넣어주어 5일 동안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런데 또 셋째 아들 종익이 위중한 병에 걸려 몇 달 동안 앓게 되자 그의 부인 광주 이씨가 약을 마련하는 정성과 음식을 바치는 절도가 한씨의 지성과 똑같았다. 종익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광주 이씨도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주어 열흘 동안 회생시켰다. 이렇듯 한 집안에서 두 열녀가 나오는 경우는 예로부터 보기 드문 일로, 예사로운 일도 숨겨서는 안되는 것인데 이런 뛰어난 열행(烈行)은 더욱 드러내야 할 일이다. 안석원 등은 모두 떳떳한 본성이 있기에 이 일을 듣고 공경하고 감탄하였으며, 보는 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이에 암행어사에게 '한 집에서의 두 열녀의 뛰어난 행실을 긍휼히 여겨 임금께 보고하여 정포(㫌褒)하는 은전을 입어서 묻혀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암행어사는 2월 28일에 '한 집안에서의 두 열녀의 실행을 들으니 매우 가상하다. 포양(褒揚)하는 은전은 더욱더 공의(公議)를 채집해야 할 일'이라는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