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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之田二里化民許鏞蘇鏵永張基弘等右謹言孝者生民之彛性天下懿行也人孰無是性而能全其賦者鮮矣人孰無是行而能保其德者尤鮮矣今夫本里士人李棟宇孝寧大君諱補之十五代孫壺隱公諱洙之十一代孫則璿源苗裔孝寧緖脉也夙遭憫㐫生孩三日慈父見背獨有偏母撫養漸長期於悅親爲主雖細微之事些少之物必稟行之朝耕暮讀無堕農學親病忽劇常侍問藥無敢或怠祝天願代登壇呼祈難代不宥蒼黃永訣斷指注血旋甦旋別擗踊呌叩問於禮家一遵禮節踰月安葬於五里許之地雖祈寒盛暑不廢省墳拜處亦穿寢苫枕塊不脫巾絰帶少無難焉語及父母淚先眩■(眩)〔泫〕然如非誠意所格豈有此行乎其母親淸州韓氏烈行卓異旣有各坊通章 繡營題音不啻申複尙未蒙褒典然一門之內孝烈兼全今世罕有之行尤不爲欽歎㦲眞可謂有是母有是子也隣里之所目睹遠近之所播聞也民等居在一里不可含黙無言故齊聲仰籲于仁盛之下伏願■(傳)〔轉〕報 營門啓達天陛以爲闡揚之地千萬幸甚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兼官[署押]丁酉四月 日韓鐸履 蘇俊永 張啓邦 蘇秉源 許鉎 張永錫 許鍵 韓榮敎 張基祿〈題辭〉子母孝烈聞極歎賞宜亟褒揚當轉報報公薦向事十八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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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양재경(梁在慶)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梁在慶 牧使[着押] *周挾字改印, 1顆(墨印, 14.8×3.8)*1顆(6.7×6.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53_001 1894년 능주목에서 유학(幼學) 양재경(梁在慶, 3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능주목 도림면 쌍봉리(道林面 雙鳳里)에 거주하는 통사랑선공감감역 양준묵이 사망하자 대신 그의 아들 양재경에게 발급한 준호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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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溝縣儒林 幼學張友一等 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士有懿行 則褒而薦之 士林之公議 顯而揚之 朝家之盛典 竊伏見本縣下西面士人郭永春 正懿公 鏡之後 淸白吏安邦之十四世孫也 世襲忠孝行義其家 自童年不學之時 能知入孝出恭之道 至于成長 事其父母 殫其誠孝之道 玄風郭氏之家行 以此可知 去庚寅 其母親以運疾 累月辛苦 暫不離側 晝夜祝天矣 及其危急之時 裂指垂口 乃得回甦 又於辛卯 其父以無何之疾 累年辛苦 嘗糞甜苦 以驗其吉凶 晝夜祝天 願以身代 又得回甦之道 此非至誠之所感乎 孝者百行之源 而與其弟永福 友愛尤篤者 亦一縣之所共知也 好衣冠推於其弟 財物推於其弟 而其弟亦如其兄之推讓 則玄風郭氏之家法 亦復可見 其父母常曰 吾兒之孝心 則無愧於曾氏之養旨 老萊之孝奉 吾兒之友愛 則無愧於姜肱之連枕 楊潘之設幔云云 而見之者 莫不感歎 聞之者 莫不嘉賞 則民等居在一鄕 不敢含嘿 玆敢齊聲仰籲 伏願 城主 轉報營門 以爲褒善旌閭之階 以補風化之萬一 伏不勝惶悚 屛營祈恳之地城主閤下壬辰九月 日 儒林 幼學張友一 崔光岳 金 淑 宋承源 李 昉 金昌鉉 張友仁 溫鳳元 金在鉉 崔錫珪 吳致巘 崔 舜宋喆鑑 李 晩 溫德基 宋永源 李魯赫 等官[暑押](題辭)果如此辭則郭永春之孝友無愧於古人 余庸(背面)嘉尙而報營 体重更待公議 宜當向事初一[金溝縣令之印] 6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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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金溝縣儒林幼學張友一等齊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顯微闡幽士林之公議也人有出天之孝希世之行而泯沒無稱則其在掦褒顯闡之道豈非欠事耶本縣士人郭永春即正懿公鏡之後淸白吏安邦之十四世孫也已有異稟自其幼乳天性純粹眞有古家之風資稟誠慤能盡孝之道其老母累月搆疾百藥無效將至殞絶裂脂垂口有頃回甦豈非之誠▣之所及乎又是其老父宿病累年長在床褥轉側随人不自飮食極誠孝養不懈不怠晝夜侍側暫不離席一心孝養其誠如一其他取養之方酒肉之必有無所不用其極而一無違逆盡其子職與其弟友愛甚篤盡其在我之道同畊同食別無物我亦是誠孝中流出者也其父母常曰吾兒孝子云云而無愧於曾氏之養旨老萊之孝奉矣見之者莫不感嘆聞之者莫不嘉賞則生等一鄕素所觀感矝式而不有褒美之典則遐土窮鄕無以爲勸後人爲善之道故玆敢齊聲仰籲伏乞閤下慱採公議以爲褒善㫌閭之階以補風化之萬一伏不勝惶悚屛營祈懇之地巡相閤下 處分壬辰十一月 日儒林幼學張友一 崔光岳 金淑 宋承源 李昉 金昌鉉 張友仁 溫鳳元 金在鉉 崔錫珪 吳致瓛 崔舜 宋喆鑑 李晩 溫德基 宋永源 李魯赫等〈題辭〉孝行聞甚嘉尙向事十二日[官印]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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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金溝縣儒林幼學宋喆鑑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㫌忠褒孝 朝家之盛典闡幽掦美士林之公議也人有出天之孝希卋之行而泯沒無稱則其在褒掦之道豈非欠事耶本縣士人郭永春即正懿公諱鏡之後淸白吏諱安邦之十四卋孫也既有異禀天性純粹眞有古家之風資禀誠慤能盡孝之道其老母累月搆疾百藥無效將至殞絶裂脂垂口有頃回甦豈非之誠孝所及乎又是其老父宿病累年長在床褥轉側随人不自飮食極誠孝養不懈不怠晝夜侍側暫不離席一心孝養其誠如一其他取養之方甘旨之供無所不用其極而一無違逆盡其子職與其弟永福友愛甚篤盡其在我之道衣食同之別無彼我則亦豈非誠孝中流出者也鄕隣莫不稱歎曰郭孝子之孝友古人亦莫過矣其父母常曰孝㦲吾兒孝㦲吾兒曾氏之養旨老萊之孝奉亦莫愧矣生等居在一鄕素所觀感不可含嘿故玆敢齊聲仰籲伏乞閤下今當式抄慱採公議以達天陛以爲褒掦之地千萬屛營祈懇巡相 閤下 處分都巡使[署押]癸巳八月 日儒林幼學宋喆鑑 張友一 金淑 崔光岳 宋承源 李昉 金昌鉉 張友仁 溫鳳元 金在鉉 崔錫珪 吳致瓛 李晩 宋永源 李魯赫 溫德基 等〈題辭〉從當慱採公議向事初九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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茂長莊子山面民人等狀右議送事伏以救弊生弊甚違事軆以民虐民大傷風化故玆敢呼籲于 旬宣之下一一洞燭焉卽惟本縣之訓屯事已悉▣前呈是白在果訓屯則在於星洞元松莊子山面等地云而昨春良星洞人鄭洛源等數三人已與京監營吏爭頡這間所費逼側於該面是乎所旣曰屯在面故再三徵費已爲四五百金先被其孽民不支保是去乙噫彼人心壑慾無厭稱託營費虗張數爻欲售僥倖事甚無據故歲前良不得已呈議送至伏承嚴 題旣爲公決尤當懲縮是去乙不意今者彼等三人以本縣訓屯自京妥帖云云而又以京費欺罔 官家稱以得題當此窮春不顧民勢之惶惶威脅殘民歲前革罷之營費混同京費每結頭以十兩錢式分排于本面以至二千五百餘金是遣彼黨數十罔夜督捧急於公納民失魂魄家家號哭襁負相連或有轉移他官者又有避身他面者方將秧坂在卽統面內無一人設農之意將至空墟乃已故日前赴愬于官庭是白乎則噫彼鄭民咐囑左右壅蔽聦明終至白退哀此殘民將何冤情乎以若京費言之三人之四五朔浮費多不過爲五六百金者也而初云六千中云四千末云三千金云爾則可知其挾襍也已徃革罷之營費混同京費私自濫排至於本面二千五百金則可知其無法也究其所習罪固難逭生等不避猥越玆敢齊籲于 甘棠風下之下卽垂洞燭別關該邑使此無告轉壑之民庶有再生之望無任齊祝之至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都巡使[署押]戊子三月 日金潤澤 康基斗 金汶榮 鄭淵益 金德秀 李建奎 李鍾蘭 李章和 吳永三 金處仲 朴明汝〔國〕 朴寬黙 林日新 李仲瑞 兪致榮 成夏京 辛宜黙 康原瑞 金周澤 鄭大源 等〈題辭〉鄭也捉致嚴繩杜弊向事隻在官十七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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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味雙和湯白勺藥 炒 三戔當歸 酒洗川弓生乾芐 河炒貝母 干汁炒橘皮細桂枝防風 各一戔柴胡 酒炒五味子 【入 干七 召二】細辛甘草 各七分升麻 蜜炒 三分日再服 食小遠 溫服溫處爲好加味香砂養胃湯便香付 干汁炒 三戔半夏 香油炒黃枳實 夫炒 各一戔五分白朮 土炒麥門冬陳皮 干汁炒 各一戔縮砂 炒硏蒼朮 半泔浸一宿炒唐厚朴 干汁浸炒白伏苓 各八分白豆久 干汁浸炒硏草豆久 炒硏 各七分木香兵郞人蔘甘草 各五分入 干 三召 二食小遠日再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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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류택렬(柳澤烈)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柳澤烈 李駿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3월 27일에 류택렬이 이준영에게 돌아가신 어머니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장. 1931년 3월 27일에 류택렬(柳澤烈)이 이준영(李駿泳)에게 돌아가신 어머니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장(慰狀)이다. 상대가 어머니 상으로 성복(成服)하고 자신이 곧장 상대의 상에 위문가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편지봉투에는 수신자 류택열은 무주에 살고 있으며 이준영은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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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碩士 碩士 至孝 哀前柳澤烈 謹封澤烈 頓首再拜言 不意凶變先大夫人 奄忽棄色養 承訃驚怛 不能已已 伏惟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流邁 遽經成服 哀痛奈何 罔極奈何 不審自罹憂苦氣力何似 伏乞强加疏食 俯從禮制 澤烈 事故所縻 末由趨▣(慰) 其於憂戀 無任下誠 謹奉疏 伏惟鑑察 不備謹疏辛未三月二十七日 柳澤烈 疏上李 碩士 碩士 至孝 哀前(皮封_前面)任實郡 聖壽面 三峯里李 碩士 駿泳氏 哀前茂朱柳里 謹疏上[郵便日附印: 全▣…▣, 6.5.18, 前0-8](皮封_後面)省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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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和劑) 고문서-치부기록류-화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가미쌍화탕과 가미향사양위탕의 재료와 복용법을 적은 한방약화제 가미쌍화탕(加味雙和湯)과 가미향사양위탕(加味香砂養胃湯)의 재료와 복용법을 적은 약화제이다. 쌍화탕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와 혈의 순환을 조화롭게 하여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제이며, 향사양위탕은 소음인이 비위가 허약하여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처방이다. 가미(加味)는 먹기 좋게 맛을 더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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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誠齋先生 興王討賊 貞忠偉績 爲麗朝名臣之最官 門下侍中平章事高興府院君 我 太祖五年贈輔國崇祿高興伯 諡忠正公 享興陽雲谷祠柳澐 嘉靖丁未九月生 号石灘 蔭補靑巖察訪不就養德 林泉有考槃永失之趣 搆亭種松 詩書自娛與金秋潭安石 泉爲道義處柳慶元 武科 訓鍊院主簿 甲子适變見幾棄官蘆溪爲道義交 階通政柳東仁 萬曆丁丑正月生 武科 宣傳官 除鋪浦水軍萬戶 甲子從張元戎討賊适 有鞍峴勝捷之功 特除秉節校尉 官至禦侮將軍柳鐵堅 萬曆癸未七月生 進士 除桃源察訪 甲子适變與靈光郡守元公斗杓及道內同志 奮忠竭力 募兵聚粮 丁卯亂從號召使 沙溪金先生 擧義募穀 至丙子又倡義兵 到淸州聞南漢媾成 痛哭而歸 遂不復仕柳汝檜 甲子适乱 與同縣義士 同事選兵輸穀 每先於人柳之泰 号伴竹齋 才畧超倫 丙子乱與道內同志 倡義圖濟國乱 聞媾成痛哭歸 壽通政 光武 年贈參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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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고문서-치부기록류-일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작자미상의 1월 25일에서부터 4월, 무자년 3월부터 4월 1일까지의 일기 念五日~念九日, 二月, 閏二月, 三月, 四月과 戊子年 三月, 四月 一日까지 일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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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최경렬(崔敬烈)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崔敬烈 全羅都巡察使 使[着押] 3顆(9.5×9.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1_001 1857년 12월에 전라도 금구현유림 유학 최경렬·송하원 등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곽영춘의 효행에 대한 공의를 널리 채집해 천양하여 풍속의 교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57년(철종 8) 12월에 전라도 금구현유림(金溝縣儒林) 유학 최경렬(崔敬烈)·송하원(宋夏源) 등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곽영춘(郭永春)의 효행에 대한 공의(公議)를 널리 채집해 천양(闡掦)하여 풍속의 교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금구현에 사는 선비 곽영춘은 정의공(正懿公) 경(鏡, 1117~1179)의 후손이자 청백리 안방(安邦)의 14세손이며, 계보가 현풍(玄風)에서 나와 대대로 충효(忠孝)를 이어온 집안으로, 국사(國史)에 모두 실려있다. 곽영춘은 어렸을 때부터 가법(家法)을 잘 알았다. 어버이를 섬기는 절도가 지극한 성품에서 나와 부모의 뜻을 받들어 그 용모를 유순히 하였다. 아버지가 병들자 똥을 맛보고 자신이 대신 아프길 바랐으며, 어머니가 거의 죽게 되자 손가락을 찢어 그 피를 어머니 입에 흘려 회생시켰으니, 세습한 집안의 행실과 타고난 지극성 성품이 아니었다면 이런 효를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을의 노인과 노파들이 자식을 교육할 때 항상 '곽영춘처럼 하라'고 말하였으며, 길거리 아이들과 나무꾼도 어버이를 모시는 모든 절도에 곽영춘을 공경하여 앙모하였다. 이렇듯 사방 이웃에서 모두 감복하고, 온고을이 모두 칭찬하므로 금구현 유림들이 이를 보고 듣고서 침묵할 수가 없었다. 이에 금구현령에게 청원하여 '과연 청원서 내용과 같다면 곽영춘의 효성과 우애가 옛사람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내가 가상히 여겨 일의 중대함을 감영에 보고할 것이니, 다시 공의(公議)를 기다려라'라는 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다시 순찰사에게 청원하였더니 처분 내용에 '효행을 듣고 매우 가상하다'고 하여 예조판서에 청원하니 '듣고서 매우 가상하였다. 포양(褒掦)하는 절차는 식년(式年)에만 있으니 도계(道啓)할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암행어사에게 청원하였더니 처분 내용에 '뛰어난 행실이 매우 감탄스럽다. 계문(啓聞)할 것이니 헤아려 처분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금구현 유림은 근래에 와서 습속(習俗)이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허황된 미화(美化)가 어지럽게 일어나고 실행(實行)이 사라지는 것이며, 이같은 훌륭한 행실이 아직도 포양(褒掦)되지 못하고 있어 풍속의 교화가 크게 손상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순찰사에게 공의를 널리 채집하여 드러내 밝혀서 풍속의 교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순찰사는 12월 19일에 '듣고서 매우 가상하였다. 포양(褒掦)의 은전은 우선 훗날을 기다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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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왕치면광치리노동계소(王峙面廣峙里勞働稧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王峙面廣峙里勞働稧所 王峙面廣峙里勞働稧所, 1顆(2.4×2.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09_001 1925년 12월 15일에 남원군 왕치면 광치리 노동계소 계장 이상의·총무 박병남 등 18인이 발급한 통문으로, 광치리에서 사는 선비 이면의의 보기 드문 효성과 우애를 중론에 따라 반포하므로 후세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 1925년 12월 15일에 남원군 왕치면 광치리 노동계소 계장(稧長) 이상의(李相儀)·총무 박병남(朴炳南) 등 18인이 발급한 통문으로, 광치리에서 사는 선비 이면의(李冕儀)의 보기 드문 효성과 우애를 중론에 따라 반포하므로 후세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어버이가 있지만 그 효를 극진히 할 수 있는 자는 드물고, 누구에게나 형제가 있지만 그 우애를 극진히 할 수 있는 자 또한 드물다. 지금 본동 동회(洞會)에서 중론((衆論)으로 추천하는 인물은 광치리에서 사는 선비 이면의이다. 이면의는 효령대군 보(補)의 16세손이자 장령(掌令) 호은(壺隱) 선생 수(洙)의 12세손으로, 대대로 집안에 전해온 효성과 우애가 칭송되는 것은 온 고을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본성이 지극히 온화하고 후덕하여 놀 때마다 감히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며, 밖에서 과실을 얻으면 꼭 싸와서 부모님께 바쳤다. 장성하여 부모님을 섬김에 맛있는 음을을 한번도 부족하게 올려본 적이 없었으며, 겨울에는 방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는 일과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살피는 일을 한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또 여러 명의 남매와 사심 없이 화목하게 의식을 함께 하였으며, 동생들과 여러 차례 집과 재물을 똑같이 나누는 데 전혀 원망이 없게 하여 온 집안의 화기를 스스로 즐겼다. 1919년과 1920년 사이에 물가가 폭등하고 폭락하여 가업에 손실이 생겨 매우 어려워졌는데 근년에 가뭄으로 농사의 수확이 전혀 없자 부모님께 올릴 음식이 없을까 걱정되어 자신의 몸을 담보로 빚을 얻어 구역 밖에서 쌀을 지고 와 안으로는 10여 명의 식구가 굶지 않았고, 밖으로는 친구들에게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이처럼 보고 듣기 드문 효성과 우애는 무심코 지나치기 힘들었는데 이제야 겨우 중론에 따라 반포하므로 후세에 자식된 자들에게 모범이 되어 사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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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앞면任實郡 聖壽面 三峰里李 進士 奎鎬 殿봉투 뒷면任實郡 館村面 新田里李英奉ヨリ편지1중〃ᄒᆞ실다니 소ᄃᆡᆨ이서니 두 분 안영ᄒᆞ신게ᄋᆞᆸᄋᆞ오님은 바라든 여혼 기ᄂᆡ신다니 요작 ᄌᆡ미 진〃ᄒᆞ신닷신ᄀᆡᆨ 엇더〃〃ᄒᆞ고 형제간 먼시나 되먼 직시 안고 시푸ᄋᆞᆸ 니당여기도 치혼 범절 잘ᄒᆞ여실다니 식ᄀᆡᆨ 먹산 먹여시면치혼 먼굼ᄒᆞ여시머 구시 안고 싯퍼 니만니ᄋᆞᆸ ᄒᆞᆫ실도 외ᄀᆞ편지2 앞면원곡 ᄋᆞ오 대지 반고 답□도 속정니 업서 그리 된 것 안잉가신부여니ᄃᆞ 조모니 단니시ᄋᆞᆸ 칠노ᄒᆞ러 ᄒᆞᄋᆞᆸ니ᄃᆞ 성연 아모건도 안ᄒᆞ고 구향질 갓치ᄒᆞ러 ᄒᆞᄋᆞᆸ 그러ᄒᆞ니 저ᄋᆡ덜ᄂᆡ 아모 덕택 안 번나ᄋᆞᆸ시 오라ᄒᆞᆫ슈 업 삼츈 업 온나 먼좀오라ᄒᆞ심 적글 말 무궁〃〃편지2 뒷면ᄒᆞ나 니만 근삽 정신 숭망 성후도 되지 만지 기리 김작 살피시ᄋᆞᆸ단피 묵셔과 더옥 아모 것도 못ᄒᆞᄋᆞᆸ 봉ᄋᆡ 괘심〃〃 제가 나을 무산 덕ᄒᆞ여 괘심〃〃을 흉언 말ᄒᆞᆫ 수 업ᄉᆞ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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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래(李鍾徠) 언간(諺簡) 및 언간별지(諺簡別紙)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李鍾徠 李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5월 12일에 이종래(李鍾徠)가 이호(李虎)에게 쓴 한글 편지 및 별지 5월 12일에 이종래(李鍾徠)가 이호(李虎)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편지지 두 장과 편지봉투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지와 함께 전하는 봉투 기록에 따르면, 발신자 이종래는 임실군(任實郡) 임실면(任實面) 이도리(二道里) 경남숙(慶南宿)에 살았으며, 수신자 이호는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 230번지에 살았다. 작별한 뒤 소식이 끊겨 그간의 안부를 궁금해 하였고, 자신과 근오의 근황도 전하였다. 다만 살림이 곤란하니 쌀 10말만 보내달라고 하면서 5월 16일 장날 쌀 5말 값으로 725원을 주겠다고 하였다. [별지] 5월 12일에 이종래(李鍾徠)가 이호(李虎)에게 한글로 쓴 편지의 별지이다. 편지지 두 장과 편지봉투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지와 함께 전하는 봉투 기록에 따르면, 발신자 이종래는 임실군(任實郡) 임실면(任實面) 이도리(二道里) 경남숙(慶南宿)에 살았으며, 수신자 이호는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 230번지에 살았다. 6월 16일에 쌀 5말값을 주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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