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김윤택(金潤澤) 등 등장초본(等狀草本)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潤澤 茂長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 3월에 전라도 무장현 장자산면에 사는 김윤택·강기두 등 주민 20인이 무장현감에게 5, 6백냥에 불과한 경비전을 이미 순조롭게 끝난 영비와 뒤섞어 장자산면에 2,500냥을 함부로 분배한 것을 엄히 처분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혁파해 줄 것을 청원하기 위해 작성한 등장의 초본 1888년(고종 25) 3월에 전라도 무장현(茂長縣) 장자산면(莊子山面)에 사는 김윤택·강기두(康基斗) 등 주민 20인이 무장현감에게 5, 6백냥에 불과한 경비전(京費錢)을 이미 순조롭게 끝난 영비(營費)와 뒤섞어 장자산면에 2,500냥을 함부로 분배한 것을 엄히 처분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혁파해 줄 것을 청원하기 위해 작성한 등장의 초본이다. 장자산면은 경내 한 귀퉁이 영광의 경계에 처해 있어서 그동안 고질적인 폐단이 다른 면과는 달랐는데 흉년 때문에 민심이 늘 위태로워 유랑민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불행이 더해져 훈련원 둔전 일로 성동면(星洞面)과 원송면(元松面)이 매우 낭자하여 옆에 있는 장자산면에 두세 차례 징수한 금액이 족히 4, 5백냥이나 되었다. 주민들은 앞서 재앙을 입어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정낙원의 탐욕이 끝이 없어 영비를 핑계로 비용의 수효를 거짓으로 부풀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지난 해에 의송하여 이미 공정한 판결이 났다. 그런데 뜻밖에 지금 또 경비전으로 관가를 기망하여 제사(題辭)를 받았다고 핑계 대는데 이런 춘궁기에 국세와 공전(公錢)을 마련해 낼 길이 없는 지경인데도 주민들의 위태로운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곤궁한 주민을 위협하여 장자산면에 매 결당 10냥씩을 분배하여 2,500여 냥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정낙원 도당 수십명이 장자산면의 무뢰배들과 동조하여 되어 밤낮없이 독촉하여 거둬들이는 통에 공납(公納)에 급급한 주민들이 넋을 잃고 집집마다 울부짖으며 다른 관으로 이전하거나 다른 면으로 피신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제 곧 모내기철인데 통면 안에 한 사람도 농사지을 뜻이 없으니 통렬히 뜯어 고치지 않으면 장차 텅 빈 땅이 되고야 말 것이다. 이때문에 김윤택 등이 무장현감에게 세세하게 통촉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경비전으로 말하자면 훈련원 둔전의 일에서 나온 것으로, 이미 둔전이 면에 있다고 하였으니약간의 비용은 차마 강하게 물리칠 수 없겠지만 3인이 네 다섯 달 소요되므로 경비전은 많아야 5, 6백냥에 불과한데도 처음에는 6천냥이라고 했다가 중간에는 4천냥이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3천냥이라고 하니 그 협잡(挾雜)을 알 수 있다. 이미 순조롭게 끝난 영비를 경비전과 뒤섞어 멋대로 침탈하였으니 그 무엄함을 알 수 있다. 백성으로서 백성을 학대하고 나라의 전결을 우롱하여 사사로이 함부로 배정하였다. 이에 장자산면 주민들은 무장현감에게 이 사건을 살펴서 별도로 엄히 처분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혁파하여, 거의 다 죽어 가는 자신들이 소생할 가망이 있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