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全州長館 道會疏廳 古阜鄕校 1顆(墨印, 7.4×5.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80년 4월 전주장관 도회소청 선비 27인이 고부향교에 효의 지극한 정성과 수신의 큰 근본을 실행한 정은필이 아직까지 포장 받지 못하고 있어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이므로 함께 동참하여 이 실행이 초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80년(고종 17) 4월 전주장관 도회소청 선비 27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효의 지극한 정성과 수신(守身)의 큰 근본을 실행한 정은필(鄭溵弼)이 아직까지 포장(褒獎) 받지 못하고 있어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이므로 함께 동참하여 이 실행(實行)이 초야(草野)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섬김 중 어버이를 섬김이 가장 크고, 지킴 중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데, 힘을 다해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효의 지극한 정성이고, 마음을 다해 몸을 지키는 것은 지킴의 큰 근본이다. 얼핏 듣기로는 고부군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처사 정은필은 동래(東萊)에서 계출(系出)한 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로 임금께 하사받은 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진사 임(任)의 11대손, 생진사 행통훈대부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우리나라의 거족이자 호남의 명망있는 문벌이다. 정은필은 나이 겨우 열 살 때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어 음식을 올릴 방법이 전혀 없자 땔나무하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한결같이 어버이의 뜻을 봉양하였다. 갑자기 어버이가 병들자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써서 온마음으로 치료하였다. 어버이 상을 당하여서는 몸을 상하며 슬피 우는 소리에 사방 이웃에서 조문하러 온 자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소식(素食)하고 죽을 먹으며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으며, 기일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면서 장례 때처럼 슬프게 통곡하였으니 효의 지극한 정성이다. 일흔 살에 두문불출하며 은둔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말과 생각을 굳게 제재하였으니 지킴의 큰 근본이다. 말은 충성스럽고 행동은 독실하였으며, 집안을 다스리고 자제를 가르치는 절도는 당세 은거하는 선비이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향도(鄕道)의 천망(薦望)에 올랐고, 예조에서 계사를 올렸으나 아직까지 성상의 은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니 공의(公議)의 흠전(欠典)이다. 이에 소청(䟽廳)에서 사론(士論)의 한목소리로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으로 통문을 보내, 이와같은 실행(實行)이 초야(草野)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줄 것을 촉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