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8일 初八日 ○오전에 문적 수정이 다 끝났으므로 오후에 길을 나설 계획이었다. 중간촌(仲看村)의 박상현(朴祥顯)도 동행하겠다고 뒤늦게 말하였으므로 길을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午前文蹟修畢, 午後發程計矣。 仲看村 朴祥顯, 亦以同行之意追後云, 故不得發程, 仍留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일 初十日 ○일찍 출발하여 모전등(茅田登)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나는 원동(院洞)에 들어가 잠시 이종엽(李宗燁) 어른을 만나 뵙고 출발하였다. 광천(廣川) 주막(酒幕)에 이르니 동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길을 나섰는데 가는 도중에 운자(韻字)를 부르며 여옥(汝玉)이 먼저 읊었다.여행길에 함께 나선 두 노인과 두 소년(二老行中兩少年 )앞으로 가야할 길 영주에서 한양까지라네(瀛洲前路漢陽邊)대지팡이 짚고 걷고 걸으며 모두 말이 없으니(行行竹杖渾無語)우리 무리 여러 사람인데 잠든 것만 같구나(吾黨諸人況若眠)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서울 길 나선 것이 몇 년 만이던가(洛行經營問何年)이제는 귀밑머리 가득히 백발이 내려앉았네(今來白髮滿鬢邊)지팡이 짚고 쇠한 다리로 간신히 걷노라니(扶笻懶脚步步艱)나그네 맘 아득한데 잠잘 겨를 어디 있으랴(客懷悠悠暇不眠)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백발 늙은이와 청년이 동행하여(白首伴靑年)한강 가를 향하여 길을 떠났어라(路開漢水邊)마음속 말일랑 꺼리지 말아야지(莫諱心內說)흥취가 늦으면 오히려 잠을 재촉하리(興晩尙催眠)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청년에서 노인까지 행장을 꾸려(行裝老路自靑年)태양 아래 멀리 서울 바라보며 가네(日下長安望眼邊)길동무 세 사람 모두 나의 벗이라(作伴三人皆我益)청아한 말 아끼지 않아 졸다 깨었네(淸談不惜警昏眠)저녁에 대초정(大抄亭)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早發抵茅田登療飢, 余則入院洞, 暫見李丈 宗燁而發, 至廣川酒幕, 則同行留待矣。 暫憩後登程, 路中呼韻, 而汝玉先吟曰: "二老行中兩少年, 瀛洲前路漢陽邊。 行行竹杖渾無語, 吾黨諸人況若眠。" 聿之次曰: "洛行經營問何年, 今來白髮滿鬢邊。 扶笻懶脚步步艱, 客懷悠悠暇不眠。" 子允次曰: "白首伴靑年, 路開漢水邊。 莫諱心內說, 興晩尙催眠。" 余次曰: "行裝老路自靑年, 日下長安望眼邊。 作伴三人皆我益, 淸談不惜警昏眠。" 暮抵大抄亭留宿。 行六十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9일 初九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일 初十日 추웠다. 寒。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일 初一日 일찍 예조로 갔더니 다시 논의한 일이 있어 정동관(鄭東觀)25)을 응교(應校)로 삼고 한광식(韓光植)26)을 사인(舍人)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급히 주동(鑄洞)으로 가서 응교에게 청탁하는 서간을 써서 전송하게 하였다. 돌아와 이르기를, "이미 조영국(趙榮國)27)과 김준용(金俊龍)28) 두 사람의 시호는 의논하였으나 나머지 사람은 하지 않았다."라고 하니 가탄스럽다. 早往禮曹, 則有更議之擧, 以鄭東觀爲應校, 韓光植爲舍人云, 故急往鑄洞, 得請簡於應校, 送傳於闕內, 則回云, "已以趙榮國、金俊龍二人議諡, 餘人不爲。" 可歎。 정동관(鄭東觀) 1762~1809. 1783년(정조7) 21세에 친시(親試) 병과(丙科)에 합격하였다. 《일성록》의 기록을 보면, 1792년(정조16) 9월 29일에 응교에 임명되었다 하였고, 12월과 이듬해 3~4월의 기록에도 응교로 삼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광식(韓光植) 1729∼1800. 본관은 청주, 자는 일지(一之), 호는 일재(一齋)이다. 1762년(영조3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1777년(정조1) 증광문과별시에서 급제하였다. 부수찬·수찬·의정부 검상·승지 역임하였으며, 경종대왕수정실록(景宗大王修正實錄)의 오류를 바로잡고 수정·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조영국(趙榮國) 1698~1760.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군경(君慶). 호는 월호(月湖), 시호(諡號)는 정헌(靖憲)이다. 영조(英祖) 경술(庚戌)년에 문과(文科)에 오르고 벼슬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김준용(金俊龍) 1586~1642.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이다. 광해군 원년(1609)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재임하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를 이끌고 광교산에 이르러 격전을 벌인 끝에 청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세상을 떠난 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며 충숙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3일 初三日 이른 아침에 복룡이 돌아가기를 고하므로 집에 보낼 편지를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으로 가서 종일토록 이야기하다가 왔다. 早朝卜龍告歸, 故付送家書。 食後往鑄洞, 終日談話而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9일 二十九日 일찍 천노(千奴)를 예조로 보냈다.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으니 걱정스럽다. 早送千奴於禮曹。 日午後始來, 而別無消息, 可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월 十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1일 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석곡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또 절구 한 수를 읊었는데 율지(聿之)가 먼저 읊었다.우리 일행 무작정 놀러 온 것이 아니니(我行不是耽遨遊)매번 해 뜨기 전에 행장 꾸려 길을 재촉하네(每促行裝日未浮)용성1) 길에 접어들어 차례로 바라보노라면(路入龍城次第見)넘실대는 맑은 물 굽이굽이 돌아 흘러가네(洋洋淳水曲幾周)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몇 발짝도 나가기 어려워 지팡이 짚고 나와(寸步難前杖出遊)고단한 걸음 얼마나 걸어야 한강에 배 띄우려나(間關幾日漢艭浮)집을 떠나 비로소 용성 땅에 도착하니(離家始到龍城地)맑은 물 이르자마자 다시 돌아 흘러가네(纔到淳江又浦周)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천릿길 떠난 우리 일행 멋진 유람도 하는데(千里吾行亦勝遊)초심을 망각한 이 인생 허망하기만 하여라(初心忘却此生浮)어이 늘그막에 길을 나서 어이 그리 고생하나(路何老也尖何苦)매번 부러운 건 길 가득 덮은 짙은 그늘 뿐(每羨繁陰滿道周)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선조 은혜에 이미 배부른데 멋진 유람에 들떠(已飽先恩志勝遊)어느 날에나 서울에 닿아 회포를 풀거나(懷卷何日漢城浮)우리 여행 길 경계하여 앞길만 보고 찾아가니(戒吾行李訪前路)사방에 두루 펼쳐진 산 경치 다 두고 왔네(行盡山光面面周)저녁에 남원 읍내에 도착하여 그 안에서 묵었다. 남문(南門) 밖 송만득(宋萬得)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밥값으로 돈 1냥을 냈다.- 송씨 성(姓)이라 하기에 그의 성관(姓貫))을 물었더니, 여산이 관향이라 하였다. 본래 이름이 석규(碩奎)인데, 영남 고령(高靈)에서 조금 살았다고 했다. 이날 70리를 갔다. 도중에 또 절구 한 수를 읊었다.석양빛 두른 사람의 그림자 동쪽에 머무는데(人帶斜陽影在東)죽장 끌고 바삐 오니 성 안은 해가 저물었네(忙携竹杖暮城中)누각 앞에 기이한 경관이 있는 듯하니(樓前若有奇觀處)물에 스치는 수양버들 늦바람에 살랑이네(拂水垂楊引晩風)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해지는 석양에 달은 또 동쪽에서 떠오르고(日暮斜陽月復東)지팡이2) 짚고 바삐 재촉하여 성안에 이르렀네(鳩笻忙促到城中)우리 선조의 훌륭한 교화 몇 년 전의 일이던고(吾先治化問幾年)향리가 순후하여 옛 풍도가 있구나(鄕厚吏淳有古風)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웅장한 해동에 용으로 이름난 성3)(龍以名城壯海東)그 가운데에 모두 옹기종기 인가가 즐비하네(閭閻撲地盡其中)남쪽에서 걸어온 우리들 석양에 걸음을 재촉하니(夕陽促我南來步)눈 가득 보이는 경광 옛 나라의 풍경이로다(滿眼景光舊國風)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순자강4) 이북 산성의 동쪽(淳江以北山城東)앞에는 연하가 그 가운데에 자욱하네(前有烟霞這箇中)우리 가는 지름길을 어디 한번 물어보세(借問吾行徑捷路)내일 아침 한강 누대에서 바람을 쐬고 싶네(明朝欲及漢樓風) ○早發抵石谷療飢。 又吟一絶, 聿之先曰: "我行不是耽遨遊, 每促行裝日未浮。 路入龍城次第見, 洋洋淳水曲幾周。" 余次曰: "寸步難前杖出遊, 間關幾日漢艭浮。 離家始到龍城地, 纔到淳江又浦周。" 汝玉次曰: "千里吾行亦勝遊, 初心忘却此生浮。 路何老也光何苦, 每羨繁陰滿道周。" 子允次曰: "已飽先恩志勝遊, 懷卷何日漢城浮。 戒吾行李訪前路, 行盡山光面面周。" 暮抵南原邑內宿, 南門外宋萬得家飯【錢一兩出】, 以宋爲姓, 故問其姓貫, 則以礪爲貫矣。 其本碩奎, 而才居嶺南 高靈云。 是日行七十里。 路中又吟一絶曰: "人帶斜陽影在東, 忙携竹杖暮城中。 樓前若有奇觀處, 拂水垂楊引晩風。" 聿之次曰: "日暮斜陽月復東, 鳩笻忙促到城中。 吾先治化問幾年, 鄕厚吏淳有古風。" 汝玉次曰: "龍以名城壯海東, 閭閻撲地盡其中。 夕陽促我南來步, 滿眼景光舊國風。" 子允次曰: "淳江以北山城東, 前有烟霞這箇中。 借問吾行徑捷路, 明朝欲及漢樓風。" 용성 용성(龍城)은 전라북도 남원시의 옛 이름이다. 지팡이 원문의 '구공(鳩笻)'은 손잡이 부분을 비둘기 모양으로 조각한 지팡이로, 예전에 임금이 나이 많은 신하에게 비둘기처럼 소화를 잘 시키라는 의미에서 내려 주었다. '구장(鳩杖)'이라고도 한다.《後漢書 志5 禮儀中》 《呂氏春秋 仲秋記》 용으로 이름난 성 남원의 교룡산성을 말한다. 순자강 순강(淳江)은 순자강(鶉子江)을 말한다. 위의 각주 54번 참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2일 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고개 아래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전석치(磚石峙)를 넘어 절구 한 수를 읊었다.푸른 벼랑의 흰 바위 가장 높은 봉우리에(蒼崖白石最高峯)그대에게 묻노니 어떤 승려가 소나무를 심었는가(問爾何僧手植松)방성의 웅장한 형세를 굽어보니(俯瞰方城雄壯勢)범이 꿇어앉은 듯 용이 웅크린 듯하여라(況如蹲虎又盤龍)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전석치 봉우리 백보 오르고 또 오르니(百步登登磚石峯)보이는 건 면면이 이어지는 높고 낮은 소나무뿐(但看面面高低松)그대에게 청하노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일랑 꾸지 말게(請君莫作還鄕夢)마음속에 경영한 구상대로5) 계룡으로 향하세나(意匠經營向鷄龍)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아침햇살 속에 천천히 걸어 저 언덕에 오르니(倦步朝陽陟彼岸)우뚝 솟은 오래된 바위 길고 짧은 소나무 있네(崢巆老石短長松)살펴보니 곤륜산 줄기임을 알겠거니(看來認是崐崘脈)굽이굽이마다 산의 정령 용호를 달리게 하네(屈曲精神走虎龍)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힘겹게 지팡이 잡고 저 언덕에 오르니(强把鳩笻登彼岸)푸른 회화나무 그늘 가에 소나무도 푸르러라(綠槐陰畔又靑松)풍광은 길가는 사람 발길을 멈추게 하니(風光能使行人住)앉아서 뭇 산에 웅크린 용들을 바라보노라(坐見群山某某龍)오수(獒樹)에 이르러 요기하고 각각 길을 나섰다. 나는 국평(菊坪) 송기렴(宋基濂)의 집에 들어갔으나, 하서가 출타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 송전(宋椣)만 만나보고 출발하였다. 야당(野塘)의 송필동(宋必東) 집에 들어가서 그 외아들 상(喪) 당한 것을 조문하였다. 또 송계천(宋啓天)을 조문한 다음 마을 앞 정자(亭子) 아래로 내려오니 하서가 마침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머무르기로 하고, 주막(酒幕)으로 나와서 주점(酒店)에 두 벗을 머물게 한 다음, 율지와 야당으로 들어가 송연영(宋連英)의 집에 머물렀다. 오늘 밤은 선고(先考)의 기일(忌日)이다. 지난해에는 서울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못했었는데, 올해도 이와 같은 상황이니 슬픈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早發抵嶺下店朝飯, 越磚石峙, 吟一絶曰: "蒼崖白石最高峯, 問爾何僧手植松。 俯暇方城雄壯勢, 況如蹲虎又盤龍。" 聿之次曰: "百步登登磚石峯, 伹看面面高低松。 請君莫作還鄕夢, 意匠經營向鷄龍。" 汝玉次曰: "倦步朝陽陟彼岸, 崢巆老石短長松。 看來認是崐崘脈, 屈曲精神走虎龍。" 子允次曰: "强把鳩笻登彼岸, 綠槐陰畔又靑松。 風光能使行人住, 坐見群山某某龍。" 抵獒樹療飢, 各爲登程。 余則入菊坪 宋基濂家, 則夏瑞出他不見, 只見其子椣而發。 入野塘 宋必東家, 吊遭其獨子喪。 又吊宋啓天, 下來村前亭下, 則夏瑞適來, 仍與相話。 以主人之堅挽, 仍留爲計之, 出來酒幕, 留兩友於酒店, 與聿之入野塘, 留宋連英家。 今夜則先考忌日也, 而前年以京行之致, 不得將事於忌日, 今年又如此, 心懷之愴然, 不可言之。 마음속에 경영한 구상대로 원문의 '의장(意匠)'은 고안(考案)을 실제로 응용하는 일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경영하는 가운데 의장이 참담하다.[意匠慘淡經營中]"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3일 十三日 ○아침 전에 율지가 주점(酒店)에 나갔다. 나는 아침을 먹고 나서 하서와 함께 주점(酒店)으로 나갔는데, 하서도 또한 《둔곡문적(遯壑文蹟)》을 부탁하였다. 그대로 작별하고 말치[斗峙]를 넘어 오원(烏院)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또 절구 한 수를 읊었다.녹음이 짙은 사월이라 꽃들은 시들어 가고(花老繁陰四月時)길을 겁내 지팡이 끌고 가는 걸음 더디구나(携笻㥘路步遲遲)언덕 숲에는 유난히도 바쁜 소리가 있으니(岸林別有忙勞響)온종일 꾀꼬리 가지를 오르내리며 노래하네(盡日鶯歌上下枝)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먼 길 떠난 나그네 여정 한가할 틈이 없으니(遠程行色無閒時)늘 한스러운 건 밤은 짧고 땡볕은 더디 지는 것(每恨夜短夏日遲)그대들 나에게 술 한잔 하길 권하기에(諸君勸我盃中物)술값을 계산하려면 꽃가지를 꺾어야겠네6)(欲計酒價折花枝)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행장이 점차 무거워져 쉬는 횟수는 늘어가고(行裝漸重息多時)도로가 메말라 갈수록 걸음은 더디기만 하네(道路方乾去益遲)억지로 바삐 술잔만 자주 잡으니(强欲忙勞頻把酒)어느 곳에서 꽃가지 꺾어 술잔을 세랴(觥籌何處折花枝)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지금 우리가 온 이곳 옛날 왔던 곳이건만(今我來斯昔到時)내딛는 걸음 더디고 해마저 더디 지는구나(步徐方覺方陽遲)호걸스런 정은 멋진 산을 보려는 것이 아니나(豪情不是看山好)두견과 꾀꼬리 노래 가락 길가 버들가지에 울리네(鵑曲鶯歌路柳枝)쌍정자(雙亭子)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朝前聿之出去酒店, 余卽仍朝飯, 與夏瑞偕出酒店, 而夏瑞亦以《遯壑文蹟》付託矣。 仍爲作別, 越斗峙, 抵烏院療飢。 又吟一絶, "花老繁陰四月時, 携笻㥘路步遲遲。 岸林別有忙勞響, 盡日鶯歌上下枝。" 聿之次曰: "遠程行色無閒時, 每恨夜短夏日遲。 諸君勸我盃中物, 欲計酒價折花枝。" 汝玉次曰: "行裝漸重息多時, 道路方乾去益遲。 强欲忙勞頻把酒, 觥籌何處折花枝。" 子允次曰: "今我來斯昔到時, 步徐方覺方陽遲。 豪情不是看山好, 鵑曲鶯歌路柳枝。" 抵雙亭子留宿。 行六十里。 꽃가지를 꺾어야겠네 백거이(白居易)의 〈동이십일취억원구(同李十一醉憶元九)〉 시에 "꽃 필 무렵 함께 술 취해 봄 시름 달래었으니, 취하면 꽃가지 꺾어 술잔 세는 산가지 삼았지.[花時同醉破春愁, 醉折花枝當酒籌.]"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白氏長慶集 卷14》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5일 初五日 차동(車洞)에서 머물렀다. 사수가 찾아와서 보고 돈 한 냥을 주었다. 留車洞。 士洙來見, 給一兩錢。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4월 四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3일 初三日 욱여(旭汝) 삼종형제(三從兄弟), 건(健)·순(順) 형제와 뇌암(磊巖)에 가서 회포를 풀었는데, 여러 젊은이들이 오언 율시를 먼저 지었으므로 나도 갑작스럽게 율시를 지어냈다.걸어서 서문 밖으로 나오니(步出西門外)시내 따라 그윽한 경치 펼쳐지네(沿溪境始幽)꽃을 보다가 늙은 이 몸 부끄럽고(看花羞老漢)애써 시구 찾다가 시를 양보하였네(覓句讓詩流)지팡이 짚고 산기슭을 따라서(携杖依山脚)갓끈을 씻으려 물가에 앉았네(濯纓坐水頭)내 나이 반백 년이 지났으니(吾年經半百)즐거운 일은 유람하는 것이네(樂事是傲遊)또 다음과 같다.북쪽 산기슭에 방초의 향내 뜸해지니(北麓芳菲歇)서쪽 시내에 즐거운 일 아득하구나(西溪樂事幽)앉았노라니 산이 더욱 푸르르고(坐來山愈碧)가는 곳마다 물이 다투어 흐르네(行處水爭流)시를 짓노라니 저마다 푸른 눈빛이오47)(覓句惟靑眼)술동이를 드니 모두 검은 머리48)로세(携樽摠黑頭)명승지에서 맛보는 끝없는 흥취(名區無限興)우리들의 이런 유람에 있어라(吾輩有斯遊)송로(松老)또 다음과 같다.꽃이 떨어지자 소나무 숲은 무성해지고(花落多松樹)명승지는 한적하고 고요하기만 하네(名區閑且幽)재잘재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활기차고(嚶嚶啼鳥活)굽이굽이 시냇물은 어지러이 흘러가네(曲曲亂溪流)푸른 방초 둑 위에 파릇파릇 돋아나고(綠草芳堤上)취하여 부르는 노래 언덕 위에서 끊어지네(酣歌斷岸頭)새로 시를 지어 벽면에 써 붙이니(新詩題壁面)이처럼 멋진 유람을 누가 알겠는가(誰識是眞遊)임계(林溪)또 다음과 같다.높다란 층층바위 열 길이나 솟아있고(層巖十丈下)그윽한 솔 그늘에 한가로이 앉아 있네(閑坐松陰幽)예쁜 새들은 숲속에서 시끄럽게 울어대고(好鳥林中聒)맑은 시냇물은 골짜기 안으로 흐르네(淸溪洞裡流)저녁노을은 벼랑에 붉게 돋아나는데(夕陽生壁面)봄빛은 산꼭대기에서 다해 가는구나(春色盡山頭)가지고 온 술병에 남은 술이 있으니(携酒有餘酒)시를 읊조리며 온종일 노닐어 보세(吟詩永日遊)취암(醉菴) 與旭汝三從兄弟及健、順, 往磊巖暢懷, 而諸年少, 出五律先成, 故猝構曰: "步出西門外, 沿溪境始幽。 看花羞老漢, 覓句讓詩流。 携杖依山脚, 濯纓坐水頭。 吾年經半百, 樂輩是傲遊。" 又 "北麓芳菲歇, 西溪樂事幽。 坐來山愈碧, 行處水爭流。 覓句惟靑眼, 携樽摠黑頭。 名區無限興, 吾輩有斯遊。" 松老。 又 "花落多松樹, 名區閑且幽。 嚶嚶啼鳥活, 曲曲亂溪流。 緣草芳堤上, 酣歌斷岸頭。 新詩題壁面, 誰識是眞遊。" 林溪。 又, "層巖十丈下, 閑坐松陰幽。 好鳥林中聒, 淸溪洞裡流。 夕陽生壁面, 春色盡山頭。 携酒有餘酒, 吟詩永日遊。" 醉菴。 푸른 눈빛이오 원문의 '청안(靑眼)'은 반가운 눈길로, 뜻이 맞는 친구와의 만남을 뜻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흰 눈자위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낸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簡傲》 검은 머리 원문의 '흑두(黑頭)'는 검은 머리란 뜻으로, 곧 젊은 나이를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일 初二日 백건(伯健)과 한동(翰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을 만나 잠깐 동안 이야기하고 왔다. 與伯健往翰洞見李興陽, 稍間談話而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8일 二十八日 이른 아침에 청배(靑排) 상원(尙元)의 집에 가서 관가 하인 편에 집에 보낼 편지를 부치고 왔다. 早朝往靑排 尙元家, 付送家書於官下人便而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5일 初五日 비가 내렸다. 근동(芹洞)에 가서 건(健)·순(順)과 한 수의 의(義)를 짓고 왔다. 雨。 往芹洞與健、順, 做一首義而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8일 十八日 ○일찍 출발하여 금강(錦江)을 건너며 절구 한 수를 읊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맑은 모래 푸른 물 돌아가는 나루를 묻노니(沙明水碧問津歸)한 줄기 아침 안개 양편 언덕에 떠다니네(一帶朝霞兩岸飛)눈 가득 멋진 경치 거두어 비단 주머니에 담나니(滿目風烟收錦囊)이러한 광경을 아는 사람 드물도다(箇中光景識人稀)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북쪽을 향해 가는 길 금강에 들어서서(路入錦江向北歸)달빛 아래 지팡이 멈추고 떠가는 구름보네(停笻步月看雲飛)천 리 먼 길을 걷고 또 걸어가니(行行大道一千里)처음 본 사람 많고 알던 사람 드물구나(生面人多舊面稀)사원(士元)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오늘도 낙성에 돌아가지 못하였는데(當日洛城未得歸)푸른 하늘에 구름 속 학이 날아가려 하네(欲將靑天雲鶴飛)금강이 가까우니 고향산천 점차 멀어지고(家山漸遠錦水近)여기에 이르니 아는 얼굴 드물도다(到此面面識者稀)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금강은 건네주는 사람 몇 번이나 북쪽으로 갔던가(錦水濟人幾北歸)공산성의 성가퀴7)는 남쪽으로 날아(公山堞雉却南飛)길손은 고향집에 소식을 전하려 하나(旅窓欲寄家鄕字)나는 기러기 드물어 소식이 아득하네(消息蒼茫雁到稀)자봉(子鳳)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늙은이 지팡이 짚고 갔다 돌아오는 길(扶老携笻第往歸)중천에 까마귀가 나는 것 매번 두렵네(中天每畏日烏飛)다시 술잔을 가져다 서로 주고받으니(更將盃酒聊相勸)서쪽 장안으로 들어가면 옛 친구 없으리라(西入長安故舊稀)일신점(日新店)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광정(廣亭)에서 점심을 먹었다. 길보(吉甫)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출발하였는데, 차령에 오르니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서 노래와 퉁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그늘 아래에서 쉬다가 절구 한 수를 읊었다.험준한 고개 간신히 넘어오니(艱上嶺之險)맑은 그늘에 또 맑은 돌 샘물 있네(淸陰又石泉)노래와 퉁소소리 둘 다 있으니(歌簫兼有二)음악 소리에 취해 험난했던 앞길 잊었네(耽聽却忘前)고개를 내려와 서정점(西亭店)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越錦江, 吟一絶曰: "沙明水碧問津歸, 一帶朝霞兩岸飛。 滿目風烟收錦囊, 箇中光景識人稀。" 聿之次曰: "路入錦江向北歸, 停笻步月看雲飛。 行行大道一千里, 生面人多舊面稀。" 士元次曰: "當日洛城未得歸, 欲將靑天雲鶴飛。 家山漸遠錦水近, 到此面面識者稀。" 汝玉次曰: "錦水濟人幾北歸, 公山堞雉却南飛。 旅窓欲寄家鄕字, 消息蒼茫雁到稀。" 子鳳次曰: "扶老携笻第往歸, 中天每畏日烏飛。 更將盃酒聊相勸, 西入長安故舊稀。" 抵日新店朝飯, 抵廣亭中火。 逢吉甫暫話而發, 上車嶺則槐陰下有歌簫。 暫憩陰下, 吟一絶曰: "艱上嶺之險, 淸陰又石泉。 歌簫兼有二, 耽聽却忘前。" 下嶺抵西亭店留宿。 行八十里。 성가퀴 원문의 '치첩(堞雉)"은 성 위에 낮게 쌓은 성가퀴를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0일 二十日 ○일찍 출발하여 칠원(柒原)에서 아침을 먹고, 오매(烏梅)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중도에서 절구 한 수를 읊었다.가는 곳마다 풍광은 면면이 처음 보는 곳인데(到這風烟面面初)밝고 수려한 산수에 인후한 마을8) 자리하였네(山明水麗里仁居)지팡이 끝에 하늘로 솟구치는 솔개의 그림자 날고(杖頭飛影凌天鳶)다리 아래 물 만난 물고기 맘껏 헤엄치네(橋下浮沈率性魚)사원(士原)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북두의 번화한 서울은 처음 와보는데(北斗京華生面初)상자가 당시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네(向子當年卜此居)객점의 여인 술값 요구할 줄만 아니(店娥但知酒索錢)호남 길손은 고기 없는 밥상에9) 한숨만 쉬네(湖客惟恨食無魚)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만나는 이들마다 객사에서 처음 보는데(面目無非逆旅初)산천 속에 이런 선비도 살고 있었구나(山川有是士夫居)옆 사람은 무슨 생각에 앞길을 재촉하는 걸까(傍人底意催前路)아마도 화성의 문 닫힐까 염려하는 것이리(恐或華城鎖鑰魚)자윤(子胤)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우리 세 사람 이러한 장관 처음 보는데(年維三人壯觀初)나라의 기내 천리 땅 거처하는 곳도 넓구나(千里邦畿亦廣居)간간이 꽃과 주막에 술과 고기까지 있으니(往往花壚兼酒肉)북쪽에서 어찌 남방의 물고기를 부러워하리(北來何羨南方魚)대황교(大皇橋)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어 출발하였다. 또 절구 한 수를 읊었다.버들이 어둠 속으로 묻히려는데 서쪽 하늘 붉게 타오르고(柳欲藏陰烈洞西)소나무는 폭포소리 들으며 맑은 시내에 드리우네(松能聽瀑倒淸溪)석양이 질 무렵 화성에 다다르니(夕陽歸路華城到)지주 같은 푸른 산 먼 듯 가까운 듯하네(一柱靑山遠近齊)사원(士元)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서쪽 가는 길에 왕성이 어디에 있는가 묻노라(王城何在問路西)모습을 바꾼 산하에 굽이굽이 시냇물 흐르네(換面山河曲曲溪)은택을 입은 수양버들 좌우로 휘늘어져 있고(被恩垂柳左右分)찌는 더위에 고달픈 길손들 앞뒤로 나란하네(惱熱行客先後齊)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지팡이 짚고 다리에 오니 해는 이미 저물어(杖策橋邊日已西)나는 갓끈을 씻으려 맑은 시내를 건너네(我纓欲濯渡淸溪)그 속의 고운 풍광 어떠한가 묻노라면(箇中光景問如何)양 언덕에 버들과 느티나무 일색이라오(兩岸柳槐一色齊)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궁중 버들 그늘은 동쪽으로 해 그림자는 서쪽으로(御柳陰東日影西)산악에 조회10)하니 시내에 다 함께 모였여라(朝宗山嶽會同溪)기자 현인 이후 명이의 나라11)(箕賢以後明夷國)해내의 밥 짓는 연기처럼 아홉 점의 운무인 듯하네12)(環海人烟九點齊)사윤(士胤)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산은 동쪽으로 그늘지고 해는 서쪽으로 지니(山自東陰日自西)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맑은 시내를 지나네(訪花隨柳過淸溪)말을 타다 걷다 하는데 마치 하늘 길 가는 듯(或騎或步如天道)다만 흠인 건 인생과 같지 않는 것일 뿐이라(只欠人生不與齊)내원(乃元)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화성 길에 들어서니 날이 이미 저물어(路入華城日已西)파릇파릇한 버들가지 대황 시냇가에 늘어졌네(靑靑楊柳大皇溪)고향산천 점차 멀어지고 왕성이 가까우니(家山漸遠王城近)동남의 연나라 조나라인 듯하여 크게 웃어보네(高笑東南燕趙齊)저녁에 화성 북문 밖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여옥이 절구 한 수를 읊었다.누대와 성곽의 반은 도성에 있구나(樓臺城郭半京華)겹겹이 연달아 몇 만의 집들이 즐비하네(匝匝連連幾萬家)행궁13)이 여기에 머물렀는지 알고 싶었는데(欲識行宮留在此)휘휘 늘어진 수양버들 길 어긋남이 없구나(依依楊柳路無差) ○早發抵柒原朝飯, 抵烏梅中火。 路中吟一絶曰: "到這風烟面面初, 山明水麗里仁居。 杖頭飛影凌天鳶, 橋下浮沈率性魚。" 士原次曰: "北斗京華生面初, 何子當年卜此居。 店娥但知酒索錢, 湖客惟恨食無魚。" 汝玉次曰: "面目無非逆旅初, 山川有是士夫居。 傍人底意催前路, 恐或華城鎖鑰魚。" 子胤次曰: "年維三人壯觀初, 千里邦畿亦廣居。 往往花壚兼酒肉, 北來何羨南方魚。" 抵大皇橋, 小憩後仍發。 又吟一絶曰: "柳欲藏陰烈洞西, 松能聽瀑倒淸溪。 夕陽歸路華城到, 一柱靑山遠近齊。" 士元次曰: "王城何在問路西, 換面山河曲曲溪。 被恩垂柳左右分, 惱熱行客先後齊。" 聿之次曰: "杖策橋邊日已西, 我纓欲濯渡淸溪。 箇中光景問如何, 兩岸柳槐一色齊。" 汝玉次曰: "御柳陰東日影西, 朝宗山嶽會同溪。 箕賢以後明夷國, 環海人烟九點齊。" 士胤次曰: "山自東陰日自西, 訪花隨柳過淸溪。 或騎或步如天道, 只欠人生不與齊。" 乃元次曰: "路入華城日已西, 靑靑楊柳大皇溪。 家山漸遠王城近, 高笑東南燕趙齊。" 暮抵華城北門外留宿。 行八十里。 汝玉吟一絶曰: "樓臺城郭半京華, 匝匝連連幾萬家。 欲識行宮留在此, 依依楊柳路無差。" 인후한 마을 원문의 '이인(里仁)'은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마을로,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가 "이인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어진 곳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으리오.[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고 하였다. 밥상엔……없으니 전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이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이 되었을 때,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자 장검의 칼자루〔長鋏〕를 두드리면서 "장검이여 돌아가자,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長鋏歸來乎, 食無魚.]"라고 노래했다는 고사가 있다. 《戰國策 齊策4》 조회 원문의 '조종(朝宗)'은 고례(古禮)에 제후가 천자를 봄에 찾아뵙는 것을 조(朝)라 하고, 가을에 찾아뵙는 것을 종(宗)이라 하며, 《시경》 소아(小雅) 면수(沔水)에, "넘실대며 흐르는 저 물이여, 바다에 조종하도다.[沔彼流水 朝宗于海]" 하였다. 기자……나라 '명이(明夷)'는 동방의 일출지역인 한반도를 지칭한다. 기자(箕子)가, 은(殷)나라가 무도(無道)할 때 밝음을 감추어 화를 면하였고, 마침내 동방으로 와서 도를 전하였고 한다. 《주역》의 〈명이괘(明夷卦) 육오(六五)〉에 "육오는 기자가 밝음을 감춤이니, 곧게 지킴이 이롭다.[六五 箕子之明夷 利貞]"라고 하였는데, 이는 기자가 조선에 이주한 사실을 기록한 가장 이른 문헌 자료이다. 《史記 卷38 宋微子世家》 아홉 점 운무인 듯하네 높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이 아홉 점의 운무(雲霧)처럼 작게 보인다는 말이다. 당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에 "중국을 멀리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 같고, 한 웅덩이 바닷물도 한 잔 물을 쏟아부은 듯하네.[遙望齊州九點煙, 一泓海水杯中瀉.]"라는 구절이 있다. 행궁(行宮) 임금이 대궐을 떠나서 머무는 곳으로, 행재조(行在所)와 같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월 二月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