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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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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葉書_外面)任實郡 聖壽面 三峰里李進士奎鎬氏全州 大和町 二0八留 許柱[郵便日附印: 全州, 4.8.17, 前11-2](葉書_內面)前遞書 未知登…▣否 弟尙留府中 歸期似在十七日間 而腫祟…▣效 而其間所經 悶悶而已 未審旱餘得雨…▣軆湛候 神佑萬康 諸節均吉 㴑祝㴑祝 家…▣昨得見而安爲慰 林丈發程時 有所約耶…▣來之期在何時耶 書柬來迬 未知在何處 悶鬱無已 親山奉安 以今二十六日擇日 而此月以外 更難擇日云云 非敢欲速 此漢夙夜兢懼 不敢安處 故然耳 事情政急 林丈留在處與速見之方便 商量下示 專望專望 此書見後 卽賜惠于鄙家 切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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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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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최응렬(崔應烈) 건물 소유권 보존 등기신청(建物所有權保存登記申請)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崔應烈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7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2년 12월 14일에 최응렬(崔應烈)이 전주지방법원 임실 출장소(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에 제출한 건물 소유권 보존 등기신청(建物所有權保存登記申請)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任實郡 聖壽面 三峰里) 576번지 건물소유권 보존(保存)의 목적, 대리인(代理人)은 태윤풍(太允豊)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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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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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物賣渡証書一 建物表示 任實郡聖壽面三峯里五七六番地上 設置되야닛ᄂᆞᆫ 軆舍四間 外舍廊四間 行廊四間一 賣買代金 壹百圓也一 軆舍今年盖草 五十二丈을 倂付ᄒᆞ고桑木一株와 柿木一株 梨木二株一 賣主은 買主붓터 右賣買代金을 全部正히 領收ᄒᆞ고 將來買主의 所有됨을承諾ᄒᆞᆷ昭和貳年參月八日任實郡聖壽面三峯里賣渡人 鄭尙金[鄭尙金信]証 人 鄭文永[鄭文永章]沈仁萬[沈仁萬]李起鎬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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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이호(李虎) 수입이식 영수증(收入利息領收證)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任實金融組合 李虎 4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7년 8월 16일에 임실금융조합(任實金融組合)에서 이호(李虎)에게 발급한 수입이식 영수증(收入利息領收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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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임태연(林泰然)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朴羕根 林泰然 5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대정10) 1월 3일에 임태연이 박양근으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전답을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 1921년(대정10) 1월 3일에 매수인(買受人) 임태연(林泰然)이 매도인(賣渡人) 박양근(朴羕根)으로부터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峯里)의 논과 밭을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賣渡證書)이다. 매도증서에는 1921년 1월 3일자로 박양근이 자신의 전답을 256엔(円)을 받고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621번지에 사는 임태연에게 매도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임태연이 매입한 토지는 삼봉리 542번지 답(畓) 725평(가격 174원)과 동리(同里) 608번지 전(田) 581평(가격 82원)이다. 매도증서의 우측 상단에 일본정부에서 받은 수입인지 2장이 붙어 있으며 금액은 13전(錢)어치이다. 등기제인(登記濟印)은 등기 신청을 관서(법원)에서 접수한 수부년월일과 수부번호, 등기원인과 그 일자, 등기목적, 권리자의 씨명주소로 이루어져 있는 검은색 정방형 인장 2개와 적색 원형 인장 1개로 총 3개가 찍혀 있는데 임태연이 매입한 것에 대한 등기는 적색 원형 도장의 형태로 찍혀 있다. 원형 도장에 찍힌 수부일자는 대정 10년 1월 15일이며, 수부번호는 제72호이다. 이후에 대정14년(1925)에 이호(李虎)가 매입하면서 등기권리인이 된 흑색 도장이 최후의 등기수부인이다. 관련 문서를 통해 볼 때 이호(李虎)가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의 여러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발급하여 보관한 문서로 보인다. 거래 대상 토지인 두 곳 대지 기록 상단에는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록번호가 적혀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담당한 곳은 광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이며, 이 서류를 작성하여 처리를 담당해 준 사법대서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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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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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禮書之外 夫復何言病患雖云沈痼 年齡又未隆高 意謂神明所佑自可勿藥 豈料今日遽承凶音耶 猝當巨剏 初終襄奉 能免無憾 而以平日 純至之孝 哀毁之節 想必過度矣 惟冀節哀順變 無至以孝傷孝之地 如何癸卯四月二十四日 徐炳珪 疏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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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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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化民幼學金坤李彦衡金箕奭等謹齋沐再拜上書于城主閤下伏以賓興三物周之盛制名聞一藝漢之明詔也而今我 聖朝亦一周漢之治也則苟有孝友賢良之實蹟其在今古不易之公議那無興三聞一之典乎本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即藝文館應校〖敎〗公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公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淸䆠名閥道義文章継世傳家斯人也天挺性度仁孝勤儉自在齠齡入孝出恭之道自悟自警不私淑於諸人是可謂良知良能之孝也賢乎晝以耕夜以讀可肩於隱淮之董生食其貧樂其道仰述於處巷之顔賢杜門守拙不求名譽至於事親晨昏定省朝夕供饌靡不庸極悅志順已一以養志侍湯累年不離病側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黔婁黃香矣及其丁憂也泣血靣墨哀毁逾制送終襄奉一遵禮制行素食粥三年如初望朔省掃山磎成路行人指其廬曰孝子廬也樵兒指其路曰孝子路也年將七旬每當先代與考妣之忌日前三日齋沐後三日行素遑遑望望復如袒括之日已成家庭之訓謨平日心性口不道惡言足不入亂方林下結搆捿息於山水之間鄕隣咸稱處士翁也然則以若六行六德并美之隱淪君子尙今無聞果爲公議之缺望故玆敢摭宲仰陳于 孝理之 閤下伏請使此純孝篤行轉報 宲軒㧞例 褒彰千萬祈恳城主閤下丙子二月日化民幼學金坤 李彦衡 金箕錫 宋麟浩 黃練吉 金煥昌 羅守燁 崔慶奎 柳秉源 金榮澤 尹滋福 鄭海斗 朴致陽 吳琪煥 李喆信 沈冝明 金載鎬 權亨晋 金琪洛 李章漢 崔喆秀 李㑹益 金錫浩 趙相潗 宋鳳㑹〈題辭〉卓異之行聞甚嘉商從當處分向事卄一日[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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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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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7년 이최선(李最善)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最善 全羅都巡察使 使[着押] 3顆(9.4×9.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7년 1월에 전주도회소 유생 진사 이최선·최준익 등 36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 그의 행실을 드러내고 등용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7년(고종 14) 1월에 전주도회소 유생(全州道㑹所儒生) 진사 이최선(李最善, 1825~1883)·최준익(崔俊翼) 등 36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 그의 행실을 드러내고 등용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충효의 가풍이 있는 명망의 집안으로, 어렸을 때부터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와 어른을 공경하는 법도를 스스로 깨우쳤다. 15살 즈음에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낮에는 농사짓고 저녁에는 베를 짰으며, 겨우 몇 두둑 전답을 얻어 늙은 어버이에게 의식(衣食)을 봉양하는 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맹자』에서 말한 '하늘의 운행을 쓰고 땅에서 나는 이익을 이용한 효도'이다. 20살 즈음에는 어버이가 여러 해 동안 병을 앓았는데 그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옛 효자의 실적(實蹟)에 못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피눈물을 흘려 낯빛이 검어지고, 슬픔으로 몸이 상한 것이 예제보다 지나쳤으며, 시묘살이 3년 동안 소식(素食)을 행하고 죽을 먹으며 담사(禫祀)까지 잘 마쳤다. 지금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만들어졌고, 선조와 부모 기일 때마다 소식과 죽을 먹는 것을 초상 때처럼 행하였다. 근검 절약하고 말과 사특한 생각을 매우 조심하며, 명예를 피해 은둔하고 안빈낙도하는 그를 사방의 이웃 고을에서 모두 '영주 처사옹(瀛州處士翁)'이라 일컬었다. 정은필은 집안을 다스리고 자녀를 훈계할 때 모두 주자의 『가훈(家訓)』을 따라 덕을 숭상하였다. 또 종친을 돈독히 대하고 곤궁한 자를 구휼하였으며, 보답하지 못할 곳과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에게 은혜와 덕을 베풀어 향촌에서 일제히 논의가 일었다. 전주유향소 유생들은 그의 순수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듣고서 한 성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이 일을 침묵할 수 없었다. 이에 관찰사에게 은둔한 정은필의 실적을 조정에 계달(啓達)하여 그 행실을 드러내고, 그를 발탁시켜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전라도순찰사는 1월 28일에 '뛰어난 행실이 매우 가상하다. 일의 중대함을 계문(啓聞)할 것이니 더욱 공의(公議)를 기다릴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최선(李最善, 1825~1883)은 조선 후기 유학자로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낙유(樂裕), 호는 석전경인(石田耕人)이다. 추성군(秋城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규형(奎亨)이고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이며, 담양에서 살았다. 15세에 아버지의 친구인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생이 되어 40여 년 동안 받들었다. 1859년에 사마시에서 2등으로 합격하여 증광진사가 되었고, 1864년에 초시에 합격했으나 복시에서 문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응시하지 않았다. 1874년에 문과에 불합격한 뒤 과거시험을 단념하였다. 그는 늘 현실문제에 관심을 갖고 1862년 진주민란 때에 「삼정책(三政策)」으로 상소하였으나 전달되지는 못하였으며,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격문을 보내 의병에 직접 참여하는 등 주리설을 바탕으로 한 위정척사를 실천하였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고산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석전집(石田集)』 4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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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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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9년 이희하(李羲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羲夏 1顆(9.5×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00_001 1889년 1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학생 이희하를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경연참판관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 1889년(고종 26) 1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학생 이희하를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경연참판관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이다. 연호의 좌방(左傍)에 '조봉대부 동몽관 겸 가선 호조참의○○의 조고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다'라는 추증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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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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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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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學生李羲夏贈嘉大夫戶曹參判兼經筵參䝺官者光緖十五年正月 日[印]朝奉大夫童蒙官兼嘉善戶曹參議 祖考依法典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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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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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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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무자년 김영기(金榮基), 김부기(金富基) 산도(山圖)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榮基 金榮基[手決], 金富基[手決] 3顆(6.5×6.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자년 9월에 영광군 형리 조희풍이 영광군수의 명에 따라 원고 김영기와 피고 김부기와 함께 영광군 도산면 자포등을 실사하여 도형을 그려서 영광군수에게 보고한 산도로, 김영기가 승소하였다. 무자년(1888?) 9월에 영광군 형리(刑吏) 조희풍(曺喜豊)이 영광군수의 명에 따라 원고 김영기와 피고 김부기와 함께 영광군 도산면(道內面) 자포등(自抱嶝)을 실사하여 도형을 그려서 영광군수에게 보고한 산도로, 김영기가 승소하였다. 산도 아래에는 '김영기 부모 합장묘에서 김부기 조모 묘까지 산척(山尺)으로 측량하니 보수가 9척이고, 좌립(坐立)하면 모두 보인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장민·피척의 이름과 착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 산도를 접수한 영광군수가 10월 2일에 '핍절(逼切)한 구척(九尺)이고 좌립하면 모두 보이는 곳에 있으니, 법으로 볼 때 파내야 하므로 용서할 수 없다. 김부기(金富基)를 패소로 처리하고 즉각 파서 옮기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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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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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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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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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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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3년 이종근(李鍾根)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李鍾根 李鍾根信(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음력 2월 12일에 이종근(李鍾根)이 발급한 영수증(領收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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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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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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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호(李虎) 매도증서(賣渡證書) 2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鄭尙金 李虎 鄭尙金 3顆,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 司法代書人許炳斗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02_001 1933년(소화8) 11월 13일에 이호가 정상금으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 있는 임야를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 1933년(소화8) 11월 13일에 이호(李虎)가 정상금(鄭尙金)으로부터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에 있는 임야를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賣渡證書)이다. 매도증서에는 1933년 11월 13일자로 정상금이 자신의 소유 임야를 27원(圓) 24전(錢)을 받고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230번지에 사는 이호에게 매도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호가 매입한 토지는 삼봉리 182-2번지 임야(林野) 1,653평이다. 특약 조건으로는 1934년 1월 20일까지를 기한으로 원가(原價)에 환매(還買)할 수 있다는 조항을 기재하였다. 매도증서의 우측 상단에 일본정부에서 받은 수입인지 1장 붙어 있으며 금액은 2전(錢)이다. 등기제인(登記濟印)에는 접수 번호인 수부일자(受附日字)와 수부번호가 적혀 있는데 수부연월일은 소화 8년 11월 28일이며 수부번호는 제4841호이다. 거래 대상 토지 상단에는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록번호와 순위가 기재되어 있는데 그 번호는 제5610호와 제2호로 적혀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담당한 등기소는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이며, 이 서류를 작성하여 처리를 담당해 준 사법대서인은 허병두(許炳斗)로 서기료(書記料) 16전(錢)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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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收証一金參拾參円五拾錢也右金은 任實郡聖壽面三峯里林野壹八貳ノ貳 代金으로 本人이 正ニ領收하고若此後 如何한 異說이 有한 時에는其責任과 損害을 本人이 一切負擔하기로 如是証書昭和九年陰正月貳拾壹日任實郡烏川面仙山里領收人 鄭尙金[鄭尙金]黃海秀[黃海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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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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