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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양직영(梁直永)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直永 陵州牧使 使[着押] 3顆(7.0×7.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3월에 능주목 하동면 쌍봉리에 사는 양직영이 남준옥과의 산송 사건으로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3월에 능주목 하동면(下東面) 쌍봉리(雙峯里)에 사는 양직영(梁直永)이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남준옥(南俊玉)과의 산송(山訟) 일로 여러 차례 관에 정소(呈訴)하고 도척(圖尺)을 그린 뒷면의 뎨김에 의거하여 남씨에게 파가게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끝내 옮겨가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하길, 성주께서 상경한 후에 반드시 입장(入葬)하겠다고 하므로 이에 전에 올린 소지도 점련하여 호소하니 특별히 맹차(猛差)를 보내어 잡아 가두게하고 즉시 빈장을 옮기게 해달라고 청원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관의 판결이 내려졌는데 어찌 감히 방자한지, 빈장한 곳을 즉각 철거하고 형지(形止: 일이 되어가는 형편)를 보고하라'는 판결을 25일에 면임에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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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東面雙峯里 化民梁直永右謹言 民以南俊玉山訟事 累次呈訴 而圖尺紙背 題內 其殯處爲先移送 若又生意 則斷當嚴處卽掘是乎所 同南俊玉 此頉彼頉 終不移殯是如可 今乃作言曰 城主上京後 必也入葬云云 故 玆以前呈所志帖聯仰籲 同南哥不遵 官令 之習 別遣猛差 捉囚嚴徵敎是遣 卽地移殯 千萬望良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三月 日使[署押](題辭)官决之下 何敢肆惡 殯處當刻內撤去 形止報來事卄五日面任[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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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양준묵(梁浚默)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梁浚默 牧使[着押] *周挾字改印, 1顆(墨印, 14.6×3.7)*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53_001 1852년 능주목에서 유학(幼學) 양호묵(梁昊默, 2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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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三年戊午元月人日 分財明文長子衿下 後坪莊字畓三夜味三斗落只負數九▣…束庫果 及收字畓一夜味三斗落只負數十二卜三束庫果 及莊字初頭泥畓一斗三升落只負數六卜庫果沙坪陽字田二斗落只負數三卜五束庫乙 合則八斗三升落只許給 又祭位付給家垈果 後坪莊字畓三斗落只負數九卜五束庫果 莊字麻田二斗落只負數七卜庫乙爲定事次子衿下 滄浪川过陽字畓一夜味二斗落只負數四卜五束庫果 及莊字下过泥畓二斗落只二夜味負數九卜一束庫果 陽字綿田一斗五升落只負數五卜四束庫果 莊字籬下田五升落只負數一卜二束庫乙 合六斗落只許給[着名]末子衿下 陽字畓二夜味二斗落只負數六卜九束庫果 及莊字泥畓上过壹斗五升落只負數七卜三束庫果 及同字楮田二斗落只負數六卜庫乙 合五斗五升許給[着名]女子仙飛涯潤字畓一斗落只負數三卜二束庫乙 許給[着名]分財主 父[着名]如是處置之後 若有紛紜之弊則 爲先不孝滋甚事又食器一件式 分定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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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장한신(張漢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宋挺煥 張漢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11월 6일에 회장주 상인 송정환(宋挺煥)이 유학 장한신(張漢臣)에게 회장 산지와 송추를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786년(정조10) 11월 6일에 회장주(灰塲主) 상인(喪人) 송정환(宋挺煥)이 유학(幼學) 장한신(張漢臣)에게 회장 산지와 송추(松楸)를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송정환은 상을 치르느라 패잔해진 나머지 부득이하여 회장과 송추를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대전(垈田) 위쪽편에 있는 회장(灰場)과 송추(松楸)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냥을 받고 팔았으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증인이나 필집 없이 회장주 송정환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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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乾隆五十一秊丙午十一月初六日 幼學張漢臣前明文右明文事段 喪敗之餘迫不得已 垈田上便灰場與松楸乙 價折錢文壹兩依數捧上爲遣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某人中如有雜談是去等 持此文告官卞呈事灰場 自筆 喪人 松挺煥 喪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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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昌平式 上試金世鎬賦 義李志容 寶城 李長秀 玉果詩 朴命耈 順天朴義彬 寶城 崔禹昌 南原尹奎莘 綾州 李亨坤 寶城朴齊翊 淳昌 文甲鉉 長興李誠鉉 長興 李珉祚 玉果金玽流 順天 宋源 興陽尹台{玉+憲} 南原 趙東英 淳昌柳觀基 長水 許湜 順天朴膺鍾 長水 李得龍 康津張性庸 全州 鄭基亮 長城孔爀淳 光陽 李奎伯 潭陽張臨秀 昌平 宋聲玉 昌平方泳奎 同福 曺錫龍 同福曺錫佑 光州 韓命臣 淳昌金鳴遠 南原 羅道興 羅州黃鍾儀 順天 楊大伯 樂安金鍾喆 任實 曺秉圭 昌平金秉凞 龍潭 安{玉+奕} 寶城曺錫禧 康津 羅一煥 光州權鳳壽 任實 金鎭奕 南原尹濟庸 淳昌 金泓 龍潭廉在洵 寶城 朴在浩 興陽金榮壽 鎭安 黃沇泰 光陽朴永模 寶城 金健仲 昌平李沇基 求禮 盧東鉉 淳昌秋永桂 潭陽 蔡圭憲 玉果金在鳳 光州 申德一 潭陽徐正佑 光陽 廉在卨 寶城權冑憲 南原 朴昌基 昌平高時恩 興陽 徐學洙 綾州李元孝 南原 鄭爀基 順天李炳孝 康津 崔命勳 礪山趙昌錫 順天 黃欽黙 南原林東圭 寶城 崔時英 和順許錫奎 寶城 金漢圭 順天曺秉奕 寶城 宋峻萬 同福李秉曄 茂朱 王道爀 求禮金聲圭 龍潭 徐漢鐫 光陽趙甲浩 昌平 梁泰永 羅州朴源喆 光州 金時馥 同福晉斗燁 玉果 金圭瑞 南原柳禧宗 谷城 曺錫琪 康津朴世休 鎭安 任在鎭 長興李最善 潭陽 孫弼益 南平金廷弼 綾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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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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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최종렬(崔鍾烈) 토지 소유권 보존 등기신청(土地所有權保存登記申請)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崔鍾烈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6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60_001 1935년 5월 9일에 신청자 최종렬(崔鍾烈)이 대리인(代理人) 한태수(韓泰洙)로 하여금 전주지방법원 임실 출장소(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에 제출한 토지 소유권 보존 등기신청(土地所有權保存登記申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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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2년 최경렬(崔京烈) 매각허가 결정문(競落許可決定文)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全州地方法院 崔京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2년 7월 26일에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최경렬(崔京烈)에게 발급한 매각허가 결정문(競落許可決定文) 경락(競落)대상은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任實郡 聖壽面 三峰里) 소재 대지(垈地) 및 임야(林野)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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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호(李虎) 매도증서(賣渡證書) 1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鄭尙金 李虎 4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3년(소화8) 9월 10일에 이호(李虎)가 정상금(鄭尙金)으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 있는 임야를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 1933년(소화8) 9월 10일에 이호(李虎)가 정상금(鄭尙金)으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 있는 임야을 매입하고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매도증서(賣渡證書)이다. 매도증서에는 1933년 9월 10일자로 정상금이 자신의 소유 임야를 5원(圓)을 받고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230번지에 사는 이호에게 매도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호가 매입한 토지는 삼봉리 182-1번지 임야(林野) 208평이다. 매도증서의 우측 상단에 일본정부에서 받은 수입인지가 보통 붙어 있지만 이 문서에는 남아 있지 않다. 등기제인(登記濟印)에는 접수 번호인 수부일자(受附日字)와 수부번호가 적혀 있는데 수부연월일은 소화 8년 11월 28일이며 수부번호는 제4840호이다. 거래 대상 토지 상단에는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록번호와 순위가 기재되어 있는데 그 번호는 제5609호와 제2호로 적혀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담당한 등기소는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이며, 이 서류를 작성하여 처리를 담당해 준 사법대서인은 허병두(許炳斗)로 서기요금(書記料金) 16전(錢)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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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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賣 渡 證 書一. 不動産ノ表示左記不動産表紙ノ通リ此代金 五圓也右不動産ハ拙者所有ノ處前記代金ヲ以テ貴殿ニ賣渡代金正ニ受領候事確實也然ル上ハ將來决シテ御迷惑相掛申間敷爲後日賣渡證書仍テ如件一. 特約 ナシ昭和八年九月拾日任實郡烏川面仙川里四百五拾六番地賣渡人 鄭尙金[鄭尙金][鄭尙金]任實郡聖壽面三峯里貳百參拾番地李 虎 殿不動産表示所在地: 任實郡聖壽面三峯里, 地番: 壹八貳番壹地目: 林野, 地積: 貳0八坪 [登記: 第五六0九號, 順位: 第二號]以上[受附: 昭和八年拾壹月貳拾八日, 第四八四0號, 登記濟][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進行第 號, 書記料金拾六錢也 司法代書人 許炳斗[司法代書人許炳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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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儒生進士李以斗羅時鑽幼學金龍欽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周之三物之典司徒興之漢之一藝之聞刺史擧之今我東 朝興孝勸善之盛敎亦一周漢之治也則今此實孝篤行第當式抄若無 閤下之 啓薦草野隱淪之行豈不終歸於泯沒乎道內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館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 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 緝之八代孫而忠孝古家簮纓后裔也斯人自在孩提天賦仁孝謹愼事親之道敬長之節頗有良知良能矣親老家貧晝出耕耘夜入織梱僅得數畒之田以爲奉先養親之道遽當親癠之沉重百方藥餌一心調治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黃香黔寠〖婁〗之孝友及其丁憂也攀號擗踊哀毁骨立廬墓三年蔬食墨面三年不懈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每當考妣之忌日內外齋沐哀慕感時之痛復如袒括之日自少至老畏天命和人意守口如甁防意如城避名遯蹤食貧陋巷知足安分竹扉松籬捿息山水間篤老年光不知官門四隣一鄕咸穪瀛洲山處士翁齊家庭訓子侄之方克遵古賢之遺訓是以 營邑之題鄕道之議已有宿昔而今當式抄玆敢更禀于宣化孝理之下如斯純孝卓行 特爲 啓達俾蒙抄報之典無任祈恳之地巡相 閤下戊寅十二月日幼學林鳳相 金龍柱 李秉德 高英鎭 朴載榮 宋仁萬 吳泰永 金相益 崔慶奎 柳榮極 權鍾壽 丁在基 邊吉容 趙敬淳 安學律〈題辭〉啓聞体重益探公議事卄三日[官印]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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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이필(李以鉍)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以鉍 禮曹判書 禮曹[着押] 3顆(7.5×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8년 5월에 진사 이이필·홍순관 등 전라도 유생 45인이 예조판서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포양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5월에 진사 이이필(李以鉍)·홍순관(洪順寬) 등 전라도 유생 45인이 예조판서(禮曹判書)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포양(褒揚)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청환(淸宦)이 대대로 이어지고, 행의(行義)가 집안에 전하는 후손으로, 인효(仁孝)와 절검(節儉)의 성품을 지녀 지성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예를 다해 어른을 공경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낮에 농사짓고 저녁에 독서하면서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마음 쓰고 수신(守身)에 뜻을 독실하게 하였다. 부모를 봉양함에 아침저녁으로 문안하고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일을 나날이 성실하게 하였다. 또 약수발하는 3년 동안 병든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잠자리에 부채질하고 부모를 위해 먼 곳에서 쌀을 등에 지고 오는 정성은 황향(黃香)과 중유(仲由)의 실적과 견줄 만하고, 빙천(氷川)의 잉어와 하우(夏雨)의 꿩과 같은 일은 왕공(王公)과 곽씨(郭氏)의 지극한 효성을 이은 것이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게 변하였으며, 장례 일체는 모두 예제를 따랐다. 여묘살이 3년 내내 소식(素食)하고 죽을 먹었으며,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생겼다. 지금 곧 70세가 되는데도 부모의 기일 때마다 3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부모를 추모하고 때를 느끼는 애통함을 초상 때처럼 하였다. 70세 이후로는 산림 속에서 두문불출하고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며, 천명을 두려워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법도와 몸가짐을 단속하는 행실은 한 고을의 의리를 잘 지키는 선비이자 작은 마을의 충신(忠信)한 사람이라 할 만 하였다. 이에 사림의 공의(公議)로 연명(聯名)하여 지극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특별히 포양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예조에서는 5월 7일에 '지극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이처럼 겸비하고 있으니 듣고서 매우 감탄하였다. 하지만 포양의 은전은 우선 공의를 기다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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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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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文爲通諭事子夏曰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雖曰不學矣吾必謂之學矣今此貴郡富安面士人鄭溵弼云歟其人系出東萊卽藝文館應敎諱 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通訓大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忠孝家風簮纓世德東 朝華閥南土望族也斯人粤自齠齡家勢極艱全無朝夕糊口之責身兼傭賃以供父母之養傷㦲貧也仲由之負米孝及竭力不讀詩■(盡)〔書〕禮敬長老能知有序賢比易色是可謂不學而能學之士矣其親沉病累年百方藥餌一心調治晝宵侍側甞糞察候以驗重歇乃至丁憂也泣血哀慕之痛吊者悅服遽經襄禮搆廬墓側日以三省夜以五起事死如生誠之所格物性應爲感發故一雙白嶌數叢黃菊三時來賀四節發英苟非根天之孝至於物性之感歟年將七旬每日巡山山磎成路至於諱日前三日行素治齋復如袒䄆〖括〗之日沒身不忘父母之達孝矣且修身之方戒子之訓齊家之節接賓之禮少無違越安分守拙棲息於山水之林下不求名譽賁然德行及於一省公議故不可含默玆以發文惟願 僉章甫使此純篤之宲蹟俾聞楓陛特蒙擢用之恩千萬幸甚右敬通于古阜儒林 丁丑四月二十一日 [印]光州褒忠書院齋會所發文 李喆相 奇昌衍 朴彰壽 高錫相 金貞鉉 李龍求 崔奎烈 宋祉源 朴命煥 吳應善 尹學鎭 白弘洙 高時旭 丁永坤 金在文 申正模 安永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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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남원향중(南原鄕中)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南原鄕中 古阜鄕校 1顆(墨印, 6.5×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7년 1월 남원향중 선비 18인이 고부향교에 아직 포장이 내려지지 않은 정은필의 효행에 대해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포의 은전을 입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1877년(고종 14) 1월 남원향중 선비 18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아직 포장(褒獎)이 내려지지 않은 정은필(鄭溵弼)의 효행에 대해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포(旌褒)의 은전을 입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서두에 『시경』의 "효자의 효행은 다함이 없다. 길이 너의 동류에게 주라"는 한 구절을 인용한 뒤, '어버이에게 효도한 뒤에 임금을 섬기면 충성을 다하고, 어른을 섬기면 공경을 다하여 육덕(六德)과 육행(六行)이 효(孝)라는 한 글자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는 등의 효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진실로 타고난 효성과 은둔한 행실이 있다면 어찌 조정에서 권장하는 성대한 은전과 사림이 천거하는 공의(公議)가 없을 수 있겠는냐'고 반문하였다. 이어서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계보가 동래에서 나온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 사호(賜號)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으로, 충효의 고가(古家)이고, 명망높은 집안'이라는 것을 들었다고 하였다. 이이서, '어버이가 병든 지 몇 달 동안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구하여 온마음으로 치료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은 빛이 되었으며, 모든 장례 절차를 예로써 하여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듯'이 했던 정은필의 효행 실적을 열거하고, '이 때문에 유림의 공의와 영읍(營邑)의 뎨김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 정려(旌閭)가 내려지지 않아 자손이 억울할 뿐만 아니라 유림에게도 실망이 되었다'고 언급한 뒤, '여러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문(旌門)을 내려 포상하는 은전을 입도록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라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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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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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通文右文爲通諭事詩不云乎孝者不匱永錫爾類孝親然後事君則盡忠事長則盡敬六德六行著發於孝之一字中也是故粤自周漢之世司徒賓興之敎刺史貢擧之典莫不先於興孝勸善之政矣際玆我東 聖明之世苟有根天之孝隱淪之行則豈可無 朝家勸獎之盛典士林進擧之公議耶仄聞 貴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即藝文館應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也忠孝古家簮纓望族斯人也玆在齠齡天性誠孝至於長成入孝出恭化隣敦睦子侄戒訓之節不失尺寸矣其親沉病數月百方藥餠一心調治及其丁憂也泣血面墨送終以禮襄奉以禮事死如生誠益不損常如袒䄆〖括〗之日豈非沒身不忘之大孝也是以章甫之公議 營邑之題音已有宿昔尙未㫌 贈之恩非但若子若孫之抑欝亦爲冠儒服儒之缺望故其在同道之誼玆以發通惟願 僉執事更加公議俾蒙旌褒之典千萬幸甚右敬通于古阜鄕校 [印]丁丑正月日南原鄕中多士發文 崔遇年 申哲模 尹泰永 金永錫 盧東鉉 李炳純 蘇應述 張載雲 崔炳九 林貞洙 邊相黙 權琦錫 金宗烈 晉命秀 宋祉豊 李東信 陳正洙 房斗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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