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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五年辛丑二月二十三日票右票事 金東弼曾祖山 在於同福內南面刀磨洞深谷 而數年守護矣盧濟庠祖父入葬於其階下 于今四十餘年是乎所 盖其事勢果難掘去 故以數百年同山守之意價折再從滋玉先次 則拾伍兩收捧是遣 似有後慮云 故又折貳拾兩永許成票 日后宗人與子孫中若有爻象之弊則 持此文記告官卞呈事標主 幼學 金同弼[着名]金弘弼金滋玉[着名]證筆 先達 李平根[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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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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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2년 장흠(張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致泳 張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2년(순조32) 5월 16일에 전주 유학 김치영(金致泳)이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촌에 있는 밭을 유학 장흠(張欽)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2년(순조32) 5월 16일에 전주(田主) 유학(幼學) 김치영(金致泳)이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촌(學堂村)에 있는 밭을 유학 장흠(張欽)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치영은 자신이 매득한 밭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학당촌 뒤쪽에 있는 장자(莊字) 전(田) 2마지기(결부수: 5卜)이다. 이 논을 전문(錢文) 6냥 5전을 받고 팔았으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1장도 함께 준다고 명시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김치영과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 유학 이희성(李希星)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촌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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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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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道光拾貳秊壬辰五月十六日 幼學張欽前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 以要用所致 學堂村後莊字田二斗落只卜數五卜庫乙 價折錢文六兩五戔 依數捧上爲遣本文記一丈並 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他端則持此文憑考事本文記一丈幷田主 幼學 金致泳[着名]證筆 幼學 李希星[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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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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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이규호(李奎鎬) 인감증명서(印鑑證明願) 2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沈鐸淳 李奎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75_001 1930년 4월 18일에 임실군 성수면장이 발급한 이규호(李奎鎬)의 인감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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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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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930년 이규호(李奎鎬) 토지 소유권 보존 등기 신청서(土地所有權保存證記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李奎鎬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3.6×3.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 4월 26일, 이규호(李奎鎬)가 전주지방법원 임실 출장소(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에 토지 소유권 보전을 위한 등기를 신청하고 발급받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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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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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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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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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0년 이규호(李奎鎬) 토지 소유권 보존 등기 신청서(土地所有權保存證記申請書) 부동산 목록(不動産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 李奎鎬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3.6×3.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 4월 26일, 이규호(李奎鎬)가 전주지방법원 임실 출장소(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에 신청한 토지 소유권 보전 등기신청서에 첨부된 부동산의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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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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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8년 흥성장씨(興城張氏) 부(父) 분재기(分財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父 三子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84_001 1798년(정조22) 1월 8일에 흥성장씨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재기 1798년(정조22) 1월 8일에 흥성장씨(興城張氏)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분재서문이 없으며 곧바로 '장자깃하(長子衿下)', '차자깃하(次子衿下)', '말자깃하(末子衿下)' 라고 구분하여 세 아들에게 주는 전답을 기록했다. 장자는 장자답(莊字畓) 3두락지와 수자답(收字畓) 3두락지와 장자 전답의 첫머리에 있는 니답(泥畓) 1두3승락지와 양자전(陽字田) 2두락지를 합하여 총 8두3승락지를 받았으며, 차자는 양자답(陽字畓) 2두락지와 장자답의 하변(下过)에 있는 니답(泥畓) 2斗落과 양자면전(陽字綿田) 1두5승락지와 장자 울자리하전(莊字籬下田) 5승락지, 합하여 총 6두락지를 받았다. 말자는 양자답(陽字畓) 2두락지와 장자니답(莊字泥畓) 상변 1두5승락지와 장자저전(莊字楮田) 2두락지, 합하여 총 5두 5승락지를 받았다. 마지막에는 세 아들에게 각기 식기(食器) 1건씩을 나누어 준다고 적었다. 장자깃하 아래에는 제위(祭位)로 붙여 주는 재산을 적어 놓았는데 가대(家垈)와 가대 뒤쪽 장자답(莊字畓) 3두락지와 장자(莊字) 마전(麻田) 2두락지를 정해 놓는다고 하였다. 제위로 마련해 놓은 재산을 제외하면 거의 균등분배이지만 장자에게 조금 더 많이 책정되었다. 관련 문서들을 참고할 때 재산을 나누어준 아버지는 장한신(張漢臣)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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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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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綾州下東面 化民梁一永梁直永梁柱永等右謹言 伏以同里居南俊玉爲名人欲爲暗葬其母於民等之累世宗家祠堂主脉逼迫之地 故民等卽爲禁葬 則南哥素是惡種 兄弟拔釖 而不能私禁呈于本官 城主 則自官發差禁葬圖形公决 而渠不得入葬是乎乃 將以暗葬之意 反復成殯於數步之地 故更呈于 官家 題內殯處當刻內掘去形地報來事 嚴分付於面任處矣 其時面任卽南哥妻甥 而欲私於南不勤擧行是如可 自 官嚴治汰去 使新面任卽督移殯 分付敎是乎矣 同南哥乘空官 不顧面任之督促 肆然稱托 此日彼日終不移殯 則 豈有如許頑惡乎 玆敢前後所志帖緣仰訴 伏乞執法之下 細燭顚末 特爲嚴明題下 使留鄕卽爲移殯之地爲只爲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乙未五月 日行官[署押](題辭)本官前後題音 若是申申 而不遵官令 殯處尙不移去云 民習萬萬可駭斯速使之移殯是矣 一向延拖是去等南俊玉成報狀 捉上事留鄕 初二日[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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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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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5년 남준흥(南俊興) 다짐(侤音) 고문서-증빙류-다짐 南俊興 陵州牧使 使[着押] 3顆(6.8×6.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7월 11일에 남준흥이 무덤의 굴거 기한을 정하여 파내 가겠다고 다짐하여 능주목사에게 바친 다짐 1835년(헌종1) 7월 11일에 남준흥(南俊興)이 작성하여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바친 고음(侤音)이다. 남준흥(南俊興)이 양일영(梁一泳)의 사당 뒤 마땅히 금양(禁養)하는 땅에 자신의 망모(亡母)를 투장(偸葬)한 일로 소송을 하여 소송에서 졌는데도 기한이 지나도록 파가지 않다가 이번에 또 소송을 하여 가수(枷囚: 죄인의 목에 칼을 씌워 가둠)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반드시 파가야 그치게 되었기 때문에 8월 15일까지 파가겠다는 뜻으로 다짐을 하니, 만약 기한을 어긴다면 장을 치고 가두고 독굴(督掘: 독촉하여 강제로 파냄)하라는 내용이다. 소송에서 이긴 편이 관련 문서들을 모두 소장하게 되어 있으므로 화순 능주 제주양씨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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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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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乙未七月十一日▣…南俊興▣…白等 矣身亡母塚 偸葬於梁一永祠堂後當禁之地 前等時理屈落科過限不掘是如可 今又相訟 至於枷囚之境 必掘乃已 故以八月十五日掘移之意 納侤 以過右限是白去等 杖囚督掘敎事白[着名]使[署押][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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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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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범례(凡例) 초안(草案)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4항목으로 구성 된 문중 족보를 간행하기 위해 마련된 범례(凡例)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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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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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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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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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03년 서병규(徐炳珪) 위장(慰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장 徐炳珪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고종40) 4월 24일에 서병규(徐炳珪)가 부모상을 당한 이에게 보낸 위장 1903년(고종40) 4월 24일에 서병규(徐炳珪)가 부모상을 당한 이에게 올린 위장(慰狀)이다. 돌아가신 분이 병환은 심했지만 나이가 아직 많지 않아 신명이 도와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런 갑작스런 부음이 있느냐며 자신의 놀란 마음을 전하고 상대를 위로했다. 초상부터 종상, 양봉(襄奉: 장례)에 이르기까지 잘 거행하고 슬픔은 과도하겠지만 절제하고 일을 순조롭게 치러 효(孝)로 효(孝)를 상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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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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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10년 양시영(梁始永)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梁始永 *1顆(墨印-훼손)*1顆(훼손)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 능주목에서 유학(幼學) 양시영(梁始永, 3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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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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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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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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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道內儒生進士李最善金源錫幼學林鳳相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鄒夫子不云乎事孰爲大事親爲大守孰爲大守身爲大盖夫事親之孝守身之行倂是相須而俱備者垂右從今實所罕見鮮聞而事其親也竭力誠孝守其身也行義篤敬自少至老捿息於山水之間杜門蔵蹤不求名譽尙無闡發於 縉紳章甫之議者豈非 昭代興孝掦善之一大欠典乎道內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館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忠孝家風名閥世德東 朝望門南土表族斯人也自在孩提天賦仁孝節約事親之道敬長之節自悟自警比諸良知良能之禀質矣稍至成童家貧親老全無菽水之供晝出耕耘夜入織梱僅得數畒之田不怠於口軆之奉此誠鄒書之所謂用天之道因地之利孝也㦲乃至弱冠之餘其親沉病累年不離病側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古孝子之宲蹟及其丁憂也泣血墨面哀毁逾制廬墓三年行素食粥至于禫祀始能克終方今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每當祖先考妣之諱日行素食粥復如袒括之日大矣㦲孝之一字苟是百行之源故小少老大勤儉節約畏人如虎守口如甁防意如城避名遯蹤食貧樂道仰述於顔之陋巷樵山漁水知足安分可扇於董之隱淮松籬竹扉篤老年光不知官門四隣一鄕咸稱瀛州處士翁也且齊家戒子一遵朱夫子家訓尙德㦲若人歟敦宗恤窮樹恩於不報種德於無告是㕥鄕論齊發聞其純孝篤行生等居在一省不可含黙玆敢齊聲仰瀆于 觀察之閤下伏願使此隱淪之實蹟 啓達于 朝闡發其行擢用其人之地謹冐昧畧陳巡相 閤下丁丑正月 日全州道㑹所儒生 進士李最善 進士崔俊翼 幼學宋永采 金必欽 李璟漢 權鴻壽 朴仁萬 李始浩 金漢龍 宋鎭邦 林元相 朴致斌 金堯晙 邊大容 奇晩衍 金永采 尹弘鎭 高錫相 朴景壽 柳秉鉉 鄭昌鉉 丁永斗 羅世燁 趙相旭 進士金源錫 幼學李喆信 金相浩 進士羅時瓚 韓世裕 幼學姜泰永 金枓烈 高時旭 吳永煥 進士宋曦玉 幼學尹滋福 安大榮〈題辭〉卓異之行極爲嘉尙啓 聞体重益俟公議事 卄八日[官印]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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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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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이두(李以斗)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以斗 全羅都巡察使 使[着押] 3顆(9.2×9.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8년 12월에 진사 이이두·나시찬 등 전라도 유생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하여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12월에 진사 이이두(李以斗)·나시찬(羅時鑽) 등 전라도 유생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啓達)하여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충효가 있는 유서 깊은 집안과 고관의 후예로 인효(仁孝)하고 근신(謹愼)하는 성품을 지녔다. 어버이가 늙고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나가서 농사짓고 저녁에는 들어와서 베를 짰으며, 겨우 몇 두둑 전답을 얻어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는 도리를 실천하였다. 갑자기 어버이의 병이 위독해지자 백방으로 약물을 구하여 성심껏 치료하였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황향(黃香)과 검루(黔婁)의 효에 못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슬픔으로 뼈만 앙상해졌으며, 여묘살이 3년 내내 채식하여 낯빛이 검게 변하였다. 장차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만들어졌으며, 부모기일 때마다 안팍으로 목욕재계하고, 초상 때처럼 슬퍼하고 그리워하였다.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남의 뜻에 화합하며, 입조심하고 사욕을 굳게 억제하였다. 명예를 피해 은둔하고 안빈하며 만족할 줄 알고 분수를 편안히 여겼다. 자연 속에 살면서 70살 나이에 빛이 나, 사방의 이웃 고을에서 모두 '영주산처사옹(瀛州山處士翁)'이라 일컬었으며, 가정을 다스리고 자질들을 훈육하는 방법으로 옛 성현의 유훈을 따랐다. 이에 군수와 순찰사의 제사(題辭)와 향도(鄕道)의 논의가 예전부터 있었으나 이제야 예식을 갖추고 가려서 다시 아뢰어,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하여 뽑아 보고하는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전라도순찰사는 12월 23일에 '일의 중대함을 계문(啓聞)할 것이니 공의(公議)를 더욱 탐문할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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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午光州式賦一等三人羅榮徽 金堤詩許錫祐 【入】 玉果賦姜在煥 淳昌二等七人 上試尹滋德吳爀 扶安吳甲淳 南原梁錫毅崔泰榮 南平權在壽 南原文致郁 綾州梁範周 長興三等三十五人崔吉壽 樂安李昌圭 光州吳慶一 康津崔而壽 鎭安林東煥 光州金有國 光州申煥烈 興陽張鐩 潭陽朴文禧 順天金鎭宇 茂朱河沃 同福徐俊儀 淳昌高相祿 龍潭金淑赫 長城張{金+義} 潭陽申在昌 長水金重烈 光州金鍾鳴 康津朴宗煥 光州殷震榮 古阜金禧遠 任實李光根 寶城朴興龍 任實張璣鳳 潭陽朴英煥【入】 順天徐奇煥 南平文象憲【入】 光州鄭志郁 益山李瓘容 昌平千錫休 務安金仁灝 求禮高時憲 光州朴南圭 潭陽韓弘佶 南原郭在完 龍潭終場尹弼鉉 潭陽林殷相 羅州金聲斗 順天文燦權 光州李觀仁 寶城趙炫禹 寶城吳尙德 玉果金錫範 長水宋鎭明 康津白洙永 光州郭相烈金錫宗 長興李相昊 求禮洪玉龍 光州梁俔容 南原安鍾垕 玉果金鳳振 咸平蘇鶴瑀 寶城金光年 長興車武南 光陽崔鳳圭 光州鄭在孝 康津愼德鎭 羅州崔順圭 康津李容鋹 谷城宋殷杓 和順高濟殷 光州李奎烈 潭陽徐志溶 光陽鄭賢圭 南原朴相瑀 綾州安權孝 光州金尙鎬 同福孔錫龜 順天李膺錫 長興金植 寶城鄭海圭 昌平馬銓權 長興柳弘模 谷城吳亨秦 南原鄭鶴休 光州閔致國 綾州徐卿泰 長興廉志? 羅州申錫龍 光州上試兪致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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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구례시(求禮試)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해년에 구례(求禮)에서 설행된 시험 합격자의 방목 신해년에 구례에서 설행된 시험 합격자의 방목이다. 초장(初場)과 종장(終場)으로 구분하여 합격자와 거주지만 나열하여 기재하였다. 시험의 종류나 상시관의 성명 등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초장과 종장 합격자는 각각 35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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