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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토지 3필지 지적도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92_001 1916년 지주 이호 소유의 임실군에 있는 토지 3필지에 대한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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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호(李虎) 인감증명원(印鑑證明願)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梁基炫 李虎 李虎章 2顆, 聖壽面長 2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21_001 1933년 3월 23일에 임실군 성수면장(任實郡 聖壽面長) 양기현(梁基炫)이 이호(李虎)에게 발급한 인감증명원(印鑑證明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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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호(李虎) 차용금 증서(借用金證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李虎 任實金融組合 19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21_001 1933년 3월 24일에 이호(李虎)가 임실금융조합(任實金融組合)에 제출한 차용금 증서(借用金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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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표(李豹) 영수증(領收證) 1-1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崔京烈 李豹 崔京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46_001 1935년(소화10) 음력 2월 29일에 최경렬이 이표로부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토지매도 대금의 일부를 받고 작성해 준 영수증 1935년(소화10) 음력 2월 29일에 최경렬(崔京烈)이 이표(李豹)로부터 토지매도 대금의 일부를 받고 작성해 준 영수증이다. 영수증에는 일금 150원(圓)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이 금액을 부동산 매매대금으로 받았다고 증명하였다. 돈을 받은 날인 소화1-년 음력 2월 29일(양력 4월 2일)을 기록하고 영수인 최경렬의 이름과 도장을 찍었으며 마지막에 영수증 받을 사람의 이름을 이표(李豹)라고 적었다.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앞서 최경렬은 이표에게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의 대지와 산림 5필지를 매도하고 총 420원(圓)을 받기로 하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으며 당일인 1935년 3월 28일에 200원을 받았다. 최경렬은 그 후 남은 대금 220원에 대하여 음력 2월 29일(양력 4월 2일)에 150원, 4월 21일에 50원, 5월 10일에 20원을 받아 모두 영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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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証一金壹百五拾圓也右金以不動産賣買代金中 正히 領受候也昭和拾年陰二月二十九日領收人 崔京烈[崔京烈]李豹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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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이규호(李奎鎬) 인감증명서(印鑑證明願) 1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沈鐸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75_001 1930년 4월 28일에 임실군 성수면장이 발급한 이규호(李奎鎬)의 인감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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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受証一金拾員也但 崔彰永業代條로昭和參年 陰三月二十九日에正ニ 領受爲也領受人 李性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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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五年庚戌十二月初八日幼學張漢臣處明文右明文事段 要用所致 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 移買次伏在學堂村前竹田坪莊字田太種一斗五升落只負數三負六束庫乙 價折錢文八兩依數奉上永永放賣右人前爲去乎 本文段在都文書 故不得出給爲去乎 日後某人中如有雜談則 此文卞呈事田主自筆幼學李一垕[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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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二月初十日 綾州監榜目 上試任浩直一等三人 終一等三人李炳英 扶安 四 宋宰浩 光州金匡裕 康津 五 李泰孝 潭陽 三趙昌學 南原 八 李涉 興德 二二等七人 二等七人蘇泰永 南原 申龜河 潭陽金炳憲 扶安 權永錫 淳昌金敬厚 金溝 二 丁以鉉 光州李容燁 谷城 五 金載憲 玉果 二盧承壽 長水 一 金箕馥 興陽宋襆祜 興陽 三 金大炫 古阜高載謙 光州 七 鄭在炳 昌平三等二十五人 三等三十五人李志容 寶城 二 魯洙學 靈光李震爔 淳昌 四 朴仁浩 光州黃元? 光陽 四 金晩載 茂朱金益洙 康津 四 申載奎 昌平田慶爀 泰仁 一 宣秉文 谷城權喆魯 茂朱 三 朴東淸 光州宋兢勉 同福 一 李貞秀 龍潭 二金觀泰 金堤 二 柳廷植 潭陽具鍾恊 綾州 三 鄭民濟 茂朱金元植 金堤 李泰運 求禮金鍾繪 靈光 三 羅基翊 順天 一金箕謨 光陽 李實洙 興德趙永鐸 南原 任羲鼎 龍潭張基烋 金溝 李鎭濠 康津鄭桂朝 靈光 崔萬采 康津安秉祜 谷城 金基模 光陽鄭海勉 昌平 五 張元植 康津朴勝曄 靈岩 一 金亨傑【童】 光陽李畿運 求禮 二 申亨求 淳昌張復秀 昌平 朴載浩 南原丁尙圭 南原 任兢常 南原金聲義 鎭安 二 宋廷珏 井邑金容晛 光州 金馥煥 長城 一吳容翰 鎭安 申泰模【吏】 興陽吳永桓 雲峯 一 羅龍集 玉果文人燮 光州 權用浩 光州李希燁【七十】 谷城 任守柱【八十】 和順 一辛鍾斗 扶安 柳奎成 淳昌張齊澤 昌平 尹觀夏 海南 一李觀炫 古阜 二 朴載璜 錦山 一金秀學 南原 朴泰夏 扶安安錫洪 井邑 二 安璛 綾州金仁錫 南原 李秉良 谷城徐永魯【七十五】 全州 一 吳思行【九十一】 綾州任泰正【七十三】 長興 一 安杙【八十四】 寶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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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광주감(光州監)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 8월에 광주(光州)에서 설행된 감시(監試)의 합격자 방목 1866년(고종3) 8월에 광주(光州)에서 설행된 감시(監試)의 합격자 방목이다. 상시관(上試官)은 정현유(鄭顯裕)이다. 초장(初場)과 종장(終場) 모두 각각 1등 3인, 2등 7인, 3등 35인을 선발하였다. 초장은 부(賦)를 시험하였고, 시제(試題)는 "국가천만세무궁복(國家千萬世無窮福)이고, 종장은 시(詩)를 시험하였고, 시제는 "축원하오니, 성인께서 장수하고 부유하고 아들 많이 두게 하소서.[請祝聖人, 使聖人壽富多男子,]라는 시의 뜻에 대해 짓는 것이었다. 이 시는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나오는 구절이다. 합격자의 성명과 거주지를 나열하여 적었다. 병인년을 1866년으로 추정한 것은 종장 2등 합격자 가운데 장성(長城)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의 생몰년으로도 가능하고, 종장 1등 3인 가운데 김제(金堤)에 거주하는 이양호(李養浩 1852~?)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양현은 다음 해인 1867년 정묘년 식년시에서 생원시에 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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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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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5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5顆(7.0×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5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양직영·양주영 등 3인이 남준옥과의 산송 일로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5월에 능주목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양직영(梁直永)·양주영(梁柱永) 등 3인이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남준옥(南俊玉)과의 산송(山訟) 일로 겸읍(兼邑)에 정소(呈訴)한 결과 그 뎨김에 엄히 이굴(移殯)하도록 하였지만 남준옥이 한결같이 완거하게 거부 하기에 다시 정소한다며 남준옥을 법정에 잡아다가 엄히 가두고 이빈(移殯)하도록 해주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10일에 '전후의 판결문이 엄절한데도, 남가는 완거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겸읍에 가서 소지를 올린 말이 매우 흉악하니 금일 내로 즉시 이빈(移殯)하게 하고 만약 완거하게 거부하면 특별히 엄징(嚴懲)하고자하니 남가를 잡아오라'고 면임에게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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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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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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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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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6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3顆(7.0×6.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7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 등 9인이 남준옥이 그의 부모 시체를 자신들의 종가 주맥 가까운 곳에 암장한 일에 대하여 능주목사에게 굴거를 청원한 소지 1835년(헌종1) 7월에 능주목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 등 9인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지난 3월에 남준옥(南俊玉)이 그의 죽은 어미를 자신들의 종가 주맥(主脈)의 매우 가까운 곳에 암장(暗葬)한 일로 금단을 하다가 패악을 부리는 바람에 정소(呈訴)를 하였더니 전(前) 성주께서 도형(圖形)을 그리고 그 형제들을 잡아 오라고 하였고, 이에 특별히 차사를 보내주시어 금장(禁葬)을 하였더니 이때는 남준옥이 초빈(草殯)한 것이라 잠시 두려고 한다고 간계를 부리기에 다시 정소하니 뎨김에 그 빈장한 곳을 옮겨가게 하고 또 뜻을 둔다면 엄히 처결하고 즉시 굴거하고 남한을 가둔다고 하였기에 그가 잘못한 것을 알고 이빈(移殯)할 뜻으로 정소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끝내 이거하지 않았기에 다시 정소하니 뎨김에 빈처를 즉각 철거시키고 상황을 보고하라고 면임에게 지시했지만 면임 또한 사악하여 옮기지 않게 하다가 파면되었다는 것, 전 성주께서 상경한 후에 남가가 공관을 틈타 간계를 내어 겸읍(兼邑)에 무소(誣訴)하다가 자신들이 정소하니 겸성주의 뎨김에 속히 이빈(移殯)할 뜻으로 유향소에 분부했다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 미루며 그 아버지가 병사(病死)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또 밤을 틈타 투장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때가 어제 4경의 비 내리는 밤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모두 아뢰며 남가(南哥)의 간계를 잘 아시고 차사를 보내어 남가 형제를 잡아다가 가두고 엄히 다스리며 투장한 것을 즉시 이굴하게 해 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능주목사는 초5일에, 이미 전 성주가 판결한 것을 그 곡직에 대해서 다시 거론할 것은 없고 또 어찌 투장을 한 것인지 엄히 처벌하고 독굴하고자 남준옥을 즉시 잡아오라고 장민(狀民)과 주인(主人)에게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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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8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12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양시영·양직영·양주영·양상후 등이 남준옥 3형제의 부모 투장 사건으로 능주겸관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12월에 능주목(綾州牧)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양시영(梁始永)·양직영(梁直永)·양주영(梁柱永)·양상후(梁相垕) 등이 능주겸관(綾州兼官)에게 올린 소지이다. 누대 종가의 사당 주맥(主脈) 가까운 곳에 남준옥(南俊玉)이 투장한 일로 자신들이 정소(呈訴)함에 따라 차사(差使)를 발행하여 금장(禁葬)하고 도형(圖形)을 작성하여 살펴서 파내도록 했는데, 지난 5월에 다시 낙송(落訟: 소송에서 짐)했던 곳에 투장을 했기 때문에 또 정소를 하여 전 성주께서 즉시 파내어 옮기도록 면임에게 전령(傳令)하고 엄한 제사를 내렸고, 겸성주에게 다시 정소하여 또 속히 이굴(移掘)하라는 뜻으로 유향소에 분부하였으며, 또 본관 성주께서 새로 부임한 초기에 정소하여 남가 3형제를 3차례 가두고 기한을 정해 독굴하려고 8월 15일을 기한으로 다짐도 받았는데, 굴거하기 전의 매장지를 새로 매만져 수령이 관아에 없는 틈을 타서 감옥을 빠져나와 집에 돌아가 또 다시 그 아비를 계장(繼葬: 잇대어 무덤을 씀)하여 영문(營門)에 정소를 하니 뎨김에 남민을 잡아 가둔 후 굴거하기를 기다려 보고하라고 하셨으니 이상의 전후 문장(文狀)과 영제(營題: 영문의 뎨김)를 함께 돌리니 살피시어 남준옥(南俊玉)·남준룡(南俊龍)·남준흥(南俊興) 3형제를 법정에 잡아다 영문 뎨김대로 가두고 즉시 무덤 2개를 굴거하여 자신들의 누대 종기(宗基)를 보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겸관은 '여러 차례의 판결에도 이와 같이 완거하니 매우 놀라우며 영문의 제사 또한 절엄하니 소홀히 할 수 없다. 엄히 다스리고 독굴하기 위해 남준옥을 급히 잡아올리라'는 판결을 6일에 유향소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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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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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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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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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16년 토지 1필지 지적도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792_001 1916년 지주 이호 소유의 임실군에 있는 토지 1필지에 대한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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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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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김동필(金東弼) 등 수표(手票) 고문서-증빙류-수표 金東弼 等 盧濟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고종38) 2월 23일에 표주 유학 김동필(金東弼) 등이 전라남도 동복군 내남면 도마동 심곡에 있는 증조 산소와 노제상(盧濟庠)의 조부 산소를 함께 지켜나가자는 뜻으로 산소를 허급해 주면서 작성한 수표 1901년(고종38) 2월 23일에 표주(票主) 유학(幼學) 김동필(金東弼) 등이 전라남도 동복군(同福郡) 내남면(內南面) 도마동(刀磨洞) 심곡(深谷)에 있는 증조 산소와 노제상(盧濟庠)의 조부 산소를 함께 지켜나가자는 뜻으로 작성한 수표이다. 도마동에 있는 김동필의 증조 산소 아래에 노제상이 조부를 장사지낸 지 40여년이 되었지만 형세 상 파가게 하기가 어렵기에 함께 산소를 지켜가자고 하였다. 재종(再從)인 金滋玉이 우선 15냥을 받았고, 훗날의 염려가 있을 듯하다고 하므로 또 20냥의 돈을 받고 영영 허급해준다고 약속하면서 이 표를 작성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표주로 유학 김동필, 김홍필(金弘弼), 김자옥(金滋玉) 3인이 이름을 적고 김홍필을 뺀 2인이 서명하였으며,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로 선달(先達) 이평근(李平根)이 참여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동복현 내남면 도마동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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