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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同福士人羅得祥卽孤哀子之從兄也. 昌平士人得儉亦▣…之從弟也. 又議該博科業成就, 家門之望, 必期早闡▣…數奇年踰三十, 尙未小成, 場內公議之稱屈久矣. 今▣▣執事明鑑, 雖非私囑, 似無渡㶚之歎, 而屢屈之餘, 不▣生㤼要此仰煩, 仍以袖去于光山宿所, 幸伏望乘應▣接, 俾遂議荊之願, 仍 賜快捷獲勉落▣之歎, 則非徒私門之幸, 於 藻鑑, 亦無失人才之歎矣. 豈非無損于公, 而有光於私耶. 以書替囑要路請謁, 雖非士子當然底道理而敢恃無間之 盛意, 如是冒沒, 安敢望下諒, 而休咎耶. 悚罪悚罪. 更伏望 深量必施之如何.如▣引見士子, 雖在應恐漏瞻聆, 則更伏望, 所爲賜答, 以爲破感之端, 而其在納卷時, 相議之道, 兩張俱詩, 而題下詩字字劃大小與題相似, 初句初字必用天字, 而又沫去也. 兩張之摽, 俱如是, 而其於執事之意, 又或表, 表恐入他鑑, 則以 高明之見, 更爲從便商量, 下賜相議之道, 千萬伏企伏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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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朴萬益贈通訓大夫軍資監正者同治十年十月 日慶熙將朴龍昇曾祖考依法典追 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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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目惶恐伏地問安爲白乎㫆氣體候一向萬安爲白乎喩伏慕區區無任下誠之至伏白今春文氏五先生祠宇竣役以今月二十二日腏享祭官薦望是乎所望帖伏呈緣由詮次告課爲臥乎事丁卯三月初三日長淵祠典設生 李▣豊[着名]和順郡松石面草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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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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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07년 도석규(都錫楑)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德川書院 都錫楑 德川書院(6.1×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고종44) 8월 10일에 덕천서원에서 도석규(都錫楑)를 추향 헌관으로 임명하는 망기 1907년(고종44) 8월 10일에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도석규(都錫楑)를 추향 헌관으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망기는 당중(堂中)에서 도석규에게 덕천서원의 추향 헌관(獻官)에 천망(薦望)되었음을 적어 보내는 형식으로 작성되어 있다. 헌관은 제사(祭祀) 때에 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제관으로 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 등 3헌관(三獻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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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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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난번에 아들이 앓았던 병과 그 차도를 알리지 않은 것을 꾸짖고 현 상태를 상세히 알려서 아비의 걱정을 풀어달라는 내용 및 고창의 과거 시험과 관련하여 관문과 방위사통을 보낸 사연 등을 전한 답장.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난번에 아들이 앓았던 병과 그 차도를 알리지 않은 것을 꾸짖고 현 상태를 상세히 알려서 아비의 걱정을 풀어달라는 내용 및 고창(高敞)의 과거 시험과 관련하여 관문(關文)과 방위사통(防僞私通)을 보낸 사연 등을 전한 답장이다. 엊그제 읍의 인편으로 답장을 보냈으니 이 편지보다 먼저 받아볼 것이라는 내용, 뜻밖에 이 종이 갑자기 문 앞에 서 있어서 안개 속에 떨어진 듯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으나 정신을 수습하고 편지를 뜯어보고서 그동안 잘 지냈다는 안부를 비로소 알게 되어 조금이나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졌다는 내용, 지난번에 상대방이 앓았던 병은 언문 편지와 함께 종의 말을 자세히 듣고 그 당시에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본 듯하여 모골이 서늘해졌다는 내용, 그때 위태한 상황이더라도 붓을 잡을 수만 있었다면 멀리 있는 부모에게 알렸어야 옳은데 하물며 차도가 있은 뒤에 자주 인편이 있었음에도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무슨 정황이냐고 꾸짖는 내용, 처음 인(仁) 아이에게 들은 뒤로 아무 말이 없어 필시 대단히 위험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은 듯하여 근심이 누그러졌는데 지금 병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다고 하니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모두 쌓인 피로 때문이니 분통이 터진다는 내용, 깊이 유의하여 현 상태를 편의대로 상세히 알려서 자신의 답답하고 염려되는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내용, 자신의 생활은 여전하여 앞의 편지 내용과 다름이 없다는 내용, 고창의 과거시험과 관련하여 관문을 보내고 방위사통을 보냈던 일을 언급하고 상대방이 곤욕을 당한 상황에 대해서는 듣고 싶지 않다는 내용, 보암(寶巖) 일은 봄 즈음에 금강(琴岡)을 보낸 사유를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 종의 말을 들으니 관에서 조석이나 모두를 선물하고 또 만나 본 일도 있었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면 어째서 자신이 들은 것이 없느냐고 반문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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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謹呈裴斯文 士遠兄 省座右木必有根而生枝 水必有源而進海 人何無根源 而有生進之理乎 竊惟兄家修譜叙倫拒三歲 而利成又▣▣表烈傳百世而芳流 令人欽仰靈芝之根 醴泉之源 已有自於 達城君密直公興威衛公三賢也 而設壇拜禮 如吾鄙陋 幸得參末 或不無先後之失也以公祭論之 則無參降之節 而有四拜禮之當然當然 而當此初設 以慰安爲主 則有參降爲可 而再拜則失禮 笏記未飭 節次相違 將爲未安 切切修飭 以免日後失誤之嘆 如何如何 在傍各郡 貴族 無欠損否 爲之貢慮耳 餘留不具丙辰二月晦日 弟 朴采東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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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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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錦城返駕已有日 而一未進叙 雖緣奔忙 而悚悶則切矣 刊所相分時 以拜直員後 卽書之意牢約 而直員高敞之返駕 在於去旬日故詳陳內容于後使理當 卽郵書 而計其日子 則想必書到於發 駕之後 故未果矣 豈意費了多日留連耶 甚悚甚悚 刊所事 旣詳聞於鄙從 玎枉▣(臨)矣 更謹詢秋末兄體上在省安重 溸仰且祝 弟一是奔走 而秋事今日畢役牟耕明當告功 則以後活勤似是任意矣 餘在日間拜晤 不備上 甲子九月卄四日 弟 高翊柱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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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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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上仁山 裴先生瞻彼仁山飛鳳近隣 先生崛起爲我斯文領袖, 使此叔季人情知其所嚮其惠迪來進之功果爲何如哉 伏惟 先生卓然 自立於日門傳受有淂自修於己而及於人吾黨必曰仁山先生時伯 幸在同壤事 必親仁從學 而未能 且性本昏愚 不得有數 早失所學 只作孤陋人樣子故無人過我矣 惟吾 先生賁然再三精采百蓰 時維春事以殷下懷彌極 伏乞衛道申夭以慰區區情和 侍敎生現無他警事 有田疇身多絆縶 未能晉候 以時又未能上候間暇 是惶是悶 伏願君子不較 惟望 先生之不遐也 留 不備上庚寅月正念日 邪生 時伯 再拜上(皮封_前面)和順郡 道谷面 大谷里裴 仁山先生 遺稿刊所(皮封_後面)羅州 南平面 印巖里邪時伯 謹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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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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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此日之承此 訊 匪夷所思 况訊不以尋常寒喧者乎 驚浮於感 罔知攸諭 謹因審比寒折膠僉賢起居有相無瑕 實協景望 憲圭以若無狀 老而不死景憎耳 仁山遺稿再書後畧辦點刪 又不無種種未洽處 但恨手拙而至此矣 狀行之述 如其能文則 其在同門後死者之責 所不容辞辞者而如其不能文則恐狀人之行遠不免爲累人之行 然揆諸處地 則何暇以不文而付諸別人乎 惟望 僉賢視其晴而恕其罪耳 歲後 賁顧之 敎預切欲企 多少所攄 留俟都縮不備 惟回照丁酉十二月七日 鄭憲圭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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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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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戊戌十月日門契案2)3)則悅親戚之情話 是爲合族也 李靑蓮桃園之會則敍天倫之樂事 是爲合族也 合族而爲禊禊成而敦睦者 是豈非美事 歟惟我金海金氏 卽三賢苗裔 故農隱公官縣監諱大字雅 進士參奉公諱鐵字 府使公諱致字秀 戊午史禍4)竝謫湖南金陵之後以玉女峰下洗鼎洞爲原者 迄今十一世也 公有三胤而昆則仍居冬栢亭 季則以遺命還歸本鄕山淸 世有簪纓焉 子孫繁衍一再傳 而自五比爲四閭 自四閭爲百室 又有文學之士十數員知名當世 其餘以武堦顯名 則無慮二十餘員5)可謂盛矣 古有一禊 收宗族序昭穆立敎誡 以之講信 修睦傳之百有餘年中間世 故多端分散 四方人事 隨變此事 廢墜享禮 艱難爲其後承者寧不慨然 今者宗議詢同洗鼎洞歲祀日團會齋室續修舊禊 可謂善述善繼矣 其臚列條約 一6)依退陶先生溫溪之族禊 凡例屬余爲弁卷之文 余何勘辭也 禮曰上治祖禰以尊尊 下治子孫以親親 傍治昆季以敦睦 追遠厚倫之美達矣盍相與勉之哉戊戌十月日下澣 不肖孫昌裕 盥手謹序奎斗 盥手謹書7)嗚呼 族禊何爲而作也由其尊祖睦親而作也夫天之所生 地之所養惟人最貴者 以其尊祖之道 以其睦親之誼也 是以大舜明峻 徒以親凡族則有是親者 烏可無睦親之道乎 元聖制禮樂以敬恤祀 則有是祖者 曷可無尊祖之祀8)哉 惟我十一世祖農隱公官縣監諱大字雅 進士參奉公諱鐵字 府使公諱致字秀 戊午史禍被謫湖南金陵之後 昆則仍居焉 季房二員 以遺命還歸 故鄕世有簪纓焉 吾族居楸下 世修享祀焉 古有一禊 收宗族序昭穆 以之講信 以之9)修睦矣 挽近以來 世德零替 文獻無徵 革廢此事 則其爲後孫者寧無寒心乎 今者諸族慨然 有志於此問 命于門長 續修舊禊 則豈非吾族之盛事 亦非來裔之美蹟乎 猗歟哉 修此禊 立此規 後其爲後昆也 尙不失10)此規 微有補於尊祖睦族之道也歟 余以不敏事 恐愈久而湮沒 故書之如是云爾戊戌十月日下澣 不肖孫昌裕 盥手謹序奎斗 盥手謹書11)門長 金昌完座目【宗孫】金鎭斗 字替淑 甲寅生金昌敏 字君集 乙未生金昌伯 字完甫 丁酉生12) 13)金昌馥 字寬益 庚子生金昌班 字興允 庚子生金昌裕 字平烈 壬寅生金昌績 字良九 甲辰生金昌完 字應五 庚申生金昌雄 字士烈 辛酉生金昌琪 字士玉 辛未生金柄斗 字福允 戊申生金敬斗 字敬善 己酉生14) 15)金浩斗 字俊汝 壬子生金寬斗 字成三 癸丑生【辛酉二月二十八日身故】金奎斗 字奎煥 庚申生【癸亥六月十八日身故】金輔斗 字敬贊 癸亥生【辛酉二月十二日身故】金義斗 字義煥 庚午生金處斗 字化國 辛未生金文斗 字而彬 壬申生金生斗 字昇煥 癸酉生己亥十月十六日追入秩16)金昌琫 字士圭 戊辰生 庚子入金進斗 字洛鉉 辛酉生 庚子入金挺斗 字德哉 壬戌生 辛丑入金奉斗 字奉淑 辛未生 壬寅入金昌燮 字昇和 戊申生 壬寅入金繼斗 字瑞連 壬子生 壬寅入金轍斗 字舜瑞 丁巳生 壬寅入金昌安 字振旭 丙辰生 丙午入金昌采 字士準 乙丑生 丁未入金昌赫 字聖集 乙巳生 戊申入17)金敏斗 字寶一 癸亥生 乙酉追入金昌周 字敬澤 丙辰生 壬子追入金昌善 字有玄 乙未生 乙巳追入金昌植 字昌植 乙丑生 乙卯追入金昌奎 字亨才 庚辰生 乙卯追入金昇斗 字明洙 癸亥生 乙卯追入金炳斗 字成擧 甲子生 乙卯追入金撰斗 字建五 戊午生 乙卯追入金良斗 字致聖 壬午生 乙卯追入金正斗 字弼斗 癸巳生 丙辰追入18)金容璜 字東烈 生 丙辰追入金秉斗 字 辛卯生 丙辰追入金昌烈 字春化 丁巳生 己未追入金昌 字孔郁 壬戌生 己未追入金益斗 字鉄柱 丁亥生 己未追入金鍾斗 字 戊戌生 庚申追入金學斗 字順汝 戊辰生 辛酉追入金福斗 字漢中 甲申生 辛酉追入金昌權 字權一 甲子生 甲子追入金容瑀 字大振 甲申生 乙丑追入19) 20)金世斗 字致祥 丙子生 乙丑追入【乙丑十二月十九日仙化】金容善 字 乙丑生 乙丑追入金容玉 字長石 乙丑生 己巳追入金泳斗 字章五 丁卯生 乙亥追入金千斗 字致煥 壬午生 乙亥追入金容旭 字亨洙 丁丑生 乙亥追入金昌辰 字京辰 庚午生 甲申追入金仕斗 字仕宗 甲申生 仝金德斗 字福斗 辛亥生 仝金容煥 字淑珍 乙酉生 仝21)金容錫 字道生 乙巳生 甲申追入金石斗 字 丁未生 乙酉追入金向坤 字良玉 乙酉生 乙酉追入金鍾均 字 乙未生 乙酉追入金正均 字 癸亥生 乙酉追入金玉鼎 字 己未生 乙酉追入金南洙 字 壬辰生 乙酉追入金貞坤 字 丙寅生 乙酉追入金甲斗 字 丙子生 乙酉追入金容灄 字判基 癸巳生 己丑追入22)金容宙 字重基 甲午生 己丑追入金容祚 字 庚子生 己丑追入金容基 字元基 庚子生 己丑追入金容哲 字光致 癸卯生 己丑追入金容述 字容九 丙午生金容大 字 己酉生金容圭 字 壬子生2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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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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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2년 양회을(梁會乙)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高興國島儒會所 梁會乙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2년 10월에 고흥국도유회소에서 양회을(梁會乙)을 한포재 이선생 서원창건소의 유사로 위촉한 망기 1922년 10월에 고흥국도유회소(高興國島儒會所)에서 양회을(梁會乙)을 한포재(寒圃齋) 이선생(李先生) 서원창건소(書院創建所)의 유사(有司)로 위촉한 망기(望記)이다. 망기에는 고흥국도유회소에서 한포재 이선생서원창건소의 유사로 유학 양회을이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포재(寒圃齋)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강(仲剛)이다. 1684년(숙종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6년 춘당대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설서(說書), 수찬(修撰), 교리, 이조정랑, 응교(應敎), 사간, 서장관(書狀官), 우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이조판서 등을 거쳐 숙종상(肅宗喪)에 총호사(總護使)로서 장례를 총괄하였다. 이어 경종 즉위 후 좌의정에 승진해 김창집(金昌集) · 이이명 · 조태채(趙泰采)와 함께 노론의 영수로서 연잉군의 왕세자 책봉에 노력했으나, 이로 인해 반대파인 소론의 미움을 받았다. 1722년(경종2) 노론이 모역한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전라도 흥양(興陽)의 뱀섬[蛇島]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앞서 주청사로 청나라에 가 있으면서 세자 책봉을 요청하는 명분으로 경종이 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증(痿症: 양기가 없어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는 병)이 있다고 발설했다는 죄목으로 소론의 맹렬한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목이 베여 죽임을 당하였다. 재상으로 있을 때 민생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특히 당시의 현안이던 양역(良役) 문제에 있어서 감필론(減疋論)과 결역전용책(結役轉用策: 수령이 私用으로 쓰는 田結雜役價를 전용해 감필에 따른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자는 방책)을 주장해, 뒷날 영조 때의 균역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문에 능하고 송설체(松雪體)에 뛰어났다. 송시열(宋時烈)을 학문과 정치의 모범으로 숭배했으며, 김창집 형제 및 민진원(閔鎭遠) · 정호(鄭澔) 등과 친밀하였다. 1725년(영조1) 노론 정권 하에서 신원되어 충민(忠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과천의 사충서원(四忠書院), 흥덕(興德)의 동산서원(東山書院), 나주의 서하사(西河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시문과 소차(疏箚)를 모은 『한포재집(寒圃齋集)』 10권이 전한다. 고흥군에 있는 이건명을 배향하는 서원은 덕양서원인데, 이 문기의 서원창건은 덕양서원이다. 이 서원은 1768년(영조44)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사당 형태로 세웠다. 그 뒤 1928년에 비각을 고쳐 세우고 서원을 세웠으며, 황재 이기천·송애 정동준·돈암 이린기·도사 오광생·양촌 노주관·입재 문악연·정소송·정난파·명중화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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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포충사(褒忠祠) 내(內) 충효당(忠孝堂) 미국계(薇菊契)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褒忠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포충사(褒忠祠) 내의 충효당(忠孝堂) 미국계(薇菊契)의 대표 및 임원이 계원들에게 의연금 출연을 독려하는 내용의 통문 1934년 2월 15일에 포충사(褒忠祠) 내의 충효당(忠孝堂) 미국계(薇菊契)의 대표 및 임원이 계원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지역 유림들이 봄가을로 모여서 회포를 풀자는 계획으로 각기 10전은 기본비용이고 20전은 당일 비용으로 쓰면서 계를 만든 지 5~6년이 되었고 계원은 거의 600여 명에 달하는데, 매번 모임을 가질 때 추렴한 비용이 몹시 부족하므로 의연금을 모으자는 내용이다. 다만 각기 형편이 같지 않으므로 보통의 경우는 1~2원으로 하고 특별한 경우는 십 수원으로 하자고 하면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포충사(褒忠祠)는 임진왜란 초기 호남 지방에서 의병 7천 명을 모집하여 금산성 전투 및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안영(安榮) 등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액 사당으로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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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戶 幼學金宗烈 年五十七癸未 本金寧父 學生 允益祖 學生 聲玉曾祖 學生 垕昌外祖 學生 尹龍世 本柒原妻陳氏 齡五十七癸未 籍驪陽父 學生 有億祖 學生 宗旭曾祖 學生 德文外祖 學生 辛興瑞 本靈山率子璟任 年三十五乙巳率婦金氏 齡三十五乙巳 籍金海賤口奴以分 逃亡[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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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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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追䟽上壽旭頓首言 居然之頃 歲月不留 禮制有限先府君巷邨文丈祥期已闋 伏惟其際孝思罔涯之痛 當不下於斂襲之日矣 夫復何言 更伏審秋高制履起居萬重 而尙不免庭宇慨廓之痛矣 堂內僉節均吉否 伏溯區區不任 弟烏可曰有親誼乎 雖以數尺之喙 更以何辭仰煩哉 一紙之例尙爾不爲者 斷然有一番晉唁於侍筵之日 此意不遂 而峕變猝生 禍延先廬先亭 八代文獻 一朝混入於兵燹之中 非但刻石之破碎 未刊之文字六十餘卷 更無徵尋之處 痛哭奈何 生而不得定情於此世 死而無面目於地下 痛泣何言 東竄西奔寓隱於安東之杜峴峽 閱夏至秋 然而六月之闋八月之竣 永無一字之及 切非無心之故 勢固不得不然 追念平日蒙誨於棐几之下 負罪難容 此恨何及 伏望盛度弘量 以置不較原恕宥顧矣 餘不備謹狀尊察 謹再拜 上候狀丙申九月十六日 弟金壽旭追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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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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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累次次面 足以慰一不面之懷 頃書尙留爲案上 珍今又滿幅繾綣 奉讀數回 宛如承範對晤 儘覺綢繆之情 有非鎻鎻比也 夏令已半 暑候乖和 謹惟上堂節宣 神勞豈弟〖愷悌〗承歡餘 棣床動止 式好湛讌 令子侄實眷節 以得均宜 婦阿亦蒙庇穩度 幷庸仰慰 而向來菌慽 令人作惡■ 理排二字 是區區之望 弟蒲柳衰質 復見弧辰之回 起昔未澡之髫 已至蒼蒼化白 安有綠髫重生之望 而兒子之略略設酌 有難過情 雖不能止之 而劬勞爲樂 還切蓼莪之感也 但三棣俱存 鼎坐團欒 以是爲一樂耳 迷豚久留貳館 似蒙砭策 然合下鈍根 必多霧拙於大方乏敎 可愧可愧 餘留在續後 不宣謝禮 統惟心會乙丑午月旬日 査弟李鼎在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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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歲色居然紗薄 貴星奉牋際到 感戢叵量承審堂闈壽體康謐承歡餘棣候連重 廡節俱佳 何等慰鴈之極 査弟之兄依昔遣過 兒子輩各免 而新生幼孫 形端骨奇 足爲按玩之資 且其母幸無餘祟 惟是乳腦未出 爲一大悶事 令大宅昏禮聞在來月 而諸具已至就緖耶 餘惟冀餞迓增祉 掛漏呼倩 不備謝儀乙丑臘晦 査弟李鼎在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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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26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湧珍精舍 宋子大全分刊所 梁會甲 宋子大全分刊所之印(3.6×3.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7월에 용진정사 송자대전분간소에서 양회갑을 군유사로 임명하는 망기 1926년 7월에 용진정사(湧珍精舍) 송자대전분간소(宋子大全分刊所)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군유사(郡有司)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용진정사는 나주시 본량면에 위치하며, 양회갑이 맡은 군유사는 화순군의 유사로 보인다. 망기의 봉투와 우편봉투 피봉이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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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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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皮封)羅州郡 本良面 湧珍精舍宋子大全分刊所(重封)湧珍精舍 宋子大全分刊所薦圈(內紙)宋子大全分刊所 郡有司望梁 斯文 會甲丙寅七月 日[宋子大全分刊所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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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9년 고산서원(高山書院)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高山書院 高山祠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향 대수가 넘어서 신주를 조천(祧遷)하는 사안에 대해 유회(儒會)를 갖고자 한다는 내용의 간찰 1939년 12월 20일에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보낸 통문(通文)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향이 4대(代)가 넘어서 신주를 조천(祧遷)해야 하므로 의견을 모아 사당을 세워 존봉하자는 의견이 지난 가을 제향 때 나왔지만 사안이 중대하므로 널리 의견을 모아야한다고 하였다. 오는 1월 17이 본가의 길제(吉祭) 날이므로 15일 전 을미일에 담대헌(澹對軒)에서 한차례 유회(儒會)를 가져서 공론을 모아 성대한 예식을 완성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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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內紙)德川書院秋享獻官望幼學 都錫揆丁未八月十日堂中[德川書院](皮封_前面)德川書院薦圈都斯文 錫揆 座下(皮封_後面)丁未八月十日[德川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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