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澹對軒 重建所 梁會甲 澹對軒重建所之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 9월 29일에 담대헌중건소에서 양회갑(梁會甲)을 유사로 임명하는 망기 1924년 9월 29일에 담대헌중건소(澹對軒重建所)에서 양회갑(梁會甲)을 유사(有司)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신식연활자로 인쇄하였으며 이름 부분만 붓으로 썼다. 양회갑(1884~1961)의 본관은 제주(濟州), 초명은 회을(會乙),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이다.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호묵(梁虎黙)이며, 아버지는 현재(弦齋) 양재덕(梁在德)이다. 6세부터 할아버지인 양호묵(梁虎黙)에게서 글을 배웠고,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월파(月坡) 정시림(鄭時林)의 문하에 출입하며 경전의 뜻을 연구하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 집지하여 근사록(近思錄), 태극 도설(太極圖說), 서명(西銘) 등을 질문하여 학문을 하는 진수를 얻어 들었고, 천인 성명의 근원과 사단 칠정의 여러 가지 설을 탐색하여 충분하게 터득하였다. 고비산(高飛山) 아래에 강당을 짓고 강학을 하였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성리설이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에 의해 비판을 당하자 「변외필후변(辨猥筆後辨)」을 지어서 스승의 학설을 옹호하였고, 기우만이 죽은 후에는 그의 문집을 편집하였으며, 뒤에 연보와 행장을 찬하여 『송사 선생 문집 부록』을 만들기도 하였다. 고강사(高岡祠)를 건립하여 기정진(奇正鎭)과 기우만을 향사하였다.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에는 죽림재(竹林齋)가 있는데, 이곳이 고강사(高岡祠)로, 양회갑이 강학하던 곳이라고 한다. 저술에는 「변외필후변(辨猥筆後辨)」, 「성학원류(聖學源流)」, 「풍천록(風泉錄)」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 『정제집(正齋集)』 16권 7책이 있다.